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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92화 (92/139)

92화

“엉? 뭐라고?”

너무 당황한 탓일까? 무심코 튀어나온 목소리에, 멜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별것 아니라는 듯 머리를 휘휘 저었다.

“싱겁긴. 일단 따라와. 아까 대충 훑어봤는데, 여기 연무장이 쓸데없이 시설이 좋더라고? 거기 도착해서 이야기를 계속 하자.”

진짜로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멜은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고 나를 지나쳐 앞서나갔다.

나는 그의 뒤를 쫓으며 재빨리 속으로 물었다.

‘무슨 소리입니까? 용의 권능이라니.’

내 물음에 데우스가 느긋하게 대답했다.

[방금 내가 말한 대로다. 지금의 네가 가진 권능은 시각의 권능 따위가 아니라, 용의 권능이다.]

‘……그리고요?’

[그리고? 뭐가 그리고라는 것이더냐?]

‘그게 끝?’

[그렇다만?]

아니, 그래서 그게 뭐냐고.

‘아니, 설명을 좀 제대로 해보세요. 용의 권능이라는 게 정확히 무엇입니까?’

[지고의 권능.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 근원.]

하나, 데우스는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았다.

대신 뜬구름 잡는 소리만 내뱉을 뿐이었다.

그 말에 절로 열이 치솟아 올랐다.

‘아니, 뭐냐고 물었는데 왜 대답이 그딴 게 나옵니까? 이 드래곤이 드디어 치매가 오셨나…….’

[뭬, 뭬야?]

‘치매 노인 소리 듣고 싶지 않다면 제대로 대답해주세요. 아니면 앞으로 그렇게 취급할 겁니다. 하긴, 평소의 행실을 생각하면 치매는 몰라도 주책은 없는 것 같던데. 그게 사실 치매의 전조였을 지도 모르겠네요.’

[이, 미친 꼬맹이가 진짜!]

내 일침에 데우스가 평소와는 다르게 격분했다.

하긴, 날 때부터 위대한 존재로 태어난 게 바로 드래곤 아닌가.

언제나 모두에게 떠받들어지고, 우러러보는 시선만을 느꼈을 거다.

그런 수백 년 용생 동안 답도 없는 치매 노인 취급받았던 경우가 있었으면 얼마나 있었겠는가?

하지만.

‘내가 딱히 거짓말을 한 건 아니잖아?’

그저 평소의 행실에 대한 평가를 내렸을 뿐.

‘그러게, 평소 여자 좀 덜 밝히셨어야죠. 좀 더 위대한 드래곤답게 처신하시고, 조금 더 위엄 있는 모습을 보여주셨다면 제가 이런 말을 할 리가 없잖습니까?’

[……이 버르장머리 없는 썩을 놈. 아이고, 내 팔자야. 왜 하필 이딴 놈이 용의 심장을 얻은 게냐!]

데우스는 지금 당장 연결을 끊겠다는 둥, 더 이상은 힘을 빌려주지 않겠다는 둥 악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데우스는 내 심장과 연결된 상태.

마침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서글픈 처지를 비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투덜거리던 데우스가 마침내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문을 텄다.

[……용의 권능은 모든 권능의 모체다.]

‘모체, 말입니까?’

[기본적으로 말이다. 리텐슈노프 혈통이 지닌 권능이라는 힘은 내가 내린 선물이다. 혈통에 깃들어 있는 권능을 발현하면 용의 감각을 얻을 수 있게 되지.]

‘용의 감각.’

나는 속으로 그 단어를 되뇌었다.

[물론 용의 오감 전부를 얻지는 못한다. 드라칸 녀석이 방계와 직계를 구분 짓겠다고 직계가 아닌 자들은 모두 다 하나의 권능만 얻을 수 있게 해두었거든.]

데우스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침음성을 내뱉었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였기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들 단 하나의 감각만 지니고 있지 않습니까?’

당장 가주인 마그너스 조차도 보유한 것은 오직 시각의 권능뿐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야, 직계와 방계를 구분하는 방법을 잊었잖느냐?]

‘……직계와 방계를 구분하는 방법이요?’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어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데우스는 딱하다는 듯 쯧쯧 혀를 찼다.

