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아이고! 아이고! 내 팔자야!]
민트 초콜릿을 향한 데우스의 증오는 생각보다 컸다.
고작 음식 취향 따위로 이 변태 드래곤이 이렇게까지 화를 낼 줄이야. 솔직히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기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다. 응? 내가 너무 오래 살았어! 늙으면 죽어야 해. 그래야 이런 꼴을 안 보지!]
물론, 아무리 그래도 선을 넘는 발언은 참기 힘들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불만을 표했다.
“거, 사람 먹는 거로 갈구지는 마시죠.”
[이 미친 인사야. 그건 먹는 게 아니란 말이다!]
물론 데우스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더더욱 열불을 토해내며 민트 초콜릿을 비난했다.
‘거참, 이해를 못 하겠네.’
이런 맛좋은 음식을 어째서 그렇게 싫어하는 걸까? 혹시 드래곤은 사람과 입맛이 다르기라도 한 걸까?
‘대체 이걸 왜 싫어하는지 모르겠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초콜릿을 우물거렸다.
그럴수록 데우스는 더욱 발작을 했고 말이다.
[그 지옥불구덩이에서 기어나온 음식은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싫어할 게다. 아니, 양식도 필요없지. 그냥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싫어한다고!]
만약 그에게 육체가 있었다면, 당장 뒷목이라도 잡고 쓰러지기라도 할 기세였다.
대략 그 무렵이었다.
“오랜만이구나.”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말이다.
분명 기억에 익은 목소리였기에, 나는 황급히 초콜릿을 삼키며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서있는 건 흑색 머리칼을 길게 늘어트린 젊은 여자, 바로 레이첼 리텐슈노프였다.
약간 붉은 기가 감도는 그녀의 호박색 눈동자가 나를 살핀다. 그 눈이 묘하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안녕하십니까, 레이첼 누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일단 인사부터 하자.
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레이첼은 나를 가만히 살피더니, 이내 눈을 감고는 코를 찡긋거렸다.
나는 불편한 눈으로 그녀의 코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상대의 냄새를 맡는 저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그녀가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싱긋 웃었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이전에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 비교하면 많이 성장했는걸?”
“네, 뭐…….”
“4성…… 아니, 5성인가? 정말 놀랍네. 네 나이를 생각하면 기묘할 정도인걸.”
“…….”
그녀와 마주하는 순간 일어날 일이라고는 예상했지만, 그래도 순간 얼굴이 굳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최대한 힘을 갈무리했음에도 들키는 건가…….’
타인은 눈치채지 못한 내 진짜 실력을, 그녀가 곧바로 파악할 수 있었던 방법은 별 것 아니었다.
권능.
리텐슈노프의 혈통을 타고 전해져 내려오는 이 특별한 힘은, 일반적인 세상의 상식으로 불가능한 일도 충분히 가능하게 해 주니까.
그리고 레이첼 리텐슈노프가 지닌 권능은 후각嗅覺.
사실 후각의 권능은 그다지 대단한 권능은 아니다.
그저 다른 사람보다 냄새를 잘 맡게 해줄 뿐이다.
허나, 그녀의 몸을 타고 흐르는 리텐슈노프의 짙은 혈통은 단순히 냄새를 맡는다는 행위에 심히 기괴할 정도의 이적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였다.
‘고작 타인의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이 가진 실력을 가늠할 수 있게 되다니.’
그건 가히 ‘권능’이라고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나는 어색한 표정을 한 채, 볼을 긁적였다. 내가 느낀 당혹감을 최대한 숨기기 위해서였다.
‘아직까지 내 진짜 실력을 아는 사람은 몇 없다.’
스승인 멜과 내 측근인 세르폰. 마그너스와 아자르 정도이려나? 물론 마리 유모도 대충은 알고 있지만, 무인이 아니기에 정확한 수준은 모를테고.
그렇기에 그녀에게 내가 가진 힘을 들킨 건 어찌 보면 위험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차라리 당당하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로 했다.
