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83화 (83/139)

83화

아라크네의 연옥.

그곳은 발견된 지 30년이나 지난 ‘미공략’ 고대 유적이었다.

그것은 특이한 경우였다.

대부분의 고대 유적은 세상에 그 정체가 드러난 지 1년이 채 되기 전에 공략이 끝난다. 유적 안에 잠들어 있는 고대의 아티팩트가 지닌 가치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랜 시간 동안 공략되지 않은 고대 유적은 대부분 아티팩트가 존재하지 않다고 밝혀지거나, 그 가치가 떨어진다고 판명된 곳이었다.

하나, 아라크네의 연옥은 달랐다.

고고학자와 역사가들은 아라크네의 연옥에 꽤 가치 있는 아티팩트가 묻혀 있으리라고 분석했다.

그러자 당연히 아티팩트를 노리는 한탕주의자와 호사가들이 모여들었다. 후원과 투자를 통해 규모 있는 공략대가 여러 번 조직되었고, 유적 공략을 시도했다.

‘그리고 죄다 실패했지.’

공략이 실패한 이유는 간단했다.

아라크네의 연옥은 평범한 고대 유적이 아니라, 수백 년 묵은 괴물이 똬리를 튼 연옥이었기 때문이다.

* * * * *

던전 거미라고 불리는 몬스터가 있다.

던전에서 가끔 볼 수 있는 강아지 만한 독거미인데, 별 볼일 없는 나약한 몬스터로 분류되는 놈이다.

‘독은 감각을 약간 무디게 하는 정도고, 전투 능력은 솔직히 말해 개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니까.’

몬스터 등급으로 1급.

그것도 그나마 놈이 독을 지니고 있기에 그렇게 분류했을 뿐이다. 만약 독이 없었다면 1급은커녕, 그냥 귀찮은 벌레 수준으로 치부되었을 거다.

그런 주제에 던전 거미는 꽤 가치 있는 놈이었다.

녀석의 독을 정제해 특정한 약초와 섞으면 놀랍게도 극한의 효능을 지닌 최음제가 되기 때문이었다.

망나니와 난봉꾼이 넘쳐나는 세상. 약효 좋은 최음제에는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다.

그 탓에 던전 거미는 보이는 족족 사냥당해 독을 빨리는 불쌍한 몬스터 중 하나였다.

기본적으로 희귀한 몬스터인데 씨를 말릴 수준의 밀렵(?)까지 성행하니, 던전 거미는 사람들에게 그저 비싼 거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몬스터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던전 거미가 가지고 있었던 엄청난 고유 능력은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누가 알았겠어?’

그 나약한 거미가 사실 수백 년을 살 수 있고, 살아온 세월 만큼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라크네의 연옥의 보스 몬스터는, 족히 수백 년을 묵은 고대의 던전 거미였다.

대체 그 던전 거미가 어떻게 유적 안으로 기어들어왔고, 수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뭘 먹고 살아남았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알려진 건 놈이 덩치만 수십 미터에 달하며, 지난 30년간 던전을 공략하러 진입한 수많은 산 목숨을 먹어치우고 ‘아라크네’라는 악명을 획득했다는 사실 뿐.

추정 등급은 무려 10급.

‘그 정도 되는 몬스터는 소드마스터는 데려와야 사냥해 볼 엄두라도 낼 수 있지.’

그런 무력을 지닌 곳은 오대 명가 뿐이다.

근데 어느 명가에서 그런 수지타산 안 맞는 짓을 하겠는가?

‘지키는 놈은 무려 10급인데, 안에 든 보물이 그 정도 가치를 지닌 건 아니니까.’

그러한 사실이 세간에 알려진 이후, 더 이상 아라크네의 연옥으로 향하는 공략대는 조직되지 않았다.

그저 간간히 길을 잃고 유적 밖으로 기어나오는 새끼 던전 거미를 잡으러 오는 모험가들만이 드나들 뿐.

“……그러한 곳에, 지금 저를 데려가려고 하는 겁니까?”

내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꾸하자, 멜이 피식 비웃음을 머금었다.

“겁먹었냐?”

“……이건 겁먹은 게 아니라, 현명하다고 하는 겁니다.”

아닌 말로 나야 지난 생에 그 던전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으니 거리낄 게 없지만, 그건 내가 전생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겉으로 드러난 실력만 볼 때, 이제 겨우 5성에 진입한 나를 이끌고 아라크네의 연옥에 쳐넣겠다는 건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다.

“아니, 내가 유적을 공략하라고 했냐? 거기 좀 돌면서, 어? 훈련을 하자는 거 아냐.”

“전혀 안전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데요.”

“내가 있는데 뭔 일 있겠냐. 걱정도 참 많다.”

멜이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거렸지만, 솔직히 지금까지 그가 나에게 한 짓을 생각해보면 몹시 걱정될만한 일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날 죽게 둘 리는 없겠지만…….’

딱히 그게 ‘안전하다’와 동의어는 아니겠지.

하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어?”

내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자, 설마 쉬이 수긍할 줄은 몰랐던 것인지 멜이 눈이 조금 커졌다.

