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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104화 (104/139)

104화

-쿠당탕!

마지막 수련생이 쓰러짐과 동시에 나는 미스틸테인을 거두었다.

동시에 약간 피로가 쌓인 게 느껴졌다.

나름 진검을 쓰는 대련(?)이었던 만큼, 수련생들이 다치지 않도록 손속에 사정을 둔 탓이었다.

뭐, 그렇다고 안 다친 건 아니지만.

“으으…….”

나는 바닥에 자빠진 채, 끙끙 신음하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크게 베인 상처는 없으나, 검집으로 두들겨 맞은 탓에 소년의 전신은 멍으로 가득했다.

“다니엘 필립.”

“끄응. 네, 네!”

내가 부르자 소년, 다니엘 필립이 허겁지겁 몸을 일으켰다. 어지간히도 아픈 모양인지, 찡그린 얼굴이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아픈가?’

내가 멜에게 두들겨 맞은 것보다는 덜 때렸는데.

[이 악랄한 놈. 저 애들을 그 만큼 때리면 죽는다.]

그 말에 절로 미간이 좁아졌다.

나는 뚱한 표정을 지은 채, 데우스에게 물었다.

‘……그러면 저는 죽을 정도로 얻어맞았다는 소리입니까?’

[아마도? 네 몸이 원채 튼튼하지 않았다면 죽었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애초에 그 정도로 튼튼하지 않았다면 그 멜이라는 염소 녀석이 너를 그렇게 때리지도 않았을 터. 그다지 억울할 건 없겠다만.]

‘이런, 젠장.’

그 말에 절로 기분이 나빠졌다.

‘죽을 수도 있을 정도로 나를 팼다고?’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 모습에 혹시라도 내 기분이 나빠졌다고 생각한 건지, 다니엘이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나는 곧 얼굴을 피고는 입맛을 다셨다.

‘뭐, 어쨌든 멜 덕분에 이만큼 강해지기는 했으니까요. 좀 기분은 더럽지만,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거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만.’

[무어, 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묘하게 나를 한심하게 보는 것 같은 목소리.

‘하여튼, 데우스님은 좋게 말하는 법을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변태 드래곤이라서 그런가.’

[어허, 이제 그 수법은 안 통하느니라. 내, 이제 그런 도발에는 당해주지 않기로 이제 마음을 먹었도다.]

‘탈모.’

[……방금 뭐라고 했느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쥐똥만 한 애새끼가 진짜……!]

괴성을 지르는 데우스를 무시한 채, 나는 다니엘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했어. 내 생각에는 네가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내 공격을 버틴 것 같은데……. 일단 시간은 확인해봐야겠지만 우승은 아무래도 네가 될 것 같은데?”

“가, 감사합니다!”

내 말에 다니엘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걸 보니, 내게 칭찬을 받은 게 정말로 기쁜 모양이었다. 이렇게 또 한 명의 수련생에게 더욱 수련에 정진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었다고 생각하니 꽤 보람찬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애들을 두들겨 패놓고 보람차다고?]

쓸데없는 드래곤 소리를 무시한 채, 나는 고개를 돌려 레너드를 바라보았다. 내 시선이 닿자 회중시계를 들고 시간을 측정하던 레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 녀석이 1등입니다.”

“그렇지? 대충 그럴 것 같더라고. 얼마나 버텼어?”

“십오 분입니다, 드레커 도련님.”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하긴, 아무리 연속으로 대련을 하느냐고 시간 감각이 이상해졌다지만, 거의 15분 넘게 버텼다면…….’

내가 눈치채지 못할 수가 없다. 15분이라면 약속한 시간보다 절반 이상이나 더 오래 버틴 거니까.

‘그래도 탈락자는 없어서 다행이네.’

만일 10분을 버티지 못한 녀석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레너드를 갈궈야 할 터였다. 말이 10분이지, 솔직히 중급반 수련생 정도라면 누구나 버틸 수 있도록 손속에 사정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것도 못 버틴다면…….’

그건 진짜로 문제가 있는 거다.

하여튼.

대충 우승한 다니엘을 축하해준 뒤, 나는 레너드에게 파벌 소속 신입들의 관리감독을 맡겼다.

