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이런저런 고난이 있었지만, 결국 네 사람은 전원 혈맥법을 익히는 데 성공했다.
안톤, 가롯, 루시엘은 미래에 소드마스터가 될 인재들 답게 3일이 안 되어서 혈맥법을 완전히 익히고 마나 하트를 구축해냈다.
제이스는 그 세 사람보다는 조금 더 걸렸지만, 그래도 결국 5일차에 구축에 성공했다.
“자, 이제 마나 하트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으니 이전보다 오러를 뽑는 게 더 쉬울 거야.”
“감사합니다, 드레커 도련님!”
“감사합니다!”
“혈맥법은 너희들에게만 알려준 기술이니, 다른 수련생이나 교관에게 들키지 않도록 주의하고. 아마 오러를 뽑지만 않는다면 들키지 않을 것 같은데.”
“도련님의 파벌 수련생들에게도 말입니까?”
“응. 그쪽은 내가 나중에 때가 되면 알릴 거야. 그러니 일단 오러를 다루는 법은 레너드 교관에게 가르쳐 달라고 하면 될 거야. 다들 재능이 있으니까 금방 익힐 수 있겠지. 나도 일찍 배웠는걸.”
“어…….”
“……아, 그렇군요.”
어째서인지 내 말에 떨떠름한 태도를 보였지만, 그래도 네 사람은 혈맥법에 관한 정보를 숨기라는 내 명령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좀 쉴 수 있겠군.’
생각보다 혈맥법을 가르치는 데 시간을 많이 소모하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만일 가르치는 중간에 임무가 내려왔다면 곧바로 움직여야 했을 테니까.
‘그래도 아직까지도 임무가 떨어지지 않는 걸 보면 조금 쉴 시간은 있겠는걸.’
물론 임무를 꺼리는 건 아니다.
임무를 수행하는 건 내 가치를 올리는 방법이다. 동시에 마그너스의 호의를 살 방법이고, 합법적으로 외부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다.
하나.
‘최근에는 너무나 열심히 달렸지.’
기회가 될 때, 조금이라도 쉬어두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다.
급하게 계속 내달리기만 하면 한 번 삐끗하는 순간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중간 중간 휴식을 취해주어야 긴 거리를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내 목표는 아직도 멀리 있으니까.’
리텐슈노프의 가주가 되는 것.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아직 더 먼 길을 내달려야만 했다.
물론 그 사실이 괴롭거나 지치지는 않았다.
‘이미, 많이 가까워졌다.’
이전까지 막연한 목표에 불과했던 가주의 직위가, 이제 점점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 * * * *
수련동에서 유아동으로 돌아오자마자 불청객 한 사람이 나를 맞이했다.
“드레커 리텐슈노프 도련님이십니까.”
새하얀 수염을 정갈하게 다듬어 둔 노년의 사내가 나를 내려다본다. 그 얼굴을 본 순간, 무의식적으로 치밀어 오른 불쾌감에 얼굴을 일그러트릴 뻔 했다.
하나, 그럴 수는 없다.
‘집사……. 이 자가 왜?’
통칭, 집사.
그것이 가문 사람들이 노인을 부르는 별명이었다.
노인은 아덴 리텐슈노프의 가신이었다.
원래는 아덴의 약혼자 가문의 가신 중 한 명이었는데, 이곳으로 넘어온 이후로는 아덴의 심복이 되었다.
그는 아덴의 밑에서 여러 가지 굳은 일을 도맡아 하는 자로 유명했다. 요인 암살이나 정보 수집, 뒷공작, 비밀 조사 등등의 일 말이다.
나 또한 전생에 소문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인간이 내 전대 사냥개였다지.’
내가 아덴의 밑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아덴의 사냥개로 활동했었고, 내가 들어갈 때쯤 은퇴한 사람.
하나.
‘그 은퇴 과정이 그다지 안온하지는 않았지.’
그 생각이 떠오르자 기분이 묘했다.
마치 미래의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아서였다.
하나, 지금 당장은 중요한 생각이 아니었다.
나는 기억을 머릿속 한 구석으로 고이 밀어 넣고는, 그를 불퉁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누구십니까?”
“아, 이런. 제가 저의 소개를 하지 않았군요. 송구합니다. 저는 에드워드 로스웰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아덴 리텐슈노프 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아덴?”
