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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103화 (103/139)

103화

리텐슈노프의 산하 가문 중 하나인, 필립 가家의 장남인 다니엘 필립은 올해 하급반에서 중급반으로 승급한 신입 수련생이었다.

갑작스러운 교관의 호출에 다니엘은 깜짝 놀라 허겁지겁 연무장으로 달려왔다. 연무장에 도착한 다니엘은 가쁜 숨을 고르며 내부를 둘러보았다.

하나, 교관은 없었다.

그 대신 있는 사람들은 그보다 먼저 도착해 있던 동기 수련생과 1년 선배들 뿐.

다니엘은 1년 선배들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동기들에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의아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뭐야? 대체 무슨 일이야?”

사실,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교관이 따로 수련생을 호출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 교관들은 무언가 부족한 부분을 지적할 때 수련생을 호출했다. 하나, 사실 교관은 그럴 때 웬만하면 훈련 중 면전에서 지적하는 걸 선호했다.

그렇기에 이런 호출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글쎄…….”

다니엘의 물음에 동기 수련생들이 고개를 저었다.

“사실, 우리도 몰라.”

그 대답에 다니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아무도 이유를 모른다고?

“그냥 부르길래 허겁지겁 달려왔는데.”

“나도, 나도.”

곧바로 불안 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모인 사람들을 보면, 우리 동기들을 죄다 부른 것도 아닌 거 같은데? 사람 숫자가 적잖아.”

“그, 그러네?”

그제야 그들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다니엘은 곧 무언가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잠시만, 다들 우리 파벌 사람들 아냐?”

“어?”

사실이었다.

이곳에 모인 모든 수련생은 다들 선임 교관의 추천을 받아 드레커 리텐슈노프의 파벌이 된 자들.

“진짜네. 뭐야, 대체 무슨 일로 부른 거야?”

“글쎄……?”

깜짝 놀란 동기들이 웅성거릴 무렵.

그들의 바로 위 기수 선배들과 선임 교관이 처음 보는 남자와 함께 연무장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저 사람은……?’

다니엘은 처음 보는 얼굴의 남자를 발견하곤 힐끔힐끔 살폈다.

남자의 얼굴에서는 숨길 수 없는 귀티가 흘러나왔다.

검붉은 눈동자가 매섭게 빛나며 자신들을 훑는다.

다니엘은 직감적으로 저 남자가 드레커 리텐슈노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분명 나보다 고작 두 살 많으시다고 들었는데…….’

외형만 보면 거의 다 자란 거 같은데?

문득, 드레커와 눈이 마주친 다니엘이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하나, 그의 마음 속에 피어오른 호기심은 점점 더 커지기만 했다.

‘그런데 왜 저분이 이곳에?’

분명 드레커는 상급반으로 승급했다고 들었다.

중급반에 돌아올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뭐지? 설마 우리를 보러 오신 건가?’

자의식 과잉일지도 모르지만, 다니엘은 그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판단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오로지 그의 파벌만을 모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기, 기회다!’

파벌의 수장에게 잘 보일 기회!

다니엘이 문득 든 생각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킬 무렵, 드레커 리텐슈노프는 손에 쥔 서류철을 팔랑거리며 그 내용을 살피고 있었다.

새로이 자신의 파벌에 속해진 수련생들의 인적사항이 적힌 서류철. 그것을 살피며 드레커는 짧게 평했다.

‘이 정도면 다들 적당한 수준인가.’

딱 그 정도였다.

특출난 누군가는 없지만, 그렇다고 못난 놈도 없는.

그야말로 적당한 수준의 실력자들.

하나, 드레커는 실망하지 않았다.

‘뭐, 이 무렵 중급반 수련생은 다들 그랬으니.’

당분간은 대략 이 정도의 인적 자원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톤 녀석들이 특이한 경우지.’

보통은 이게 정상이다.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이 녀석들이 쭉정이는 아니다.’

다들 중급반으로 쉬이 승급할 정도의 실력자였고, 그중에서도 재능이 충만한 아이들만 레너드가 골라내 모았다.

‘아무리 모자라도 최소한 가문의 중견 기사단에는 소속될 자질이 있는 애들이지.’

즉, 검증된 자질을 가진 수련생이라는 뜻이다.

‘잘 뽑았네.’

레너드가 게으름 피우지 않고 일처리를 열심히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드레커는 서류철을 곁에 있는 안톤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눈앞에 옹기종기 모여 서 있는 수련생들을 살폈다. 아직 열두 살도 되지 않았기에 젖살도 빠지지 않은 병아리들이 동그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드레커가 씩 웃었다.

“좋아. 합격.”

그 말에, 드레커의 곁에서 긴장된 얼굴로 굳어 있던 레너드가 휘청거렸다.

‘고작 이 일이 그렇게까지 긴장할 일인가?’

