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아시스의 기사들을 이끌고 성공적으로 중급 임무를 끝마친 후, 나는 다시 리텐슈노프 본가로 복귀했다.
내 방에 짐을 풀고 하루 정도 휴식을 취한 뒤, 나는 마그너스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철혈궁을 찾았다.
의외로 마그너스는 철혈궁의 집무실이 아닌 후원에 있는 연못 앞 정자 앞으로 나를 불렀다.
“왔느냐.”
정자 안에서 정좌한 채, 연못을 내려다보며 고깃덩이를 찢어 던지던 마그너스가 힐끔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재빨리 꾸벅 고개를 숙였다.
“드레커 리텐슈노프, 임무를 마치고 귀환했습니다.”
“그래. 잘 성공했더구나.”
마그너스는 다시 고개를 돌려 연못을 내려다보았다.
마그너스가 고기를 던지며 중얼거렸다.
“어찌, 첫 임무를 수행한 소감이 어떻더냐?”
“보람찼습니다. 가문의 보탬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낄 수 있었고,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뭐, 실제로 시야가 넓어지기는 했다.
‘그런 멍청이가 있을 줄은 나도 상상을 못했으니까.’
나는 내게 영지를 선물해 준 돼지를 떠올리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힐끔 마그너스 너머를 살펴보았다. 대체 무엇에게 고기를 주나 궁금한 탓이었다.
‘대체 뭐를……?!’
잉어인가 싶었는데, 연못 안에는 작은 새끼 악어 수어 마리가 헤엄치며 고기 조각을 뜯어먹고 있었다.
‘악어……?’
거, 참…… 취미 하나 독특하네.
이번 기회로 리텐슈노프의 가주가 아닌, 마그너스 개인의 취향이 어떤지 알게 된 것 같았다.
[저주받은 악마의 치약을 먹는 네가 할 말은 아니다.]
마그너스는 한동안 악어에게 먹이를 주는 데 집중했다. 한참 후, 마지막 남은 고깃덩이를 휙 던진 마그너스가 천천히 뒤돌아 앉아 나를 마주했다.
그 시선에 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마그너스의 시선이 내 정수리를 훑는 게 느껴진다.
평소와는 달리 날카로운 시선.
어째서일까?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곧, 마그너스가 운을 떼었다.
“보고는 들었다.”
“보고…… 말씀이십니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딱히 복귀 후 보고를 올린 적이 없다. 횟수로 따지자면 이번이 최초다.
그런데 내가 올린 적도 없는 보고를 들었다고?
“네가 어째서 이번 임무를 골랐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였기에 멜 랭커스터를 뒤따르게 했다. 아무리 봐도, 그 임무를 특별히 고른 이유가 있어 보였거든.”
아, 감시를 붙였다는 뜻인가.
마그너스의 설명에 나는 최대한 편안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속은 서서히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마그너스가 한 말이 딱히 나에게 긍정적인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제부터 나는 내가 왜 중급 임무를 골랐는지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절로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마그너스를 올려다보았다.
노인의 붉은 눈이 서늘하게 빛난다.
마치 내 모든 걸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한 시선.
-꿀꺽!
절로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런 감각을 느끼는 이유는 간단했다.
‘회귀를 설명하지 않는 이상, 이 모든 것은 말이 안 되니까.’
델리우스 게인은 현 시점에 이름이 알려진 자가 아니다. 무명. 아니,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 불과하다.
당연하지만 내가 사전에 그를 알고 찾으러 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물론 마그너스의 총애를 얻기 위해 어려운 임무를 골랐다고 변명할 수는 있었다.
하나, 마그너스의 시선은, 내가 그런 이유 따위로 그 임무를 고르지 않았다고 확신하는 눈초리였다.
‘어떻게 하지?’
절로 손바닥에 땀이 고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끝이 떨리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주먹을 꽉 틀어쥐었다.
그리고 마침내.
천천히, 마그너스의 입이 열렸다.
“그 아이가, 네 정인情人이더냐?”
“……네?”
순간적으로 그가 내뱉은 단어의 의미가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다. 절로 얼빠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내가 깜짝 놀라 우물쭈물하는 모습에, 마그너스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폈다.
