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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113화 (113/139)

113화

-파각!

그 소리가 들리는 순간, 나는 땅바닥에 볼썽사납게 나동그라지면서도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성공했다!’

베었다.

요정왕과 저 산양을 이어주는 매개체를 베었다.

‘성공 확률은 삼분지 일도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도 안 되는 확률의 도박을 성공해 내다니!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골수를 타고 짜릿한 승리감이 솟구쳤다.

절로 입꼬리가 쿡쿡 솟아오른다.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익!”

그 순간.

당황한 요정왕이 지른 비명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그래, 아직 전투는 끝난 게 아니다.

지금은 헤실헤실 기뻐할 게 아니라, 사전에 짠 계획대로 움직여야 할 때.

나는 내 앞을 가로막는 늑대 소환수를 베어 넘기고, 곧바로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멜 경!”

“잘 했다, 꼬맹아!”

다음 순간, 내 앞으로 붉은 유성이 쿵 떨어졌다.

화염이 휘몰아치며, 얼굴을 그을린다.

불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멜.

그는 큼직한 등으로 내 앞을 막아선 채, 내게 소리쳤다.

“이제부터는 내 차례다!”

동시에 그가 검을 휘두른다.

불카누스의 겁화가 다시금 산양에게 쏟아졌다.

-무에에에에!

일격에 거대한 육신이 불타오른다.

그저 근처에 서 있음에도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열기.

나는 눈을 찡그리며 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뒤돌아 달리며 힐끔 산양을 살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산양은 이제 불카누스의 검격에 상처를 입기 시작했다.

고통에 찬 비명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무에에에에!

‘좋아, 이제 죽일 수 있다!’

산양이 검격에 피해를 입기 시작한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소환사와의 매개체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매개체가 없어진 이상, 산양은 더 이상 라헬 엘븐하임에게 충분한 양의 마나를 전달받지 못한다.

그리고 소환사에게 충분한 양의 마나를 공급받지 못하면, 소환수는 본신의 힘을 이 세계에서 전부 끌어낼 수 없게 되어 있다.

그것이 소환술의 규칙이다.

‘일반적이라면 새로운 매개체를 가져와 연결을 이어붙이면 되겠지만, 그건 정상적인 소환사들의 이야기지.’

평생토록 마약에 찌들어 살았고, 언제나 재능만으로 모든 것을 찍어눌렀던 여자가 라헬 엘븐하임이다.

‘그런 고난이도 기술을 연습했을 리도 없고, 설사 알고 있더라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는 힐끔 팔에 묶어둔 완갑을 살폈다.

완전히 금이 간 나머지, 더 이상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없어 보이는 마르스의 완갑. 모두 다 산양의 첫 공격을 한 대 막아낸 탓이었다.

“고대 아티팩트가 단숨에 파괴될 정도의 힘이라니…….”

자칫 잘못했다간 아티팩트와 함께 그대로 짜부라질 수도 있었다.

‘다행히 내가 짠 속임수에 요정왕이 넘어갔기에 망정이지, 만일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면…….’

진짜 그대로 죽었으리라.

나는 완갑을 벗어던졌다.

아티팩트로서의 수명은 다 했다고 봐야겠지.

“고마웠다.”

목숨을 지켜준 아티팩트에게 감사 인사를 남긴 뒤, 나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장을 살폈다.

전장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지금까지 계속 밀리기만 했던 멜이 이제는 산양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불카누스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산양의 몸에 깊숙이 칼자국이 새겨지고, 그 상처를 화염이 태워 재로 만든다.

산양의 전신은 이미 불타고 있었다.

산양 또한 그 공격에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러 보지만, 닿지 않는다.

이전보다 확연히 움직임이 느려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멜은 그 공격을 가뿐히 회피하며 드러나는 산양의 팔에 검격을 마구 흩뿌렸다.

불카누스가 스쳐 지나갈 때마다 산양의 팔에서 검붉은 핏물이 터져나왔다가, 곧바로 증발한다.

공격을 해도 상처만 늘어간다.

방어는 의미 없다.

현실을 깨달은 산양이 괴로워하며 비명을 질렀다.

“아, 아니야. 이럴 리 없어. 여의, 여의……!”

하나, 그 주인 된 몸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니, 산양은 계속해서 고통 받을 뿐이었다.

요정왕은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평소에도 창백했던 얼굴은 분칠을 한 것처럼 새햐얗게 질려 있었고, 두 팔과 다리는 덜덜 떨고 있었다.

흔들리는 눈동자는 갈 곳을 잃은 채, 이곳저곳 정처 없이 시선을 둘 뿐이었다.

완전히 멘탈이 나가버린 듯한 모습.

