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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80화 (80/139)

80화

빛살처럼 날아든 첨단이 코앞까지 도달한다.

“……!!”

눈으로 검끝을 인지하자마자 목근육을 한계까지 뒤틀었다. 나는 가까스로 검격을 피해냈다.

급작스러운 움직임에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하나, 격통을 느낄 새는 없었다.

귓전을 스친 검은 눈깜짝할 사이에 회수되었고, 곧바로 다음 찌르기가 날아든다.

“젠장!”

레이첼은 진심으로 자비가 없었다.

‘준비할 틈도 주지 않다니!’

진짜로 갑자기 공격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것뿐이라면 좀 낫지.

정교하게 짜인 연격이 이어진다.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것 같다.

회피를 제외한 선택지는 고를 수 없는, 그야말로 상대의 움직임을 강제하는 공격이었다.

“후훗, 마치 다람쥐 같구나.”

열심히 몸을 놀리는 나를 바라보며 그녀는 광기 어린 눈으로 조소했다.

“크윽!”

그런 말을 들었음에도, 차마 검을 들어 막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가 가까스로 틈을 찾아 검을 든 것은 레이첼의 열세 번째 찌르기를 피해낸 뒤였다.

-캉!

검과 검이 맞닿자, 레이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그리고는 곧, 그녀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막아보겠다고?”

-카가각!

“……!!”

그와 동시에 검 끝에서 어마어마한 압력이 느껴졌다. 마치 태산이 짓누르는 것 같은 압도적인 힘에, 내가 발을 디딘 땅이 움푹 패인다.

하지만.

‘버틸 만 해.’

아무리 그래도, 나 또한 전생에 7성에 오른 몸.

‘검술’로는, 나도 부족할 것 없는 몸이다.

재빨리 검을 비틀었다. 허리를 숙이고, 손목을 당긴다. 힘 대 힘으로 받아친다면 답이 없다.

오로지 부드러운 기술로 대적할 뿐.

-스르릉!

가까스로 나는 검격을 흘려내며 거리를 벌렸다.

하나, 그건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흐응, 그렇단 말이지?”

그 순간, 레이첼의 기세가 바뀌었으니까 말이다.

방금 전까지 웃음짓던 눈매가 섬뜩하게 굳었다. 비틀린 입가에서는 송곳니가 반짝였다. 검을 내리누르는 그녀의 얼굴에서는 오로지 한가지 감정만이 느껴졌다.

희열.

‘……이런, 제기랄.’

어쭙잖게 기술로 맞대응했다가, 괜히 그녀의 호기심을 더 끌어버리고 말았다. 검술에 미친년이라는 걸 감안했어야 했는데!

“큭!”

다시금 검격이 몰아친다.

마치 해일처럼, 폭풍우처럼.

-캉! 카각! 캉!

반격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강공이 이어졌다.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오로지 두 개 뿐이었다.

회피하거나, 흘려내거나.

그것을 제외한 행동은 불가능했다.

심지어 그것도 완벽하지 못했다.

“큭!”

회피는 완전하지 않았고.

흘려냄도 온전하지 못했다.

그녀의 검이 섬광을 흩뿌릴 때마다, 내 몸에 자잘한 상처가 늘어났다. 상처에서 핏줄기가 조금씩 흘러내리며, 옷이 붉게 젖어들어간다.

이대로는 10분은커녕, 5분도 버티지 못할 거다.

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소검제와 필적한다는 풍문이 허언은 아니었군…….’

그야말로 압도적인 능력자.

지금의 나는, 절대로 그녀의 상대가 될 수 없다.

그녀는 ‘천재天才’니까.

‘하지만.’

나 또한.

가진 바 재능으로는 부족함 없는 몸이다.

-콰드드득!

내가 검을 받아내는 순간.

“어라?”

레이첼의 눈이 조금 커졌다.

지금까지와는 다를 바 없는 구도.

나는 그저 방어할 뿐, 반격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 검이 이루어낸 것은 지금까지와는 몹시 달랐다.

회피한 것도, 흘려낸 것도 아닌.

“막았네?”

검을 맞대고 버텨냈으니까.

그 즉시, 그녀의 눈이 반달처럼 접혔다.

“역시, 내 코는 틀리지 않는다니까.”

-퍼억!

동시에 그녀의 발이 내 복부를 걷어찬다.

“커헉!”

