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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108화 (108/139)

108화

오르피스로 가는 마차 안에서.

나는 끝없이 계속 생각해보았다.

‘어디일까?’

과연 요정왕이 나를 노릴 곳은 어디일까.

‘오르피스 도심지는 아니다.’

그런 곳에서 날뛰었다가는 곧바로 리텐슈노프에서 척살대가 달려올 것이다. 최대한 조용히 나를 치워야 하는 그라힐로서는 절대로 택하지 않을 선택지다.

‘하지만 요정왕이 껴있단 말이지.’

하나, 요정왕의 특징을 생각하면 또 모르는 일이다.

‘그년은 약쟁이니까.’

평생토록 마약에 찌들어 살아온 인간인 만큼, 요정왕이 어떤 미친 짓을 행할지 모른다. 진짜로 오르피스에 도착하자마자 소환수가 덤벼들지 모른다는 거다.

또는, 지금 당장이라도 습격을 할 수 있고.

‘……일단 대비는 해 두자.’

곧바로 전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손에 쥔 미스틸테인의 손잡이를 언제든지 뽑을 수 있도록 꽈악 움켜쥐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기우였던 모양이었다.

마차는 아주 평화롭게 오르피스에 도착했고, 마차에서 내리는 순간 소환수들이 나를 반겨주지도 않았다.

이렇게 되자 습격 장소가 대충 특정되었다.

‘아마 대수림 안이겠군.’

요정왕의 심처는 대수림 내부에 있다.

그런 만큼, 요정왕이 직접 나를 습격하기에 가장 적절한 곳은 대수림 안쪽일 것이다.

‘전생의 기억으로는 그년의 심처가 분명 무슨 지하 동굴 안에 있다고 했는데…….’

위치를 알 방도가 없는 만큼, 내가 찾아갈 수는 없었다. 애초에 찾아가고 싶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모르겠다.”

일단은 임무를 수행하자.

그렇게 마음먹고 나는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평범한 오르피스의 길거리가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하나.

나는 미약하게나마 멜이 뒤따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모두 용의 권능 덕분이었다.

‘슬슬 후각과 청각의 권능도 개화되고 있다.’

냄새로 타인의 존재를 느끼고, 소리로 마나의 무게를 느끼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감각이었다.

‘이게, 레이첼이, 그리고 아덴이 보는 세계.’

그들이, 리텐슈노프의 진짜 순혈들이 느끼는 세계를 함께 느낄 수 있다.

아니, 그들보다 더 또렷하고 정확하게 느낄 수 있다.

그건 참으로 짜릿한 경험이었다.

‘정말 미칠 것 같군.’

아주 실낱같은 흔적만으로도 누군가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다. 당장이고 새롭게 얻은 이 힘을 전투에서 발휘해 보고 싶은 충동이 몸을 덮쳤다.

나는 주먹을 꾹 움켜쥐었다.

‘이 힘이라면.’

요정왕을 이기는 건 몰라도, 최소한 허무하게 죽지는 않으리라.

‘일단은 임무부터.’

나는 오르피스의 적당한 여관에서 짐을 푼 뒤, 곧바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오르피스를 돌아다녔다.

사라진 후작 영애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후작 영애? 본 것 같기도 하고.”

“그, 양갈래 머리를 한 아가씨 말이오? 한, 일주일인가, 이주일인가 전에 우리 가게에 들렸다오. 거, 듣기로는 대수림 안으로 모험을 떠난다던데…….”

“아, 맞아. 여기서 갑옷을 장만했네. 오랜만에 찾아온 큰손이라서 기분 좋게 물건을 넘겼지. 근데, 당신은 누구길래 그 영애님을 찾으시오?”

하나, 찾을 필요도 없었다.

조금 쿡 찌르기만 해도 온 동네 사람들이 그 후작 영애의 흔적을 술술 불었다.

무슨 후작 영애가 동네 명물도 아니고, 어째 만나는 사람마다 다들 그녀를 알고 있었다.

“허허, 정말 너무나 자연스러운 상황이네.”

[참으로 그러하도다.]

허탈한 마음에 웃음이 절로 튀어나온다.

데우스가 어이가 없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정도까지 되니,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사기를 치기 위해 개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구나.]

“그러게요.”