‘하긴, 이 정도 급의 소환수와 연결이 끊어졌으니.’

당연히 리바운드가 왔을 것이다.

리바운드의 대가가 고작 혼란에 빠지는 것만으로 끝난 건, 그만큼 요정왕의 자질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소환사였다면 칠공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졌으리라.

‘하지만, 이건 기회다.’

소환수는 약해졌고, 소환사는 정신을 못 차린다.

명령체계가 붕괴한 지금, 멜이 산양을 상대하는 동안 내가 해야 할 것은 요정왕을 치우는 것 뿐.

나는 미스틸테인을 고쳐 잡았다.

-파앗!

그리고는 곧바로 땅을 박찼다.

-탓탓탓!

땅을 밀어내는 다리에서 둔통이 느껴진다.

아니, 다리뿐만이 아니다.

전신에서 둔중한 통증이 욱씬욱씬 느껴졌다.

‘산양의 주먹을 막아낸 탓인가.’

아무리 마르스의 완갑으로 한 번 버텨냈다고는 하지만, 어찌되었든 나는 땅 속에 쳐박혔다.

몸이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하다.

하지만.

‘참을 수 있어.’

이 정도 고통은 익숙하다.

전생에 많이 겪어보지 않았던가?

나는 고통 속에서 임무를 완수하는 경험이 많았다.

그리고 이번 임무는.

‘요정왕.’

요정왕, 라헬 엘븐하임의 목.

그것이 내게 주어진 임무이자, 목표였다.

땅을 박찬다.

마스터 급 강자들의 싸움에 불타오르고 통째로 뒤집어진 대지를 뛰어넘는다.

어느 때는 땅을 밟고, 어느 때는 허공을 딛고.

그렇게 요정왕에게 쇄도한다.

동시에.

지금까지는 마스터 급 강자라는 재앙에 짓눌려 전장에 참여하지 못했던 잡것들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키에에에에!

요정왕이 소환한 잡다한 괴수들도.

“놈!”

“전하께 간다. 막아라!”

요정왕을 지키기 위해 멀찍이 대기하던 요정족도.

수많은 적들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끝없이 솟아나는 방해꾼들.

그들을.

‘전부, 벤다.’

베어냈다.

검을 휘두른다.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두르며, 나는 한 점의 주저 없이 방해꾼들의 틈바구니로 뛰어들었다.

“커헉!”

-끼에엑!

“제, 젠장할! 대체 어디서 이런 놈이……!”

휘두르고 찌르고 벤다.

검격의 끝을 따라 흘러내리는 오러의 색이 계속 뒤바뀌고, 변화한다.

마치 무지개처럼.

무채색 세상에 흩날리는 오러의 빛깔이 색을 입힌다.

“크아아악!”

“저, 전하를 지켜라! 더 이상 못 나아가게 막아!”

달려드는 사슴의 허리를 가르고, 검을 휘두르던 낭인을 반으로 쪼개고, 늙은 요정족의 목을 쳐 날리고.

그러면서도 달리는 속도는 조금도 줄지 않는다.

할 수 있다.

아직 절반 밖에 오지 않았음에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번 임무는, 성공이라고.

[달리거라! 조금만 더 가면 성공이로다!]

데우스의 목소리가 아득히 먼 곳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집중의 극점.

정신의 총의가 오로지 ‘나아감’에 모인다.

“뭐, 뭐라고?”

“이, 이 녀석. 순식간에 강해지고 있잖아!”

“막아! 막으라고!”

무언가 닿을 듯 닿지 않던 것이 다가온 느낌.

깨우침이라는 게 이런 걸까?

분명 전생에는 느끼지 못했던 깨달음이거늘.

어째서 이번 생에는 가능했는가.

알 수 없다.

그리고 중요치 않다.

‘기회가 왔다는 게 중요하지.’

검의 극의.

이전 삶에는 이루지 못했던 것.

그 편린에 한 걸음 더 나아선 순간.

-끼에에에엑……!

“커헉!”

“아, 윽! 안 돼!”

길이, 열렸다.

공간이 확 뚫리고, 모였던 정신이 다시 되돌아온다.

좁아졌던 시야가 확장되고, 세상이 또렷이 보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여전히 혼란에 빠져 주저앉아 있는 요정왕의 모습이었다.

-빠득!

나는 이를 악물며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동시에 탈력감이 몰아친다.

폭주하듯 검을 휘둘렀던 반동이 찾아온 것이다.

당장 이대로 쓰러지고 싶다. 잠에 들고 싶다.

하지만.

-탁!

발끝에 힘을 주어, 그대로 땅을 박찬다.

밑바닥까지 긁어내, 남은 힘을 전부 다 끌어올려.

