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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86화 (86/139)

86화

비밀 통로는 지저분했다.

유적과는 달리 통로에는 오랜 세월 동안 고인 습기 때문에 만들어진 진흙이 가득했다. 구불구불하고 좁은 통로는 그것들이 몸에 묻기 딱 좋았고, 나는 자연스럽게 흙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바깥과 달리 이곳이 지저분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건 애초에 정식으로 만들어진 통로가 아니니까.’

고대에 유적 건설에 동원되었던 인부 중 일부의 인원이 유적에 묻힐 보물을 노리고 나중에 몰래 침입하기 위해 만든 길이 바로 이 비밀 통로였다.

당연히 만듦새가 조악할 수밖에 없다.

‘뭐, 그놈들은 이 통로를 사용하지도 못했지만.’

고대 제국은 유적의 건설이 끝나자마자 동원된 인부들을 모아놓고 죄다 생매장해버렸다.

운 좋게 그 난리통에 살아 남은 생존자 중 이 통로를 만들었던 인부가 있었고, 나는 그자가 남긴 기록과 유적의 정보를 토대로 이 통로를 찾아낸 것이었다.

그 도굴꾼 지망생들 덕분에 전생에도 그렇고, 이번 생에도 아라크네의 연옥에 잠들어 있는 ‘디딤돌’을 얻을 수 있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쯧, 어차피 만들 비밀 통로라면 좀 더 튼튼하고 깔끔하게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양심 없는 놈.]

데우스가 나를 타박했지만, 난 조용히 무시했다.

‘여기서 괜히 말을 걸었다가는 어떻게 이 통로의 존재를 알고 있는지 물어볼 게 뻔하다.’

아직까지 나는 데우스에게 내 회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물론 데우스는 나에게 연결되어 있으니, 내 회귀 사실이 남들에게 퍼지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내 말을 데우스가 믿을 지도 의문이고, 혹시라도 말실수를 해서 내가 회귀와 더불어 빙의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 후과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내가 사실 리텐슈노프의 혈통이 아니라는 게 밝혀진다면, 이 드래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결국 이 비밀은 앞으로도 평생 숨길 수밖에 없다.

[꼬맹아, 얼른 움직여서 이곳을 빠져나가거라. 이 지저분함을 보고 있으려니 구역질이 나는구나.]

데우스가 투덜거렸다.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팔다리를 바삐 놀렸다.

그렇게 한참을 나아갔을까.

마침내 통로의 끝에 도달했다.

‘이제 한 세 개 정도 남았나?’

앞으로 세 개의 비밀 통로를 통과하면 유적의 끝에 도달한다. 거기서 디딤돌을 얻고 탈출하면 끝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조심스레 통로 출구에 귀를 기울였다. 바깥은 조용했다. 아무래도 아라크네는 다른 곳을 수색하는 듯했다.

나는 조심스레 통로의 타일을 밀어올렸다.

밝은 빛이 틈사이로 쏟아지며 일순 눈이 부셨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 탓에 보지 못했다.

“영차, 후우. 얼른 나가야…….”

비밀 통로의 입구 앞에 서 있는 거대한 그림자를.

눈뜬 순간 보인 것은 여섯 개의 흑색 눈알이었다.

“……!!”

심장이 떨어지는 듯했다.

하나, 깜짝 놀랄 새도 없었다.

곧바로 아라크네의 앞다리가 내게 날아들었다.

분명 저 멀리 있었는데도, 눈깜짝할 사이에 코앞까지 휘둘러진 굵직한 앞다리. 나는 조금도 반응하지 못한 채, 그대로 얻어맞고 날아가 벽에 부딪쳤다.

“커헉!”

폐 속에 가득하던 산소가 순식간에 쥐어짜인다.

숨이 턱하고 막히며 눈앞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도 내 몸은 빠르게 반응했다.

나는 이를 악물며 재빨리 땅을 굴렀다.

다음 순간, 내가 방금 전까지 쓰려져 있던 곳으로 돌덩이가 날아들었다. 만일 그대로 가만히 누워 있었다면 짜부라져 어포가 되었을 게 분명했다.

빠르게 몸을 일으키며 속으로 의문을 표했다.

‘젠장,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대체 어떻게 아라크네가 이 통로를 알고 있는 거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사실 그런 걸 신경 쓸 틈도 없었다.