내가 연무장을 뒤로하고 떠나자, 그 뒤를 안톤, 가롯 루시엘과 제이스가 뒤따랐다. 나는 따라오는 녀석들을 힐끗 살피며 물었다.

“다른 녀석들은?”

“레너드 교관과 함께 수련생들의 관리감독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그래?”

거, 녀석들.

‘눈치는 좀 있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들을 이끌고 다른 연무장으로 향했다. 이번 연무장에는 먼저 도착한 세르폰이 내가 명령한 것들을 준비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세르폰 경, 준비는 끝났습니까?”

“네, 드레커 도련님. 명령하신 물건들을 전부 구비했습니다. 한데, 이것들은 어째서…….”

“혈맥법을 이 녀석들에게 가르칠 생각입니다.”

“혈맥법을 말입니까.”

내 대답에 세르폰이 역시나 하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준비하라고 한 물건들이 구축법을 시도할 때 필요한 물건들이니, 대충 예상은 했을 거다.

‘이제 슬슬 혈맥법을 내 사람들에게 풀 때니까.’

결국 기술이라는 건 많은 사람들에게 사용될 때 가장 빛을 발하는 법이다. 아무리 혈맥법이 완벽하고 안전한 방식이라고는 해도, 오로지 나 혼자만 사용한다면 그건 진정한 ‘기술’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미 마그너스에게 허락도 받았다.

‘혈맥법을 나를 위해 사용해도 좋다고 말이지.’

그 말뜻에는, 분명 내 사람들만을 위해서 혈맥법을 써도 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가주가 된 이후에 기술을 보급하면 되니까.’

어차피 전생에도 이미 후계 구도가 완전히 자리 잡힌 뒤에야 발견된 기술이다. 내가 조금 일찍 내 사람들을 위해서만 쓴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드레커 도련님, 혈맥법이 무엇입니까?”

나와 세르폰의 대화를 유심히 듣던 안톤이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네 사람을 바라보았다.

“마나 하트 구축법을 심장이 여물기 전에, 그러니까 더 어린 나이에 쓸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야.”

“……!!”

그 말에 네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누가 뭐래도 중급반까지 올라온 수련생들인 만큼, 네 사람 모두 내가 한 말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지 곧바로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 그런 기술이 있습니까?”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새로 발명된 기술입니까, 혹시?”

그들의 눈이 마치 별빛처럼 반짝거렸다.

당장이고 내게 혈맥법을 갈구하고 싶은 듯한 눈빛.

나는 약간 양심이 간질거리는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내가 만든 기술이지.”

“네?”

“도, 도련님이 만드신 기술이라고요?”

“세, 세상에…….”

내 말에 네 사람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선망을 가득 담아 나를 바라보았다. 묘하게 기분이 으쓱거렸다.

“일단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지금은 혈맥법을 시도해보는 것부터 시작하자.”

다음 임무가 언제 내게 주어질지 모른다.

‘시간이 넘치는 게 아니지.’

언제까지 내가 중급반에서 혈맥법을 가르쳐 줄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이 네 사람이 혈맥법을 어느 정도로 빠르게 습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제대로 마나 하트를 구축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만큼,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건 어떻게든 피해야 할 일이다.

나는 네 사람을 일렬로 앉힌 뒤, 가부좌를 틀게 했다. 그리고는 개괄적으로 혈맥법의 이론을 설명했다.

“혈맥법은 기본적으로 발상의 전환이야. 애초에 심장에 먼저 마나 하트를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어. 혈관부터 마나 하트로 강화한 뒤, 심장이 완전히 성장하면 그때 심장을 강화한다. 이게 기본적인 이론이야.”

“아……!”

“그런 방법이……!”

안톤, 가롯, 루시엘은 내 설명에 곧바로 화색을 띄었다. 역시 미래의 소드마스터가 될 인재들인 만큼, 이해도가 뛰어난 모양이었다.

그에 비해 제이스는 여전히 아리송한 얼굴.

하나, 제이스는 내 설명을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이해가 안 되는 탓에 고민할 뿐이다.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구만.’

솔직히 말해, 처음 듣는다면 기겁할 만한 이야기다.

마나 하트 구축법은 현 시점에 정석이자, 진리에 가까운 이론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내가 하는 설명은 어찌 보면 야매에 가깝게 들릴 터.

