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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117화 (117/139)

117화

“마법이라니…….”

골치 아픈 게 나와 버렸다는 생각만 들었다.

나는 이마를 문지르며 투덜거렸다.

“왜 리텐슈노프의 수호룡 기억을 읽는 데 마법이 필요한 겁니까?”

[불만스럽다면 읽지 말아라. 나의 비밀스러운 기억을 네게도 주는 건 나도 부끄럽고 남사스러우니까.]

“그런 기억은 저도 읽고 싶지 않습니다.”

[어허! 내 추억을 헐뜯지 말아라! 얼마나 고아한 기억들 뿐이거늘. 꼬맹아, 네가 사랑을 알더냐?]

“아, 좀 제발…….”

나는 데우스가 하루만이라도 드래곤스러운 언행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상대가 ‘그 데우스’라는 걸 떠올리고는 곧바로 생각을 취소했지만.

‘하필 마법이라니.’

마법은 내가 그다지 자신 없는 분야였다.

물론 파훼 또는 상대법이라면 빠삭했지만, 직접 마법을 쓰는 건 아무래도 나에겐 무리가 있었다.

물론 내가 마법을 한 번도 배워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전생에 7성에서 막힌 내 성취를 뚫어 보겠다고 한번 붙잡아 본 적이 있었다. 하나 그 시도를 통해 얻은 결론은, 내가 마법적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당장 지금 데우스의 기억을 읽는 데 마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는 게 그 사실을 증명했다.

‘역시 나는 검술 체질이야.’

속으로 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나는 데우스에게 물었다.

“어느 정도 수준의 마법이 필요합니까?”

[글쎄, 그다지 어려운 건 아니었다. 3성에서 4성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성공시킬 수 있는 마법이었으니. 그 정도라면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잖느냐?]

“저한테는 어렵단 말입니다.”

젠장.

절로 얼굴이 구겨졌다.

1성 정도였다면 나도 어쭙잖게나마 마법을 배웠으니 내 힘으로 시도해봤겠지만, 3성, 4성이라면 이건 진짜 마법을 전공한 마법사를 불러와야 한다.

문제는 이 가문에 그런 마법사는 없다는 것이었다.

‘누가 뭐래도 리텐슈노프는 무가武家니까.’

무武에 관련된 것이라면 모를까, 마법적인 부분은 리텐슈노프에서는 그다지 취급하지 않았다.

물론 마법적 재능을 지닌 직계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소수였다. 더군다나, 이번 세대에서 마법적 재능을 지닌 건 오직 랑느 리텐슈노프 뿐이었다.

‘랑느, 그 녀석한테 물어봐야 하나?’

나는 입술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랑느 리텐슈노프.

그다지 기억에 남는 리텐슈노프는 아니었다.

에이미와 마찬가지로, 이 녀석 또한 가문을 벗어나 제 삶을 찾아 나선 리텐슈노프였기 때문이다.

‘리텐슈노프 직계 혈통 주제에 아이스본에 들어가서 아이스본 성을 받았을 정도니까.’

아이스본이 전통적으로 혈통 따위를 신경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긴 했지만, 다른 명가의 순혈을 받아다 성까지 내려주는 건 그 당시에도 파격적인 일이었다.

당시 리텐슈노프에서 어마어마한 반발이 있었고, 타 명가에서도 우려를 표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너무 혈통을 안 따진 거지, 그건.’

하여튼.

이 가문에서 마법을 전공했다고 할 만한 사람은 랑느 리텐슈노프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 랑느는 본가에 와 있었다.

‘어떻게 보면 기회는 기회인데.’

문제는 그 녀석과는 딱히 접점이 없다는 걸까?

이번 생에도 랑느 리텐슈노프는 일곱 살에 마법적 재능을 인정받아 아이스본으로 유학 비슷한 걸 가버렸고, 지금까지 귀환하지 않고 있었다.

가끔 가문에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다고는 하지만, 딱히 가문 내 파벌이나 경쟁에 참여한 적 없었기에 나 또한 굳이 건드린 적도 없었고.

[쉽게 말해, 명분이 없다는 거 아니더냐?]

“뭐, 정리하면 그렇죠?”

[그렇다면 에이미라는 녀석을 이용하면 되지 않겠느냐?]

“네?”

갑작스러운 데우스의 물음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당황한 나머지 목소리가 떨렸다.

“에이미요? 왜 그 녀석을…….”

[그 녀석이 마법을 좋아한다면서? 그렇다면 랑느라는 아이와 접점이 있을 것 아니냐. 마침 네가 아이스본의 가주와, 그 꼬마 아가씨도 만난 적도 있으니, 그걸 잘 엮으면 어떻게 되지 않겠더냐?]