추정 10급 몬스터를 눈앞에 두고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았으니까 말이다.

-키리리릭!

쇠를 긁는 것 같은 울음소리가 귀를 찌른다.

나는 재빨리 미스틸테인을 뽑아들며 마나 하트를 운용했다. 심장이 뜨겁게 고동치며 뿜어져 나온 마나가 혈맥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가며 활력이 솟았다.

‘일단…… 버틴다.’

나는 검손잡이를 꽉 틀어지며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무려 10급 몬스터다.

처치한다던가 상대한다는 마음은 애초에 가지지도 않았다.

그저 버티고 버텨, 틈을 봐 도망칠 생각 뿐이다.

그 순간.

[꼬맹아, 온다.]

아라크네가 곧장 내게 쇄도했다.

나는 곧바로 블러드하운드 54식의 오러를 담은 검을 휘둘러 받아쳤다.

-카가가각!

동시에 들려서는 안 될 소리가 미로에 울려퍼졌다.

“……!!”

단단한 외피도 쉽게 파쇄해버리는 붉은 오러를 아라크네는 너무나도 쉽게 받아쳤다.

다리에 마나를 덧씌웠다던가 하는 방법이 아니었다.

그저 녀석의 갑각이 너무나도 단단했을 뿐이었다.

[오, 이놈 꽤 단단하구만. 저 갑각으로 갑옷 같은 거 만들면 꽤 쓸만한 무구가 나올 것 같은데? 어찌, 잡아서 만들어보련?]

데우스의 우스갯소리를 무시하며 나는 검을 회수했다. 그리고는 빠르게 미로를 달려 거리를 벌렸다.

‘일단 블러드하운드는 안 먹히는 건가.’

그렇다면 검식을 바꾼다.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자마자, 나는 검식을 바꿨다.

동시에 검붉던 오러가 새카맣게 물들었다.

바인더샤칼 13식.

물어뜯는 이빨이 검에 깃들었다.

거기에 덧붙여 렐릭의 반지도 사용했다.

“염화!”

즉시 검신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죽어라!”

망설일 시간은 없다. 나는 곧바로 검을 휘둘렀다. 그 즉시 불길로 형태화된 송곳니가 아라크네를 덮쳤다.

-화르르륵!

타오르는 겁화가 아라크네를 휘감았다.

하나, 나는 검을 휘두른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실패…… 했다.’

만일 바인더샤칼의 검식이 먹혔다면, 특유의 물어뜯는 소리가 들렸을 터. 그저 불길이 일렁이는 소음만 울려퍼진다는 건, 내 검식이 먹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절로 입술이 비틀렸다.

악물은 잇새로 신음이 터졌다. 아무리 강한 적이라고 해도 그렇지, 조금의 생채기도 내지 못하다니!

머리 끝까지 분노가 치솟았으나, 나는 다시 한 번 검격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 대신 몸을 뒤로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튀는 수밖에 없어.’

무슨 짓을 해도 재롱에 불과하니, 차라리 도망치는 데 전력을 다하는 게 더 살 가능성이 높았다.

어째서인지 녀석은 곧장 나를 쫒아오지 않았다.

저것이 조금만 힘을 써도 짓밟을 수 있는 벌레를 상대하는 강자의 여유인지, 아니면 그런 벌레를 죽이는 게 귀찮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나, 이대로 녀석이 쫒지 않는다면…….

-쿠르릉!

그 순간, 시야가 뒤집혔다.

순간적으로 세상이 빙빙 돌며 사방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영문을 알 수 없어 의아해하기도 잠시, 극심한 격통이 곧바로 척수를 타고 치솟는다.

“크아아악!”

-쿵!

몇 개의 미로 벽을 뚫고 나서야 나는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제야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아라크네가 휘젓듯이 휘두른 다리에 얻어맞은 것이었다.

‘……이게, 10급인가.’

너무나 압도적인 무력.

심지어 저건 진심을 다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대충 다리 몇 번 휘저어 때렸을 뿐이다.

“허억, 허억.”

[야, 꼬맹아. 일어나거라. 그러다 죽는다, 이놈아!]

데우스의 말마따나, 어서 도망쳐야 한다.

