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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77화 (77/139)

77화

아덴 리텐슈노프.

나의 오래된 옛 주인이자, 나를 배신하고 죽인 자.

그와의 첫 만남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소식은 들었다. 중급반을 조기 졸업한다며? 대단하구나. 가문에서는 처음으로 있는 일이라던데.”

처음에는 참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만약 마주친다면, 혹시라도 내가 그를 죽이려 들지 않을까. 당장이고 목을 졸라버리지 않을까.

그런 걱정을 했었다.

“과찬입니다. 그저 올해 우연히 가주님께서 마음을 바꾸셨기에 생긴 일일 뿐입니다. 만약 형님께서 중급반에 있으셨던 시기에 가주님이 마음을 바꾸셨다면, 형님께서도 조기 졸업을 하실 수 있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죽이고 싶었고, 당장 목을 쳐버리고 싶기는 했지만.

그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내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처음 목소리를 듣는 순간에는 눈이 뒤집히는 것 같았지만, 곧 침착을 되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 빈말이라도 고맙구나. 그러나 너무 자신을 낮추지 말아라. 네가 능력이 있었기에 이룬 결과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론 내가 침착을 되찾는 것과, 내가 아덴과 편히 대화를 나누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전생에도 그러했지만, 이 인간은 어지간히 수사修辭를 좋아했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상당히 모호하고 우회적인 표현을 즐겨 썼는데,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담긴 속뜻을 분석하지 않고서는 본의를 쉽게 파악하기 힘들었다.

지금도 그렇다.

‘어지간히 내가 거슬리나 보군.’

평소 아덴의 대화 방식을 생각해볼 때, 그는 내가 이룬 성과가 몹시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이 인간이 반 리텐슈노프의 성인식 따위에 참석할 리가 없지.’

나는 전생의 기억으로 잘 알고 있었다. 아덴 리텐슈노프는 자신의 형제 중 사람 취급하는 인간이 없다.

그렇기에 당연하지만, 아덴이 반 리텐슈노프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성인식에 참가했을 확률은 0에 수렴했다. 아마 실력도 없는 벌레, 정도로 보고 있겠지.

‘분명해. 나를 가늠하는 게 목적이다.’

아마 어디선가 내가 이 자리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듣고는, 나를 한 번 파악해보기 위해 왔으리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푹 숙인 채, 비위를 맞춰주면 아마 아덴은 나를 오판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의 눈이 좋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런 오판은 오래가지 않겠지만.

하나, 조금이라도 나를 과소평가하게 둔다면 내 운신의 폭은 지금보다도 훨씬 넓어진다.

하지만.

-빠득!

‘조금도 그럴 마음이 안 드는걸.’

충성을 바쳤음에도 나를 배신했다.

고작, 드래고니아 구축법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복수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그런 자에게 고개를 숙이며 굽히고 싶지 않았다.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러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어차피 이 몸이 가진 재능과, 전생의 기억만 있다면 아덴 리텐슈노프를 꺾는 건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다.

이런 이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조금 더 이득을 보겠다는 이유로 내 자존심까지 굽히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렸다.

‘차라리, 좆같은 동생으로 남아주지.’

어차피 서로의 관계는 이어질 수 없다.

결국 아덴은 나를 증오하게 될 거다.

정당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후계자 자리를 내가 노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나를 증오해야 할 이유를 내가 직접 만들어주지.’

결심은 빨랐다.

“어찌, 연회는 즐거우냐? 오늘 많이 즐겨두거라. 상급반에 올라서면 임무에 치여서 이런 연회 같은 행사에는 참석할 기회가 거의 없단다.”

웃으며 내게 덕담을 건네는 아덴에게, 나는 망설임 없이 언어로 된 비수를 꽂아넣었다.

“그렇습니까? 이런 행사도 참가하지 못하실 정도라면, 쏟아지는 임무에 정말 치여 사시는 모양입니다. 저도 곧 상급반에 올라서는데…… 형님께서 그렇게 고생하실 정도라니,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하군요.”

내 대답에 아덴의 눈썹이 순간 움찔 떨렸다.

