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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97화 (97/139)

97화

“상품의 배송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립니다요.”

노예 경매장의 사회를 맡았던 사내는, 싹싹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내 앞에서 열심히 굽신거렸다.

“구매하신 상품에 하자가 있는지 없는지, 만일 있다면 어떤 하자인지 확인하고, 또 그걸 고치는 작업을 거쳐야 하거든요. 그러니 배송까지는 대략 하루 정도가 걸릴듯합니다요.”

“그런가.”

“네, 그렇습니다요. 정말 감사합니다, 고객님.”

감사를 표하며 사회자가 고개를 90도로 꾸벅 숙였다. 어지간히 저자세인 게, 내가 뭐라고 한 마디 하기라도 한다면 곧바로 바닥에 엎드려 절할 기세였다.

‘하긴, 그만한 돈을 냈는데 상품을 바로 받지 못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보통은 개지랄을 할 테니까.’

물론 나는 굳이 지랄을 할 이유가 없었다.

내 입장에서야 델리우스 게인을 고작 금화 몇천 개로 얻을 수 있다면 무조건 이득이다. 당연히 그 거래가 깨질 만한 짓은 결코 할 수 없다. 엄청난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하나, 이들이 볼 때, 나는 무려 네자릿수의 금화를 고작 별 볼일 없는 알비노 소년 노예 한 명의 값으로 지불한 인간이다.

귀한 손님이기에 앞서 괴이한 손님이라는 인식을 피할 수가 없었다.

‘아마 지금 하자가 있는지 확인해보겠다는 건, 델리우스가 혹시라도 대단한 능력이나 재능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닌지 확인해보겠다는 소리겠지.’

풋.

절로 웃음이 튀어나왔다.

‘열심히 찾아봐라. 그게 나오나.’

델리우스 게인은 기발한 발상이 톡톡 튀어나오는 그 천재적인 두뇌를 제외한다면 모든 부분에서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아니, 그때 운동 부족으로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육체의 상태는 일반인보다도 못할 지도 모르지.’

즉, 아무리 찾아봐도 나오는 건 없을 거라는 소리다.

‘아마 내가 무슨 희대의 천재를 발견해서 데려가는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델리우스가 희대의 천재는 맞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방향 쪽으로의 천재는 아닐 것이다.

애초에 그들은 델리우스의 진짜 재능, 우월한 두뇌는 확인해보지도 않을 거다.

그렇게 똑똑한 인간이라면 벌인 사업이 망해 빚더미에 깔려 노예로 팔려올 리가 없다고 생각할 테니까.

‘나도 한동안 그 이야기를 안 믿었을 정도니까.’

그 세기의 천재가 의외로 사업에는 재능이 없다니, 옥에 티라는 속담은 이런 상황을 말하는 걸까?

“알겠어, 그럼 내일 즈음에는 배달이 될 거라는 말이지?”

“네, 네! 그렇습니다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일정을 맞춰드리겠습니다!”

좋아.

나는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노예 경매장 밖으로 나왔다. 델리우스 게인을 내 손에 넣었으니, 이로서 이곳에 온 목적은 전부 다 달성한 셈이다.

절로 입꼬리가 실실 올라갔다.

‘이제 남은 건…… 가문에서 받은 중급 임무만 끝내면 되는 건가.’

물론 중급 임무를 떠올리자 곧바로 기분이 우중충해졌지만 말이다.

‘젠장.’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렇게 머리카락을 혹사하면 나중에 탈모 온다.]

‘어떻게 해야 하지?’

[쩌어기, 남쪽의 열대 지방에 나는 과일 중에 쁘로빠샤라는 이름의 줄기식물이 있는데, 그걸 먹으면 증세가 조금이나마 호전이 된다더구나. 그러니 지금부터 열심히 관리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도다.]

‘미친 소리는 제발 적당히 하시고요. 좀.’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데우스의 잡소리를 뇌 속에서 털어낸 뒤, 나는 다시금 생각을 정리했다.

‘델리우스 하나만 보고 너무 막무가내로 달렸어.’

내가 수행해야 할 중급 임무에 관해서는 그다지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심지어 내가 배정받은 중급 임무는 혼자서 하기에는 너무나도 까다로운 임무였다.

내가 받은 중급 임무는 스텐필즈 근방에 나타난 대규모 몬스터를 토벌하는 일이었는데, 몬스터의 추정 숫자가 네 자릿수에 달하는지라 나 혼자서는 절대로 불가능했다.

‘나 혼자 가봤자, 한 손으로 강을 막아서는 꼴이다.’

