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그걸 골랐다는 말씀이십니까?”
드레커가 중급 임무를 선택했다는 소식을 마그너스에게 전해 들은 아자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곧 아자르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가문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너무 높아진 탓인가……. 드레커가 실수를 했군.’
임무 등급 ‘중’에는 보통 중급반을 졸업한 수련생이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임무들이 주로 배정된다.
그렇기에 중급 임무는 대체적으로 4명 정도의 수련생이 한 조가 되어 수행하거나, 수련동을 졸업하고 기사단에 입단한 5성 평기사와 함께 수행하는 게 보통이었다.
‘아무리 녀석이 5성이 되었다지만…….’
드레커는 이제 갓 중급반을 졸업한, 아직 임무 경험이 없는 신참에 불과하다. 당연하지만 중급 임무를 혼자서 수행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자네 말이 맞아.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분명 성공하기 어려울 테지.”
마그너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자르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아자르는 눈을 빛냈다.
“확실히…… 드레커 도련님이 상식을 벗어나는 일을 많이 벌이기는 하였지요.”
하급반에서는 바실리스크를 사냥했고, 사냥 훈련에서는 4성 몬스터를 잡았다. 교류전에서 수석을 따왔고, 열한 살의 나이에 5성의 경지에 올라섰다.
마그너스는 바로 그 점을 꼬집고 있었다.
‘하나하나 때어놓고 봐도 말이 안 되는 내용뿐인데……. 이게 전부 한 사람이 이뤄낸 업적이란 말이지.’
아자르의 눈이 가늘어졌다. 확실히, 이날까지 드레커가 보여준 결과물을 생각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녀석은 매번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성공시켰다.’
지금까지의 드레커의 행보를 생각해 볼 때, 이번에 고른 중급 임무 또한 성공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아니, 성공할 거다. 매번 그랬으니까.
‘오히려 그걸 노리고 골랐을지도 모르겠군.’
아자르는 마른침을 삼켰다.
‘정말 대단한데.’
그는 순수하게 드레커에게 감탄했다.
이런 짓은 성공했을 때 돌아올 보상이 크긴 하지만, 실패하면 목숨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는 도박이다.
웬만한 배짱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고서야 시도조차 할 수 없다는 거다.
‘한데. 매번 도박을 하고, 또 매번 따버린다니.’
하늘이 내린 천재인가, 아니면 하늘이 내린 행운아인가.
아자르의 생각은 마그너스의 목소리에 끊겼다.
“……이번에 말이야.”
“아, 네.”
“드레커, 고 녀석이 임무를 고를 때. 유심히 지켜보았네. 대체 어떤 기준으로 매번 선택지를 고르는 건가 싶어서 말이야. 무어, 평소에도 자주 살피기는 하지만.”
“그러셨습니까?”
“한데, 녀석의 눈빛이 이번에는 평소와 좀 달랐어.”
“달랐다, 라는 것은……?”
“이번에는 딱히 내게 잘 보이려고 그걸 고른 건 아닌 듯싶더군.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어 보였네.”
“그 말씀은…….”
마그너스는 말끝을 흐리는 아자르와 시선을 마주쳤다. 노인이 장난기 가득한 눈초리로 웃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지, 자네도 궁금하지 않나?”
“…….”
아자르는 무심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솔직히, 그 또한 그 이유가 궁금하긴 하였으니.
“자네가 애들 풀어서 한 번 확인해 보게. 물론 당연하지만 드레커 녀석에게는 들키면 안 되네.”
“……알겠습니다, 주군. 당장 놀고 있는 인력이 있으니, 일도 시킬 겸 그 녀석을 보내면 되겠군요.”
드디어 드레커에게 해방되어 집에서 편히 쉬고 있던 멜에게 계획한 적 없는 외근이 잡히는 순간이었다.
* * * * *
리텐슈노프 본가에서 독립도시 스텐필즈로 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시빌라의 영역을 지나야 했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시빌라 특유의 이동 수단, 칠로포다 특급 열차를 타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투두두두두!
마치 수백 마리의 말이 동시에 내달리는 것 같은 굉음이 차창을 타고 실내에 울려 퍼졌다.
“우욱…….”
그와 동시에 마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잔잔한 진동이 몸을 흔드는 게 느껴진다.
‘……젠장.’
