70화
오우거 사냥 훈련은 차질 없이 끝났다.
내가 자체적으로 평가를 내렸을 때, 우리 팀보다 더 완벽하게 이번 훈련을 끝마친 팀은 없었다. 애초부터 이번 훈련은 사냥 그 자체보다 과정이 더 중요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정도라면 내 팀원들은 꽤 괜찮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겠지.’
그들을 이끌었던 나 또한 마찬가지고 말이다.
훈련이 끝나자마자 나는 따로 레너드를 불러 그가 앞으로 취해야 할 행동 방침을 정해 주었다.
“그쪽이 앞으로 맡을 일은 중급반에서 저의 파벌을 관리하는 겁니다. 제가 졸업한 이후에도 말입니다.”
“……파벌을 관리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네. 중급반 교관으로서 지속적으로 제 파벌을 키우라는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쓸데없이 수련생들의 성적을 좋게 조작한다던가 하는 헛짓거리는 꿈도 꾸지 마시고요. 이 일만 잘 처리하신다면 충분히 보답을 해 드리겠습니다.”
“알, 알겠습니다…….”
여전히 눈을 뒤룩뒤룩 굴리는 레너드를 잘 단속한 뒤, 나와 내 팀원들은 다시 본가로 복귀했다.
내가 본가로 돌아온 지 며칠이 지날 동안에도 그라힐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았다.
‘요정족에서 암살 실패를 따로 보고하지 않은 건가?’
그럴지도 모른다.
‘뭐, 상관 없겠지.’
저쪽에서 먼저 일을 터트려주었다면 조금 더 쉬웠겠지만, 그걸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슬슬 마그너스와 협상을 시작할 때.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는 나는 곧바로 움직였다.
안톤을 시켜 깔끔하게 보존 처리를 마친 요정족 암살자 머리를 그라힐의 처소로 보내도록 한 것이었다.
내 예상대로, 반응은 곧바로 찾아왔다.
그날 밤.
마그너스가 보낸 징벌기사가 나를 찾아왔다.
* * * * *
리텐슈노프 가문, 중앙동.
징벌기사들의 안내를 따라 나는 철혈궁 안으로 발을 들였다.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는 기나긴 복도를 지나 마침내 도착한 집무실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마치 공간 그 자체가 내게 엄숙함을 강요하는 것 같은 분위기. 문 너머에서 시작될 협상이 그다지 편하게 진행되지 않으리라는 걸 암시하는 것 같았다.
-끼이익
붉은 가죽으로 장식된 문이 천천히 열리며 실내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이 곳을 찾았을 때와 달라진 것 없는 풍경.
유일하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책상 너머에 앉은 노인의 주름살이 이전보다 조금 더 깊어졌다는 것일까.
마지막 만남 이후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마그너스는 이전보다 몇 살은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세월의 풍파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휘몰아치는 시간은 아무리 단단한 강철검이라도 녹슬고 바스러지게 만든다. 아무리 검제劍帝라고 해도 그러한 세상의 규칙을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뿐.
마그너스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빠르게 협상하기로 한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가만히 문 앞에 서 있지 말고 어서 들어와라.”
이전과 비교하면 부쩍 피로해보이는 그의 목소리에, 나는 감상을 떨치고 발을 옮겼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책상 앞에 서서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간 격조하셨습니까, 가주님.”
“오래간만이구나.”
마그너스는 조금 커진 눈으로 지그시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부쩍 성장한 내 육체에 놀란 듯했다.
“그동안 참…… 많이 컸구나?”
그야 그럴 터였다.
마지막으로 내가 마그너스와 마주한 것은 멜을 스승으로 들였을 때였다. 그 시절 내 육체는 평범한 아홉 살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고작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열세 살은 되어 보일 정도로 성장했으니, 당황스러울만하다.
‘아무리 내게 케찰코아틀의 심장을 주었다고는 해도, 이 정도의 성장 속도는 예상하지 못했겠지.’
