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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112화 (112/139)

112화

악몽이 현실에 구현된 것 같은 괴물.

거대한 검은 살덩이는 꿀렁거렸고 그 피부에 볼록 튀어나온 푸른 핏줄은 계속해서 맥동한다.

집채만 한 붉은 발굽이 달린 다리는 짧았다. 그 반대로 어깨에 달린 네 짝의 거대한 팔은 기형적인 길이를 자랑했다.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기다란 수염처럼 보이는 촉수가 줄줄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요정왕이 ‘산양’이라고 부른 소환수.

그 괴물이 기묘한 울음소리를 내며 주먹을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한 주먹을 피하는 멜은 꽤 부상을 입은 것 같았다.

이마에는 피가 흐르고, 움직임은 부자연스럽다.

그 광경을 보는 순간.

나는 무심코 헛숨을 들이켰다.

‘요정왕이 이 정도였다고?’

멜 랭커스터.

내가 기억하는 검사 중에서, 마그너스를 제외하고 가장 압도적인 강력함을 자랑했던 사내.

그 사내가 피투성이가 된 채 숨을 고르고 있다.

순간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라는 의문뿐이었다.

아무리 요정왕이 마스터 급의 자질을 지니고 있다지만, 결국 마스터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알고 있다.

만약 그 한계를 벗어났다면, 아이스본이 합세했을 때 그렇게 쓰러지지 않았으리라.

그에 반해, 멜 랭커스터는 희대의 천재.

검제 마그너스의 그림자를 뒤쫓던 시대의 전설 중 하나였다.

고작 요정왕 따위에게 쓰러질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설마 나 때문인가?’

나 때문에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것인가?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입술을 짓씹었다.

‘젠장.’

도움은 몰라도, 짐 덩이가 될 생각은 없었는데.

요정왕을 너무 우습게 본 내 실책이다.

저런 류의 소환수도 존재하리라는 걸 생각했어야 했는데.

[정신 차리거라, 꼬맹아. 지금 그딴 자책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직시하거라.]

데우스의 충고에 나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래, 지금은 자책할 때가 아니다.

어떻게든 멜에게 도움을 줘야 할 때지.

‘하지만 어떻게?’

요정왕이 나를 죽이지 못한 건, 오로지 멜의 보호 때문이다. 그 말은, 내가 지금 당장 전투에 참전하는 건 절대로 멜을 돕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섣불리 움직였다간, 곧바로 들킬 거다.

‘무언가 방법이 있을 텐데…….’

멜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그 순간, 내 앞에 떨어진 브로치에 눈길이 갔다.

도플갱어 브로치.

그걸 보는 순간,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황급히 손을 뻗어 브로치를 쥐었다.

그리고는 전장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최고의 기회를 노리기 위해…….

* * * * *

멜 랭커스터는 숨을 골랐다.

‘저 괴물, 정말 짜증나는군.’

요정왕의 소환수는 강했다.

진짜로, 생각보다 강력했다.

거대한 덩치에 비해 움직임도 날랬고, 저항력이 뛰어난지 검식의 오러나 화염 공격도 잘 먹히지 않았다.

가죽이 두꺼운 탓에 검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사실상 방법이라고는 두들겨 패 죽이는 것뿐.

하나, 저 덩치를 구타해 죽이는 건 무리다.

‘정말 거지 같이 까다롭구만.’

차라리 같은 수준의 마법사였다면 곧바로 썰어버렸을 텐데, 하필 소환사라서 상대하기 곤란했다.

멜은 또다시 날아드는 주먹을 피해내며 검을 휘둘렀다.

겁화의 홍염이 섞인 오러가 괴물의 가죽을 채찍처럼 내려친다. 화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주변 나무들이 죄다 불살라질 정도의 공격.

이미 주변의 초목은 전부 다 불타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공격을 가했음에도 괴물의 살점에는 약간의 탄 자국만 남을 뿐이었다.

심지어 그 상처 또한 곧 회복된다.

어마어마한 회복력까지 겸비한 괴물.

“이거, 참 너무 좆같은 놈인데.”

“여의 힘에 경외하거라, 리텐슈노프의 개여!”

요정왕이 곰방대를 휘두르며 웃었다.

그 모습에 열불이 뻗친 멜이 소리쳤다.

“그게 니 힘이냐? 소환수 빨이지? 웃기는 년일세, 저거.”

“거참, 방정맞은 입이로고. 여가 곧 그 입을 찢어발겨 주고 말겠다. 네 녀석의 그 못생긴 수염과 함께!”

“뭐, 임마?”