“아니, 그게 아니라…….”

이 드래곤이, 에이미가 마법을 좋아한다는 걸 어떻게 알고 있지?

‘그건 전생의 일인데…….’

나는 딱히 데우스에게 내 전생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에이미에 관한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데, 이 변태 꼰대 드래곤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내가 당황을 금치 못하자, 데우스가 음흉한 목소리로 끌끌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놈, 깜짝 놀랐나 보구나.]

그 은근스런 목소리에, 나는 데우스가 이미 상황을 전부 파악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떻게 안 겁니까?”

내 물음에 데우스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별 거 아니다. 알면서 숨긴 거도 아니고. 그저, 저번에 네가 내 심상세계에 들어왔던 적이 있잖느냐?]

“네.”

[그때 연결이 더욱 더 깊어졌도다. 덕분에 네 기억을 일부 읽어냈지. 그리고, 네가 시간을 되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도다. 으하하! 역시 네 녀석의 성장 속도는 이상한 점이 있긴 했지. 왜 그런지 계속 고민했었는데, 최근에야 그 비밀이 풀렸도다!]

데우스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나,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데우스가 내 기억을 읽었다.’

그건, 그가 내가 사실 리텐슈노프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는 소리나 진배없는 것이다.

‘데우스는 리텐슈노프의 수호룡.’

당연하지만, 나는 진짜 드레커 리텐슈노프가 아니다.

드레커 리텐슈노프의 탈을 쓴 타인일 뿐.

그렇다면, 데우스는 나를 과연 어떻게 볼 것인가?

나는 과연 리텐슈노프인가?

아니면, 그 육신을 빼앗은 찬탈자인가?

과연, 데우스는 앞으로도 계속 내 아군일 것인가.

[뭘 그리 고민하느냐?]

데우스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섬뜩하게 느껴진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가만히 이야기를 들었다.

[어쨌든 그 에이미라는 친구를 만나보거라. 그게 지금은 가장 빠른 방법 같구나. 아니면 네 정인을 부르던가. 그 귀여운 아이도 마법사이니까 말이다.]

하나, 데우스는 더는 관련된 사항을 언급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피한다기보다는, 딱히 더는 논할 게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런 내 고민을 간파한 것인지, 데우스가 끌끌 웃었다.

[내게, 네가 이전 삶에서 어떤 인간이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아니, 정확히는 이전 삶은 중요치 않다고 봐야겠지.]

“……무슨 뜻입니까?”

[지금의 네가 중요하다는 소리다.]

내 조심스러운 물음에, 데우스가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리텐슈노프더냐?]

“그렇습니다.”

대답은 곧바로 나왔다.

스스로 내뱉고도 깜짝 놀랄 만한 속도로 말이다.

내 즉각적인 반응에 내심 당황할 무렵, 데우스가 다시금 껄껄 웃었다. 그리고는 거 보라는 듯 말했다.

[거 보라지. 네가 전생에 무엇이었든,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너는, 어엿한 리텐슈노프니까 말이다.]

“…….”

그 말이 무겁게 다가왔다.

‘어엿한 리텐슈노프.’

나는 입술을 꽉 씹었다. 리텐슈노프의 수호룡에게 그런 말을 듣자, 무언가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데우스는 곧, 한 가지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리고 말이다. 지금 너는 두 가지 불가능한 세상의 법칙을 부수고 이 자리에 있지 않더냐?]

“……회귀와 빙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그리고 나는 네게 그러한 기회, 법칙을 뒤흔드는 기회가 생긴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말하면, 네가 이루어야 할 숙명이 있다고 믿는 셈이지.]

숙명이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나의 회귀와 빙의는 그저 행운이라고 여겼을 뿐, 그 이상으로 깊게 더 파고 들어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짐작 가는 게 없다만……. 하여튼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 너도 그러할 것이도다. 그리고, 그런 숙명을 지닌 녀석을 굳이 공박할 이유가 있겠느냐? 이것 또한 신의 뜻일지니 말이다.]

“이유 없는 행운은 없다. 데우스 님은 그 사실을 믿는다는 것이군요.”

[그렇지.]

그렇게 말한 데우스는, 다시금 킬킬 웃으며 덧붙였다.

[물론, 이 일이 행운이 아닐 수도 있도다.]

“네?”

뜬금없는 말이었다.

행운이 아닐 수 있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그런 나에게.

[세상의 법칙을 두 개나 비틀었다.]

데우스는 느릿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렇다면 생각해보거라. 과연, 네게 주어진 숙명은…….]

그 음성이 참으로 무겁게 다가왔다.

나는 절로 마른침을 삼켰다.

[대체, 얼마나 막중한 것이겠느냐?]

