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
“…….”
기묘한 침묵이 귀빈실 테이블 사이를 두고 오간다.
처음의 인사를 제외하면 서로간에 대화라고는 일절 없는 상황. 당연하지만 굉장히 어색하고 불편했다.
‘곧 돌아온다더니, 언제 오는 거야?’
나는 입맛을 다시며 직원이 사라진 암막 커튼 밖을 흘겨보았다.
뜬금없이 마주친 아멜리아 때문에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된 상담도 없이 인적사항만 넘기고 얼른 조사를 요청했는데, 한참이 지나도 결과는 오지 않았다.
힐끔 시선을 돌리자 나른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아멜리아 아이스본의 심해빛 눈동자가 보인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의 눈가가 호선을 그린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
내 무반응에 아멜리아는 피식 웃었다.
“설마 내가 누구인지 까먹은 건 아닐테고, 그렇다면 오랜만에 날 봐서 부끄러운 건가? 그렇다기엔 너무 얼굴에 곤란하다는 기색이 가득한데…….”
곧 무언가 깨달았는지, 아멜리아는 과장되게 좌절했다는 듯한 제스쳐를 보이며 한탄했다.
“아아, 알겠다. 너, 나랑 마주하는 게 불편한 거구나? 정말 너무하네, 협력자. 어떻게 나 같은 레이디한테 그런 태도를 보일 수가 있어?”
“……?”
순간 걸러들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협력자?’
이건 또 뭔 소리야?
“협력자, 라는 게 무슨 뜻이지?”
“뭐야, 너 설마 진짜 내가 누구인지 까먹은 거야?”
내 대답에 아멜리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손끝으로 입을 가렸다.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아가씨 같은 반응을 현실에서 보게 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까칠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아멜리아 아이스본. 네가 누구인지는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까 묻는 말에 대답해.”
“흐응, 너무하네. 진짜로 기억 못하는 거야? 네가 그랬잖아? 친구는 너무 가깝고, 협력자면 좋다고.”
“내가?”
그랬던가?
그제야 잊고 있었던 기억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유적의 끝에서 수석 자리를 두고 나누었던 대화 중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었지.’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
‘무려 2년 전의 일인데.’
뭐, 2년이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긴 했다.
하나, 그렇다고 저 대화가 굳이 기억할 가치가 있는 대화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잖는가?
‘정말 이상한 녀석이군.’
저번에도 그랬지만, 이 소녀는 언제나 뭔가 의뭉스러운 구석을 잔뜩 가지고 있었다.
당장 지금도 그렇다.
‘이 녀석이 굳이 다크문까지 와서 정보를 구할 이유가 있나? 무려 아이스본 출신인데?’
아이스본은 오대 명가 중에서는 가장 정보력이 뛰어나다고 평가 받는 가문이었다. 다크문과 비교할 때, 아이스본은 꿀릴 것 없는 정보망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 아이스본의 차기 가주가 될 유망주가, 왜 다크문에서 정보를 구하고 있는 걸까.
‘아이스본에서는 구할 수 없는 정보인가? 그게 아니면…….’
찾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스본에 알려지면 안 되는 정보라거나…….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기억의 파편 너머에서 문득 심연처럼 검디 검은 눈동자가 떠오른다. 마주하는 순간 내 모든 것이 까발려지는 것 같은 시선.
그 시선의 주인은…….
“아멜리아, 혹시 너.”
그 순간.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좀 늦었죠?”
암막 커튼이 젖히며 넓은 이마가 돋보이는 중년 사내가 귀빈실 안으로 들어왔다.
“저는 이 지점의 지부장입니다. 아이고, 이거 참. 오래 기다리셨겠네. 차라도 내오라고 했어야 했는데, 이거 참. 죄송합니다, 두 분 모두.”
사내는 중후해보이는 겉모습에 걸맞지 않게 호들갑을 잔뜩 떨었다 덕분에 분위기가 확 깼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다물었다.
“자자, 일단 어느 분부터 시작하시겠습니까?”
“먼저 온 사…….”
“저쪽 먼저 해 주세요. 저는 나중에 따로 듣겠어요.”
문득 들려온 차가운 음성에 힐끔 고개를 돌렸다.
테이블 반대편에 앉은 아멜리아는 평소 보였던 모습과는 다르게 차갑게 식은 표정으로 지점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말투 또한 방금 전과는 천지 차이였다.
마치 사람이 뒤바뀐 것 같은 태도.
‘뭐야, 대체.’
보는 입장에서는 아리송할 뿐이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든 말든, 지점장은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아멜리아의 말투도 개의치 않는 게, 이 녀석은 처음부터 다크문의 사람들에게는 지금과 같은 태도를 보여온 듯했다.