분명 내부가 흔들리는 수준만 생각하면 이 탈것이 마차보다는 훨씬 편안해야 할 텐데, 전생에도 그랬지만 어째서인지 이건 탈 때마다 몹시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힐끔 창밖을 흘겨보았다.
창백하게 질린 내 얼굴이 비치는 차창 너머에는 가늘고 길쭉하게 뻗은 수십, 수백 개의 다리가 빠르게 앞뒤로 움직이는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빌어먹을 지네 같으니라고. 우욱’
칠로포다 특급 열차.
그것은 칠로포다라는 초대형 소환수를 이용한 시빌라 특유의 여객 운수 사업을 말했다.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칠로포다는 거대한 지네를 닮은 이계의 소환수로, 녀석은 제 덩치와는 맞지 않게 겁쟁이인지라 전투에는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보통 이런 소환수는 쓸모를 찾지 못하여 버려지는 게 대부분이지만, 시빌라는 이 거대 지네의 덩치가 아쉬웠던 건지, 이놈을 여객 운수 사업에 사용하겠다는 발상을 떠올렸다.
거대하고 평편한 칠로포다의 등판에 사람이 탈 수 있는 길쭉한 객실을 여러 개 설치하여, 정기적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일주하는 ‘열차列車’를 만든 것이다.
마차와 비교해 월등하게 안정적인 진동과 압도적으로 빠른 이동 속도.
그 덕분에 칠로포다 특급 열차는 이제는 시빌라의 대표적인 이동 수단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말을 이용한 마차는 곧바로 퇴출당하였고, 말이다.
‘빌어먹을 노예주 놈들, 말과 마차가 얼마나 전통적이고 좋은 이동 수단인데. 그걸 왜 버려!’
나는 울렁이는 배를 부여잡으며 이를 갈았다.
차라리 공간 도약 마법의 어지럼증이 훨씬 낫다. 최소한 그건 어지러울 뿐, 속이 울렁이지는 않으니까.
그에 비해 이 ‘열차’라는 건 매번 탈 때마다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탈 게 아니라는 결론만 나왔다.
[거 참, 엄살이 심하구나. 참을성을 좀 기르거라.]
‘조용히 하세요, 제발.’
[끽해봐야 조금 흔들리는 것이 뭐 그리 대수라고? 네 조상들은 말이다, 어? 내 등에 올라타서 하늘도 날아 보았도다. 그 피를 이어받은 녀석이 고작 이따위 것을 못 버티는 게 말이 되느냐?]
‘……본인이 고작 날아다니는 마차와 다를 바 없었다고 자기 비하를 하는 중이시군요. 잘 알겠습니다.’
[뭐라? 이 거지 똥구멍 같은 꼬맹이가 진짜!]
데우스를 놀려먹으니 속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나는 울렁이는 배를 문지르며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저 멀리 지평선 끝에 희미하게 스텐필즈의 도시 전경이 보였다.
‘그래도 도착까지 얼마 남지 않았군.’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잠시 후.
내가 타고 있던 칠로포다 특급 열차가 독립도시 스텐필즈의 중앙 승강장에 도착했다.
스텐필즈는 시빌라와 아이스본, 두 명가의 영역의 경계선에 존재한다. 덕분에 어느 명가의 독점적 지배도 받지 않는 곳이 되었다.
그 탓일까?
스텐필즈는 언제나 활기차고 자유분방한 독립도시 특유의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열차에서 내려, 승강장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나는 그러한 분위기를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저쪽으로 가면 분수 광장이…….”
“어디 보자, 중앙 시장은 어디로 가야 하더라?”
“꺄르륵!”
“얘, 뛰지 말랬지!”
도시를 돌아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은 얼굴에 생기가 감돌았다. 거리의 아이들은 언제나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고, 자유로운 사고방식이 몸에 익숙한 것 같았다.
그러한 풍경을 잠시 지켜보다가, 나는 이내 승강장을 벗어났다. 이곳에 온 목적을 잊으면 안 된다.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늦장을 부렸다가는 일이 꼬인다.
스텐필즈는 델리우스 게인의 출신지이자 고향이었지만, 그것은 그다지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었다.
델리우스 게인은 노예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분명 처음에는 자유민이었다고 들었는데.’
모종의 이유 때문에 노예상인에게 사로잡힌 후, 그대로 경매에서 팔려 십여 년간 노예 생활을 했었다고 들었다.
