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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99화 (99/139)

99화

“뭣!”

하늘이 무너져 내려 머리 위로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아시스 백작가의 주인, 오리겐 아시스는 절망이 가득 어린 눈으로 자신의 소중한 아들을 보필하던 기사단장의 입을 바라보았다.

제발 그 입에서 방금 한 말이 번복되기를, 차라리 장난이었다는 소리가 나오기를 기도했다.

하나.

“지, 진짜입니다, 백작님. 진짜로 리텐슈노프의 배지였습니다.”

“허, 허허.”

그러한 오리겐의 기대는 산산이 박살났다.

기사단장은 꺼낸 말을 번복하지 않았고, 무너진 세상은 다시 붙지 않았다.

절로 분기가 치솟았다.

오리겐은 기사단장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네는 대체 그 사이에 무얼 했는가? 자네가 말렸어야지! 어찌 그런 짓을 하게 그냥 두었는가!”

“송구합니다, 백작님. 하나, 저는 그 당시에 노예 경매장에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소영주님께서 제게 따라오지 말라고 명하셨던지라……. 차마 그 명령에 불복종하고 수행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습니다.”

기사단장의 변명 섞인 대답에 오리겐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하나, 그는 온 힘을 다해 분노를 식혔다.

기사단장의 말대로, 라온이 고집을 부렸다면 막을 수 있는 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깊게 탄식을 내뱉은 오리겐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 고환이 터졌다는 이야기는 뭔가?”

“드레커 리텐슈노프 님께서 그 자리에서 처벌을 내리셨습니다. 라온 소영주님의 낭심을 내리찍었는데, 아무래도 후사를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젠장…….”

자식을 낳을 수 없다니! 오로지 가문의 계승을 위해서 그 녀석의 망나니짓을 봐주었던 것인데. 이래서야 평생토록 헛짓거리를 눈감아 준 보람이 없잖는가.

“그 녀석이 망나니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으나, 감히 리텐슈노프를 건드릴 줄이야……. ”

어떻게 되먹은 놈이길래 그 정도로 멍청한 것인지!

자신의 피를 타고 났음에도 그 모양 그 꼴이라니. 오리겐은 이 순간 부인의 외도를 진심으로 의심했다.

한참 후, 오리겐은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젠장,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오리겐의 물음에, 반대편 테이블에 앉아 있던 늙은 가신 한 명이 창백한 얼굴로 대답했다.

“당장 호출에 응하셔야 합니다. 드레커 리텐슈노프님의 앞에 엎드려 죄를 청하지 않는다면, 우리 아시스 가문이 멸문당할 수도 있습니다.”

“으음…….”

오리겐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건 너무 모양이 빠지지 않는가? 아무리 그래도 나는 백작인데…….’

그런 오리겐의 고민을 눈치챈 가신이 기겁하며 황급히 간청했다.

“백작님, 냉정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촌각의 시간에 가문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지금 당장 순간이동이 가능한 마법사를 찾는 건 시간이 걸리니, 칠로포다 특급 열차에 탑승하시지요.”

“오로지 그 수밖에 없는가……?”

“그렇사옵니다.”

그 대답에 오리겐의 얼굴에 수심이 깊어졌다.

잠시 후, 오리겐은 괴로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일…… 단 알겠네. 당장 열차를 수배하게. 그리고 자네, 자네는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게. 그대에게 내릴 처분은 이번 사태가 전부 끝나고 결정될 거야.”

오리겐은 부릅뜬 눈으로 기사단장에게 고했다.

하나, 기사단장은 나가지 않고 테이블 앞에 서서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러한 기사단장의 행동에, 아직 그가 알리지 않은 무언가 있다는 걸 깨달은 오리겐이 한숨을 푹 쉬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또 내게 보고할 게 있나? 제발 없다고 해주게.”

“그, 저기…….”

“그래, 뭔가?”

“라온 소영주가 드레커 리텐슈노프님과 함께 있던 소녀를 납치해오라고 명령을 내렸었는데, 그…… 소녀께서 사실은 아이스본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아멜리아 아이스본 님이시라고…….”

그 말에 순간 하늘이 노래졌다.