하긴, 어찌 보면 제 목줄이 달린 일이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드레커 자신도 전생에 이것과 비슷한 경험을 겪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뭐, 나는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한 탓에 이 정도로 크게 긴장할 일은 없었지만.’

레너드가 들었다면 속이 쓰려 배탈이 날 법한 생각을 곱게 접어 머리 한구석으로 치워버린 드레커는, 이내 가볍게 손뼉을 쳤다.

-짝!

그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드레커에게 집중되었다.

드레커는 그 시선을 마주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만나서 반갑다. 드레커 리텐슈노프다.”

“…….”

“거두절미하고, 오늘 너희를 부른 이유는 간단하다. 과연 너희가 나의 파벌에 속할 자격이 있는 녀석들인지 시험을 하기 위해서다.”

“시, 시험?”

“그런 걸 한다고?”

드레커의 선언에 수련생들이 웅성거렸다.

“조용!”

레너드의 고함으로 모두가 입을 다물자, 드레커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나는 능력 있는 자를 우대한다. 반대로 실력이 뒤떨어진다면, 그런 녀석을 굳이 내 휘하에 둘 이유가 없다는 것 정도는 다들 알고 있겠지? 내 휘하에 시험에서 탈락한 녀석 따위가 설 자리는 없다.”

그 말에 수련생들의 눈에 불안이 깃들었다.

그 순간, 수련생 틈바구니에서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었다. 다니엘 필립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 질문을 해도 괜찮겠습니까……!”

드레커는 대답 대신 턱을 가볍게 끄덕였다.

허가를 받은 다니엘이 흥분한 얼굴로 물었다.

“마, 만일 시험에서 좋은 성과를 낸 수련생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혹시 있습니까!”

그 말에 드레커의 눈이 빠르게 다니엘의 얼굴을 훑었다.

‘다니엘 필립. 가신단의 자제 중 하나였나. 딱히 무武에 치중된 가문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리텐슈노프 가문의 원칙은 충실히 이해하고 있군.

드레커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당연한 이야기를.”

“……!!”

다니엘의 눈이 커졌다. 그와 동시에, 드레커가 곁에 서 있던 레너드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주었다.

그러자 레너드가 연무장 밖으로 황급히 뛰어가더니, 이내 나무 궤짝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궤짝을 바닥에 내려놓자, 크기에 비해 꽤 무게가 나가는지 묵직한 소리가 연무장 안에 울려퍼졌다.

-쿵!

드레커는 궤짝을 열고, 그 안에서 작은 병을 하나 꺼냈다. 푸른 빛의 점성이 있는 액체가 담긴 병.

그것을 확인한 수련생들의 눈이 커졌다.

“다들 이게 뭔지는 알고 있겠지? 마나 포션이다.”

“……마나 포션!”

“저, 저게!”

드레커는 포션 병을 찰랑이며 웃었다.

“굳이 말 안 해도 알 거라고 믿는다. 가장 뛰어난 실력을 낸 녀석에게는, 이 궤짝을 통째로 주겠다.”

“……!!”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모든 수련생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수련생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치솟고, 서로서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런 수련생들을 바라보며, 드레커가 피식 웃었다.

“하지만, 아직 즐거워하기는 이르지.”

“……?”

“네?”

수련생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퍼질 무렵.

“시험의 내용은.”

-스르릉!

드레커는 허리춤에 찬 미스틸테인을 뽑아 가볍게 쥐며, 악랄한 미소를 지은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나와 대련을 해서 10분을 버티는 것이니까.”

그 말에 수련생들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드레커를 쳐다보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다. 너는 네 스승과 누나를 욕할 자격이 없도다.]

데우스의 한탄이 슬프게 허공에 울려퍼졌다.

* * * * *

오르피스의 고급 여관 지하.

비밀 통로.

통로 안에는 축축하고 어두컴컴한 동굴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 깊이와 길이는 마치 끝없는 무저갱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젠장할.”

치솟는 짜증에 그라힐 리텐슈노프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이마가 젖은 탓에 그라힐의 불쾌지수는 극한까지 치달아 있었다.

붉게 익은 얼굴이 마치 잘 익은 토마토 같다.

툭 치면 터질 것처럼 폭발 직전까지 도달한 그라힐을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달랬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곧 도착합니다.”

그 말에 그라힐은 사뿐사뿐 자신을 앞서가는 여인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발광석이 은은하게 흩뿌린 빛에, 여인이 귓가에 단 장식이 반짝거렸다.

“그 말을 수십 번도 더 들은 것 같은데.”

“그럴 리가요. 고작 열한 번 말했을 뿐인데.”

-빠득!

그라힐이 이를 악물었다.

리텐슈노프의 직계 혈통을 전혀 거리낌 없이 놀려먹는 요정족의 태도는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역겨운 선민주의자들.’