문제는 그 시기였다.
‘델리우스가 노예로 팔린 정확한 시기를 모른다.’
대략 작년부터 내년까지, 이 3년 안에 벌어진 일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솔직히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젠장, 노예 시절의 일은 아예 들은 게 없는데.’
노예 시절이라는 게 그다지 좋은 추억이 아니기에 굳이 입 밖에 내뱉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그냥 내가 그런 대화를 그와 할 수 없었던 사이였다.
전생에 나는 델리우스와 그다지 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아덴의 총애를 독점하기 위해 경쟁하는 사이였으니…….’
사이가 좋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서로 경쟁 중이라고 생각한 건 나 혼자뿐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하여튼.
‘만약 그 녀석이 이미 노예로 팔렸다면 큰일인데.’
지금 하는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된다.
일부러 어렵고 귀찮은 중급 임무까지 고르면서 온 스텐필즈다. 모래사막에서 바늘 찾기일지라도, 어떻게든 델리우스에 관한 정보를 얻어내야만 했다.
‘그렇다면, 다크문으로 가야겠군.’
제국에서 신뢰할 수 있고 쓸 만한 정보를 빠르게 얻기 위해서는 그곳만한 곳이 없다.
‘돈은 좀 들지만.’
그래도 어쭙잖은 개소리를 정보랍시고 가져오는 다른 곳들과는 다르게, 다크문은 그래도 최소한 제대로 된 정보를 수집해 온다.
돈 값은 하는 셈이다.
나는 곧바로 스텐필즈의 중앙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을 조금 돌아다니자, 한 상회가 눈에 띄었다.
검게 칠한 초승달 문양을 상징으로 달고 있는 상회. 간판에는 론도웰 상회라고 적혀 있다.
‘여기 있군.’
론도웰은 다크문이 사실상 점령하다시피한 공작가의 성씨였다.
다크문은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공작의 위세를 빌어 자신들의 지점을 상회 형식으로 제국 곳곳에 입점시켰다.
이곳은 스텐필즈 지점.
나는 곧바로 상회 안으로 발을 들였다.
내부는 깔끔하게 디자인 된 가구로 꾸며져 있었다.
상회라기보다는 사무실 분위기가 강한 공간.
현물이 아닌 정보를 파는 곳 답다는 느낌이 든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입구 근처의 데스크에 서 있던 직원이 내게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품속에서 황금 뱃지를 꺼내 그에게 던졌다. 리텐슈노프의 문장이 새겨진 뱃지를 본 직원의 눈이 이체를 띄었다.
“리텐슈노프 가의 손님이시군요. 혹시 드레커 리텐슈노프님이십니까?”
그 말에 절로 시선이 돌아갔다. 직원은 지그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혀를 차며 한탄했다.
“소문이 벌써 퍼졌나? 거 참, 빠르네. 이제는 밖에서 얼굴 들고 다니기 힘들겠어.”
내가 얼굴을 살짝 찌푸리는 척하자, 직원이 슬쩍 미소 지었다.
“이곳은 소식이 모이는 곳이니까요. 중급반을 조기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드레커님. 혹시 리텐슈노프의 임무 때문에 오신 것이십니까?”
“대답을 듣고 싶으면 값을 제시해야지.”
나는 검지와 엄지를 비벼보였다.
‘어딜 공짜로 받아먹으려고?’
웃기는 소리 같지만 진짜다. 내가 임무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 아닌지 또한 이들이 취급하는 정보이니까.
“하하, 그렇다면 구매하지 않도록 하지요. 귀빈실은 이쪽입니다.”
직원은 가볍게 웃고는, 나를 상회 안쪽으로 안내했다. 창구를 넘어 내실로 들어가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어두운 남색 개열의 가구가 가득한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손님은 몇 명 없었으나, 다들 한가닥 하는 자들로 보였다.
굳이 쳐다보았다가 얽히면 귀찮기에, 나는 그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직원의 뒤만 따라갔다.
그 순간.
“어라.”
기억에 익은 목소리에, 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이거, 참. 오랜만이네.”
시선의 끝에는 은빛 머리칼의 소녀가 있었다. 소파에 앉은 채,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매만지던 아멜리아 아이스본의 짙은 푸른빛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동시에 그녀가 살짝 웃었다.
“안녕, 드레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