아마, ‘대체 일 처리가 얼마나 늦으면 연회장 구경도 못 하냐?’라는 내 말의 속뜻을 인지했음에도, 그게 내 본의인지 파악하는 모양이었다.

하나, 내가 계속 실실 웃음을 보이자, 곧 그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그래도 걱정하지 말아라. 상급반에서 내려주는 임무에는 협동해야 하는 것들이 많거든. 수하들과 함께라면 어려운 임무도 척척 해결할 수 있을 거다.”

내 파벌이 한미하다고 지적하는 건가?

“그렇습니까? 형님께서는 참으로 신뢰하고 등을 맡길 수 있는 수하들이 많으신 모양이군요. 에르반 형님도 그렇고, 다들 자기 사람이 있어서 부럽습니다.”

그래봤자, 네 파벌도 에르반에 비하면 별거 없잖아.

“확실히…… 에르반 형님께서는 대단하신 분이야. 능력도 완벽하고, 인망도 좋으시니까. 물론, 타고나신 권능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런데도 그 정도라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니겠느냐?”

아, 에르반이 너보다 권능이 후달리다는 걸 강조하고 싶은 건가?

“그렇죠. 괜히 소검제라고 불리시는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권능이 좀 부족해도, 너보다는 뛰어나잖아? 그 인간이 괜히 차기 후계자, 소검제라고 불리겠냐고.

“…….”

내가 이렇게까지 말했음에도, 아덴의 얼굴은 여전히 평온했다. 하나, 그 눈동자는 서늘하게 불타고 있었다. 당장이고 내 목을 졸라버리고 싶어하는 눈빛이었다.

‘그래, 빡치겠지.’

다른 사람들을 죄다 버러지 취급하고, 이 가문에서 차차기 가주 직위를 이어받을 사람은 오로지 자신뿐이라고 호언장담하는 인간 아닌가?

그런 사람 앞에서 자신의 가장 큰 경쟁자를 옹호해주는 내가 고까울 수밖에.

심지어 내가 한 발언은, 아덴에게는 직접적으로 자신을 비하하는 말로 들릴 테니까.

하지만 이딴 소리를 듣고도, 아덴은 내게 직접적으로 뭐라고 말하지 못한다. 체면 문제도 있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나 또한 리텐슈노프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에.

내 입가에는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를 노려보았을까.

“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

결국, 먼저 발을 뺀 것은 아덴이었다.

여기서 드잡이질을 했다가는, 결국 잃는 것이 더 많은 건 자신이라는 걸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벌써 돌아가십니까?”

“이번 연회는 반 형님의 성인식이 아니더냐? 나의 즐거움만 찾는 건 아우로써 도리가 아니지. 너도 얼른 반 형님께 인사를 드리거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하고는 다시금 반 리텐슈노프가 앉아 있는 상석으로 발길을 돌리는 아덴. 나는 떠나가는 그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피식 웃었다.

‘탐색전은 이걸로 충분하다, 이건가.’

오늘 일로 인해, 아덴은 아마 나를 더욱 경계하게 될 거다.

‘어쩌면 날 회유하려고 할지도 모르지.’

내가 독자적으로 가주 직위를 노리리라고 판단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보여준 태도만으로 미루어 볼 때, 심정적으로 에르반에게 더 기울어져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도 존재하니까 말이다.

‘뭐가 되었든 상관없다.’

어차피, 내가 리텐슈노프의 가주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전부 다 쓰러트려야 할 적에 불과하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초콜릿을 입에 머금었다.

[이런 젠장! 이, 정신 나간 미친 꼬맹이 같으니라고! 누누이 말하건만, 치약은 사람이 먹는 게 아니다!]

상쾌한 초콜릿은, 맛이 좋았다.

괴이한 소리는 다시금 제자리에 돌아온 아덴 리텐슈노프 쪽에서 들려왔다. 마치 무심코 실수했다는 듯이, 아덴의 얼굴은 곧바로 평온하게 바뀌었다.

하나, 그 짧은 순간, 반은 보았다.

‘이거 참.’

아덴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말이다.

‘이 녀석이 이런 표정을 짓는 걸 보다니.’

그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반 리텐슈노프는 힐끔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저 멀리서 우물거리며 연회 음식을 먹는 소년이 보인다.