그 말에 멜이 요정왕에게 검격을 날렸다.

하나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오러는 괴물이 팔을 쑥 뻗는 것으로 막히고 말았다.

“허, 어이가 없네.”

그 모습에 멜이 허탈하게 웃었다.

‘근접하기에는 속도도 너무 빠르고, 실수로 잘못 얻어맞기라도 했다가는 나도 몸을 추스르기 힘들다.’

그렇다고 그냥 마구잡이로 검격을 흩뿌려 요정왕을 노리기에는, 자신 또한 상대를 견제해야만 했다.

그래야 뒤에 누워있을 드레커의 안전이 확보되니까.

수단을 위해 목적을 잊으면 안 되는 법이다.

멜은 한숨을 푹 쉬었다.

“짐 덩이를 달고 싸우려니, 젠장. 이 일 끝나면, 진짜 개처럼 굴려서 사람 만들던가 해야지.”

겨우 겨우 키워놨더니, 고작 고함 한 번에 쓰러지고 말야.

멜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 순간.

멜의 감각 안에, 어떤 것이 걸려들었다.

멜은 살짝 고개만 돌려 뒤를 살폈다.

몸을 살짝 숙인 채, 기척을 숨기고 있는 드레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얼핏 보기에는 기절한 것처럼 보이나, 자세히 살펴보면 무언가 기회를 노리는 것 같다.

‘깨어났나? 그런데 뭘 하려는 거냐.’

솔직히 객관적으로, 이 상황에서 드레커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마스터 간의 전투에서 고작 5성 밖에 되지 않는 드레커가 전황을 바꾸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나.

“…….”

멜의 시선이 드레커를 응시했다.

살짝 고개를 든 드레커의 두 눈에 강한 확신이 깃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불가능 속에서 성공을 찾는 의지를 확인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렇기에.

멜은 지금까지 압도적인 성과로 자신을 증명해왔던 드레커 리텐슈노프를, 자신의 제자를 믿기로 했다.

‘어디 한 번, 네 계획대로 해봐라.’

시선 정도는 끌어 줄 테니.

“일어라.”

다음 순간, 멜의 손아귀에 쥐어진 불카누스의 검신에서 수십 미터는 될 법한 화염이 솟구쳤다.

불타오르는 검을 양손으로 꽉 틀어쥔 채, 전신에 힘을 끌어올린 멜의 눈가에 붉은 안광이 일렁인다.

“타올라라.”

그리고.

화염의 파도가 세상을 휩쓸었다.

* * * * *

세상이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마치 화염이 파도가 되어 온 세상의 모든 것을 먹어치우려는 것 같은 광경.

그러한 광경을 마주하고 있음에도.

요정왕은 웃었다.

“부질없는 짓이로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불태워봤자, 리텐슈노프의 사냥개는 산양을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가 신념을 버리면서까지 찾아내고, 지금까지 감춰두었던 아이다. 네까짓 것들이 쓰러트릴 수 있을 쏘냐!’

이계의 끝자락, 가장 깊은 심연의 종점까지 문을 열어 계약해 낸 소환수다. 한낱 검객 따위가 쓰러트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에 요정왕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저 부나방 같은 사냥개를 죽이고, 그 다음은 여의 피앙세의 염원이로다. 그것을 이루어드리면 끝이다.’

오대명가, 리텐슈노프의 혈통.

드레커라는 이름의, 자신의 피앙세를 위협하는 맹랑한 꼬맹이의 사지를 찢어발기면 된다.

성공한다면 피앙세의 사랑을 다시금 되찾는 것은 물론이고, 가증스러운 오대명가에게도 엿을 먹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직접 행차한 것 아닌가.

실패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순간, 휘몰아치던 화염 폭풍이 점점 옅어졌다.

날뛰던 부나방의 힘이 다하고 있다는 증표였다.

“아무리 발악을 해보아도 소용없도다. 네 녀석은 절대로 이 아이를 이길 수 없음을 직시하거라!”

그 사실에, 요정왕이 승리의 포효를 질렀다.

이겼다.

검제 마그너스의 가장 날카로운 이빨.

불타는 검을 쥔 사냥개를 자신이 쓰러트리는 것이다.

“이제 끝을 내주도록 하마!”

흥분에 가득 찬 요정왕이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이런 기쁨에 순간은 즐겨야 하는 법.

그녀는 곰방대에 쑤셔 박은 아편을 깊게 빨아들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런 전투 중에 약을 하는 건 미친 짓에 불과했으나 이미 오랜 세월 약에 찌들었던 그녀의 눈에는 광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으응?”

