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훈련 첫날.
“너도 잘 알고 있겠지만. 5성은 그 이전까지와는 원천적으로 다른 경지다.”
연무장으로 나를 부른 멜은 궐련을 입에 문 채 중얼거렸다.
“벽을 넘었다, 격이 올랐다. 이러쿵저러쿵 표현하는 수사법은 많지만,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하고 표현하는 이유는 간단하지. 진짜로 다르거든.”
“오러 방출을 말하는 겁니까?”
내 물음에 멜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 5성부터는 오러를 방출할 수 있게 되니까.”
4성 기사와 5성 기사의 차이는 간단하다.
4성 이전까지는 피워올린 오러를 검날에 덧씌울 뿐이지만, 5성부터는 그 오러를 외부로 방출할 수 있다.
차이라고는 고작 그거 하나.
하지만 그 사소한 것이 검사의 ‘격’을 나눈다.
오러를 외부로 뿜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정도의 차이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라는 거다.
“오러 방출에 성공하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차고도 넘치지. 전투 시 거리 조절은 물론, 오러를 방출할 줄 알아야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도 많으니까.”
뭐, 지금 당장은 논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지만.
멜은 그렇게 말을 한 번 끊고는, 깊숙이 궐련을 빨아들였다. 곧, 그가 연기를 내뿜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요점은 오러를 방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
멜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그 즉시 그의 검신에 오러가 피어올랐다.
단단하게 모양이 잡힌 정순한 오러.
소드마스터라는 그의 격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너도 피워봐. 무슨 검식이던 상관없으니까.”
그 말에 나는 미스텔테인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굴단 검식의 오러를 피워올렸다.
멜의 것과 비교하면 솔직히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군더더기 없는 오러였다.
‘뭐, 애초에 소드마스터랑 비교하는 게 말이 되나.’
내가 오러를 피우자, 멜이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내 오러를 힐끗 살피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조금 모자라긴 하지만, 뭐……. 이 정도면 나쁘지는 않네.”
모자란다니, 나이에 비하면 말도 안 되는 성과다.
내가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리는 사이,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간 멜이 느긋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자, 기본적인 것부터 따져보자고.”
멜은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오러라는 것은 검식이 품고 있는 묘리를 이용해서 네가 지닌 마나를 검날에 구현화하는 거다.”
“네.”
“여기서 본질은, 구현화한다는 거지.”
멜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검을 수련장 바닥에 푹 꽂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손에서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검날에는 여전히 오러가 덧씌워져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마법이나 검식이나 다를 게 없어. 마나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본질은 같으니까.”
맞는 말이다.
오러의 본질은 마나를 검식으로 구현하는 것.
실질적으로 마법사들이 마나를 이용해 마법이라는 현상을 현실에 불러일으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럼,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멜은 바닥에 꽂아놓은 검 손잡이를 톡톡 두들기더니, 나를 흘낏 바라보았다. 곧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법사는 실력이 허접해도 매개체 없이 허공에서 마법을 뿅뿅 구현되는데, 왜 검사는 5성이 되기 전까지는 검 밖으로는 오러를 방출할 수 있을까?”
“……그건 그냥 기술적 차이 아닙니까? 당장 마법은 오러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력이 약하잖습니까. 마나를 사용하는 기술이 다르니 생기는 차이 같은데요.”
서로의 급이 같다면 마법사의 마법보다는 검사의 오러가 훨씬 더 위력적이라는 건 상식이다. 마법은 범용성이 더 넓은 대신 화력을 포기한 기술이니까.
내 대답에 멜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맞는 말이긴 하지. 근데 네가 주목해야 하는 건, 검식이나 마법이나 본질은 다를 바 없다는 거지. 그렇기에 검신에 오러를 씌우나, 그걸 밖으로 방출하거나. 사실 큰 차이는 없어. 사용 방법 차이지. 내가 볼 때는 검이 아닌 다른 곳에 오러를 만든다는 게 그냥 익숙하지 않은 거야.”