“아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드레커 리텐슈노프 님 부터……. 어디보자, 델리우스 케인, 아니네. 게인? 하여튼, 이 사람을 찾고 있으시다는 거지요?”
“맞아. 이 도시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일단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찾았습니다.”
그 말에 나는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꽉 틀어쥐었다.
‘됐다!’
이 다음부터는 쉽다. 델리우스 녀석을 내 앞에 데려와서 온전히 내 사람이 되라고 설득하면 된다.
전생에도 입신양명의 욕구가 풍부했던 녀석인만큼, 내가 제안하면 곧바로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하리라.
“참, 요즘은 사람 찾기도 힘들어요. 시청 놈들이 최근부터 배가 부른 건지 건당으로 받아가는 돈이 너무 커졌거든요. 그래도, 뭐……. 다행히 찾으시는 대상이 우리 영업망에 속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더라고요? 덕분에 찾는 게 편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떠오르는 게 있었다.
‘사업을 벌이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빚더미에 올라탔고, 그 탓에 노예가 됐다고 그랬었지.’
아무래도 지금 지점장이 언급한 은행 대출이 그때 이야기한 사업 자금인 듯했다. 이야기만 들으면 꽤 많은 돈을 대출한 모양.
하지만.
‘상관 없다.’
어차피 사업 자금이라고 해봤자 델리우스 녀석이 빌릴 수 있는 돈에는 한계가 있다.
대충 전액 갚아주고 녀석의 호의를 얻어내면 될 터.
델리우스 게인을 내 사람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그깟 금화 따위는 얼마든지 아깝지 않았다.
“좋아, 좋아. 그래서, 녀석은 지금 어디 있지?”
그렇기에 나는 기쁜 마음으로 지점장에게 물었다.
한데.
“에, 그게……. 그게 말이지요?”
지점장의 반응이 이상했다. 절로 긴장이 되었다.
“그 녀석이 이미 노예상인한테 잡혔답니다.”
“뭐?”
“빌린 돈을 못 갚았거든요. 대출을 받은 지 꽤 시간도 지났고. 이자도 똑바로 못 내니, 별 수가 있겠습니까? 은행에서 채권을 노예상인에게 넘겼답니다.”
“이런, 미친!”
그 인간이 벌써 노예가 되었다고?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절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 근데 아직 안 팔렸답니다. 정확히는 경매를 오늘 시작할 거라고 하더군요. 이거 참, 도련님께서 정말 알맞은 때에 오셨습니다요.”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지점장의 첨언에 나는 정신을 되찾았다.
‘그래, 그냥 사오자.’
어차피 노예로 사오나, 자유민으로 데려오나.
결국 내 사람이 될 거라는 사실은 똑같다.
오히려 노예의 신분으로 본가에 대려온 뒤, 곧바로 풀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음흉하기 짝이 없는 녀석.]
데우스의 빈정거림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며, 나는 지점장에게 물었다.
“그래서, 언제 시작합니까. 노예 경매는?”
* * * * *
노예 경매장은 중앙 시장의 지하에 존재했다. 상회를 빠져나와, 나는 곧바로 노예 경매장으로 향했다.
-터벅 터벅
-타박 타박
쓸데없이 혹을 하나 달고.
뒤따라오는 발걸음 소리는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등 뒤를 돌아보자, 은은한 미소를 지은 아멜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대체 왜 따라오는 거야?”
내 질문에 아멜리아는 눈을 깜빡였다. 은빛 머리칼을 손끝으로 배배 꼬던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따라가면 안 되는데?”
“아니, 내가 먼저 물어봤잖아.”
“나도 그래서 대답을 했는걸?”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지 말라고…….”
대답을 듣자 어째서인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왠지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것 같은데…….’
일단 여기서 노닥거릴 시간은 없었다.
경매가 시작하기 전에 어서 경매장으로 가야 했다.
“젠장, 따라오든 말든 맘대로 해.”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발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물론 당연하지만 뒤따르는 발소리가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광장 한구석에 있는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
그 통로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계단과 복도를 지나자, 널찍한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오랜 옛날 이단으로 몰려 제국에서 박해 박던 종교의 집회 시설이었던 이곳은, 이제는 노예 상인과 이상성욕자가 득실거리는 욕망의 경매장으로 탈바꿈했다.
“열세 개. 열세 개 나왔습니다. 더 없습니까?”
“열세 개 하고도 두 개 더!”
“열다섯 개!”
시끌시끌한 분위기는 활기찼다.
물론 이 생기가 모두 누군가를 노예로 삼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니 심히 역겨운 느낌이 들었으나, 어차피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 다 그렇지 않던가.
당장 나도 어찌 되었든 노예(?)를 사러 온 셈이고.
‘일단 자리를 잡아야지.’