무언가, 움직였다.

화염의 폭풍을 뚫고, 순식간에 땅을 박차는 소년이 보였다. 앳된 얼굴에 걸맞지 않는 체격. 자신의 피앙세가 처리해달라고 했던 리텐슈노프였다.

“오호라!”

그 모습에 요정왕이 쾌재를 불렀다.

사냥개를 해치운 뒤, 죽일 생각이었는데, 어찌 스스로 사지로 기어들어와 주다니!

참으로 기꺼운 일이었다.

곰방대를 휘둘러 드레커를 가리킨 요정왕이 소리쳤다.

“산양이여! 저 소년을 죽여라!”

요정왕의 명령에 산양이 한쪽 팔을 휙 빼들었다.

곧바로 화염이 마구 산양에게 몰아쳤으나, 산양은 그 모든 공격을 그대로 몸으로 받으며 주먹을 내리쳤다.

-콰광!

하지만, 소년은 죽지 않았다.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 소년이 허공을 도약하며 공격을 피해낸 것이다.

“맹랑한 녀석,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이를 악문 요정왕은, 이내 시뻘개진 눈으로 킬킬 웃었다.

어차피 그런 잔재주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공격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

소드마스터 중의 소드마스터라고 불리는 멜 랭커스터도 버티지 못해 피하는 공격이다.

고작 열두 살짜리 어린아이가 피할 수 있을 리가.

곧바로 다음 공격이 이어졌다.

산양의 주먹이 마구 휘둘러진다.

하나하나가 압도적인 파괴력을 지닌 공격.

권풍에 몰아치는 화염이 마구 흩날릴 정도였다.

그 순간.

“으, 으응?”

갑자기.

소년의 몸이 둘로 나뉘었다.

이제는 두 사람이 되어버린 드레커.

그 모습에 요정왕은 두 눈을 깜빡였다.

‘약기운이 벌써 도는 것인가…….’

하지만 아니었다.

약 기운 때문이라기엔, 다른 모든 감각은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확실했다. 드레커 리텐슈노프는 정말로 두 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분신인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요정왕이 혀를 찼다.

귀찮은 능력을 가지고 있군.

하지만 상관없다.

어떤 게 진짜든, 둘 다 죽여 버리면 될 터이니.

“산양이여!”

요정왕의 부름에, 산양이 다시금 주먹을 휘둘렀다.

거대한 주먹이 먼저 달려오는 드레커를 내려쳤다.

-콰과광!

어마어마한 소리와 함께 산양의 주먹이 땅 속 깊숙한 곳에 박혔다.

7성 기사도 짓눌려 터질 수준의 위력.

당연하지만 이제 막 열두 살이 된 소년이 버틸 수 있는 공격이 아니다.

‘저게 진짜라면 나머지 하나는 사라질 터.’

그러나 두 번째 드레커는 여전히 달려오고 있었다.

“저놈이 진짜로군.”

요정왕이 그제야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가볍게 곰방대를 휘둘렀다.

그러자 산양의 주먹이 다시금 휘둘러진다.

파공음과 함께 뒤따라오던 드레커가 주먹에 맞았다.

그는 그대로 어마어마한 속도로 뒤로 날아갔다.

“되었구나!”

그 모습을 확인한 요정왕이 눈을 희번뜩 뜨고 웃었다.

되었다!

이것으로 피앙세의 바람을 이루었다!

바람을 들어줌으로서 지금까지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하고 다시금 그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생각에 요정왕이 희열에 가득 차 몸을 떠는 순간.

“……아?”

무언가 날아들었다.

무엇인지는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하나, 목숨이 위험한 순간이라는 건 인지할 수 있었다. 등줄기를 차가운 얼음이 내리긋는 듯한 소름끼치는 감각.

‘사냥개가 산양을 뚫고 접근한 건가?’

요정왕의 눈이 뒤룩 굴렀다.

하지만 아니었다.

여전히 화염 폭풍은 저 멀리서 휘몰아치고 있다.

그렇다면 뭐지?

알 수 없으나, 일단 막는다.

요정왕이 빠르게 곰방대를 내리그었다.

그러자 곧바로 허공이 찢어지며 늑대 형태를 한 소환수가 밖으로 뛰쳐나왔다. 소환수는 곧바로 달려들던 섬뜩한 존재에게 몸을 날렸다. 다음 순간, 죽었어야 할 드레커가 늑대와 부딪쳐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동시에.

-파각!

요정왕이 쥔 황금빛 곰방대가.

소환한 산양과 요정왕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는 물건이 반으로 잘려나갔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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