멜의 말이 길어졌다. 평소와 조금 다른 분위기에 묘한 불길함이 느껴졌다. 무언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요?”
“즉, 내 생각은 이렇다. 검이 아닌 다른 곳에 오러를 만들 수 있다면, 검 밖으로 방출하는 것도 같은 이치로 쉽지 않겠냐, 이거지.”
“네?”
순간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해 내가 반문하자, 멜은 오른손 검지를 쭉 펴서 내 얼굴 앞에 내밀었다. 그 끝에 붉은빛의 오러가 맺혔다.
최소 7성 무렵의 검사라면 펼칠 수 있는, 자신의 신체에 오러를 덧씌우는 기술. 그것을 확인한 순간, 나는 멜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파악했다.
절로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멜은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이걸 할 수 있으면, 5성 따윈 쉽지 않겠냐?”
아니다, 이 악마야.
* * * * *
무언가 순서가 잘못된 것 같은 훈련이 시작된 지 한 달.
[내가 볼 때는, 그 녀석이 잘 가르치는 것 같은데?]
연무장 한가운데에 앉은 채, 손가락 끝에 마나를 집중하겠다고 끙끙거리고 있는 내게 대우스가 말했다.
난 곧바로 인상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미친 소리 하지 마십시오.”
[아니, 이놈의 자식이 진짜! 예의라고는 빵 바꿔 먹었더냐? 말버릇이 고약하기 짝이 없구나!]
“데우스 님의 그 발언도 고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5성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7성은 되어야 익힐 수 있는 기술을 배우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갓 태어난 아이가 기어 다닐 수 있도록 달리기를 가르치는 꼴. 과정이 왜곡되어도 한참은 왜곡되었다.
하지만.
[……하지만, 너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으냐? 그 멜이라는 녀석의 훈련 방식이 괴이할지언정, 잘못되거나 비효율적이진 않다는 것 말이다.]
데우스의 지적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건…….”
실제로 그러했다.
‘대체 왜?’
고작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나는 내가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대체 왜 강해지고 있는 거야?’
4성 중반 정도였던 성취는 이제 4성 끝자락에 다다르고 있었다. 고작 한 달 만에 말이다!
물론 여전히 오러를 방출하지는 못했다. 내 몸에 오러를 덧씌우는 건 당연하지만 말할 것도 없었다.
‘이런 무식한 훈련법이 왜 성과를 거두는 거야?’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이를 악물었다.
멜이 내게 제시한 훈련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일단 담금질을 할 거다.’
‘담금질이요?’
‘5성의 기준이 오러를 방출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나뉘기는 하지만, 방출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온전한 5성이라고는 부를 수 없잖아? 그만큼 네 실력도 키워야지. 그러니 온종일 대련으로 널 굴릴 거라고.’
‘……온종일이라면 어느 정도입니까?’
‘음…… 여덟 시간 정도?’
지난 한 달간. 잠을 자고 식사를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하루 종일 멜과 대련을 해왔다.
이번에는 딱히 봐주는 것도 없었다.
‘4성 중반에 오른 놈을 봐줄 필요가 있냐?’
이게 대련인지, 아니면 대련을 빙자한 화풀이인지 모를 폭력이 이어졌다.
그나마 멜이 진검을 쓰지는 않았기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나…….
그래봤자 자상을 입지 않았다, 정도일 뿐이었다.
온몸이 성한 날이 없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허억, 허억!’
‘뭐, 일단 갈구…… 아니, 대련은 이 정도만 하고…….’
‘허억, 네? 방금 뭐라고…….’
‘조용히 해. 어디, 몸에 마나는 좀 남아 있냐?’
‘안 남아 있습니다만…….’
‘그럼 잘 되었네. 당장 일어나서 가부좌부터 틀고, 손가락 끝에 마나를 집중해 봐. 오러 피워봐야지.’
‘후욱, 그걸 진짜 하는 겁니까?’