성장 촉진제의 존재를 모르는 마그너스가 놀랄 만 했다.
“모두 다 가주님이 내리신 하사품 덕분입니다.”
“……그래?”
의심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 당연히 알고 있을 거다.
케찰코아틀의 심장 하나를 먹은 것만으로는 절대로 이만큼 육체가 성장할 리 없다는 사실을.
하나, 마그너스는 용인龍人이라는 이명답게 곧 의혹 가득한 표정을 얼굴에서 지웠다.
그가 의자를 향해 손짓했다.
“일단 앉거라.”
“감사합니다.”
나는 조심스레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내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마그너스는 입을 열었다.
“이미 보고를 들었다. 그라힐에게 또 선물을 보냈다고?”
“형님께서 저에게 선물을 하사하셨기에, 그에 대한 보답으로 일부를 돌려드렸을 뿐입니다.”
“일부?”
의미심장한 어감에 마그너스가 미간을 좁혔다.
나는 고개를 들어 마그너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자한자 힘주어 말했다.
“네. 고작 일부입니다. 아직 제 진짜 ‘보답’은 시작조차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만만하게 보이면 잡아먹힐 뿐이다.
내 목을 노린 대가는 톡톡히 되갚아 주어야 한다.
“허허, 참.”
내 확고한 대답에 마그너스가 허탈하게 웃었다.
하나, 곧 마그너스는 얼굴을 찡그리며 으르렁거렸다.
“그러면 너는 기회만 된다면 네 형제를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그래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가주님. 어폐가 있으십니다. 이건 제가 먼저 시작한 일이 아닙니다. 시비를 건 것은 저쪽 아닙니까?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요. 저는 피해자입니다.”
“…….”
“그리고…… 설사 죽이지는 않더라도 사람을 물었으면 매를 맞아야죠. 제가 무골호인도 아니고, 남들에게 우습게 보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원칙적으로 필요한 일이었다.
어쭙잖게 건드렸다가는 자신도 된통 피를 본다는 걸 깨달아야 앞으로 남들이 내게 개수작을 안 부린다.
당장 우리 친구 란체스를 보라. 내게 몇 대 쳐맞은 이후부터는 더 이상 덤벼들지 않잖는가?
출신이 어떻든 인간은 의외로 대부분 비슷하다. 매를 들어야지 말을 들어먹는 게 사람이라는 족속이다.
“가주님, 저는 심심할 때마다 입질하라고 있는 뼈다귀가 아닙니다. 형님께서 절 물어뜯으셨으니, 어떤 수를 써서든 그 대가를 치르게 할 겁니다.”
“……하지만 당장 네 능력으로는 불가능할 텐데?”
맞는 말이다.
현 시점의 그라힐은 5성의 실력자. 아직 4성인 나로서는 그라힐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건 불가능하다.
더불어 그라힐의 휘하에는 그보다 더 뛰어난 자들이 넘쳐났다. 개망나니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순혈 직계 리텐슈노프인 탓에 줄을 잡은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현재 내가 쥐고 있는 패는 미미하기 그지없었다.
끽해봐야 세르폰과 레너드 정도?
심지어 레너드는 세르폰보다도 실력이 더 떨어진다.
‘지금의 내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하지만…….
“글쎄요, 누군가가 도움을 주신다면 또 모르겠군요.”
내 의미심장한 중얼거림에, 마그너스가 눈을 찡그렸다.
“누구? 혹시 나를 말하는 것이냐? 내가 왜?”
“……가주님.”
나는 마그너스를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번 일, 가주님께서 막으실 수 있었잖습니까? 이전에 에이미에게 처벌을 내리셨을 때처럼 말입니다.”
아니, 솔직히 확실히 막을 수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확신하지 못하리라. 하나, 최소한 이전처럼 경고 정도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
“하지만 가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방관하고 묵인하셨지요. 그렇다면…….”
나는 잠시 심호흡으로 숨을 고르고는, 이내 대답했다.