오리겐 아시스의 두 눈에 순간적으로 핏발이 가득 섰다. 그는 우악스러운 손길로 테이블을 꽉 틀어쥐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이 빌어먹을 개자식을 내가 진……! 어어억!”

“배, 백작님!”

“백작님이 쓰러지셨다! 어서 의사를 불러!”

* * * * *

“……백작이 쓰러져?”

“네, 네. 백작께서 이번 불미스러운 일의 경위를 듣고 급작스럽게 몸이 상해 와병하신지라, 조금의 말미를 주시면…….”

“그건 니들 사정이고. 그리고 백작께서?”

“아, 소, 송구합니다!”

“최후통첩이다. 번복은 없어. 자정까지 이 호텔로 오지 않는다면 아시스 백작가는 멸문이야. 이제 꺼져.”

“아, 알겠습니다!”

분노의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두려워 몸을 오들오들 떨던 전령은 내 축객령에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

내 행동을 지켜보던 데우스가 혀를 쯧쯧 찼다.

[못된 녀석. 벌써부터 아랫것들을 쥐잡듯이 잡고 다니는구나. 나중에 네 녀석이 가주가 되면 가문 꼴이 참 볼 만 하겠도다.]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그 말에 나는 쓰게 웃었다.

‘제랄드와 아덴도 만만치는 않았으니까.’

내가 사람 잡는 법을 어디서 배웠겠는가?

스스로 평가해볼 때, 아직 그들을 뛰어넘지는 못한 것 같으니 그래도 나는 그 두 사람보다는 나은 인간이다.

[뭘 아니라는 듯 말하느냐? 매일 나에게 꼰대, 꼰대라더니 사실은 꼬맹이, 네가 더 꼰대 아니었느냐?]

‘춘추를 놓고 봐도 저보다는 데우스님이 더…….’

[나이 이야기는 하지 말아라.]

데우스와 잡담을 주고받으며 나는 호텔방 안으로 돌아왔다. 사실, 호텔을 잡는 것도 고난이었다.

수중의 모든 돈을 델리우스의 구매에 전부 털어버린 탓에 빈털터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나는 아멜리아에게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하여튼, 그러니까 변태 꼰대 드래곤이라는 겁니다.’

[변태 꼰대라니, 아무리 그래도 애인에게 숙박비나 빌리는 놈에게는 듣고 싶지 않도다. 네가 기둥서방이라도 되더냐?]

‘저번부터 대체 누가 제 애인이라는 겁니까? 쟤는 지금 저랑 동갑이거든요? 열두 살이라는 말입니다.’

[열두 살이면 이미 알 거 다 아는 나이 아니더냐.]

다행히도 아멜리아는 흔쾌히 내게 돈을 빌려주었다. 아니, 정확히는 아예 방을 잡아 주었다.

스텐필즈에서 가장 비싼 방을.

거대한 객실 문을 열자 휘황찬란한 복도가 나를 맞이했다. 화려하고 고풍스럽기 그지없는 이 스위트룸은 이 주변에서 가장 급이 놓은 곳으로, 퀄리티가 퀄리티인 만큼 눈이 튀어나올 정도의 가격을 자랑했다.

‘질린다 질려.’

금빛으로 번쩍이는 복도를 지나, 내실로 들어오자, 응접실의 길쭉한 양털 소파에 앉아서 숨을 돌리는 아멜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크림색 가운을 입은 소녀의 약간 축축한 머리카락은, 그녀가 방금 씻고 나왔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왔어?”

나를 발견한 아멜리아가 미소를 머금었다.

“델리우스는?”

나는 곧바로 델리우스의 상태를 살폈다.

델리우스는 그 돼지에게 꽤 많이 얻어맞았다.

‘고작 그 정도로 목숨에 지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내가 의술을 배운 것도 아니고, 실제로 어떨지는 모른다. 혹시라도 위험한 상태일 수도 있다.

그런 내 물음에 아멜리아의 미간이 좁아졌다.

곧 그녀가 볼을 부풀리며 투덜거렸다.

“너무한 거 아냐? 돈도 빌려주고, 네 노예도 치료해 줬는데, 고맙다는 말이 먼저 안 나오는 건 심하잖아? 정말로 우리 친구 맞아?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고맙다, 아멜리아.”

