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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118화 (118/139)

118화

“불가능해.”

오랜만에 만난 랑느는 키가 조금 커 있었다.

물론 비슷한 나잇대의 아멜리아와 비교하면 여전히 작았지만, 아멜리아야 전생에도 여자 치고 키가 무척 큰 편에 속했으니 랑느와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랑느의 얼굴에는 어린 시절의 면모가 그대로 남아있었는데, 그런 얼굴을 확 찌푸리니 묘하게 우스웠다.

하나, 그녀의 대답은 웃기지 않았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불가능하다는 거야?”

그런 내 물음에, 랑느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오빠, 장난해? 나는 이제 갓 2성이라고.”

“아.”

그래서 안 된다는 거군.

내가 내 실책을 깨닫고 입을 다물자, 랑느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것도 모르고 있었어? 재능 넘친다고 소문이 자자하더니, 남한테는 관심이 없네. 재수 없어. 타인이 다 자기랑 동급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뭐야?”

랑느가 불만 섞인 얼굴로 그렇게 쏘아붙였다.

딱히 내 재능 자랑할 의도가 아니었기에, 곧장 부정하는 의미를 담아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다.”

사실 약간 억울한 면도 있었다.

그녀 또한 따지자면 재능으로는 한 재능 했으니, 이런 식으로 공격받는 건 조금 부당했다.

“그리고 너도 재능이 뛰어나서 가주님께 유학을 허락 받았잖냐? 네가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일반적인 수준에서의 ‘재능 있음’이고. 오빠는 무슨 괴물이던데, 무슨 소리야? 대체 어떻게 했길래 아멜리아 님을 이기고 교류전에서 수석을 한 거야?”

“그건, 뭐…….”

그래. 그건 인정한다.

교류전 수석은 뭐, 언제나 나오는 거지만. 아멜리아야 현 시점에 4성을 달성한 괴물 중의 괴물이니까.

그런 그녀를 이긴 게 대단한 일이긴 하지.

“아니, 그것도 그러니까 좀 웃기네. 아멜리아 님이랑 엄청 친하다면서, 왜 나한테 그딴 부탁을 하는 건데? 오빠 바보야? 뭐가 좀 모자라? 아님, 뭐 내 신경을 긁으려는 거야?”

랑느의 비난에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사실, 그 말이 맞았다.

데우스가 마법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는 순간,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아멜리아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전생에도 그렇고, 이번 생에도 내 지인 중 그녀보다 뛰어난 마법사는 없었으니까.

문제는…….

‘이렇게 계속 아멜리아와 엮이는 건 꺼림칙하다.’

이전에 교류전에서 있었던 일도 그렇고, 스텐필즈에서도 그렇고, 솔직히 그녀의 호감이 부담스러웠다.

아니, 의심스러웠다.

‘굳이 그녀가 나한테 호감을 드러낼 이유가 없다.’

따지고 보면, 그녀와 나는 교류전에서 처음 만난 셈이다. 만남의 횟수로만 치면 스텐필즈에서 본 게 두 번째이고 말이다.

당연히 그전까지는 인연이 없었다. 그런 만큼, 그녀가 내게 호감을 표할 부분은 일절 없었다는 거다.

그런데 계속 달라붙는 건 여간 껄끄러운 게 아니다.

‘의심을 안 할려고 해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더군다나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마그너스가 자꾸 아멜리아를 나랑 엮으려는 것도 문제다.’

대체 뭘 잘못 먹은 건지, 마그너스는 계속 아멜리아를 내 정인, 그러니까 애인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이전에 스텐필즈에서 있었던 일 이후로 그 경향이 더 심해지더니(나는 그래서 멜에게 제발 가주님께 이상한 소리를 보고하지 말아달라고 항의했다) 이젠 간간이 볼 때마다 마그너스는 마치 안부 인사차 아멜리아와의 진도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러다가는 진짜로 그녀랑 계속 이상한 방향으로(예를 들면, 약혼이라던가) 엮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나는 이번 일에 아멜리아를 부르는 걸 고려할 수 없었다.

하나, 결국 방법은 그것뿐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나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하, 진짜 그 방법뿐인가.”

“오빠, 지금 말하는 거 굉장히 웃긴 거 알지?”