‘대체 서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반이 미루어 볼 때, 아덴의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원인은 분명 드레커였다. 문제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고작 열한 살 짜리 때문에, 이 소름끼치는 녀석이 표정을 드러냈다고?’

그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반으로써는 믿기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아덴이 감정을 드러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흥미롭구만.’

그 순간, 그는 아덴과 시선이 마주쳤다.

반 리텐슈노프는 표정을 감추기 위해 얼른 술잔을 들어 입에 가져다 대었다. 그저 우연이었는지, 아덴은 곧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제야 반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독사 같은 놈 같으니라고.’

입맛이 썼다.

분명 자신이 더 연장자이고, 수련동 선배이거늘, 왜 언제나 녀석이 아니라 자신이 숙여야만 하는 것인가?

불우한 재능을 내려준 하늘이 저주스러웠다.

“크흠.”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문득 궁금해졌다.

‘대체 드레커, 저 녀석이 어떤 놈이기에 아덴 놈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반 리텐슈노프가 드레커에 관해 아는 것은 그다지 없었다. 마그너스가 주목하는 유망주, 하급반 시절부터 압도적인 성과를 내고, 일반적으로는 절대 사냥할 수 없는 몬스터를 잡아낸 괴물. 교류전 수석 우승자.

이렇게 모아놓고 보면 솔직히 대단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래봤자 고작 열한 살 짜리 꼬맹이 아닌가?

그것도 부모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홀몸일 뿐인?

‘한 번 접근해 볼까?’

그런 생각이 일순 들었으나, 곧 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직접 가는 건 위험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평가한다고 자부하는 반 리텐슈노프였다. 그리고 그가 평가할 때, 자신은 정말로 애매한 위치에 서 있는 인간이었다.

나름대로 자신만의 세력은 있지만, 그다지 크지 않다. 본인이 가진 재능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유일하게 장점이라고 할 만한 것은 고작 해봐야 돈을 버는 재주가 있다는 것?

하지만 강자존의 리텐슈노프에서 금력이라는 건 사실상 허상에 불과한 힘. 남에게 이용당하기 딱 좋다.

‘당장 내가 먼저 접근했다간, 토사구팽 당한다.’

아덴을 열받게 할 수 있다는 건, 드레커 또한 만만한 놈은 아니라는 소리다. 그런 상대에게 생각 없이 들이대는 건, 날 제발 이용해달라는 소리일 뿐.

‘거기다가, 곧바로 견제가 들어오겠지…….’

당장 바로 옆에 있는 아덴부터가 지랄을 할 거다.

그런 자살에 가까운 선택은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렇기에, 반 리텐슈노프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했다.

저 멀리 연회장 구석에 홀로 서서, 마치 다람쥐 마냥 초콜릿을 열심히 까먹는 자신의 사촌 누이.

‘레이첼은 나와 사이가 그다지 나쁘지 않았지.’

물론 레이첼 리텐슈노프 또한 제랄드 숙부의 혈통을 물려받은 만큼, 세상 미친년인건 틀림 없다.

그 검에 대한 광기어린 집착은 아덴과는 다른 의미로 소름이 끼칠 정도다.

‘그러니…… 분명 관심을 가질 만해.’

지금까지 드레커가 보여준 성과를 생각해 본다면, 분명 레이첼의 흥미를 끌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레이첼의 재능을 생각하면, 곧 흥미를 잃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에르반에 버금가는 눈부신 재능의 소유자니까.

하지만.

‘내가 손해볼 건 없다.’

자신은 그저 살짝 밀어주고, 나중에 정보를 조금 얻으면 그만이다.

‘좋아.’

아덴이 눈치채지 못하게, 몰래 측근을 불러 레이첼에게 적당히 관심이 갈만한 말을 전달하라고 명령한 반 리텐슈노프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그는 열심히 초록빛 초콜릿을 먹어치우는 레이첼 리텐슈노프를 힐끗 바라보고는 생각했다.

‘뭐, 딱 봐도…… 서로 죽은 잘 맞겠네.’

미친놈들끼리는 통한다는 말이 있잖는가?

일단, 치약을 즐겨 먹는 놈들이 정상일 리는 없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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