난 볼을 긁적이며 대꾸했다.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멜 경이 포기하실 위인도 아니고, 가주님께서 훈련을 허가하셨다면 안전 문제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죠.”

물론 꼭 그런 이유에서만은 아니었다.

이미 나는 전생에 한 번 아라크네의 연옥을 공략해 본 적 있기 때문이다.

‘숨겨진 비밀 통로를 찾아서, 그곳으로 들어가 몰래 아티팩트만 빼온 거지만.’

어쨌든 그것도 공략은 공략이고, 혹시나 무언가 문제가 터지더라도 비밀 통로를 이용하면 내 한 몸 살릴 수는 있었다.

오히려 이건 기회였다.

‘디딤돌은 나중에라도 확보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아라크네의 연옥에 있는 아티팩트는 내가 ‘디딤돌’이라고 이름 붙인 부츠였는데, 허공에 보이지 않는 발판을 만들어 그곳을 디디고 도약할 수 있게 한다.

그건 소드마스터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예지만, 그걸 지금 시점에서부터 쓸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허공을 디딜 방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전투의 판세가 확연히 바뀌니까 말이다.

‘원래는 6성 즈음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전생에 내가 그곳을 공략했던 게 6성 무렵이었기에, 대략 그 정도 성취를 이루면 진입하려고 계획했었다.

하지만 현직 소드마스터의 보호(?)를 받으면서 더 일찍 보물을 얻을 수 있다면 나쁠 건 없다.

“그래? 희한하네.”

내가 설마 순순히 수긍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멜은 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차피 안 간다고 해도 데려갔을 거면서.’

이미 멜의 행동 패턴은 파악한 지 오래. 굳이 귀찮은 실랑이를 할 이유도 없으니, 수긍한 것 뿐이다.

“뭐, 알겠다. 정확한 일정은 며칠 내로 알려줄 테니, 언제든지 출발할 채비는 해두고.”

멜은 그렇게 말하며 품 속에서 궐련을 꺼내 불을 붙였다. 그 광경에 마리가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식사 자리에서 흡연이라니! 안 돼요!”

그녀는 나조차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빠른 손짓으로 멜이 입에 문 담배를 확 잡아챈 뒤 부러트렸다.

얼떨결에 피우던 궐련을 빼앗긴 멜이 입을 쩍 벌리더니, 곧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뭔 짓이야?”

“세상에 맙소사. 아무리 연초가 좋으셔도 그렇지, 어디 음식을 앞에 두고 연기를 뿜어요!”

눈을 부릅 뜬 마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평소에는 조용하던 마리가 설마 자신을 야단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멜은(사실, 소드마스터가 누군가한테 야단 맞을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말을 더듬었다.

“뭐, 아, 아니. 그건 내 마음…….”

“경의 마음이 어떻든 이건 예법이 아니잖아요! 한 번만 더 이런 짓을 하시는 게 눈에 띄면 다음부터는 도시락을 싸 올 테니, 각오하세요.”

마리 유모는 그렇게 일갈하고는, 멜의 대답도 듣지 않고 여전히 칠면조가 남아있던 테이블을 치워버렸다.

당연하지만, 그녀가 언급한 도시락에 멜의 몫이 없으리라는 건 바보처럼 연무장을 빙빙 도는 도지도 알 법한 사실이었다.

* * * * *

힘 없는 일개 유모가 가주의 수족인 소드마스터를 훈계하고 협박한다는 초유에 사태가 벌어져 멜과 드레커가 혼란에 빠져 있을 무렵.

레이첼 리텐슈노프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호출에 귀찮음을 무릅쓰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녹음이 우거져 풀냄새 가득한 정원을 지나, 자신의 것보다 세 배는 더 거대한 저택 안으로 발을 들였다.

엄숙함이 감도는 저택 안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느껴지는 분위기는 흡사 마그너스가 거주하는 철혈궁을 떠올리게 하였지만, 레이첼은 언제나 이곳을 ‘할아버님의 집을 그저 조악하게 모사하여 따라하는 데 급급할 뿐인 곳’이라고 평가했다.

제 것이라고 할 것은 없고 오로지 그저 흉내쟁이 마냥 따라할 뿐이니, 주인 된 자의 심성이 그대로 드러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 그런 속내를 품고 있더라도 이 저택의 주인은 그녀의 하나뿐인 부모요, 아비이니. 나름 스스로를 효녀라 자부하는 레이첼로서는 그 속내를 품고 있을 뿐 차마 입밖으로는 내뱉지 못하였다.

“저 왔어요, 아버님.”

마침내 도착한 집무실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레이첼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자 정수리를 향하는 차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레이첼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중년의 끝자락을 달리는 듯한 사내가 시선 끝자락에 들어왔다.

제랄드 리텐슈노프는 언제나처럼 굳은 얼굴을 한 채, 손끝을 뻗어 책상 앞 테이블을 가리켰다.

“왔느냐. 일단 거기 앉거라. 시종들에게 일러 네가 좋아한다는 그 초콜릿을 준비해 두었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레이첼은 느릿한 발걸음으로 테이블 앞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일반적이라면 제랄드 또한 테이블의 상석 자리에 앉아야 하겠지만, 그는 여전히 업무용 책상에 붙은 흑단목 의자에서 몸을 때지 않았다.

