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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98화 (98/139)

98화

-투툭!

벽에 박힌 기사가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마치 줄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 같은 모습.

그러한 광경에 기사들은 감히 누구도 드레커에게 덤빌 생각을 품지 못했다.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한, 한 방이라고?’

고작 한 번의 검격.

그걸로 2성 기사를 무력화시켰다.

그렇다면, 과연 상대가 자신들을 전부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검을 몇 번이나 휘둘러야 할까?

아니, 그 이전에 검을 쓸 필요가 있긴 할까?

드레커를 습격하려던 기사들은, 충분히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제, 젠장. 이런 이야기는 못 들었다고!’

‘3성? 아냐, 4성인 건가?’

‘이건 죽어도 절대 못 이겨.’

기사들의 얼굴에 공포가 서렸다. 그들은 창백해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하며 서로의 눈치만 보았다.

하나, 어느 하나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제발, 도망칠 거면 도망치고, 항복할 거면 항복하자고!’

‘여기서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4성 기사의 코털을 뽑고 도망치라니, 그게 말이 되냐고!’

‘젠장, 왜 하필 이런 놈을 상대하게 된 거야?’

결국, 우왕좌왕하던 그들은 곧 전의를 상실했다.

이곳에 있는 기사들은 다들 고작 2성에 불과하다.

그들로서는 무슨 짓을 해도 4성 기사를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거기다가 애초에 드레커는 5성이었으니, 그들이 이길 확률은 0에 수렴했다.

모든 걸 포기한 듯한 기사들의 모습을 힐끗 바라보던 드레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검을 늘어트렸다. 드레커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지금 항복한다면 목숨은 살려주마.”

그러자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몇 명의 기사가 재빨리 무기를 내던지고 드레커의 앞에 엎드렸다.

“하, 항복하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어?”

“어, 어어…….”

그 광경에 당황해하던 다른 기사들도 이내 무기를 내려놓았다. 이미 전황이 뒤집혔다고 생각한 것이다.

드레커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가문의 기사라는 놈들이 이 모양이라니.’

지금 이 꼴을 보니 자신에게 시비를 걸었던 놈이 왜 자신의 얼굴을 못 알아보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수준이 너무 낮은 탓에 교류 자체가 있을 수 없었던 거다.

그런 주제에 하필 시비를 걸어도 리텐슈노프의 혈통에게 걸다니. 어지간히 재수가 없는 놈이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봐줄 생각은 없지만.’

드레커는 기사들이 내던진 무기를 수거한 뒤,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기사들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자, 그럼…….”

기사들과 눈높이를 맞춘 드레커가 씩 웃었다.

“네 주인이 어디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 볼까?”

* * * * *

“왜 이리 늦는 거야?”

오늘 경매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가볍게 반주를 걸치던 라온 아시스가 문득 투덜거렸다.

어째서인지 노예 경매장을 털고 온 기사들은 이곳으로 되돌아왔는데, 근본도 없는 주제에 자신을 엿 먹인 애새끼를 족치라고 보낸 자들은 그대로 소식이 끊어졌기 때문이었다.

“퉤, 빌어먹을 놈. 끌고오면 혼쭐을 내줘야지.”

라온이 침을 탁 뱉으며 중얼거렸다.

그가 뱉은 침이 바닥에 쓰러진 알비노 소년의 볼에 툭 떨어졌다. 어지간히 얻어맞은 모양인지, 소년의 흰 피부에는 붉은 피딱지가 덕지덕지 엉겨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시지요.”

라온이 불안 증세를 보이자, 그를 호위하는 기사단장이 어색한 얼굴로 라온에게 대답했다.

“지금 움직인 녀석들은 죄다 실력 있는 놈들입니다. 분명 소영주님께서 말씀하셨던 그 무엄한 녀석을 흠씬 두들겨 패준 뒤, 이곳으로 끌고 올 것입니다.”

그 말에 라온은 눈살을 힘껏 찌푸렸다. 덕분에 안 그래도 살집에 파묻혀 잘 보이지 않던 그의 눈알이 더욱 더 작아졌다.

