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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71화 (71/139)

71화

그것으로 마그너스와 대화는 끝났다.

사실상의 협상 체결이었다.

마그너스는 그것을 끝으로 축객령을 내렸다.

이미 할 말은 끝났다는 듯한 태도였다.

나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는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철혈궁 입구를 지나며 나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올해 안에 5성의 경지에 오른다, 라…….”

[흠. 성공한다면 대단하겠지만, 글쎄, 지금 네 능력으로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겠느냐?]

데우스의 말마따나, 절대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열한 살에 5성을 달성하라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일이다.

현재 내가 이룬 성취는 4성 중후반.

지금 내 나이가 고작 열 살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것은 그야말로 경이로운 결과물이었다.

현재 리텐슈노프 가문에서 최연소로 4성을 달성한 기록은 3대 가주, 드라칸 리텐슈노프의 열네 살이다.

사실상 리텐슈노프 가문의 역사를 다시 쓴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 기록을 더 단축하라니…….”

마그너스가 가문의 규칙을 깨트리기 싫은 탓에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는 요구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그 마그너스’가 규칙을 지키기 위해 우습지도 않은 옹고집을 부리고 있을 리가 없다.

즉, 마그너스는 내 능력으로 충분히 11살에 5성을 달성하는 것이 해 볼 만하다고 판단했기에 이러한 조건을 제시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스스로 판단해보았을 때, 열두 살에서 열세 살이 될 무렵이라면 나는 충분히 5성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애초에 이미 나는 전생에 7성의 경지에 도달해 본 몸이다.

5성의 벽을 넘는 것은 내게 시간문제일 뿐,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마그너스가 내건 시간제한이지.’

마그너스가 내세운 조건은 더도 덜도 아닌 올해. 올해 안에 5성의 경지를 이룩하는 것이었다.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를 논하기 이전에 진짜로 이게 말이 되는 요구인가 싶을 정도로 빠듯한 시간이다.

쯧.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내가 너무 마그너스의 기대치를 높여버린 건가?’

그럴지도 모른다.

아홉 살이라는 젊다 못해 어린 나이에 4성의 경지에 도달했다. 검제劍帝 마그너스 리텐슈노프조차도 이루지 못한 성과를 일구어낸 것이다. 당연히 나를 향해 쏟아지는 기대감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었다.

‘하긴, 자식 놈들은 대부분이 병신투성이니까…….’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마그너스 리텐슈노프에게는 다섯 명의 자식이 있다.

볼칸 리텐슈노프.

제랄드 리텐슈노프.

갈라할 리텐슈노프.

코르테스 리텐슈노프.

그리고 내 아버지인 발레르 리텐슈노프까지.

위대한 명가의 혈통을 이었음에도 이들, 다섯 자식 중에서 마그너스의 기준에 부합하는 능력을 지닌 인물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볼칸, 갈라할, 코르테스는 리텐슈노프라는 명가의 지원을 한 몸에 받았음에도 결국 최후의 최후까지 10성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머저리들이었다.

그나마 자식들 중 유일하게 10성을 달성한 제랄드 리텐슈노프조차 가까스로 10성의 성취에 도달했을 뿐, 소드마스터라고 불러주기에는 미흡한 실력에서 성장이 멈추고 말았었다.

‘그 검제劍帝의 핏줄을 타고난 사람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결과물이었지.’

물론.

발레르 리텐슈노프라는, 가진 바 재능 면에서 다른 형제들과는 비교를 거부할 정도로 뛰어난 자도 있긴 했다.

‘문제는 가출이라는 최악의 형태로 가문을 뛰쳐나가버려서 아예 논외라는 것이지만.’

사실상 발레르는 버린 자식 취급을 당하는 만큼, 마그너스가 그를 후계자 후보에 넣을 리는 없었다.

결국, 전생에 마그너스 사후 가주 직위에 오른 것은 제랄드 리텐슈노프였다.

그리고 그가 가주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사실상 다른 후계자감이 없었기 때문이지.’

마그너스가 제랄드를 총애했다거나 하는 이유로 가주 자리가 승계된 것이 결코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즉, 그 말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압도적인 능력을 보여준다면.

그래서 마그너스가 자식들이 아닌, 손자를 차기 후계자로 염두하게 만들 수 있다면.

‘……마그너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항렬을 건너뛰고 세대를 뛰어넘어서, 손자의 몸으로 가주 직위에 오른다는 위업을 이뤄낼 수 있다.

나는 지그시 주먹을 움켜쥐었다.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며 미약한 통증이 정신을 일깨웠다.

‘절대.’

놓칠 수는 없다.

기회를 붙잡을 수만 있다면.

나는 절대 손아귀에서 놓아줄 마음 따위 없었다.

내가 그렇게 확고히 결심하자, 데우스가 말했다.

[5성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5성의 성취를 달성하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고.

당연한 사실이다.

5성은 기준선이다.

진정한 실력자를 가르는 기준이자, 재능의 도움을 받아야만 진입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어중이떠중이가 걸러지는 거름망이며, 진정으로 검의 길을 걷는 자들이 아니라면 그 편린조차도 맛볼 수 없는 위치였다.

4성에서 5성으로 올라서는 일이 5성에서 6성으로 올라서는 일보다 어렵고 힘들다는 것이 그러한 현실을 증명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5성은 격이 한 계단 올라서는 지점이다. 벽을 뛰어넘은 자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그 말 그대로, 5성부터는 진정한 초인의 영역이었다.

당연하지만, 그런 경지에 올라서는 것이 쉬울 리가 없었다.

하물며, 그 성취를 열한 살이 되기도 전에 얻는다?

말이야 쉽지, 뼈를 깎고 피를 토하는 노력을 해도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저 평범한 훈련으로는 불가능하겠죠?”