랑느의 타박을 무시하며, 나는 속으로 결단을 내렸다.

그래. 부딪치자.

‘뭐, 끽해봐야 내 실력에 호감이 생긴 걸 수도 있으니까.’

내 경계심은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주장했지만, 나는 애써 그 생각을 무시했다.

‘과거의 영웅들과 대련을 할 기회다. 7성 너머에 발을 들일 기회야.’

고작 찜찜함 때문에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에휴.”

나는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그래, 부딪치고 보자.

“재수 없네, 진짜.”

그런 나를 보며, 랑느가 끔찍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 * * * *

결심이 서자마자, 나는 곧바로 아멜리아에게 편지를 보냈다.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나를 대신해, 델리우스 게인에게 영지 관리를 맡기고 오랜만에 본가로 돌아온 마리 유모가 내 편지를 대필해 주었다.

[숫기 없는 놈 같으니라고. 대필이 뭣이더냐? 연애편지는 본인 손으로 직접 쓰는 게 관례거늘!]

“제발 좀 닥쳐요.”

솔직히 곧바로 대답이 돌아올까 싶었다.

아멜리아 또한 후계자 중 한 사람.

당연히 그녀 또한 바쁠 테니, 곧장 만나서 나를 도와줄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한데, 예상외로 아멜리아는 곧바로 내게 답장을 보냈다.

그것도 몹시 긍정적인 답장을.

[이 정도면 진짜로 그 아이가 너를 좋아하는 게 아니겠느냐?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안 되잖느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데우스 님.”

[하지만 그렇지 않더냐. 이렇게 적극적이라니. 이건 내 경험 상 너를 좋아하는 게 틀림 없……. 제발 그놈의 치약 좀 그만 집어먹거라. 정신이 사납도다!]

나는 일부러 민트 초콜릿을 하나 더 집어먹으며 데우스를 골려주었다. 그 행동에 데우스가 절규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말이다.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데우스의 말대로, 그녀의 호의가 수상쩍기는 했으나 당장 나를 도와준다고 하니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여튼.

아멜리아가 긍정하자마자, 나는 곧바로 약속 장소인 오르피스로 향했다.

약속장소를 오르피스로 잡은 건, 아이스본과 리텐슈노프 사이의 중간 지점으로 적당한 곳이 바로 대수림이었기 때문이었다.

‘겸사 겸사 요정족 놈들도 좀 살펴볼 겸 말이지.’

요정왕 사망 이후, 요정족 커뮤니티는 사실상 와해되었다.

구심점이 되어줄 인물이자, 요정족의 수호자 역할을 담당하던 라헬이 죽은 탓이다.

특유의 선민의식으로 일반인들과 그다지 관계가 좋지 않은 요정족이었던 만큼 힘의 균형이 무너지자 곧바로 배척당했고, 결국 그들은 이합집산을 반복하며 완전히 무너지고 있었다.

‘오르피스는 그쪽 일로 이미 시끌시끌하다고 했나…….’

요정족의 행패로 일반인 피해자가 속출하는 탓에, 오르피스 내부에 자체적인 자경단이 생겨나고 용병들과 낭인들이 일거리가 늘어 행복해한다고 했던가?

‘뭐, 내가 알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냥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이야 일반인에게 화풀이를 한다지만…….’

솔직히 그 몰락의 원인 제공을 내가 한 만큼, 그 칼끝이 언제 리텐슈노프로 향할지 모르는 일이다.

계속해서 감시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벌린 일로 우리 가문이 피해를 본다면, 내 체면만 쓸데없이 상하는 거다.’

그깟 선민주의자들 때문에 그런 손해를 볼 수는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지낸 것이 며칠.

마침내 내가 탄 마차가 오르피스에 도착했다.

나는 곧장 아멜리아가 기다리고 있는 여관으로 향했다.

그녀가 있는 여관은 유곽을 겸하는 곳으로, 오르피스에서 가장 호화로운 향략 시설 중 한 곳이었다.

평소에 그라힐이 주로 묵었던 곳이라던가?

‘아니, 얘는 왜 이런 곳을 약속 장소로…….’

그녀의 괴이한 취향에 속으로 기함하며,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유곽 안에 발을 들였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흥겨운 술주정과, 독한 향 내음.