“설마, 그 녀석들. 실수로 죽여버린 건 아니겠지? 그 놈은 내가 직접 치워야 한단 말이다아!”

그는 그렇게 외치며 테이블 위에 놓인 검을 집어 들었다. 금은과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실용성이라고는 밀 한 톨만큼도 없는 검이 허공을 붕붕 그었다.

그 위험천만한 행동에, 기사단장은 움찔 몸을 떨며 황급히 뒷걸음질 쳤다. 코 근처를 스친 검은 사람을 죽이기에는 너무나도 무뎠지만, 그의 코뼈를 작살내놓기에는 충분한 무기였기 때문이다.

기사단장은 속으로 욕을 곱씹었다.

‘젠장, 위험하다고! 빌어먹을 돼지 같으니.’

그런 기사단장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라온은 테이블을 쾅쾅 내려치며 호통쳤다.

“젠장. 기사단장, 네 말은 확실한 거지? 만약 내 허락 없이 놈을 죽였다가는 기사 녀석들은 죄다 근신이야! 아빠한테 말해서 전부 다 벌을 주겠어.”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런 짓을 하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지요.”

기사단장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아무렇게나 내뱉었다. 수년간 나옴을 호위하며 그를 다루는 법을 터득한 기사단장이었다.

나온 정말로 단순하게도 대충 칭찬해주고 추켜세워주면 분노를 내뿜지 않았다. 물론 그 분노가 남에게 가는 것 따위는 기사단장이 알 바는 아니었다.

‘젠장, 먹고살기 참 힘드네. 빌어먹을 인생 같으니라고. 왜 하필 백작님은 이런 놈을 소영주로……,’

물론 기사단장은 그 이유 또한 알고 있었다.

아시스 백작은 불의의 사고로 라온을 낳은 이후로 불임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자신의 혈통을 이을 사람이 오로지 망나니 라온 뿐이기에, 아시스 백작 또한 울며 겨자 먹기로 라온을 소영주로 삼은 것이기도 했다.

“쯧! 안 되겠어. 단장, 사람 좀 불러봐. 여자 위주로!”

라온이 음흉한 눈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행태에 역겨움을 느꼈지만, 기사단장은 충언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평소와 같이 부르면 되겠습니까?”

“그래, 여기 애들이 예쁘더라고.”

라온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평소처럼 스텐필즈의 여자들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기사들이 녀석을 끌고 오면 자신을 비웃고 모욕한 놈을 짓밟아 주면 끝이었다.

‘흐흐흐.’

곧 부드러운 살결을 안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라온의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으며 음흉하게 웃는 순간.

-쾅!

라온이 거주하던 스위트룸의 문짝이 터지듯 뜯겨져 나왔다. 라온은 그 굉음에 깜짝 놀란 나머지, 입술을 핥짝이다가 실수로 혀를 꽉 씹고 말았다.

“악!”

절로 정신이 확 깨는 고통에 라온이 입가를 부여잡고 눈물을 찔끔 흘렸다.

“뭐야? 대체 무슨 일…….”

갑작스러운 사태에 깜짝 놀라며 문 쪽으로 머리를 튼 기사단장의 고개가 순식간에 뒤로 젖혀졌다.

동시에 쾅하는 소리와 함께 기사단장이 마치 줄 끊어진 연처럼 펄럭이며 벽으로 튕겨 나갔다.

“뭐, 뭐야?”

눈 깜짝할 사이에 호위 기사를 잃은 라온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뒤뚱뒤뚱 걸어서 문 너머를 살폈다.

그리고 발견할 수 있었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자신과 자신 뒤에 엎드려 있는 노예 소년을 노려보는, 드레커의 얼굴을 말이다.

“너, 이게 무슨 지…… 꾸에에에엑!”

다음 순간, 드레커가 그대로 라온의 배를 걷어찼고, 동시에 돼지 멱 따는 소리가 실내에 쩌렁쩌렁 울렸다.

“커허어어억! 커헉! 쿠에에엑!”

그대로 뒤로 자빠진 라온이 배를 부여잡은 채, 숨을 헐떡이며 비명을 질렀다.