달린다.

끝마무리를 내기 위해.

내가 달려오자, 요정왕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여, 여는…….”

그녀의 혼탁한 눈에, 죽음의 공포가 깃드는 순간.

요정왕이 발악했다.

“여는 이렇게 죽을 운명이 아니란 말이다!”

동시에 그녀의 눈앞 공간이 찢어졌다.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대한 흑곰.

그 흑곰을 보는 순간, 일순 몸이 굳었다.

‘흑……곰.’

기억에 있는 적이었다.

아니, 악연이었다.

지난 삶, 리텐슈노프-요정왕 전쟁기에 제거 임무를 받고 상대했다가 죽음의 위기를 겪었던 괴물.

전생에 내 왼손 약지와 소지를 잘라먹은 괴수.

요정왕의 흑곰.

그걸 본 순간. 절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저, 전생에도 못 이겼는데…….’

과연 지금이라고 이길 수 있을까?

전생에는 7성의 몸으로도 상대하지 못했는데?

두려움이 엄습한다. 몸이 굳는다.

아직 흑곰은 이계에서 나오는 중이다.

지금이라도 다시 뒤돌아간다면…….

그 순간.

정신이 되돌아왔다.

나는 이를 한계까지 악물었다.

“아냐.”

아니다.

잡을 수 있냐고? 당연히 잡을 수 있다.

아니, 잡아야 한다.

[……너.]

“나는…….”

나는 리텐슈노프다.

명가의 혈통을 타고난 인간이다.

고작 이딴 괴물에게 겁먹어 도망칠 이유가 없다.

‘그래봤자 소환수.’

그것도 병신이 된 소환사의 소환수다.

전생이 뭐 어땠다는 거냐.

전생에 매달려 있으면, 나는 이 자리까지 오지도 못했다. 전생의 나였다면 불가능했다. 모든 것은 지금의 나. 드레커 리텐슈노프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나는, 드레커, 리텐슈노프다.”

그제야 나는 나를 묶고 있던 사슬을 벗어던졌다.

한 걸음.

나아간다.

-탁, 탁탁!

내딛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자세가 점점 올곧아진다.

검식의 준비가 끝났다.

이제는 완전히 밖으로 빠져나온 흑곰이 나를 보며 울부짖는다.

그 악몽 같은 기괴한 얼굴이 날 노려본다.

동시에 놈의 양 팔에서 기다란 대검 같은 뼈가 튀어나온다. 흑곰이 나를 향해 쇄도한다.

첫 일격.

‘흘려낸다.’

묵직한 검격이 미스틸테인을 타고 흐른다.

동시에 반대쪽 뼈가 나를 향해 솟구친다.

몸을 뒤틀어 검을 끌어당긴다. 그리고 제 시간 안에 검격을 막아낼 최적의 위치에 검을 가져다 대었다.

-파각!

블러드하운드 54식의 오러가 놈의 뼈를 파괴한다.

그걸 확인하자마자 나는 곧장 흑곰의 턱을 걷어찼다.

고개가 뒤로 젖혀진 흑곰.

검을 휘둘러 목젖을 벤다.

-카라라라락!

동시에 인세의 것이 아닌 비명이 울려퍼진다.

베인 목젖 사이로 드러난 속살. 그 안에 들어있는 건 수없이 많은 사슬이 뒤엉켜 만들어진 괴수. 그게 바로 곰의 탈을 쓴 이계 괴물의 정체였다.

나는 막힘없이 검을 휘둘러 목을 날려버렸다.

하나, 흑곰은 이 정도로 죽지 않는다.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잘린 단면에 검을 쑤셔박는다.

-키라라락?

놈이 당황하는 게 느껴진다.

그 당황을 느끼며.

“염화!”

나는 렐릭의 반지를 사용했다.

순식간에 검날을 타고 솟구치는 검고 붉은 화염이 놈의 몸뚱이를 집어삼킨다.

‘오러를 계속 바꾼다면!’

블러드하운드로 사슬을 파괴하고, 바인더샤칼로 그걸 물어뜯는다. 말도 안 되는 짓이지만, 나의 오러 컨트롤 능력은 그 미친 짓을 가능케 했다. 반복되는 오러의 변화에 불길의 색이 마치 점멸하는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퍼엉!

흑곰이 산산이 조각나며 잿더미로 화했다.

그제야 나는 숨을 고르며 눈을 치켜떴다.

저 멀리, 눈을 휘둥그레 뜬 라헬 엘븐하임이 보인다.

그녀의 눈에 맺힌 감정이 당황에서 공포로 변할 무렵.

-서걱!

평생토록 스스로를 요정이라 믿어온 여자.

라헬 엘븐하임의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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