광장 한켠에는 계단식으로 층층이 쌓인 공간에 앉을 수 있는 좌석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 팻말을 흔들며 노예를 거래하고 있었다.
적당히 중간 층에 자리한 좌석 중 빈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내 곁에 아멜리아가 앉는 모습을 보며, 나는 상품이 올라오는 무대 뒤편을 살폈다.
‘어디보자……. 어디에…… 있다!’
그렇게 한참을 찾았을까, 얼굴을 왕창 일그러트린 채,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은 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소년의 외형은 특이하다 못해 괴이했다.
희멀건 탓에 핏줄이 다 드러나는 피부와 핏빛처럼 붉게 물든 눈. 그리고 새하얀 머리칼까지.
혈통에 의한 특징이 발현된 것이 아닌, 전형적인 알비노에 의한 외모를 지닌 소년이었다.
“허, 이때는 꽤 볼만했네.”
어린 시절의 델리우스 게인의 모습을 보는 건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내가 과거로 회귀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고 해야 할까?
내 기억 속의 그는 언제나 피곤한 눈을 하고, 얼굴에는 다크서클이 가득했으며, 입만 열면 독설이 튀어나오던 먹물쟁이였다.
한데.
지금의 그는 아직 서류와 업무의 산에 덜 시달린 탓인지, 멀쩡한 외모를 하고 있었다. 앳된 모습이 조금은 귀여운 면도 있었다.
“볼만하다고?”
내 중얼거림에 아멜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나와 노예들을 번갈아 살폈다. 그리고는 곧,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왜?”
“너, 저기 노예들 틈바구니에 남자들만 있는 거 알고 있지?”
“뭐? 아, 그렇네.”
“그럼 뭐가 볼만하다는 거야?”
묘한 눈을 한 아멜리아가 나를 추궁하는 순간.
“자, 다음 노예는. 이 꼬마입니다! 오오, 이 특이하고 신기한 외모를 보시라! 무려 알비노에 걸린 소년입니다. 자자, 백옥 같은 피부가 참 곱지요? 최소 경매가는 다섯 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델리우스 게인이 무대 위로 올라섰다.
“잠시만, 잠시만 있다가 대화하자고.”
나는 아멜리아의 시선을 뒤로한 채 무대에 집중했다. 그런 내 모습에 아멜리아가 충격 받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너. 남색이 취향이니?”
“뭐?”
절로 고개가 휙 돌아갔다.
[푸, 푸하하핫! 남색! 남색이란다! 크하하핫!]
남색이라니, 뭔 미친 소리야?
“너, 미쳤냐?”
“아니, 그렇잖아. 왜 남자들을 보고 볼만하다고 한 거야? 내가 생각할 때는 그게 더 미친 소리 같은데?”
[그렇지! 크흐흐흐! 그게 더 미친 소리지, 암! 푸핫!]
결단코 부정했음에도 여전히 불신이 담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아멜리아.
그 시선과 더불어 들려오는 데우스의 경박한 웃음소리가 안 그래도 팽팽한 내 신경을 긁었다.
문제는 지금도 계속 경매는 진행되는 중이었다는 것이다.
“열다섯 개!”
저 멀리서 들려온 호가에, 절로 마음이 초조해졌다.
“젠장, 나중에 설명할게.”
나는 재빨리 좌석 앞에 놓인 팻말에 숫자를 휘갈겨 쓴 뒤 들어올렸다. 내 팻말을 발견한 사회자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내 경쾌한 목소리로 외쳤다.
“와! 젊은 청년 분께서 50개! 50개를 부르셨습니다! 자자, 50개 나왔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없어요?”
사회자가 객석을 살폈으나, 아무도 팻말을 들어올리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금화 50개라니. 아무리 알비노가 희귀하다지만, 그 정도 돈을 주고 살 정도로 귀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경매는 여기서 종료되는 듯했다.
“없으시다면 여기서 거래를 종료…….”
“51개!”
누군가가 그렇게 외치지만 않았어도 끝났을 거였다.
“뭐야?”
황급히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최상층의 좌석에 붉은 비단을 온몸에 둘둘 감은 어떤 덩치 큰 사내가 보였다. 비단이 불쌍할 정도로 비대한 살집을 보유한 사내.
본 적 없는 얼굴이다. 당연하지만 내가 기억할 필요도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컸다. 어지간히 능력 있는 가문 출신이었다면 알고 있었을 테니까.
‘뭐하는 인간이지? 왜 델리우스한테 저 정도의 돈을…….’
그 순간, 우연히 사내와 내가 시선이 마주쳤다.
동시에.
사내가 비웃음을 가득 담아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 광경에, 절로 피가 끌어올랐다.
“……이 새끼가 뒈질라고.”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