“……소문대로 코가 좋으시군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내 대답에 레이첼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후훗, 내가 좀 잘 맡긴 하지.”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녀를 살폈다.
‘권좌를 차지하는 일 따위에는 조금도 관심 없고, 오로지 검의 성취를 높이는 것에만 열중하던 미친 여자라고는 들었지만…….’
실제로는 어떨까.
다른 것도 아니고 리텐슈노프의 가주 직위다. 과연 그녀가 그 자리에 조금의 욕망도 느끼지 않을까?
레이첼의 시선이 서늘하게 빛난다. 묘한 열망이 담긴 시선이 마치 핥듯이 나를 훑는다.
진실을 모르는 사람은 고혹적인 눈빛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마치 먹잇감을 바라보는 육식동물을 마주하는 기분이다.
꺼림칙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징벌 기사단의 멜 랭커스터 경이 너를 직접 가르친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니?”
그렇기에.
그녀가 처음으로 꺼낸 대화 주제는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무언가였다.
“……그렇습니다만.”
“어땠니?”
“네?”
“그의 검은 어떠했느냐고 묻는 거야.”
그렇게 묻는 그녀의 눈은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내 대답은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그…… 대단하긴 했지요.”
“정말? 너무 부러운걸. 나도 멜 경과 한번쯤 대련을 해보고 싶었는데. 계속 기회가 생기질 않네.”
레이첼이 아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진실로 내가 멜과 함께 수련하는 게 부러운 듯한 눈빛이었다.
“……그렇습니까?”
“응, 응. 할아버님께 몇 번이고 청을 드렸건만, 한 번도 허락해주시지 않더라고. 아자르 경도 그렇고. 에휴, 그렇게 계속 불허하실 생각이시라면 차라리 할아버님이라도 나를 상대해주면 좋겠는데, 할아버님께서는 언제나 바쁘시니까. 기회가 없지.”
“그것 참. 아쉬운 일이네요.”
나는 허탈한 마음으로 대충 대꾸했다.
역시, 너무 경계한 걸까?
분명 전생의 기억으로 알고는 있었다. 그녀가 권좌 따위에는 조금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저 무武의 끝을 보는 것에 미친 여자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내 진짜 실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해도 내 힘을 경계하거나 그 비밀을 이용해 무언가 수작을 부릴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게 친근함을 느끼겠지.’
어쨌든 그녀 또한 리텐슈노프의 일원이고, 그 중에서도 극도로 숭무적인 성향을 지닌 자이니까.
“그래도, 이젠 괜찮을 거 같아.”
그래서였을까?
나는 너무나도 쉽게 안도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야, 네가 있잖니?”
“……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건, 그녀의 눈이 섬뜩한 열의로 빛나는 걸 깨달았을 때였다.
“멜 경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고, 열한 살의 나이에 5성의 성취를 거두었다면 솔직히 차고도 넘치지.”
“그, 잠시만.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야…… 네가 내 대련 상대로 딱이라는 말이지!”
“??”
“참 다행이라니까. 할아버님께서 허락을 안 내려주셔서 진짜 천재들과는 검을 겨뤄볼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았거든. 우리 착한 막내 덕분에 나도 그런 기회를 얻게 되네. 고마워!”
그, 저기, 저는 하겠다고 한 적도 없는데요.
내가 자신과 검을 겨루는 일을 거의 기정사실로 생각하는 듯한 화법에 순간적으로 어처구니를 잃었다.
하지만 곧 나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건 나쁘지 않은 기회다.’
어차피 그녀는 가주 직위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
당연히 내 경쟁자라고는 할 수 없다.
그에 비해, 그녀와 인연을 맺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가 나를 향해 내비칠 호의는 내가 성장하는 기간 동안 나를 지켜줄 우산이 될 것이며, 잘만 한다면 차후 그녀가 내 가주 승계를 지지하게 할 수도 있다.
그것에 더불어, 그녀와의 대련은 내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다.
