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악질적이다.
멜의 수련을 한 어절로 표현하면 그러했다.
그가 내게 제시한 수련법들은 대부분이 무식하기 짝이 없었다. 나를 괴롭히겠다는 음습한 의도가 가득 담겨 있기도 했다.
희대의 천재라는 세간의 평가답게, 멜의 설명은 뜬구름 잡는 거나 다름없었다. 대련 명목으로 진행되는 유사 구타는 덤이었다.
솔직히 어지간한 인간이라면 당장 때려치웠을 방식이었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가는 녀석이라면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칼 들고 멜의 뱃가죽에 쑤셔 박았겠지.
‘뭐, 어지간한 인간이라면 박을 수도 없지만.’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엿 같네. 욕 나오는구만.’
그 빌어먹을 수련들은, 놀랍게도 성과가 있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아예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거나, 악의적인 갈굼이었다면 지랄하지 말라고 난동이라도 피웠을 거다.
문제는 멜과 수련할 때마다 내 실력이 오르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결국 입 닥치고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하루하루가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우웨에엑!”
그렇게.
오늘도 멜의 훈련은 평소와 다를 것 없었다.
치밀어오르는 구역질에, 나는 배를 부여잡은 채 바닥을 뒹굴었다. 명치를 제대로 강타당한 탓이었다. 흙바닥에 엎드린 채, 나는 속을 게워냈다.
“크으윽……!”
아까부터 너무나 많이 토한 탓인지, 입에서는 신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던 멜은 심드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야, 임마. 고작 이것 가지고 그래? 뭘 했다고 벌써 퍼져? 아니, 그리고 곧 있으면 점심 먹어야 하는데, 그러고 있으면 입맛이 돌겠냐?”
말을 해도 참, 부아가 치밀어오르게 잘한다.
“우웩, 윽. ……어차피 또 먹어봤자, 다 토해낼 거 아닙니까? 이거, 식사하는 의미가 있습니까?”
“너야 다 토하겠지만, 난 아닌데?”
절로 입술이 꾹 다물어진다.
거참, 기적의 계산법이구만.
“…….”
이를 악문 채 지그시 그를 노려보자, 멜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웃었다.
“꼽냐? 꼬우면 나보다 세던가. 너도 나 두들겨 패고 벌레처럼 구르게 해. 왜 못해? 아, 그러기엔 약하지?”
빠드득!
‘이, 미친 인간이 진짜……!’
절로 이가 갈리며 섬뜩한 소리가 입 안에서 울려 퍼진다. 젠장, 이 악물면 치아 건강에 안 좋은데.
이러다간 진짜 열다섯 살 되기도 전에 틀니를 맞출지도 모르겠다.
멜에게 들리지 않을 작은 소리로 혀를 찼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옷소매로 입가를 닦아냈다.
그러자 멜이 검 끝을 내게 겨누며 눈살을 찌푸렸다.
“야, 잠시만. 너 방금, 혀 찼지?”
“아닙니다.”
“지랄하네. 얼굴에 다 써 있는데.”
“아 좀, 아니라니까요? 그리고 혀를 차는 거랑 표정이 무슨 상관입니까?”
버럭 성을 내자, 멜이 킬킬 웃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럼 여기가 안이지, 밖이냐?”
“거참, 멜 경은 그게 정말 웃깁니까?”
너무 열받은 탓이었을까, 평소에는 안 하던 말실수가 튀어나왔다. 나는 황급히 입을 꾹 다물고 멜을 쳐다보았다. 역시나, 멜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뭐 임마?”
그 즉시, 멜의 검격이 내게 날아들었다.
“이크!”
재빨리 땅바닥을 박차며 뒤로 몸을 피해냈다.
간발의 차로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 수련검.
만약 피해내지 못했다면, 머리에 정통으로 쇳덩이를 얻어맞았을 거다. 절로 등골이 섬뜩해진다.
-휘이익!
곧바로 쏟아지는 연격.
나는 그 공격을 가까스로 피해내며 악을 썼다.
“아니, 미친! 왜 욕보다 재미없다는 소리에 더 열받는 겁니까?”
“내 마음이야, 이 새꺄!”