“긴장하지 말거라. 그게 무슨 부끄러운 일이라고.”
그 말에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정인……?’
이게 무슨 소리야?
“그…… 예? 잠, 잠시.”
당황한 탓에 말이 헛나온다.
더듬더듬거리며 나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 가주님. 무슨 말씀이신지…….”
“이름이…… 아멜리아 아이스본이라고 하였던가? 참한 아이더구나. 아이스본 출신이라는 것은 조금 그렇지만……. 그거야 뭐, 요즘 시대가 시대잖느냐. 우리가 칼박이 녀석들도 아니고, 신분이 조금 낮다는 게 그리 큰 허물은 아니라고 할애비는 생각한단다.”
하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는 이상한 소리만이 돌아왔다. 나는 혼란에 빠진 채 같은 말만 반복했다.
“아니, 그, 네?”
“네 녀석이 아무리 머리를 써도, 이 할애비의 눈을 피할 수는 없단다. 그래, 임무를 핑계로 정인과 밀회에 성공하니, 어디 행복하더냐?”
“미, 밀회요?”
이게 뭔 소리야.
‘대체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거지?’
순간적으로 혼란에 빠졌지만, 나는 곧 진정했다.
아무래도 마그너스는 내가 아멜리아를 만나기 위해서 일부러 그 임무를 골랐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거, 참…….’
나는 난처한 얼굴로 마그너스를 바라보았다. 마그너스는 즐거운 기색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약간 쾌활한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하긴, 정략결혼은 진정한 사랑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아이스본 쯤 되면 비슷하긴 하겠지만……. 뭐, 어쨌든 잘 해보거라. 이 할애비는 너를 응원한단다.”
“아, 아니…….”
뭔가 이상한 오해가 점점 가중되는 것 같아,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 녀석은 제 애인이 아닙니다.”
그 말에 마그너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그 아이는 무어냐? 설마, 한 때의 유희에 불과할 뿐이다, 뭐 이런 것이더냐? 예끼, 이놈. 아무리 그래도 그러면 쓰나.”
아니, 아니라니까요.
“아니, 애초에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가주님.”
부정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말에 마그너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면 왜 그 임무를 택하였느냐?”
“그, 그건…….”
젠장, 이렇게 되면 대답할 말이 없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마그너스가 껄껄 웃으며 내게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착잡한 얼굴로 신발을 벗고 정자 위로 올라섰다.
“굳이 숨길 필요 없다.”
아니, 숨기긴 뭘 숨겨요.
마그너스는 어째서인지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손을 들어 내 머리칼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곧, 노인의 걸걸한 음성이 느릿하게 들려온다.
“네 아비의 일을 아느냐?”
“……아버지 말입니까?”
발레르 리텐슈노프?
마그너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비가 어째서 가문의 우산 아래를 벗어났는지, 알고 있느냐.”
나는 조심스레 대답했다.
“제 어머니…… 때문 아닙니까?”
마그너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마그너스는 품속에서 궐련을 꺼내 입에 물었다. 매캐한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퍼지며, 코끝을 간질인다.
“네 어미는 우리 가문에 걸맞지 않는 피였다. 아무리 내가 혈통을 그리 따지지 않는다지만, 부모 이름도 모르는 천생 고아를 데려다가 제 아내로 삼겠다는 걸 좋게 봐줄 수 있는 건 아니었지.”
“그렇…… 습니까.”
“하지만 내가 어쩌겠느냐? 네 아비가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네 어미는 이미 너를 베고 있었단다. 이미 네가 세상에 잉태된 뒤였다는 뜻이다.”
“…….”
그렇다면 이 몸이 멀쩡히 살아있는 게 말이 된다.
아무리 천한 핏줄이 섞였다고는 한들 리텐슈노프의 피를 받은 아이다. 그것도 직계의 피를.
그 피의 무게는 그리 가볍지 않았다.
‘그래서 발레르가 가출을 한 건가?’
아니, 생각해보니까 말이 안 되는데?
결국 이 몸은 리텐슈노프의 성을 받았다.
이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발레르가 가출을 했단 말인가?