[이거, 그 그라힐이라는 녀석. 사실 바보천치인건 아니더냐? 이런 멍청한 계획으로 꼬맹이, 너를 잡는다고? 차라리 그냥 네 말대로 이 도시에서 대놓고 습격을 하는 것이 훨씬 더 빠를 것 같다만.]

데우스의 말대로, 이건 너무 노골적이었다.

오히려 너무 노골적이라서 사실 진짜로 후작 영애가 이렇게 철부지마냥 사방팔방 돌아다닌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긴, 그 후작가가 요정족 놈들과 관련 있는 가문은 아니니까.’

그저 우연히 요정족의 눈에 띄어 납치당했을 수도 있다.

지금 남아있는 흔적들은 진짜 그냥 남은 것이고.

“쯧.”

그렇다면 더욱 더 골치 아파진다.

요정왕과 싸우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잡혀 있을 후작 영애도 구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작 한 가지 일이 더 늘어났을 뿐인데, 난이도는 다섯 배는 더 어려워졌다. 나는 입술을 짓씹었다.

‘귀찮게 됐어.’

일단은 계속 수색하자.

‘어차피 지금 고민해봤자 달라질 건 없으니까.’

후작 영애의 실종이 진짜든 가짜든, 중요한 건 결국 나는 지금 이 흔적을 쫒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일단은 계속 수색을 하죠.”

마구잡이로 퍼져 있는 흔적.

‘이것의 뒤를 계속 쫒아가면…….’

그 끝에는 요정왕과 그라힐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그런데, 그 영애는 예쁘다더냐?]

“……제발, 좀.”

* * * * *

“드레커 도련님이 오르피스 안으로 진입했다는 보고입니다.”

오르피스의 초호화 유곽 안.

화려하게 장식된 실내에 앉아 있던 그라힐 리텐슈노프는 부하 기사의 보고에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붉게 충혈된 눈은 번들거리고, 손끝은 떨린다.

그라힐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드디어.’

여기까지 와버렸다.

결국, 여기까지 오고야 말았다.

‘…….’

심장이 쿵쿵 뛰고, 절로 손에 땀이 흥건해진다.

“젠장.”

그라힐은 손바닥을 망토에 문질러 땀을 닦아낸 후, 주변에 놓인 술잔을 집어들어, 곧바로 들이켰다.

-꿀꺽! 꿀꺽!

주홍빛 술이 찰랑거리며 그라힐의 목구멍 안으로 사라진다.

손등으로 입에 묻은 술을 훔친 그라힐이 얼굴을 찌푸렸다. 독한 술을 들이켰지만, 두근거리는 가슴은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라힐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요정왕을 쓰게 되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놈이다.

대체 어떻게 되먹은 녀석이길래, 자신이 보낸 암살 시도를 두 번이나 막아낸단 말인가?

심지어 두 번의 암살 시도에 사용된 칼은 죄다 별 볼일 없는 싸구려 놈이 아니었다.

‘전부 4, 5성의 경지에 오른 요정족 광신도들이었단 말이다.’

하나, 드레커는 그 모든 시도를 전부 다 막아내었고, 결국 그라힐이 요정왕이라는 팻감까지 쓰게 만들었다.

“대단한 놈이야.”

그제야 그라힐은 인정할 수 있었다.

드레커 리텐슈노프, 녀석은 자신보다 뛰어났다.

재능도, 자질도, 능력도 말이다.

하지만.

“크, 크흐흐. 그래봤자 그것도 이제는 끝이지만.”

어차피 죽으면 모든 게 부질없다.

그라힐의 입이 쭉 찢어졌다.

요정왕.

7성의 강자가 직접 드레커를 상대하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드레커가 5성 기사를 쓰러트려보았다지만, 7성은 아예 다른 경지.

‘그 년이 가진 힘이라면…….’

드레커를 벌레처럼 짓눌러 터트릴 수 있으리라.

곧바로 광소가 유곽 안에 울려퍼진다. 그 소리에 시립하던 기사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순간.

문득, 무언가 떠올린 그라힐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초조한 기색으로 실내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만일, 그 노친네가 사람을 붙였으면 어떻게 하지?’

모르는 일이다.

마그너스의 편애는 때때로 말도 안 되는 것까지 가능케 했으니까. 소드마스터 급 강자를 붙여놓았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아니, 그럴 리 없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다.

그라힐은 오락가락하는 정신을 부여잡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긴장과 흥분으로 범벅이 된 마음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런 그라힐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저건…….”

일전에 요정왕을 만나고 왔을 때, 선물로 받은 것.