‘뭐라는 거야? 1년 안에 5성 되겠다며? 굼벵이처럼 기어 다니지 말고 당장 안 일어나냐? 확 더 두들겨 패버린다?’
끝없이 이어지는 대련에 마나를 탕진한다고 끝이 아니었다.
그 이후에는 바닥이 드러난 마나를 박박 긁어모아서 손가락 끝에 오러를 피워올리는 훈련을 해야만 했다.
그것은 내게는 아득하기 그지 없는 훈련이었다.
이게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그딴 것은 다 차치하고. 일단 신체에 오러를 덧씌우는 기술은 전생의 나도 익히지 못했던 것이었다.
당연히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 이거 되는 거 맞습니까?’
‘어허, 자꾸 의심해? 불신하지 마라. 되니까.’
‘아무리 해도 손가락만 아픈데…….’
‘자꾸 쫑알쫑알하지 말고 시키는 거나 해.’
‘뭘 알려주고서 하라고 해야…… 악!’
기본적인 방법론조차도 없었다.
그냥 까라면 까, 그것이 멜의 지론이었다.
[자기도 이렇게 고생해서 배웠다고 하잖느냐? 애초에 체계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무슨 조언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지.]
“……이게 가르침입니까? 아니면 괴롭힘입니까?”
[뭐, 구경하는 나는 보기 좋다만?]
“이 미친 도마뱀이 진짜……!”
당연히 실마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견식이라도 할 수 있도록, 매번 멜이 손가락 끝에 오러를 피워올려 보여주었다는 것일까. 덕분에 나는 몸에 덧씌운 오러와 검에 덧씌우는 오러의 차이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거라도 없었으면 배움이고 나발이고 불가능했지.’
에휴.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니까.’
애초에 멜은 천재를 가르치는 데 특화된 인간.
천재라는 인종이 다 그렇듯, 멜은 비범하지 않은 인간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걸 왜 못해?’ 가 일상인 족속들이라는 거다.
그런 인간을 스승으로 모시기로 한 시점에서, 이런 개고생이 이어지리라는 건 당연한 결과물이었다.
[그러는 너도 천재 아니더냐?]
“…….”
[서로 똑같은 놈들끼리 누가 더 나쁘네 좋네 하는 꼴로 보인다만.]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과거 회귀라는 희대의 비밀을 밝히지 못하는 이상, 데우스를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멜과 다름 없는 천재라는 걸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뭐, 좋게좋게 생각하거라.]
“이걸 좋게 생각하라고요?”
[그래. 그럼 이게 나쁜 일이더냐?]
데우스가 나를 타박했다.
[가르치는 방식이 좀 무식하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성과가 나오고 있지 않더냐? 그럼 감지덕지해야지. 불평불만이 넘치는 건 네가 양심이 없다는 증거니라.]
“양심이 없는 건 그 나이 드시고도 여전히 주책없이 제 유모에게 추파를 던지는 데우스 님이 양심이 없겠죠. 아니, 아무리 목소리가 안 들린다지만, 그 발언이 진짜 그 나이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십니까?”
[뭐, 뭬야?]
“어휴, 마리 유모가 못 들어서 다행이지. 진짜 듣는 내가 다 얼굴이 화끈거리던데.”
[어허! 아름다운 레이디를 아름답다고 하는 게 뭐가 어때서 그렇다는 것이냐! 나는 그저 미를 표현했을 뿐…….]
“그걸 요즘 세상에서는 나이값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하긴, 데우스 님이 나이값을 못하기는 하죠.”
[이이익! 이 쥐방울 만한 애새끼가 진짜……!]
내 빈정거림에 열불을 내며 성질을 부리는 데우스의 목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나는 다시금 손가락 끝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래도 성과라도 있으니 다행인가.’
무식하고 괴팍한 훈련이지만, 놀랍게도 효율적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게 끔찍하긴 하지만, 역시 멜이 올바른 방식으로 나를 지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충분히 마그너스가 제시한 시간 안에, 5성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눈을 반짝이며 주먹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지나갔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