자신들과 동족(애초에 종족이 아니지만)이 아니라면 절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그들의 배타적인 사고방식.

‘애초에 난 네놈들의 왕이 택한 사내가 아닌가.’

요정왕의 선택을 받은 사내가 그라힐이다.

그런데도 저들은 그라힐이 요정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절대로 그를 요정왕의 정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왕의 선택보다 제 족속들의 정의가 중요하다, 이건가.’

그 기괴한 사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라힐의 매서운 시선을 느낀 것인지, 요정족 여인이 고개를 돌렸다. 성숙한 미녀가 고혹적인 웃음을 짓는다. 하나, 그 눈동자에는 멸시가 숨어 있었다.

“참을성이 없는 남자는 여인에게 인기가 없습니다.”

그라힐의 이빨이 빠드득 갈렸다.

“네 족속들의 왕은 그럼 뭐, 바보 천치인가?”

그 말에 요정족 여인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당장이고 칼을 뽑아 찔러버리고 싶다는 눈.

하나, 여인은 마지막 선을 넘지 않고 참아냈다.

“……전하를 그런 식으로 거론하지 마시지요.”

“그게 싫다면 그딴 개소리를 입 밖에 내뱉지 마라.”

“…….”

여인은 휙 고개를 돌려 앞을 쳐다보았다.

그 이후 침묵이 찾아왔다.

그라힐 또한 입을 다문 채, 여인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한참을 나아갔을까.

마침내 통로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황금빛 문이 눈앞에 보인다.

금은으로 장식되고 화려한 각인이 새겨진 문은 이미 살짝 열려 있었다. 그라힐은 요정족 여인의 뒤를 따라 그 문 너머로 발을 들였다.

그러자 곧바로 코를 찌르는 묘한 향이 느껴진다.

맡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나른하게 만드는 향취.

‘또 약에 쩔어 있는 건가.’

절로 기분이 불쾌해진다.

하나, 그는 헛기침을 하며 천천히 얼굴을 폈다. 입가 가득 미소를 머금은 그라힐이 천천히 실내로 걸어갔다.

야릇하게 펼쳐진 비단 천들을 지나치고, 진주를 꿰어 만든 주렴을 걷어내며 내실 안쪽으로 들어간다.

그러던 그라힐이, 어느 한 지점에서 멈추어섰다.

그곳은 대나무로 엮은 돗자리가 깔린 방이었다.

무언가 이국적인 향취가 가득 풍기는 실내에는 여러 가지 화려한 장식품이 그득그득 쌓여 있었다.

사방에는 초록빛 향이 피어오르는 향로가 놓여 있었고, 이전부터 느껴져 온 나른한 향기는 이곳에서 정점을 찍었다.

그런 방 한 가운데에 놓인 동그란 소파.

그 위에 한 여인이 늘어져 있었다.

“전하.”

그라힐은 여인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마치 가느다란 허수아비 같은 여인이었다.

팔다리는 마르다 못해 뼈가 드러날 정도.

눈가는 거뭇거뭇했으며 얼굴은 광대가 툭 튀어나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창백한 피부는 혈관이 도드라졌고, 곳곳에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반쯤 환자나 다름없는 모습이다.

하나, 그런 여인에게선 어마어마한 기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으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여인이 느릿하게 반응했다. 천천히 고개를 든 여인히 그라힐을 발견했다.

곧 그녀의 눈에 생기가 깃들었다.

흐릿한 눈빛이 서서히 번들거리며 빛나는 광경.

마치 섬뜩한 악령이 거죽밖에 남지 않은 시체 속으로 기어들어와 몸뚱이를 차지하는 것 같았다.

곧, 약기운에서 빠져나온 여인이 어마어마하게 긴 곰방대를 입에서 때었다. 퇴폐적인 미소를 머금은 여인이 갈라진 음성으로 중얼거린다.

“여의 피앙세, 오늘은 또 무슨 일인가요?”

그러한 반응에 움찔 몸을 떤 그라힐은 이내 가볍게 눈을 감았다 뜨고는, 곧 굳게 결심한 얼굴로 말했다.

“일전에 약속했던 것을 받으러 왔다. 내 사촌 동생의 목을 직접 잘라 주겠다는 약속 말이다.”

“아하. 그 바람, 말이군요.”

그라힐의 요구에 그녀가 킥킥 웃었다. 정말로 즐겁다는 듯한 여인의 웃음에, 그라힐 또한 어색한 표정으로 따라 웃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여의 피앙세가 바라는 것이라면…….”

여인, 라헬 엘븐하임이 느긋하게 중얼거렸다.

“여가 몸소 이루어 드려야지요.”

요정족의 여왕이자, 무려 7성 등급의 소환사가 직접 그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 순간이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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