평소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겠지만…….

그라힐의 손이 흑갈색 잎이 가득 찬 파이프를 꽉 움켜쥐었다.

“…….”

그 모습에, 그라힐의 측근들이 안타까움에 눈을 감았다. 제 주인을 말리지도 못한다는 사실에 몇몇 충성스러운 기사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하나, 그들은 그라힐을 말리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어차피 듣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후우.”

잠시 후.

나른한 표정이 된 그라힐이 털썩 유곽의 자리에 걸터 앉았다.

희뿌연 연기가 그의 움직임을 따라 흩어진다.

그라힐은 늘어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계획을…… 진행하라. 예정대로……”

“……네, 알겠습니다.”

그들은 그라힐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고개를 숙이고는 황급히 실내를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그들이 그라힐에게 충성한다지만, 같이 약에 찌들고 싶은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었기에.

* * * * *

[숲이구나.]

데우스의 중얼거림에, 나는 미간을 주물렀다.

눈앞에는 울창하게 펼쳐진 수해樹海가 보였다.

푸른 나뭇잎들이 바람결에 넘실거리는 게 보였다.

‘어이가 없네.’

소문을 쫓아, 후작 영애의 뒤를 쫒고 보니 모든 흔적이 바로 이곳을 가리켰다.

후작 영애가 대장간에서 무구를 구매하고, 용병 사무소에서 같이 갈 용병을 모으고, 야영을 위한 짐까지 꾸린 뒤, 이곳을 통해 대수림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만일 이게 거짓된 정보가 아니라, 진짜라면 그 영애는 미친 게 틀림없군.’

대체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길래, 후작가의 막내딸이라는 소녀가 대수림 안으로 용병 무리와 함께 기어들어간단 말인가?

숲속으로 보물찾기라도 하러 갔나?

[그 레이디가 실연을 겪었다잖느냐? 레이디의 마음은 갈대와도 같아, 슬픔에 빠지면 이러한 기행을 벌일 수도 있는 것이도다. 너도 잘 기억해두거라.]

“이건 갈대잎으로 배를 만들어 강을 건너는 꼴입니다만.”

[실제로 갈대잎은 가벼운 덕분에, 잘만 엮으면 충분히 배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몰랐더냐?]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그냥 어이가 없다는 소리 아닙니까.”

[왜 화를 내느냐? 내가 들어간 것도 아니거늘.]

데우스가 투덜거렸다. 나는 이마를 감싸쥐며 말했다.

“……그리고 왜 그 소녀가 레이디입니까? 걔는 지금 열다섯 살이라는데?”

[그 정도면 다 컸어! 내가 현역일 적에는 그 나이에 애가 있는 레이디도 있었다 이 말이다!]

“또, 또, 옛날이야기 하네. 그러니까 꼰대지.”

[어허! 이놈, 앞으로 그 단어를 쓰지 않기로 약속했잖느냐? 사나이답게 맺은 약속은 지키거라! 내가 권능을 다루는 법도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았더냐?]

“…….”

그 말대로였다.

나는 마그너스와 거래(?)를 통해 오르피스로 오는 길에 권능을 다루는 법을 속성 강의로 익혔다.

시각이야 익숙한 감각이지만, 코로 상대의 강함을 맡는다거나, 귀로 마나의 흐름을 듣는 건 절대로 겪어본 적 없는 경험이었기에, 배움이 필요했다.

‘이건 멜에게도 배울 수 없는 거지.’

감각적인 부분인 만큼, 이러한 감각을 공유할 수 있는 스승이 아니라면 제대로 가르쳐 주기 힘들었다.

다행히도 모든 감각의 근원 격인 데우스가 날 도왔기에, 나는 쉽게 용의 권능을 다룰 수 있었다.

‘덕분에 요정왕과 싸워도 잠시 버틸 수 있게 되었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 대신 데우스를 놀려 먹을 단어를 하나 빼앗겼지만, 절대로 전혀 아깝지 않았다.

……약간은 아쉽긴 했지만.

[그런 걸로 아쉬워하지 말거라. 이 땃쥐 같은 녀석아.]

“땃쥐가 뭡니까?”

[코끼리를 닮은 쥐다.]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요? 또, 또 거짓말하네. 아니, 제가 바보인 줄 아십니까? 코끼리만한 쥐가 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아니, 크기를 말하는 게 아니라……!]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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