* * * * *

막연한 고민을 가득 안은 채, 나는 에이미를 찾았다.

에이미는 오늘도 중급반 수련동의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다고 했다. 레너드는 그녀가 자신의 파벌 수련생들과 연속 대련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수련과 검술에 몸을 담은 그녀의 자세를 칭찬하겠지만, 나는 저게 욕구불만이 쌓인 탓이라는 걸 곧바로 깨달았다.

‘어지간히 마법이 고픈가 보군.’

아무래도 랑느가 본가로 돌아온 탓일 것이다.

자신은 가문의 제약에 얽매여 꿈도 꾸지 못하는 마법(내가 평하기에는 그녀가 가진 재능의 부족 때문이지만)을 자유롭게 배우는 막내 여동생이 가문에 돌아왔으니, 심히 고까울만하다는 건 인정한다.

물론, 그 오갈 데 없는 분노를 쓸데없이 얻어맞아야 하는 그녀의 파벌은 무슨 죄가 있나 싶지만 말이다.

하여튼, 연무장으로 가니 이미 대련은 한창이었다.

이미 수어 명을 쓰러트렸는지, 연무장 한켠에는 쓰러진 수련생들이 신음하고 있었다.

다음 대련 상대로 대기하기 위해 그녀의 뒤에 시립해 있는 파벌 수련생들의 얼굴은 창백했다.

내가 그들을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으니, 데우스가 검을 휘두르는 에이미를 보곤 평가했다.

[검술이 나름 예사롭지 않구나. 그런데, 저런 아이가 마법에 빠져 있다고?]

‘네.’

[허, 재능이 아깝구나. 저 정도면 충분히 서른 살이 되기 전에 7성을 찍을 터인데.]

‘실제로도 그러했습니다.’

가문을 나선 그녀가 7성에 도달한 건 스물 일곱.

그 정도면 세상에서 수위를 다툴 재능이다.

‘물론, 미친년이었지만요.’

검에 마법을 부여한 뒤, 그걸 휘두르면서 마법이라고 주장하는 여자가 정상인은 아니잖은가?

이제부터 그런 소녀를 상대해야 하는 나로서는 한탄스러울 뿐이지만 말이다.

나는 주변에 굴러다니는 수련생에게 손짓했다.

내 얼굴을 알아본 수련생이 깜짝 놀라며 다가왔고, 나는 에이미에게 내가 왔다고 알리도록 했다.

잠시 후.

대련을 중지한 에이미가 내게 다가왔다.

그녀가 짜증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뭐야? 왜 찾아온 거니?”

“누나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나는 네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 없는데.”

에이미가 뾰족한 말투로 대답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글쎄, 내 제안을 안 받으면 누나가 손해인데?”

내 당당한 태도에 에이미가 눈을 찡그리더니, 이내 내 허리춤에 찬 미스틸테인을 바라보고는 곧 누그러진 태도로 내게 물었다.

“……무슨 제안인지 들어는 볼게.”

“랑느랑 마법 관련해서 이야기할 게 있는데, 선을 좀 대 주었으면 해서.”

“너, 미쳤니?”

그 말에 곧바로 에이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보고 그 맹랑한 꼬맹이를 부르는 전령 역할을 하라고?”

“글쎄, 전령이라고 하면 좀 그런데. 마치 내가 누나를 하인처럼 부려먹는 것 같잖아.”

내 노골적인 표현에 에이미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지금 싸우자는 거니? 대련 상대 해주겠다고?”

“누나는 나랑 싸우면 질 텐데.”

“…….”

그 말에 에이미가 입을 꾹 다물었다.

이쯤 놀려먹었으면 되었다 싶어, 나는 그녀에게 내비칠 당근을 제시했다.

“그리고 누나한테 손해가 갈 제안은 아닌데.”

“네 전령 노릇을 하라면서, 손해가 아니라고?”

“응.”

나는 그녀에게 회심의 제안을 던졌다.

“만약 내 부탁을 들어주면, 아이스본 쪽 사람과 친분이 생기도록 도와줄게. 누나한테도 도움이 될 걸?”

“내가 왜 주문쟁이들이랑 친분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에이미의 말투는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우물쭈물하는 게, 마음은 동하는데 하필 제안한 게 나라서 고민하는 듯했다.

나는 그럼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 필요 없으면 말고. 하긴, 아멜리아 아이스본도 바쁜 애니까. 아무한테나 소개해 줄 수는 없지.”

“……랑느를 언제, 어디로 데려오면 될까?”

순식간에 변한 그녀의 태도에, 데우스가 헛웃음을 지었다.

[……무슨 동전 뒤집는 것도 아니고, 얘, 정신이 멀쩡한 건 맞더냐?]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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