즉, 동료가 필요했다.

다행히도 리텐슈노프 가문은 이런 일에 동료를 모집해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 대하여 별 신경을 안 썼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서 수행했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경우도 없었고, 오히려 불이익은 임무를 실패했을 때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검술명가 호엔슈타펠이 임무에 적힌 내용을 철저하게 지키도록 강요하는 것에 비하면, 리텐슈노프의 임무는 나름의 자율성이 있는 셈이었다.

[문제는 그것이구나. 쓸만하고 믿을 수 있는 동료를, 대체 지금 당장 어디서 구해야 하냐는 것 말이다.]

데우스의 말마따나, 솔직히 암담했다.

‘솔직히 실력자야 넘쳐나지. 여기는 시빌라와 아이스본의 경계선이니까.’

문제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부분.

나는 착잡한 얼굴로 입술을 씹었다.

‘내가 신용할 수 있고, 실력도 뛰어난데, 당장 내 근처에 있는 사람은…….’

있긴 있다.

꺼림칙해서 그렇지.

하나,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비상 상황에는 비상시 만의 대처법이 있는 법.’

결국 현실을 받아들인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시장 앞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홍차를 홀짝이던 아멜리아가 내 시선을 느끼곤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 쾌활하기 그지 없는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에휴.”

진짜 저 녀석 밖에 없는 건가.

절로 머리를 감싸쥐게 되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데우스가 타박을 했다.

[너는 왜 예전부터 저 아이를 그리 끔찍이 여기느냐? 저런 귀여운 소녀가 너 좋다고 달라붙어 주면, 어? 감사합니다 하고 절을 해도 모자랄 판인데! 그러고도 네가 사나이라고 할 수 있더냐!]

‘제발 입 다물어 주세요.’

신경 거슬리게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내뱉는 대화는 전부 정신을 우주 끝으로 날려버리는 개소리 뿐이다.

‘이 변태 꼰대 드래곤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참으로 아쉽도다. 내가 몸뚱이만 있었더라면……. 아니지, 아니야. 생각해보니까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구나! 내 기억하기로는 분명 연결된 자의 몸뚱이를 잠시 유용하는 방법이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응? 뭐?

“……데우스님, 잠시만요. 방금 뭐라고……?”

[아아,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신경 끄거라.]

“아니, 방금 뭔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소리가 지나갔던 것 같은데. 그거 뭐였…….”

“뭘 그리 혼잣말을 하고 있는 거야?”

그 순간.

어느새 다가온 아멜리아가 내게 찻잔을 내밀며 물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며 찻잔을 받아 들이켰다.

“쿨룩!”

예상외로 뜨거운 찻물을 한꺼번에 들이킨 탓에 자연스럽게 기침이 튀어나왔다. 나는 목을 부여잡았다. 사레라도 들린 건지 기침은 멈추지 않았다.

“콜록! 콜록!”

“칠칠치 못하네. 기다려 봐.”

아멜리아는 나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양껏 바라보고는, 이내 한 손을 뻗어 내 목을 짚고, 다른 손으로는 허공에 수인을 그렸다.

곧 그어진 마력의 실선이 하나의 마법진을 완성했고, 동시에 기침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후우, 크흠, 큼.”

“바보 같네. 다음부터는 찻물이 뜨거운지 아닌지 정도는 확인하고 마셔. 알겠어?”

“……그래.”

이제는 절반 밖에 남지 않은 차를 삼키며 나는 아멜리아의 분위기를 힐끔 살폈다.

확실히, 그녀 정도라면 실력도, 인성도 믿을 만하기는 했다. 이전에 교류전에서 보여준 모습도 그렇고, 평소 살갑게 대하는 것만 봐도 최소한 그녀는 나에게 호의적인 편이니까 말이다.

‘굳이 얼굴도 모르는 인간을 끌어들일 바에는…….’

최소한 얼굴이라도 아는 사람이 낫겠지.

결국 내가 마음을 정하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티타임이 끝나고 카페를 벗어나, 골목을 한 발자국 앞서 걸어가는 그녀에게 말을 걸 무렵.

-철컥 철컥

어디선가 들려오는 갑옷 부딪치는 소리에, 나는 귀를 쫑긋였다. 그 소리가 난 방향을 확인한 나는 눈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이럴 것 같더라니만.”

경매가 끝날 무렵 그 덩치가 나를 노려보며 부들부들 떠는 게, 딱 봐도 보복을 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그 보복을 고작 하루 만에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지만.’

뭐, 상관 없는 일이다.

-스르릉!