어마어마한 각력에 나는 중심을 잃었다.

아니, 그냥 그대로 걷어차여 흙바닥을 굴렀다.

나는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폐 속의 공기를 전부 토해냈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고통.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이대로 누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벌레처럼 누워있으면 짓밟아 버린다?”

상대가 날 그렇게 두지 않을 테니까.

눈 깜짝할 사이에 레이첼이 접근한다.

그녀의 오른발이 내 복부를 노리고 내리찍힌다.

잠시만, 그보다 좀 아래쪽인 것 같은데?

[으헉! 피, 피하거라!]

데우스의 비명에 나는 레이첼이 어디를 노리는 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미친!”

황급히 몸을 빼 가까스로 피해냈다.

정확히 내 가랑이 사이를 짓밟은 그녀의 오른발.

내가 뚱한 표정으로 올려다보자, 그녀가 피식 웃었다.

“너도 꼴에 남자라고, 아깝긴 한가봐?”

“아니, 이건 좀 심한 거…… 컥!”

말대꾸 할 틈도 없이 다시금 걷어차였다. 그래도 다행히 거리가 벌려진 덕분에 자세를 다잡을 수 있었다.

“퉤.”

입안에 고인 피를 뱉어내며 나는 투덜거렸다.

“거참, 너무하십니다.”

레이첼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의 동생아, 자연선택이라는 말 못 들어보았니? 자연은 나약한 것들을 배제하도록 설계되어 있단다. 나약한 녀석은 씨를 남길 자격도 없다는 말이지.”

“그 말이 남의 걸 마구잡이로 터트려도 된다는 의미로 쓰이는 건 아닌 거 같은데요?”

“오래된 고사의 뜻은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야.”

레이첼은 그렇게 대답하며 검을 들었다.

곧, 그녀의 검 끝에 오러가 피어올랐다.

“……오러까지 쓰시는 겁니까?”

“대련이잖아. 당연한 거 아니겠니?”

전혀 당연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상식에서는 오러를 쓰는 게 당연한 모양이다.

나 또한 이를 악물며 오러를 뽑아냈다.

‘차라리 잘 됬다.’

그래도 오러라면 버틸 가능성이 조금은 더 올라가니까.

나는 블러드하운드 54식을 피워올렸다.

미스틸테인에 서리는 핏빛 오러에 레이첼이 흥미를 보였다.

“뭐야, 그건? 처음 보는 검식인데.”

“가주님께서 하사하신 검식입니다.”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얼마나 대단한지 볼까?

그런 중얼거림과 함께 레이첼이 땅을 박찼다.

-콰드드득!

연무장의 바닥이 산산이 터져나가며 그녀가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레이첼의 검 끝에 서린 오러는 보랏빛. 정확히 무슨 검식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보라색 오러라…….’

짐작가는 게 몇 가지 있긴 했지만, 확실치는 않다.

일단 검을 맞대어봐야 알 수 있다.

내가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그녀의 검이 내 검과 맞부딪쳤다. 동시에 속이 울렁거렸다. 마치 마나가 역류하는 것 같았다.

“……?!”

치밀어오르는 구역질을 참아내며 나는 그녀의 검을 떨쳐냈다. 이 감각, 전생에 느껴본 적 있었다.

“……스톰왈즈 35식?”

“응? 어떻게 알았어? 은근 아는 게 많네?”

레이첼이 깜짝 놀란 듯 눈을 깜빡인다.

절로 속에서 욕지거리가 치밀어올랐다.

‘아니, 미친 건가?’

실전도 아닌 대련에서 대마법對魔法 검식을 써?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대마법 검식은, 온전히 실전에서만 사용하는 검식이다.

이 검식은 기본적으로 오러에 닿은 상대의 마나를 진탕내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결단코 대련에 쓸 물건은 아니다.

‘미친년, 진짜.’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마법 검식이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어.’

여타 괴랄한 능력을 지닌 검식이 아닌, 그저 상대의 마나를 진탕내는 검식이라면 내 마나 컨트롤 능력으로 최대한 상쇄해 낼 수 있었다.

‘무조건 버틴다.’

심장을 따라 솟구치는 마나를 관조하며, 나는 검을 꽉 움켜쥐었다.

“자, 자, 얼마 안 남았단다.”

-캉! 카각!

다시금 몰아치는 검격.