내 즉답에 그녀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입술이 오물거리는 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잠시 나를 노려보던 그녀가 이내 휘적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내실 한쪽을 가리켰다.

“들어가 봐. 안에 있으니까. 아마 지금쯤 깨어났을 거야.”

“알았다.”

나는 아멜리아를 지나쳐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큼직한 침대가 한 개 놓여있었다.

그 위에는 델리우스 게인이 있었다.

약간 멍해 보이는 얼굴.

나는 천천히 침대 곁으로 다가가 그를 살폈다.

처음 돼지의 집에서 구해냈을 때와는 달리, 그의 몸은 완벽하게 회복되어 있었다.

‘역시 아멜리아.’

아이스본의 차기 가주답게, 그녀의 마법 실력은 발군이었다. 치유 마법이 그녀가 주로 사용하는 마법이 아니라는 걸 생각하면, 진짜 감탄이 다 나올 지경이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비몽사몽 하던 델리우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가늘게 뜬 눈동자에 천천히 초점이 잡힌다.

곧 내 얼굴을 확인한 그가 퍼뜩 눈을 떴다.

“허, 허억!”

“정신은 드나? 이게 몇 개로 보이지?”

나는 손가락을 세 개 펴서 그의 눈앞에 내밀었다. 그 행동에 델리우스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잘 보입니다. 문제없어요. 세 개잖습니까.”

“상태는 멀쩡한 것 같군.”

나는 적당한 의자를 하나 가져다가 침대 옆에 놓고는 그 위에 앉았다.

그리고는 델리우스와 눈을 마주했다.

내 시선에 델리우스의 입이 파르르 떨렸다.

“그래, 내가 누구인지 기억하나?”

“주인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하는 분 아닙니까? 돈이 썩어 넘치시는.”

델리우스가 눈을 찌푸렸다. 하나, 반항하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불만이 가득한 눈일 뿐이다.

“주인이라면 주인이지. 너를 샀으니까.”

‘샀다’는 말에 델리우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나 곧 그는 채념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잘게 몸을 떨던 그가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반짝 빛나는 그 눈동자에는 광기가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는.

[어, 어어?]

갑자기 델리우스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의자를 박차며 몸을 뒤로 뺐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뭘 할려나?’

공격? 도주? 아니면 감사 인사?

뭐든 가능성이 있었다.

노예가 된 것에 대해 분노해 내게 이빨을 드러낼 수도 있었고, 이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도망칠 수도 있었다. 아니면 두들겨 맞아 죽을 뻔 했던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내게 감사를 표할 수도 있었고 말이다.

하나.

내 예상과는 달리, 델리우스가 취한 행동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델리우스는 황급히 내 앞에 엎드려 고개를 푹 숙였다. 마치 복종을 다짐하는 듯한 모습.

하나, 나는 그 모습에 속지 않았다.

‘이 녀석이 그런 놈일 리가 없어.’

아무리 제 목숨을 구해줬다지만, 그 ‘델리우스 게인’이 곧바로 바짝 엎드려 충성을 맹세한다고?

차라리 아덴 리텐슈노프가 사실 나를 선한 의도로 죽였다는 걸 믿고 말지.

아, 이건 너무 나갔나?

“뭐냐? 무슨 짓이야?”

엎드린 채, 손을 뻗어 내 발목을 붙잡는 델리우스의 행동에 나는 일순 당황했다. 설마 진짜로 내게 충성하려는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그리고 마침내.

한참 동안 엎드려 있던 델리우스가 입을 열었다.

“네 목숨을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이유가 있었…….”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저는 당신의 노예가 될 수 없습니다. 저는 고작 노예 따위로 살기에는 너무나도 대단한 인재이기 때문입니다!”

“……뭐?”

“제게 획기적인 사업 아이템이 있습니다. 제가 계산을 돌려본 결과, 수익률이 무려 투자금의 300%를 넘습니다. 오직 저만이, 저 델리우스 게인만이 다룰 수 있는 할 수 있는 사업입니다!”

“…….”

“그러니 제 신분을 복구시켜주시고, 제게 금화 만 오천 개만 투자해 주십시오. 제가 꼭 투자금의 세 배의 수익으로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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