다음 순간, 뒷골목 틈틈이 난 샛길에서 여러 명의 기사들이 완전 무장을 한 채 천천히 걸어나왔다.

들고 있는 무기는 메이스와 단검.

결코 위협을 하거나 골탕을 먹여줄 용도로 쓰는 무기는 아니었다.

[저거, 저거, 널 납치하려나 본데? 보라, 밧줄 든 놈도 뒤에서 다가오고 있도다.]

나는 데우스의 말에 힐끔 뒤편을 살폈다.

우리가 지나온 골목에서도 기사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쪽은 데우스의 말대로 한술 더 떠서 밧줄과 도리깨를 들고 있었다.

그 꼴을 보니 순간 피식하고 웃음이 터졌다.

웃을 상황이 아닌데도 내가 웃고 있으니, 나를 납치하기 위해 다가오던 기사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기사라는 양반들이, 든 게 그게 뭐야?”

농부도 아닌데 농기구를 잔뜩 들고 왔다.

슬쩍 품을 젖혀 허리춤에 꽂힌 미스틸테인을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그 명검의 자태에 몇몇 기사들의 바이저 너머로 탐욕이 일렁이는 게 보였다.

나는 그들이 더욱 검을 잘 볼 수 있도록.

-스르릉

검집에서 미스틸테인을 뽑아들었다.

월광검이 태양빛을 받아 반짝인다.

검의 별명을 생각해보면 조금 우스운 일이나,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칼 맞을 사람은 그런 걸 신경쓰지 못하니까. 검은 검일 뿐이다.

검신이 번쩍이자, 기사들의 긴장도가 높아졌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뒤를 힐끗 살폈다.

“아멜리아 아이스본.”

“왜?”

“네 몸은 알아서 지킬 수 있겠지?”

그 물음에 아멜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곧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리더니, 치맛자락을 가볍게 붙잡고 살짝 들어올려 보이며 말했다.

“레이디의 앞을 막는 불한당들을 얼른 치워주시겠어요?”

“……되도 않는 짓은 치우고.”

“어머, 정말로 무드가 없으시네요.”

아멜리아는 쿡쿡 웃더니, 이내 눈웃음을 지었다.

“어서 가.”

그리고 다음 순간.

“쳐라!”

“우와아악!”

“이야아아!”

고함과 함께 기사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미스틸테인을 고쳐 잡으며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전방에 넷, 후방에 셋.’

숫자로는 후방의 적이 더 적다. 하지만 그쪽에는 그물을 든 놈이 하나 있었다. 그물 따위야 찢어버리면 그만이지만, 대신 앞뒤로 포위 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어차피 포위 당해도 상관없지만.’

시비가 붙은 사람이 오대 명가도 아니고, 그저 촌구석에서 콧방귀 좀 뀌는 이름 모를 귀족이다.

그런 자의 기사들이라면 끽해봐야 3성에서 4성일 터.

‘그 정도라면 힘 차이로 짓눌러버릴 수 있다.’

미스틸테인을 가볍게 털며 나는 전방으로 뛰쳐나갔다. 칼끝이 땅을 긁으며 불똥을 튕겼다. 권능을 쓸 필요도 없었다. 적들은 내 움직임에 반응하지도 못했다.

바이저 틈 사이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기사의 눈동자가 보였다. 그대로 목을 치려는데, 문득 무언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 생각해보니 이거…….’

나름대로 기회일 수 있겠는데?

어차피 임무 수행에 필요한 동료는 아멜리아 혼자로도 충분하다. 여기에 고기 방패 역할을 해줄 기사들 몇 명만 더 있으면 충분히 토벌을 완료할 수 있었다.

‘이놈들을 써먹어야겠군.’

그 덩치와 몸의 대화를 해서, 약간의 ‘협조’를 구한다면 이 기사들을 임무에 이용해 먹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죽이면 안 되지.

재빨리 검날을 옆으로 돌렸다.

‘날이 아닌, 면으로 맞는다면.’

3성 정도라면 충분히 살 수 있으리라.

동시에 엄청난 속도로 거울처럼 사물이 비치는 검면이 그대로 기사의 관자놀이를 향해 날아든다.

그리고.

-콰직!

무언가 구겨지는 소리와 함께, 기사가 옆으로 날아갔다. 마치 풍차처럼 빙빙 돌아서 벽면에 몸이 박힌 기사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모두가 침묵했고.

나 또한 입을 다물었다.

“……너무 세게 때렸나.”

내 예상과는 다르게도.

아무래도 이 녀석, 3성이 아니라…… 2성인 듯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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