검의 파도라고 해도 좋을 지경이다.

검끼리 한 번 부딪칠 때마다 속이 울렁거리고, 심장이 터질 듯이 쥐어짜인다. 절로 눈에 실핏줄이 올라온다. 이미 내 코에서는 한 줄기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과연 시작한 뒤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5분? 6분?

아니, 사실 3분도 지나지 않은 건가?

알 수 없다.

휘몰아치는 연격은 시간 감각을 어긋내고 있었다.

마치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검격.

하지만.

-카각!

언제나 끝은 오는 법이다.

“우웩!”

결국 나는 핏물을 토해내며 쓰러졌다.

속을 진탕내는 오러가 전신의 혈맥을 뒤틀어버린 탓에, 마침내 버티지 못한 마나가 역류한 것이다.

“허억, 허억…….”

연무장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은 채 숨을 고르자, 레이첼의 검이 내 목에 겨누어졌다. 서늘한 금속의 감촉에 나는 흐린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

누구는 몸이 아주 작살이 나 버렸는데, 환하게 미소짓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허억. 거 참. 이겨서 좋으십, 허억. 니까?”

입가에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며 투덜거리자, 레이첼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원래 승리는 언제나 달콤한 법이란다.”

“허, 참나.”

6성이 5성 이겨놓고 좋아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내가 허탈하게 웃자, 레이첼은 씩 웃으며 검을 갈무리했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내 머리를 가볍게 헝크러트렸다.

“그런데 뭐, 내기는 내가 진 거 같은걸?”

“……무슨 소리입니까?”

“그야…….”

드레커 너는, 이미 약속했던 10분을 버텼거든.

레이첼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 눈앞에 들었다. 그것은 시간 측정 기능이 내장된 금장 회중시계였다.

분명 곧바로 대련을 시작했는데, 대체 언제 시간을 측정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흐린 눈으로 지그시 시계를 바라보았다.

회중시계의 초침은, 정확히 13분 41초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

“이야, 정확히 13분하고도 41초를 버텼네? 정말 대단한걸, 내 동생.”

그렇게 중얼거리던 레이첼은, 내 눈을 살피고는 곧 킥킥 웃었다.

“너, 모르고 있었구나?”

“…….”

“정말로 버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내가 질 줄이야! 아, 아쉽다. 그 검, 갖고 싶었는데.”

레이첼은 아쉽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그러나 곧, 그녀의 눈이 빛났다.

“쓸만한 대련 상대를 찾았으니, 나는 만족이야.”

앞으로도 계속해서 날 대련이라는 명목으로 두들겨 패겠다는 선언. 하나, 그런 소리를 들었음에도, 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이겼다.’

레이첼 리텐슈노프와의 대련 내기에서 승리했다.

물론, 온전한 승리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얻을 수 있는 건 다 얻었으니까…….’

그녀의 호감을 포함해서, 내기의 보상인 영지까지.

나름대로 퍽 만족스러운 결과물이었다.

* * * * *

“……그래서 영지를 받기로 하셨다고요?”

내 말에 세르폰은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무리 들어도 허황된 이야기처럼 들립니다만…….”

믿음이 가질 않는지, 세르폰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긴, 나 같아도 안 믿겠다.

사촌 누나와 10분간 대련한 대가로, 영지를 두 개나 받아왔다고? 그런 개소리가 세상에 어디 있나?

‘그게 여기 있네?’

어처구니 없었지만, 그것이 진실이다.

난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근데 진짜인 걸 어떻게 합니까?”

“허, 허허…… 허허허.”

어지간히 충격을 받은 건지, 세르폰은 헛웃음만 내뱉었다.

“축하드려요, 도련님.”

“고마워, 유모.”

그에 반해, 마리 유모는 내 말을 철썩같이 믿고 축하해 주었다. 역시 마리 유모는 내 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은근 괘씸한데.’

나는 여전히 맥빠진 소리를 내뱉고 있는 세르폰을 슬쩍 흘겨보고는, 이내 혀를 찼다.

“뭐, 하여튼. 제가 없는 사이에 별 일 없었죠?”

고작 하루를 비웠을 뿐이니, 딱히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으리라. 한데, 내 물음에 마리 유모가 묘하게 굳은 표정을 지었다.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음, 그게…….”

마리 유모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조용히 말했다.

“가주님께서 도련님을 찾아오셨어요.”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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