“문제는…… 네 아비에게는 이미 부인이 있었다는 것이지.”
“아.”
그제야 나는 모든 일의 전말을 깨우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황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군.’
발레르 리텐슈노프의 정실은 황실의 혈통.
아무리 허수아비에 불과한 황실이라곤 해도, 그런 모욕을 받으면 견디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긴, 나 같아도 제 남편이 길바닥에서 아무렇게나 주워온 거나 다름없는 외간 여자를, 그것도 임신한 채로 데려온다면…….’
그냥 정신이 나가버리겠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마그너스는 잠시 말을 끊으며 연기를 빨아들였다.
깊게 내쉬는 숨결에는 한숨이 무겁게 섞여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네 어미를 인정할 수 없었다. 너를 본래 며느리의 아들로 입적시키려고 했지. 하지만 네 아비는 그걸 거부했단다. 그리고…….”
마그너스가 착잡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네 진짜 어미가 독살을 당했지.”
“……!!”
“누가 네 어미를 죽였는지는 모른다. 죽은 며느리일수도 있고, 네 큰아버지들 중 하나일수도 있지. 일단 확실한 것은 내가 손을 쓴 건 아니라는 점이다.”
“믿겠습니다.”
굳이 마그너스가 손을 쓸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설사 이 말이 거짓말이더라도, 나는 진짜 드레커 리텐슈노프가 아니기에 상관없는 일이기도 하고.
“그 이후, 네 아비는 정신이 나가버리고 말았다. 그 녀석은 내가, 또는 며느리가 네 어미를 죽였다고 생각했지. 그리고는 가문을 나가버렸다.”
“…….”
“나는 두 번째 실수를 할 생각이 없단다. 그러니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 이 할애비는 네가 어떤 선택을 해도 찬성하겠다.”
“……그렇습니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잠시만.
“저기, 가주님. 그 녀석은 제 애인이 아니라니까요?”
“녀석, 부끄러운 거냐?”
어째서인지 아멜리아가 내 애인이라는 걸 확정짓는 듯한 마그너스의 말에 너무나도 억울했지만, 노인은 얄밉게 껄껄 웃을 뿐이었다.
“하나, 이를 어쩌냐? 슬프게도 다음 임무는 정해져 있단다.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네 애인은 그 이후에나 만날 수 있겠구나.”
“아니, 그게……. 하아.”
절로 한숨이 튀어나온다.
그러자 마그너스가 내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이놈! 어디, 할애비 앞에서 한숨을 쉬느냐? 그리고 믿을 만한 거짓말을 하거라. 네 속셈은 다 들켰단다.”
“아니, 진짜 아닌데.”
진짜로 억울한데, 이거.
* * * * *
마그너스와의 만남을 끝마치고, 나는 수련동으로 향했다. 내 파벌을 다독이기 위해서였다.
‘가끔씩 관심을 줘야지.’
아무리 내가 짜놓은 파벌이라지만, 주인의 손길이 지속적으로 닿지 않는다면 어떻게 변질될지 모른다.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줄 필요가 있었다.
나는 수련동으로 간 뒤, 곧장 레너드를 호출했다.
중급반의 선임 교관인 만큼 분명 일이 넘쳐나 바쁠텐데, 레너드는 호출하자마자 곧바로 나를 찾았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드레커 도련님?”
“내 파벌이 어떻게 돌아가나 보려고.”
“보, 보고 말입니까……?”
레너드가 내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그 행동에 설마 무슨 문제가 있나 싶었지만, 대충 살펴보니 아무래도 내 실적을 들은 모양이었다.
‘내 실력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레이첼과 대련해서 10분을 넘게 버텼다는 소문은 들었을 테니까.’
그 정도면 내 실력이 자신보다 위라는 걸 알고 있을 거다. 그 탓에 지금 속된 말로 ‘쫄아’있는 거고.
절로 실소가 터졌다.
“아니, 보고는 됐어.”
나는 고개를 저으며, 레너드에게 명령했다.
“내 파벌 소속 수련생들, 당장 전부 소집해.”
어디, 신입들 얼굴 좀 볼까?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