레이첼 또한 그러한 제랄드의 행동이 익숙하였기에, 서로간의 대화는 곧바로 시작되었다.

“내 이야기는 벌써 들었다. 조카 녀석에게 네가 지닌 영지를 넘겨주었다지.”

“네, 아버님.”

“왜 그랬느냐?”

“내기의 대가였으니까요?”

별 것 아니라는 듯한 레이첼의 대답에 제랄드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곧 노기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바르헴 평야를 그깟 이유로 주는 게 말이 되느냐? 너는 그게 정상적인 거래라고 생각하는 것이더냐?”

“약속은 약속이잖아요?”

레이첼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나, 그런 우스갯소리로 넘어갈 사안은 아니었다.

적어도 제랄드 리텐슈노프는 그렇게 생각했다.

제 친형제에게 준 것도 아니고, 영지를 받아 챙긴 드레커 리텐슈노프는 레이첼의 사촌 아닌가? 그런 녀석에게 힘이 될 영지를 넘기다니, 안될 말이었다.

“네 사촌들은 아비의, 그리고 네 혈육의 것이어야 할 가주 자리를 노리는 모지리 승냥이 새끼들이야. 그런 놈들에게 쓸데없는 힘을 보태주는 건 분수에 맞지 않는 과욕을 부리게 만들 뿐이잖느냐?”

하물며 이건 정당한 거래도 아니었다.

고작 10분간 대련을 해서 버틴 대가로 영지를 두 개나 챙기다니.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다. 그러니 빼앗아 오는 데에는 문제가 하등 될 일이 없었다.

“긴말 할 필요 없다. 내 친히 드레커 녀석을 단도리하고, 다시 그 영지를 찾아올 터. 너는 아무 말 하지 말고, 네가 저지른 잘못을 고심하며 자숙하거라.”

물론 그 영지가 다시 레이첼의 품으로 돌아오지는 않을 거다. 어차피 그딴 거 신경도 안 쓰는 그녀이니, 적당히 제 오빠나 동생에게 넘겨주고는 입을 닦겠지.

레이첼은 절로 앞으로의 미래가 그려지는 듯했다.

그 생각이 들자 퍽 웃겨서, 레이첼은 코웃음을 쳤다.

그 소리에 제랄드가 힐끔 그녀를 쳐다보았다.

“왜 웃는 것이냐.”

“글쎄요, 아버님 생각대로 가능할지 모르겠어서.”

“……무슨 뜻이냐?”

“이미 할아버님께도 보고한 사항이거든요. 영지.”

“…….”

그녀의 대답에 곧바로 제랄드 리텐슈노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당장 고성이 터질 것 같은 모습.

하나 그는 품위 없게 소리지르지 않았다. 그저 푸른 손수건을 품 속에서 꺼내 끼고 있던 외알 안경을 빼낸 뒤, 그대로 레이첼에게 집어던질 뿐이었다.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레이첼의 머리가 뒤로 푹 넘어갔다. 곧 다시 고개를 추스린 그녀의 이마에서 붉은 핏줄기가 한 방울 흘러내렸다.

“네년의 멍청한 짓에는 신물이 나는구나.”

“…….”

“당장 꺼지거라.”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레이첼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쨌든 호출이 빨리 끝났으니 그녀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이런 쓸데 없는 이야기는 신물날 뿐이다.

‘분수에 맞지 않는 과욕이라…….’

풋, 하고 레이첼은 웃음을 터트렸다.

과연 분수에 맞지 않는 과욕을 부리는 건 누굴까?

‘최소한 가주 자리를 논하려면, 나보다는 뛰어나야 하지 않나?’

자신의 아버지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에르반 리텐슈노프도, 아덴 리텐슈노프도, 솔직히 말해서 둘 다 그녀 자신에 비하면 부족할 뿐인 인간들 아닌가?

가문의 수장 자리는 혈족 중 가장 위대하고 강한 자가 자리를 차지하는 게 옳다고 그녀는 여겼다.

물론 그녀의 논리대로라면 당연히 레이첼 자신이 가주가 되어야겠지만…….

‘귀찮고 머리 아픈 일은 사절이니까.’

앉아봤자 가문을 다스리느냐고 과로에 시달려, 좋아하는 검술에 열중하지 못할 자리다. 줘도 안 갖는다.

그리고.

‘이미 가주 자리에 적합한 사람도 있고.’

드레커 리텐슈노프.

자신의 막내 동생은 충분히 자질이 있었다.

물론 아직은 그 열매가 전부 여물지는 않았다. 그저 편린만 보일 뿐. 거기다가 드레커가 어떤 권능을 받느냐에 따라서 에르반보다 못한 인물이 될 수도 있다.

하나.

‘적어도 그 두 멍청이들이나, 아버님 보다는 가능성이 충분하니까.’

가장 위대하고 강한 자가 가주가 되어야 한다는 그녀의 지론에 따르면, 드레커는 충분히 자격이 있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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