그 생각에 얼른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

이렇게 죽는 건가, 싶은 생각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한데, 어째서인지 아라크네는 나를 끝장내지 않았다.

한참을 숨죽이고 기다려도 녀석은 오지 않았다.

[……뭐냐?]

뭐지?

왜 안와?

* * * * *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체력이 조금 돌아오자마자 나는 몸을 일으켰다.

“……쿨럭!”

얻어맞았을 때 내장이 상한 건지 핏물을 좀 토해내기는 했으나, 다행히 팔다리가 부러진 곳은 없었다.

나는 미로 벽에 몸을 기댄 채 생각했다.

‘왜 나를 끝장내러 오지 않았지?’

너무 멀리 날려서 찾지 못했다, 같은 생각은 떠올리자마자 지워버렸다. 아라크네는 10급 몬스터다. 고작 이 정도 거리를 날려버렸다고 찾지 못할 리는 없다.

‘내가 죽었다고 생각한 건가?’

그렇다기에는 의심되는 점이 너무 많았다.

일단 기본적으로 아라크네는 그다지 진심으로 날 공격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게 강자가 보일 수 있는 여유라고 생각했으나, 지금 다시 떠올려보니 그딴 게 아니라 그냥 날 죽일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소문이 잘못된 건가?’

분명 아라크네는 제 둥지에 침입한 자를 절대 살려두지 않는 호전적인 몬스터로 유명했는데?

한데, 실제로 내가 본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가 더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서기는 했지만, 굳이 죽이려 하지는 않았다.’

알려진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행태.

“……잠시만.”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자.

잔혹한 명성은 그저 소문일 뿐, 아라크네의 본모습은 지금 본 게 맞을 터였다.

‘애초에 그 정도로 호전적인 놈이었다면, 멜이 날 이곳에 혼자 집어넣었을 리가 없지.’

그렇다면 멜은 왜 파동을 뿜어 저 녀석을 깨웠을까?

‘수련이라고 했지.’

분명 처음에 멜은 이 유적에 나를 데려가면서 수련을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당연하지만 이 유적은 이미 유적으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실상의 던전이니 수련을 위해서는 공략을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

한데, 그 보스는 10급 몬스터.

‘내가 사냥할 수 없는 적이다.’

공략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수련의 본질을 끼워넣는다면…… 좀 이야기가 달라지긴 하지.”

수련은 어찌되었든 강해지기 위한 행동이다.

그리고 강해지는 방법 중에는 나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적을 상대하는 방식도 존재했다.

그저 나보다 강한 자와 싸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진짜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기 상황에서 얻는 깨달음도 분명히 존재하니까.

이건 멜을 상대해서는 깨달을 수 없다.

‘결국 그도 나를 죽이지는 못하니까.’

하나, 아라크네는 다르다.

그다지 호전적이지 않기에 상대적으로 ‘덜’ 위험하나, 전투 중 죽을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긴장감도 그렇고, 실전 경험으로도 완벽한 적.

그제야 나는 멜이 나를 이 유적에 집어넣은 이유를 깨달았다.

완벽한 적을 상대로 계속해서 도전해, 내 힘을 가다듬으라는 뜻이었다.

“……너무 무식하기 짝이 없는데.”

진짜로 죽을 수도 있는 수련이라니.

절로 한탄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으나, 그렇다고 이대로 숨거나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즉시 복부에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빠드득!

절로 이가 앙다물어졌다.

“……시발.”

[거 참, 그 정도는 이 악물고 참거라! 어차피 그 정도는 곧 있으면 나을 거다.]

용의 심장으로 얻어낸 초인적인 육체 덕분에 내 회복력은 평범한 인간과는 다르다.

데우스의 말대로 이 정도 상처는 곧 나을 터.

‘제발 닥쳐주세요, 영감님.’

[뭬야?]

물론 그걸 데우스의 입으로 듣는 건 좀 다른 문제였지만.

아픈 배를 부여잡은 채,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라크네의 공격 때문에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미스틸테인을 집어든 뒤, 고개를 슬쩍 들었다.

나는 저 멀리 어두컴컴하게 보이는 유적 최심부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그 일주일 동안 최대한 많이 아라크네와 전투한다.

그것이 이번 훈련의 포인트이자.

멜이 내게 내린 시련이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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