내 말에 집사의 일순 눈이 꿈틀거렸다.
나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고 기억해둔 뒤, 천천히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었다.
“아덴 형님이 어째서?”
“아덴 님께서 당신을 뵙고자 합니다. 지금 유아동의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으십니다. 어서 가시지요.”
“아, 그렇습니까?”
허, 웃기네.
절로 실소가 터졌다.
내 웃음에 에드워드가 다시금 눈을 꿈틀거렸다.
[이 녀석은 제 주인의 위세를 마치 제 것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이로구나. 아니면 네가 개똥만한 꼬맹이라고 무시하거나.]
데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 그대로였다.
‘내가 무슨 동네 똥깨인 줄 아나.’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게?
“아하, 아덴 형님께서 저를 부르셨군요.”
그런데.
내가 아덴, 그 새끼 말을 들어줄 이유가 있나?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린 채, 순진한 얼굴로 물었다.
“제가 아덴 형님이 오라면 그냥 가야 합니까?”
“……?”
순간적으로 에드워드의 얼굴이 굳었다.
곧 그가 미간을 좁혔다.
설마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은 얼굴.
그 행태에 나는 킥킥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당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뜻을 담아서.
“혹시 제가 가야 할 이유가 있나요? 이유도 말 안 해주고 오라고 하면 곤란한데요.”
그제야 내가 진짜로 그렇게 말했다는 걸 깨달은 에드워드의 눈이 이글거리며 불타올랐다.
내가 실실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자신을 놀린다는 걸 깨달은 에드워드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야 당연히 아덴 님께서……!”
지르려고 했다.
내가 선수를 치지 않았다면, 질렀을 것이다.
“아니, 나도 똑같은 리텐슈노프인데, 아무리 형이라지만 이런 식으로 오라가라 해도 됩니까? 아니라는 거, 잘 알고 있잖습니까?”
리텐슈노프라는 말에 에드워드가 움찔 몸을 떤다.
내가 언급한 그 성姓에는 그만한 무게가 있었다.
아무렇게나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할 무게가.
“……!!”
“그리고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사전에 약속을 잡는 건 예의 아닌가요? 내가 뭐, 중급반에서 커리큘럼 듣는 것도 아니고, 엄연히 상급반 수련생인데. 임무가 있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십니까?”
그렇게 대답하고 지그시 에드워드를 쳐다보았다.
어디 한 번 지껄여보라는 듯이. 그 시선에 담긴 뜻을 깨달은 에드워드의 눈가가 부르르 떨렸다.
하나, 그는 어떠한 대답도 내놓을 수 없었다.
내가 말한 게 전부 정론이기 때문이었다.
‘쓸데없는 힘겨루기 하지 말고 왜 왔는지 말 해.’
나는 입술을 핥으며 생각했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전부였다.
나를 오라가라 하고 싶으면, 이유부터 말하라는 것.
‘아덴 놈에게 이유도 모른 채 쥐고 흔들리는 건 전생만으로 충분하다. 이번 생에는 절대 그러지 않겠어.’
전생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나는 아덴의 개가 아니다.
더 이상은.
“……새로운 임무를 배정하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에드워드가 이유를 실토했다.
그제야 나는 표정을 풀곤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말해주셨으면 다 좋잖아요. 왜 쓸데없이 사실을 숨깁니까? 누가 보면 형님께서 일부러 나를 그렇게 대하라고 명령하신 줄 알겠네.”
“……!!”
그 말에 에드워드가 몸을 움찔 떨었다.
나는 그런 그를 뒤로하고는 성큼 앞으로 나섰다. 노인의 푸른 눈과 시선을 마주한 내가 씩 웃었다.
“뭐 해요? 어서 안내 안 하고.”
“……알겠습니다.”
결국 에드워드는 잔뜩 굳은 얼굴로 나를 안내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의 뒤통수를 지그시 노려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아, 그리고.”
“……?”
내 목소리에 그가 힐끔 고개를 돌린다.
나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한 자 한 자 곱씹어 중얼거렸다.
“다음부터 그딴 눈으로 날 쳐다보면, 그 눈알을 파 버릴 거야. 조심해.”
“……!!”