[이놈아, 생각이라는 걸 좀 해봐라. 가지게 되면 용과 같은 감각을 얻는다. 네가 가진 것 중에 뭔가 비슷한 게 있었다는 사실이 떠오르지 않더냐?]

“……아!”

그제야 기억이 났다.

익히면 용과 같은 육신을 얻게 해주는 것.

’드래고니아 구축법.‘

바로 내 가슴에 깃들어 있는 용의 심장이었다.

‘그럼 용의 심장이 바로 직계의 증표란 겁니까?’

[그래. 애초에 드라칸 시절에는 말이다. 가문의 직계라고 불리는 자들은 오직 드래고니아 구축법을 익힌 가주와 후계자, 둘 뿐이었다.]

‘가주와 후계자요?’

그럼 다른 사람들은 뭐, 전부 방계였다는 소리인가?

설마 나를 놀리는 건가 싶어 그렇게 물었으나, 데우스는 진지했다. 절대로 장난을 치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직계와 그 후계자. 오직 그 두 사람만이 드래고니아 구축법을 익힐 수 있었다. 드래고니아 구축법을 이곳저곳 퍼트리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 그래서 그 둘을 제외하면 전부 다 방계로 취급했었다.]

“…….”

놀랍기 그지없는 이야기였다.

하나, 더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그렇다는 건…….’

나는 모든 권능을 다 쓸 수 있다는 건가?

후각도, 청각도, 시각도, 그 모든 것을 다?

[그렇도다. 물론 지금 당장은 시각의 권능밖에 쓸 수 없을 게다. 하나, 그건 시각이 오감 중 가장 중요하고 자주 사용하는 감각이라서 그런 거고.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될 즈음이면 다른 감각들도 활성화될 테지.]

그리고 내 추론을, 데우스는 긍정했다.

“큭……!”

잇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들었다가는 만면 가득히 치솟은 입꼬리를 멜에게 들킬지도 몰랐다.

재빨리 허벅지를 세게 꼬집었지만, 표정 관리는 전혀 되지 않았다. 가슴이 쿵쾅쿵쾅 두방망이질 쳤다.

‘마그너스보다 더 뛰어난 권능이라니!’

에르반이 그렇게 부러워했던 아덴의 권능.

그 녀석이 지닌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인 힘이 내 손아귀에 들어올 예정이라니!

[거참, 그렇게 좋더냐? 아주 그냥 입이 찢어지겠다.]

데우스가 헤실헤실하는 내 꼴을 비웃었다.

‘……아까 전이었다면 한소리 했겠지만, 지금은 기분이 좋으니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어차피 데우스님은 냉혈동물이라서 제 기분을 알 리 없기도 하고요.’

[뭬, 뭬야? 냉, 뭐?]

‘그럼 도마뱀이 냉혈동물이지 온혈동물입니까?’

[이 쥐똥같은 꼬맹이가 진짜!]

버럭 소리를 지르는 데우스를 무시하며, 나는 멜을 쫓는 발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한참을 그렇게 따라갔을까.

큼직한 원형 연무장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멜의 말대로, 연무장의 시설은 꽤 좋았다.

본가의 시설과 비교해도 될 정도의 퀄리티.

바닥에 깔린 흙도 꽤 질이 좋았고, 크기도 평범한 영지의 연무장보다 월등히 컸다. 보관함에는 잘 관리된 수련용 무구가 가득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 중 대부분은 검이었다.

‘누구 취향이 반영되었는지 딱 봐도 알겠군.’

레이첼, 이 인간은 영지 관리는 조금도 안 하면서 뭔놈의 연무장을 이 정도로 철저하게 관리한 거람?

그 생각을 떠올리니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전생에 그녀가 보여준 행적을 다시 되짚어보자 놀랍게도 곧바로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게 익숙해지면 안 되는데…….’

시답잖은 생각을 머릿속에서 털어낸 뒤, 나는 멜을 돌아보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또 무엇을 하게 됩니까?”

“뭔가 갈수록 묘하게 고까워지는 거 같다?”

“그야…….”

나는 멜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멜의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훈련을 시켰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굳이 그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다른 훈련으로도 강해질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어쭈? 뭘 그런 눈으로 봐? 죽을래?”