희멀건 콧물과 침을 질질 흘리며 바닥을 구르던 라온이, 이내 눈물 가득한 눈으로 드레커를 노려보았다.

“네, 네 이놈! 감히 내가, 내가 누군, 쿨럭! 누군지 알고 이딴 짓을 하는 거냐! 나아는 위대한 명가, 아시스 백작가의 소영주…….”

“……명가?”

그 말에 드레커가 눈을 부라렸다.

드레커는 품속에서 금속 배지를 툭 던졌다.

코앞에 떨어진 황금빛 배지에 라온이 눈을 찡그렸다. 곧, 배지에 그려진 리텐슈노프의 인장을 발견한 라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명가라고 했던 거 같은데, 어디지? 아이스본? 시빌라? 호엔슈타펠? 아니지, 아이스본일 리는 없겠군. 그랬다면 아멜리아를 납치해서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을 품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 말에 라온이 비명을 질렀다.

“그, 그, 그건. 그건…… 이건 말도 안 돼! 이건 불가능하다고! 어째서 리텐슈노프가 이곳에!”

갑작스러운 상황 전개를 받아들이지 못한 라온은, 정신이 완전히 나가버린 듯, 횡설수설했다.

완전히 혼란에 빠진 것 같은 모습.

드레커는 곧바로 상대가 자신이 한 말의 반절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나마 리텐슈노프라는 건 이해한 게 다행인 건가.’

드레커는 그렇게 생각하며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이딴 놈이랑 거래를 할 수는 없지.’

계획을 바꾼다.

드레커는 그렇게 결심하고는, 성큼성큼 라온의 앞으로 걸어갔다. 라온의 다리 사이에 선 드레커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네가 한 짓의 대가다. 달게 받아라.”

다음 순간, 드레커의 발이 라온의 낭심을 내려찍었다.

-콰직!

“끄이야아악!!”

돼지 멱 따는 듯한 소리와 함께, 라온은 입에 거품을 물고 그대로 뒤로 쿵 하고 쓰러졌다.

드레커는 기절한 라온은 신경쓰지 않고, 황급히 바닥에 쓰러져 있는 델리우스에게 다가갔다.

상처투성이가 된 델리우스를 본 드레커의 얼굴이 일순 딱딱하게 굳었다.

[이거 참, 완전히 걸래짝을 만들어 놨구나.]

데우스의 말대로였다. 얼마나 얻어터진 건지, 전신에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드레커는 재빨리 델리우스의 맥을 짚어보았다.

잠시 후, 드레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만약 델리우스가 이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엮여 죽기라도 했다면, 저 돼지 놈의 가문은 그대로 주춧돌도 남기지 않고 불타버렸으리라.

그 무렵 드레커에게 걷어차여 기절해 있던 기사단장이 신음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약간 멍한 얼굴로 드레커와 라온을 바라보던 그가, 이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벌떡 일어섰다.

“이, 이런 젠장!”

“닥치고 앉아.”

“뭐, 뭐야?”

설명하기도 귀찮다.

드레커는 발치에 떨어져 있는 배지를 걷어차 기사단장의 발밑으로 밀어 보냈다. 배지를 본 기사단장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 이게, 이게…….”

“드레커 리텐슈노프다. 네놈 주인의 가문이 어디지?”

드레커의 질문에 기사단장이 덜덜 떨며 황급히 대답했다.

“그, 어, 그, 그, 아시스 백작, 백작가입니다!”

“어딘지도 모르겠네. 잘 들어, 네놈의 돼지가 나를 죽이려 들었다. 너도 아마 관여했을테니 공범이지.”

드레커가 꺼낸 공범이라는 단어에 기사단장의 얼굴은 마치 목 졸린 사람처럼 새파랗게 변했다.

“어, 어어…….”

“그러니 내 말 똑똑히 듣고, 그 백작한테 잘 전해.”

드레커는 그런 기사단장을 부릅뜬 눈으로 똑똑히 노려보며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살고 싶다면, 당장 이곳으로 튀어오라고 해. 지금부터 딱 하루를 준다. 그때까지 도착하지 못한다면, 아시스인지 아서스인지 하는 네놈들 가문은 내 손에 멸문이야.”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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