상단 베기, 중단 찌르기, 올려 베기, 하단 찌르기, 쓸어 베기.
미친 듯이 흩뿌려지는 검격 하나하나가 매섭다.
피해내는 것만으로도 전신의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당연히 반격은 어림도 없었다.
“좀! 진짜로 죽일 셈입니까?”
“어차피 이것도 못 피하는 실력이면 곧 뒈져! 넌 상급반에서 내려주는 임무가 좆으로 보이냐?”
목소리와 동시에 쑤셔박히는 찌르기.
동작이 큰 탓에 빈틈이 드러났다. 뻔히 함정이라는 게 드러나는 빈틈이었지만, 문제는 다음 연격을 피해내는 것이 마땅치가 않았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드러난 틈으로 반격을 내질렀다. 그 즉시, 곧바로 멜의 주먹이 휘둘러졌다.
-퍽!
콧잔등에 주먹이 쑤셔박힌다. 나는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다행히 낙법을 취한 탓에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을 수는 있었으나, 코피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악! 젠장……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알면서 당해? 병신이야?”
멜은 검을 갈무리하며 나를 비웃었다. 그리고는 다시금 검을 흩뿌리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그 순간.
-쿵쿵쿵!
갑자기 들려오는 연무장 문 두드리는 소리.
동시에 우리 두 사람의 고개가 돌아갔다.
‘뭐지?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순간 의아한 마음이 들었으나, 어차피 누구든 상관 없었다.
‘이 틈에 좀만 쉬어야겠어.’
하루 종일 대련으로 고통 받은 탓에, 휴식이 절실했다. 나는 멜이 딴소리를 지껄이기 전에, 얼른 검을 내려놓고 황급히 연무장 문을 열었다.
“도, 도련님?”
찾아온 사람은 세르폰이었다.
세르폰은 코피가 흘러내리는 내 얼굴을 보고 움찔 놀랐다가, 이내 저 멀리 서 있는 멜을 확인하고는 어째서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왜 당연하다는 듯 구는 거야?’
뭔가 기분이 이상했지만, 일단 넘어가자.
“무슨 일입니까?”
코피를 슬쩍 닦아내며 내가 물어보자, 세르폰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곱게 접힌 편지였다.
세르폰은 내게 편지를 내밀며 말했다.
“초청장입니다.”
“초청장?”
“네. 반 리텐슈노프 도련님께서, 도련님을 성인식에 초청하셨습니다.”
“응?”
* * * * *
성인식.
그것은 스무 살, 성인이 되면 치르는 행사를 말했다.
성인식을 치르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닌 한 사람의 오롯한 성인으로 대우받았다.
당연히 그전까지는 어린아이로 취급하는 만큼 가진 권리를 제한당했다. 물론 오대 명가 정도 되면 미성년자 시절에도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어마어마하지만, 그래도 성인에 비하면 어느 정도 제약이 있었다.
‘허, 반 리텐슈노프가 벌써 스무 살이 됐었나?’
대략 열여섯 살 정도 되면 다 큰 것으로 간주하는 평민들과는 다르게 귀족가에서는 스무 살부터 성년으로 취급했다. 당연하지만 오대 명가인 리텐슈노프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여튼.
중요한 건 성인식이라는 것은 어찌 되었든 축하 행사라는 것이다. 연회를 열고, 사람이 모이는 행사.
그리고 나는 그런 것을 몹시, 몹시 싫어했다.
“에휴.”
분명 맞춤으로 제작된 예복은 불편함이 없어야 하건만, 어째서인지 모든 게 다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마치 몸에 안 맞는 옷을 걸친 것 같았다.
딱 알맞게 조였음에도 어째서인지 목이 졸리는 것 같은 나비 넥타이는 화룡점정이었다.
나는 검은 나비 넥타이를 매만지며 투덜거렸다.
“이걸 굳이 가야 할 필요가 있나? 어차피 성인식이라는 거, 솔직히 요식행위잖아.”
연회는 내가 전생에 질색하던 이벤트였다.
가진 것 없던 밑바닥 시절에는 내게 꽂히는 시선이 두려워서, 차후 아덴의 측근이 된 이후에는 과거와는 달라진 내 취급이 역겹고 위선적으로 느껴져서.