멜이 주먹을 빙빙 휘두르며 눈을 부라렸다.

나는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긴, 방금 전까지 아니꼬와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아, 아니라니까요.”

결국 머리를 한 대 쥐어박히고 말았다.

내가 머리를 문지르고 있는 사이, 멜은 수련용 철검 두 자루를 가져와 한 자루를 내게 던졌다.

“받아.”

느닷없이 날아드는 철검을 가볍게 받아채며,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아니, 무슨 훈련인지 말은 하고 시작하면 안 됩니까?”

“권능을 좀 시험하려고 그런다, 왜.”

멜은 가볍게 어깨를 풀며 그렇게 말했다.

절로 고개가 모로 돌아갔다.

“권능을 시험한다고요?”

“시험일 수도 있고, 다듬는 걸 수도 있지.”

그리고 다음 순간.

멜의 눈이 번뜩이고, 동시에 철검이 내게 쏘아진다.

평소였다면 반응하지 못했을 속도.

하지만.

‘……!!’

순간적으로 온 세상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모든 사물의 움직임이 똑똑히 보였다.

검 끝이 적당한 속도로 내게 날아든다. 검을 휘둘러 그것을 쳐내면서 동시에 옆으로 몸을 틀었다.

‘피했……!’

하나, 순간적으로 멜의 검이 빨라졌다.

갑작스럽게 급가속해 내 옆구리로 날아드는 검.

물론 진짜로 멜이 검을 휘두르는 속도에 비하면 여전히 느리다. 하나, 방금 전과 비교하면 천지 차이.

-퍽!

결국, 나는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검날에 옆구리를 가격당했다. 그와 동시에 시간이 다시 빠르게 흘렀다.

“커헉!”

나는 바닥을 나뒹굴며 신음했다.

“6점.”

그런 나를 내려다보며, 멜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크윽…… 뭐가 6점이라는 겁니까?”

나는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물었다. 내 물음에 멜은 염소 수염의 끝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마그너스님의 권능에 비해서 책정한 네 점수.”

“……10점 만점에 6점이라는 말입니까?”

“미쳤냐? 당연히 100점 만점이지.”

멜이 내 눈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콧방귀를 뀌었다.

“고작 이제 막 권능을 각성해놓고 너무 꿈이 큰 거 아냐? 네가 무슨 세기의 천재라도 되는 거 같아?”

“뭐, 아닌 것 같지는 않은데요.”

회귀라는 사기를 치긴 했지만, 인간이 열한 살에 5성에 올랐으면 그게 세기의 천재가 아니고 뭐겠나?

내가 어깨를 으쓱거리자 멜이 헛기침을 했다.

“큼큼, 하여튼! 내가 듣기로는, 리텐슈노프의 권능은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자주 써버릇 해야 한다더라고. 그러니까 앞으로는 틈날 때마다 권능을 써라. 올해 안에, 그러니까 네가 상급반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계속 도와줄 테니까. 알겠어?”

“……그러면 6점에서 몇 점까지 오를 수 있겠습니까?”

마그너스가 100점이라면, 나는 그 이상으로 가야 한다. 모든 권능의 원본이라는 용의 권능을 소유하고 있으니, 당연히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것이다.

내 물음에 멜은 어깨를 으쓱였다.

“네가 잘 피하는 만큼 점수가 빨리 오르겠지?”

“……설마 올해 내내 매번 이렇게 두들겨 패는 훈련만 할 생각은 아니죠?”

“이런, 궐련이 다 떨어졌네.”

“아니. 말 돌리지 마시죠, 멜 경.”

“궐련이 어디갔나?”

“아니, 저기요?”

딴청을 피우는 멜에게 항의했지만, 그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절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런 속도로 검 휘두르는 걸 계속 피하라고?

앞으로 일 년간 이 짓거리를 계속 하라고?

망연자실한 나를 두고, 멜은 궐련을 찾는답시고 연무장 밖으로 털레털레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황급히 그를 뒤쫒으며 소리쳤다.

“저기요, 멜 경? 저기요?”

“아, 안 들려. 안 들려.”

“아니, 뭔.”

그렇게 지옥 같은 훈련이 시작되었고.

일 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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