‘뭐…… 몸은 좀 고생하겠지만.’
아마 지금쯤 레이첼이 6성 후반이었던가?
‘그녀 특유의 성격 상, 봐주는 일은 없을 테니…….’
앞으로 한동안은 개처럼 얻어터지겠군.
그래도 고작 그 정도 고생으로 미래의 소드마스터가 될 여인의 호감을 얻을 수만 있다면, 남는 장사였다.
‘……설마 그렇게까지 개처럼 몰아붙이겠어?’
어째서인지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꺼림칙함을 억누르며, 나는 억지로 환한 웃음을 지었다.
내 미소에 레이첼 또한 웃었다.
그녀는 내게 초콜릿을 하나 내밀며 말했다.
“오늘 성인식이 끝나면 내 저택으로 와. 따로 사람을 보내둘게. 검은 꼭, 꼭 챙기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행복한 얼굴로 떠나갔다. 나는 레이첼이 건네준 초록빛이 감도는 초콜릿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그녀 또한 민트 초콜릿을 사랑하는 사람 아닌가?
그렇게까지 악랄하지는 않을 거다.
[……외눈박이 세상에서는 두눈박이가 병신이라더니. 오호통제라! 여기가 지옥이었구나!]
마침내 억장이 무너져버린 듯한 데우스의 절규를 무시하며, 나는 레이첼이 내민 초콜릿을 물어뜯었다.
* * * * *
반 리텐슈노프의 성인식이 끝나자마자, 약속했던 대로 레이첼 리텐슈노프는 내게 사람을 보냈다.
그녀가 보낸 전령은 과묵한 얼굴의 대머리 기사였다. 등불을 받아 반짝이는 머리가 묘하게 보름달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전령의 안내를 따라 레이첼의 저택으로 향했다.
“이쪽입니다.”
리텐슈노프 직계 혈통은 성인식이 끝남과 동시에 본가에 자신만의 저택을 하사받는다.
이번에 성인식을 치른 반 리텐슈노프 또한 본가의 동쪽에 저택을 하사받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레이첼의 저택은 리텐슈노프 본가의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이곳입니다, 드레커 도련님.”
대머리 기사가 안내한 저택은 평범했다.
직계 혈통의 저택이라기엔 조금 작은 건물. 화려하지도 않고, 웅장하지도 않다. 오히려 약간 삭막한 외관은 마치 군영을 연상케 한다.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화려한 장식이나, 고급스러운 가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검소하거나 소박하다, 라고 평가하기에는 너무나도 무미건조했다.
그 대신 무구가 많았다.
검, 창, 둔기, 도끼창, 방패…….
수많은 무구들이 마치 장식품이라도 되는 듯 저택 안에 널려 있었다. 그중에도 검이 아주 많았다. 마치 저택의 주인이, 집착적으로 검을 모으기라도 한 것처럼.
레이첼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광경이었다.
“레이첼 아가씨께서는 ‘검의 길’이라고 부르는 복도입니다. 이곳에 있는 모든 무구는 죄다 아가씨께서 직접 취하신 것입니다.”
“취했다?”
그 미묘한 표현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대머리 기사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아가씨께서 가문의 임무를 수행하실 때, 적을 참하고 빼앗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
그 이야기를 들으니 왠지 복도에서 피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검의 길’이라고 불리는 복도를 따라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저택 중앙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연무장이 있었다.
‘어마어마하네.’
나는 연무장의 규모에 살짝 감탄했다.
가히 저택 크기만한 연무장이라니. 이 정도면 수련동의 중앙 연무장에 비견될 만한 크기였다.
백 단위가 넘는 기사들이 동시에 수련을 할 수 있는 규모라는 소리다.
그런 연무장 한 가운데에, 그녀가 있었다.
“왔니?”
벌써 갑옷을 장비한 레이첼은 얼굴 한가득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직감했다.
‘민트 초콜릿의 유대는 무슨.’
개처럼 구를 미래가 벌써부터 눈앞에 선한 듯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