어린 시절에는 선망하고 기꺼워했으나, 내부 사정을 깨달은 뒤로는 어떻게든지 피하려던 행사에 불과했다.
그러니 나로서는 이런 게 귀찮고 짜증 날 수밖에.
그러자 내 재킷의 단추를 잠그던 마리 유모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초대장을 받으셨으니 가셔야만 해요.”
“어차피 가봤자 쓸데없이 안면 트면 끝인데. 심지어 형제들 전부 다 오는 것도 아니잖아? 로드리게랑 에르반은 불참이라던데? 그라힐도 마찬가지고.”
“로드리게 도련님과 에르반 도련님은 일이 바쁘시니까요. 그리고 그라힐 도련님은 임무 수행 중이시고요.”
마리 유모의 대답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임무는 무슨…….”
안 봐도 알만했다. 임무를 핑계로, 어디서 술이나 처마시며 계집질에 열중하느라고 안 오는 것일 터.
‘그런 놈이 5성이라니,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도 아니고…….’
나는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하여튼, 제 생각에는 참여하시는 게 좋아 보여요.”
“왜? 설마 다른 형제들과 돈독하게 지내라는 뜻은 아니지?”
“그런 이유는 아니에요.”
마리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는 곧 진지한 눈으로 나를 마주했다.
“무식하고 부족한 저로서는 도련님께서 품은 뜻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어요. 짐작도 되지 않고요. 하지만…… 결국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도련님분들과 경쟁하셔야 하잖아요.”
“…….”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나는 굳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마리 유모는 그런 내 표정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건지 계속 내게 조언을 건넸다.
“세르폰이 제게 말하기를,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언제나 이길 수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아직 도련님께서는 다른 도련님들을 제대로 뵌 적이 없으시잖아요. 그러니 이번 성인식은 도련님의 다른 경쟁자들을 가늠할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대답한 마리 유모는 입을 다물었다.
자신은 조언만 할 뿐, 선택권은 내게 있다는 듯한 태도. 혹자는 건방지다고 평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행동에서 나를 향한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
“음…….”
사실 맞는 말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전생의 기억을 지닌 만큼, 나는 내 형제들 대부분의 성향이나 미래를 알고 있으니까. 굳이 파악 같은 걸 해야 할 필요는 없는 셈이다.
하나.
‘이런 애정을 받아본 게 대체 언제였더라.’
내가 회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는 마리 유모로서는 내 나이를 생각해서 최고의 조언을 해준 셈이었다.
별거 아닌 일인데도, 묘하게 가슴이 뭉클했다.
나는 입술을 달싹이며 꺼낼 단어를 고민했다.
그 순간.
[……어? 자, 잠시만?]
깜짝 놀란 것 같은 데우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데우스의 목소리가 어째서인지 떨리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 불길한 거라도 감지한 것 같았다. 곧, 데우스가 당황하며 내게 물었다.
[……야, 야, 야! 그, 꼬, 꼬맹이?]
‘……뭡니까?’
[뭐, 뭐냐? 대체 언제부터 레이디 마리가 세르폰인지 인터폰인지 하는 놈팡이를 이름으로 불렀던 게냐?]
“……어?!”
그제야 난 화들짝 놀라 마리 유모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얼굴로 나를 살폈다.
“왜 그러세요, 도련님?”
“그, 유모.”
“네에.”
“근데, 언제부터 세르폰 경을 이름만으로 부르게 된 거야……?”
“……!!”
내 질문에, 곧바로 마리 유모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화끈화끈한 열기가 여기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말을 잃은 그녀가 어물쩍거렸다.
“어, 그…….”
빨개진 얼굴을 숙인 채 내 시선을 피하는 마리 유모.
[이, 이런 젠장할! 빌어먹을! 그 얼굴만 반반하고 멀대 같기만 한 놈팡이가 대체 어느새 나의 레이디 마리르으으을! 망할! 나도 몸만, 몸만 있었더라며어언!]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길길이 날뛰며 괴성을 내지르는 데우스를 뒤로하고, 나는 어색하게 볼을 긁적였다.
“이거, 참.”
사람 일이란 아무도 모른다더니.
진짜 딱 그 짝이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