“최소한 제 목숨값 만큼은 가주님께서 저에게 빚지신 것 아니십니까?”
그 순간.
“으허허!”
곧바로 큰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거 참, 재미있는 의견이구나.”
마그너스는 한참을 호탕하게 웃고는 음흉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네 생각이 맞다고 치자꾸나. 네 말대로, 녀석을 내가 벌했다면 지금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 그런 면에서…… 지금과 같은 사건이 터진 것은 내 실수라고도 할 수 있겠지.”
실수!
그 말이 나온 순간, 나는 마그너스 몰래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좋다, 이 정도 발언이 튀어나왔다는 것은 나름대로 마그너스가 협상에 어울려주겠다는 신호다.
그리고 내 생각대로.
마그너스는 웃음기를 머금은 채 내게 물었다.
“그래, 그렇다면 네가 원하는 건 무어냐? 그라힐을 벌해달라는 것이냐, 아니면 그라힐을 네가 주벌할 수 있도록 힘을 쥐어달라는 뜻이냐? 어디, 말해보거라.”
“제가 요청하면 그것을 들어주실 것입니까?”
“그건 네 말을 들어보고 결정하마.”
그렇게 답한 마그너스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살폈다. 과연 내가 무엇을 요구할지 궁금한 모양.
“그렇다면.”
당연히 내가 요청할 것은 하나뿐이다.
나는 곧은 눈으로 마그너스와 시선을 마주하며 천천히 입술을 땠다.
“제가 중급반을 조기 졸업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
그 즉시 짧은 침묵이 찾아왔다.
마그너스의 미간이 좁혀졌다.
“중급반을 졸업하게 해 달라고?”
“네, 그렇습니다.”
“어째서?”
마그너스가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왜 그것을 원하는 것이더냐? 차라리 내게 그라힐 녀석을 처벌해달라고 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
“그건 임시 방편에 불과합니다. 저에게 힘이 없다면, 이번과 같은 일이 또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애초에 그라힐이 날 만만하게 보는 시점에서, 다음에도 또 다시 개수작을 부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아예 근본적으로 일이 안 터지게 막을 방법은, 내가 섣불리 건드리기 어려운 인간이 되는 것 뿐이다.
“그렇기에 중급반을 졸업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드리는 겁니다. 가장 빠르게 힘을 기르기 위해서요.”
“힘을 기른다?”
마그너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가주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지금 제 실력은 4성입니다. 그렇기에 2성에서 3성 정도를 대상으로 하는 중급반의 커리큘럼은 제게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건 그렇겠지.”
“물론 멜 경의 가르침이 있긴 합니다만, 이번과 같이 멜 경에게 임무가 내려진다면 저는 시간낭비나 다름 없는 중급반의 커리큘럼을 따라야 합니다. 어찌되었든, 그는 중급반의 교관은 아니니까요.”
교관이 아닌 만큼, 계속해서 날 가르칠 의무는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네가 상급반으로 올라가면 무언가 달라진다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당당히 고개를 끄덕이자, 마그너스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의구심이 섞인 시선. 혹시라도 내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지 살피는 듯한 모습이다.
절로 등허리가 축축히 젖어들어갔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가만히 마그너스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곧.
“그렇다면, 증명하거라.”
마그너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증명, 입니까?”
“중급반을 졸업할 수 있는 나이는 열다섯 살이다. 이건 지금까지 본가에 소속된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된 가문의 규칙이고. 그걸 깨트리고 싶다면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지 않겠느냐?”
사실상의 허가에 절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입꼬리를 억지로 억누르며 천천히 심호흡을 한 뒤 물었다.
“제가 어떻게 증명해보이면 되겠습니까?”
내 물음에 마그너스는 가볍게 책상을 두들기더니, 이내 씩 웃었다.
“5성. 올해 안에 5성의 성취를 거두어 보인다면, 네 졸업 시기를 조금 당겨주겠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