모멸감이 가득 들 법한 말.
하나 에드워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내가 눈빛에 담은 살기가 짙었기 때문이다.
나는 표정을 펴고는 피식 웃었다.
“자, 그럼. 안내하시죠.”
* * * * *
에드워드를 따라서 도착한 곳은 아덴의 저택이었다.
리텐슈노프의 혈통은 상급반을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야지만 저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이 규칙이다.
하나, 아덴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저택 한 곳을 점거한 채 사용하고 있었다. 아덴 또한 나름대로 성과를 내는 리텐슈노프였던 만큼, 마그너스도 그 부분에서는 묵인하고 있었고 말이다.
화려하게 꾸며진 저택의 전경.
하나, 어째서인지 을씨년스럽고 삭막한 기분이 느껴진다. 분명 아름다운 초목과 멋진 장식이 가득하고, 사용인들 또한 가득함에도, 이 저택에서는 사람 사는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았다.
‘아마도 전생의 기억 때문이겠지.’
그럴 것이다.
전생의 회색빛 추억이 지금의 현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입술을 씹으며 에드워드의 뒤를 따라 계속 나아갔다.
‘왜 아덴이 내 임무에 관여했을까?’
나아가면서 생각했다.
‘분명 임무는 상급반 교관들이 하달한다.’
그것이 규칙이었다. 상급반의 규칙.
하지만 리텐슈노프 가에서 그러한 규칙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허울뿐인 것에 불과했다.
가문의 강자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규칙 따위는 무시될 수 있었다.
만일 가문이 규칙을 중시했다면 마그너스의 명령으로 내가 12살에 상급반으로 승급하는 일 따위도 없었을 터.
즉, 강한 힘과 위세를 지니고 있다면 규칙을 어그러트리는 것 정도는 쉬운 일이라는 뜻이다.
‘상급반 교관들이 전달하지 않았다는 건, 아덴의 입김이 들어갔다는 뜻이지.’
그렇기에 이번 임무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는 걸 파악하는 일은 너무나도 쉬웠다.
‘아마 아덴이 무언가 수작을 부려두었겠지.’
그 정도 사실은 전생의 기억만으로도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하나,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그 이유였다.
‘아덴이 왜?’
나는 아직 아덴에게 그 정도까지 경계심을 산 적이 없었다.
‘나를 골탕 먹일 의도라면 또 모를까.’
이렇게 직접 임무까지 내려주는 걸 보면 제대로 엿먹일 생각이라는 뜻이다.
그 정도까지 할 만한 행동을 내가 보였다고?
‘아니, 아니다.’
내가 지금 어떠한 함정에 빠지고 있다는 사실은 자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대체 누가 판 함정이냐는 것.
‘일단 아덴은 아냐. 조력은 했을지언정, 주 실행자는 절대로 아니다.’
그렇다면 누굴까.
결론은 쉽게 나왔다.
‘……그라힐 리텐슈노프.’
허, 참.
‘아직은 상급반에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나중에 명분을 제공하면 치려고 했거늘…….’
벌써부터 이렇게 명분을 주다니.
절로 피가 식었다.
‘아냐. 차라리 잘 됐어.’
어차피 그 놈과는 한 번쯤 부딪쳐야 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기회가 주어졌을 때, 빠르게 치워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물론 이번 일로 아덴의 경계심을 더욱 더 살 지도 모르지만…….’
그 문제는 대충 생각해 놓은 방도가 있다.
차라리 빠르게 녀석을 치우고, 내 성장에 집중하는 게 훨씬 더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았다.
‘자꾸 눈앞을 방해하는 날파리는 빨리 죽여야지.’
나는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도착입니다. 드레커 도련님.”
에드워드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붉은 가죽으로 장식된 집무실.
마치 마그너스의 집무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결국은 가짜. 이곳은 철혈궁이 아니다.
이 문짝은 그저 조잡하게 따라한 모조품일 뿐.
진짜 리텐슈노프의 가치를 지닌 게 아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들 웃기지도 않는 짓을 하는 게 취미라니까.’
이런 짓을 한다고 가주가 될 수 있는 게 아닌데.
그 어리석음에 피식 비웃음을 날리며,
나는 손으로 문을 밀어젖히고, 내 숙적을 마주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