‘혹시라도 내가 착각한 거라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 상황이지.’

그런데도 제이스는 내 말에 한 점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진정으로 나를 믿고 따르고 있다는 뜻이다.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계속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구축법은 여기, 세르폰이 준비해 두었어. 일단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구축법을 고르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혈맥법으로 마나 하트를 만드는 건 그 다음.”

“알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세르폰이 네 사람에게 여러 권의 책을 건네주었다. 제각각이 다 구축법이 적힌 책이었다.

‘이 녀석들이 어떤 구축법을 이용해서 마나 하트를 만들었는지는 나도 모르니까.’

굳이 내가 간섭해 효율이 떨어질지도 모르는 구축법을 건네주느니, 차라리 그들이 선택하게 만드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애초에 전생에도 아마 그렇게 했을테고.

열심히 책을 확인하던 네 사람은 곧, 제각각 구축법을 하나씩 골랐다. 나는 그 내용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문제될만한 건 없네.’

혹시라도 아예 말도 안 되는 구축법을 골랐다면 그것만은 말리려고 했는데, 다행히도 다들 괜찮은 것들만을 선택했다.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이제부터 혈관에 마나를 흘려보자. 혈관 벽부터 강화한다는 느낌으로, 천천히 감싸면 돼.”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응?”

이해할 수 없는 소리에 나는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은 네 사람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들 또한 의아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그걸 왜 못해?”

“……네?”

서로 엇갈리는 대화.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아니, 그걸 왜 못해?

[네가 이상한 거라는 생각은 안 하더냐?]

데우스의 타박이 들려왔지만, 그래도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걸 왜 못해?’

이 쉬운 걸 왜?

진짜로 이해가 안 되는 걸.

* * * * *

드레커와 나머지 네 사람이 서로의 재능 차이로 혼란에 빠져 있을 무렵.

요정왕의 궁에서 귀환한 그라힐은 착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제 숙소의 침대 위에 걸터앉은 채, 가만히 생각을 하던 그라힐이 이내 중얼거렸다.

“그 노친네 등등이 변수군.”

마그너스와 아자르, 그리고 징벌기사단까지. 그들이 움직인다면 이번 계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라힐은 잘 알고 있었다.

‘노친네는 드레커, 그 애새끼를 끔찍이 여기니까.’

이미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해왔는지.

전부 알고 있을 터.

‘분명 감시의 눈길이 붙어 있겠지.’

아마 자신이 요정왕을 만난 것 또한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요정왕이 직접 움직이는 순간 곧바로 경계를 하거나, 그녀를 배제하려 할 터.

-빠득!

“그렇게 돼서는 안 되지.”

안될 일이다.

요정왕은 그라힐의 마지막 남은 보루.

아무리 그녀가 귀찮고 짜증나더라도, 요정왕을 잃는 순간 그라힐은 솔직하게 말해서 아무 것도 아니다.

‘그년을 잃는 건 안 돼.’

그러니, 그녀의 영역 안에서 계획을 진행해야만 한다. 임무든 뭐든, 어떻게든 수를 써서 드레커를 요정왕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당장 내가 움직인다면, 의심받는다.’

자신이 행동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봐, 밖에 아무도 없나?”그라힐의 외침에, 방 밖에서 대기하던 기사 한 명이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가장 충성심이 강하고, 자신을 배신할 리 없는 기사의 얼굴을 노려보며, 그라힐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지금 당장, 아덴에게 가서 말을 전해라.”

“뭐라고 전할까요?”

“다른 건 다 필요 없다. 드레커, 그 놈을 대수림으로 유인하게 해 달라고. 아마, 그 인간도 녀석을 싫어한다고 하니, 충분히 도움을 줄 거다.”

“알겠습니다.”

기사가 경례를 마치고 빠져나가고, 혼자 남은 그라힐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성공한다면 눈엣가시인 드레커와, 자신을 혐오하는 마그너스를 동시에 엿 먹일 수 있다.

하나, 실패한다면…….

“……아니, 아니지.”

그라힐은 거기서 생각을 멈추었다.

꽉 틀어쥔 그의 주먹이 바르르 떨렸다.

이번 일이 실패한 이후는, 상상도 하기 싫었기에.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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