[당연한 소리! 네가 그런 망상을 하는 것 자체가 괘씸한 일이라는 걸 모르느냐? 양심을 좀 챙겨봐라. 아니, 이미 양심이 다 사라졌기에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건가? 맞구나, 그게 원인이었어!]

데우스의 말도 안 되는 타박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며, 나는 입맛을 다셨다.

“그렇다는 건 특훈 같은 걸 해야 한다는 건데…….”

문제는 그 특훈 방법이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솔직히 감이 안 잡혔다.

간단한 이유였다.

사실, 나는 진짜 천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전생을 예시로 들어보자면, 나는 이전 삶에서 7성의 경지를 이룩했다.

하지만 그만큼의 성취를 이루기까지 걸린 시간은 아주 길었다.

범재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천재라 하기는 애매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니 당연하지만 딱히 천재에게 도움이 될 만한 특훈 따위는 내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았다.

‘하물며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은 부족하기 짝이 없지.’

1년도 안되는 시간 안에 벽을 뛰어넘을 방법이라니!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글쎄다? 나는 딱히 그런 노력을 해본 적이 없는 몸이라서……. 알다시피, 이 몸은 드래곤이 아니더냐. 드래곤은 노력 따위 필요 없다. 어차피 강하거든.]

‘……참 잘나셨습니다.’

데우스 또한 이 부분에서는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하나, 굳이 고민할 필요 없는 일이었다.

그 무렵, 주어진 임무를 끝마친 멜 랭커스터가 다시금 내 곁으로 복귀했기 때문이었다.

* * * * *

“5성?”

멜 랭커스터는 마치 못볼 걸 보았다는 듯, 떨떠름한 얼굴로 미간을 마구 찡그렸다. 흡사 길에서 개똥이라도 밟은 사람이 지을 법한 표정이었다.

“야.”

“네.”

“혹시 너, 미쳤냐?”

그와 동시에 멜은 손가락을 제 머리 곁에서 빙빙 휘저었다. 돌아버렸냐는 제스처에 절로 얼굴이 굳었다.

“아님, 뭐. 잘못 쳐먹기라도 했어? 대체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병이라도 걸렸냐?”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럼 왜 그딴 개소리를 내 귀에 들려주는 건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긴, 실제로도 어이가 없을 법했다.

‘열살짜리가 4성이라는 것도 기상천외한 일인데, 거기서 한 걸음 더 위로 올라설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는 셈이니…….’

내가 생각해도 이건 당황할 만한 일이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판단하기에 지금 내게 특훈 비슷한 방법이라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멜 랭커스터, 그가 유일했다.

‘이 천재 중의 천재라면 무언가 방법을 떠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불가능하고 가능하고를 따지기 이전에, 일단 체계적인 방법이 존재할 리가 만무하니까. 당장 멜 또한 지금 내가 목표로 하는 속도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사람 뿐이야.’

지금 당장 실낱같은 방법론이라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멜 뿐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뻔뻔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필요한 일입니다.”

“아니, 필요하고 자시고 간에 너무 급하다니까? 네 나이에 4성이라는 것도 대단한 거라는 건 알고 있지? 거기서 더 성장하고 싶다니, 너 양심이 있냐?”

“…….”

“혹시 그런 이야기 못 들어봤냐?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양심은 삼각형 모양인데, 네가 마음의 가책을 느낄 때마다 그게 빙글빙글 돌면서…….”

“…….”

나는 대꾸하는 대신 가만히 멜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이러쿵저러쿵 떠들던 그가 입을 다물었다.

“진심이냐? 양심 터져서 아무렇게나 씨부리는 게 아니고?”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마그너스와 협상을 했다. 그러니 중급반을 조기 졸업하기 위해서는 5성을 달성하는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이건 내가 억지를 부리는 거니까.’

가문에서 15살이라는 나이를 졸업 시기로 정해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규칙을 깨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실적을 제시하는 수밖에 없었다.

흐음.

멜은 그제야 흥미롭다는 눈으로 나를 살폈다. 곧 멜의 의아하다는 시선이 내 몸을 훑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한참은 더 성장한 육체 때문인 듯했다.

“케찰코아틀의 심장을 복용했습니다.”

내 대답에 멜이 눈이 조금 커졌다.

“……그래? 마그너스 님이 그걸 줬다고?”

설마 그런 보물을 보상으로 받았을 줄은 몰랐다는 눈. 하지만, 이내 멜은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곧, 그의 시선에 미약한 장난기가 맺혔다.

멜은 염소수염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끝을 흐렸다.

“일단 몸뚱이는 어느 정도 물이 오른 거 같은데…….”

나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어떤 훈련 방식이든 상관 없습니다.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따르겠습니다.”

“……그래?”

멜이 눈을 반짝였다.

“그렇다면, 흠흠. 괜찮은 게 있긴 하지.”

역시!

나는 멜 몰래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천재를 가르치는 데 특화되어 있다는 인간답게, 그는 이런 기상천외한 상황 속에서도 제시할 수 있는 적절한 훈련 방법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근데, 좀 어려울 수도 있는데. 상관 없냐?”

“원래 훈련은 어려울수록 좋은 법이죠. 어떤 것이든 감수하겠습니다.”

1년 안에 5성을 달성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못하겠나.

당장 이 제안을 남들에게 들려주면 누구든지 간이고 쓸개고 다 내놓고 어떻게든지 가르쳐달라고 애걸복걸할 거다.

“……그렇단 말이지?”

내 대답이 퍽 만족스러웠던 걸까.

멜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훈련을 핑계로 날 골탕먹일 의도가 분명 없진 않았던 것 같지만 말이다.

그렇게, 멜과 함께하는 지옥 훈련이 다시금 시작되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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