발을 들이자마자 유곽이라는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나는 곧바로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이쪽입니다, 도련님.”

유곽의 여급들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최상층은 조용했다.

‘이곳 전체가 하나의 객실이라고 했었나.’

뭔가, 참 쓸데없는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잡생각을 머릿속 한 구석으로 밀어넣으며,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에는 한 사내가 서 있었다. 나이는 삼십 대 초반 정도. 아무래도 아멜리아를 수행하는 아이스본 측 마법사인 것 같았다.

내가 그를 바라보자, 수행인은 꾸벅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멜리아 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드레커 님.”

“주변을 물려 줘.”

“확인했습니다.”

다시금 고개를 숙이는 수행인을 뒤로한 채, 나는 실내로 발을 들였다.

“어머.”

동시에 암청빛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는 게 보였다.

실내의 기다란 좌식 탁상.

그곳의 상석에 앉은 은빛 머리칼의 소녀가 고운 눈을 반달로 접으며 내게 꾸벅 인사했다.

“오랜만이야. 드레커.”

“……오랜만이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겨 그녀 곁으로 다가섰다.

내 움직임에, 그녀가 상석 좌측으로 조심스레 몸을 옮겼다.

나 또한 그녀를 따라 우측에 자리했다.

우리는 상석 자리를 비운 채, 마주했다.

아멜리아와 시선이 마주친다.

동시에 느껴지는 기이한 감각.

나는 곧바로 얼굴을 찡그렸다.

“오랜만에 본 주제에, 처음부터 내 생각을 읽으려고 드는 거냐?”

“아, 미안. 습관이 되는 바람에.”

그녀는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싱긋 웃으며 요리가 가득 차려진 테이블을 가리켰다.

“일단 식사부터 드는 게 어때? 따뜻한 게 좋으면 새로 주문하면 되는데.”

“딱히 배가 고프지는 않아서.”

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

당장 의뭉스러운 그녀의 속내를 유추해야하는 상황에서, 식사 같은 게 속으로 넘어갈 리가 없었다.

‘대체 왜냐.’

일단 도와준다니까 따라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호의는 의심스러웠다.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 녀석 또한 아이스본.’

오대명가의 사람이고, 그곳의 후계자이다.

사심 없이 나를 도와줄 리는 없다.

그런 내 생각이 눈빛에 드러난 걸까.

아멜리아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경계하는 거 아니니? 내가 진짜로 호의를 담아서 도와주는 거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너는 오대명가의 후계자 사이에 조건 없는 호의가 오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글쎄? 서로 연인 사이라면 가능할지도?”

그렇게 대꾸하며 다시금 웃음을 머금는 아멜리아.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미소에 가슴이 두근거렸을지 모르지만, 이미 전생의 그녀를 기억하는 나에게는 그저 짓궂은 장난질을 친다는 인식 뿐이었다.

내가 조용히 그녀를 노려보자, 아멜리아는 졌다는 듯 두 손을 들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서운하다. 대가라도 받으면 되겠니?”

“……도움은 감사히 받겠다. 나중에 갚지.”

“너 나한테 진 빚이 엄청 많은 건 알고 있지?”

“…….”

아, 그랬지.

생각해보니 나는 이미 그녀에게 몇천 개의 금화를 빚지고 있었다.

‘완전히 까먹고 있었네.’

젠장. 절로 당황스러운 마음이 생겨났다.

‘빚을 남겨두다니, 이런 멍청이 같으니라고!’

그 정도 단위의 금화는 정말 큰 빚이다.

아니, 금화가 문제가 아니다. 금화 따위는 당연히 갚을 수 있지만, 이미 협상 과정을 지켜본 탓에 그녀 또한 델리우스 게인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

‘인재 얻은 몫을 달라고 하면 곤란해지는데.’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내 태도에 아멜리아가 샐쭉 웃었다.

그녀가 콧노래를 부르며 중얼거렸다.

“으흠, 그럼 이제 내가 여기서 빚 독촉을 하면 되는 건가? 드레커, 너한테 받고 싶은 게 많은 데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입술을 살짝 핥는 아멜리아.

그 모습에 절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대체 뭘 요구하려는 거야?’

그런 의문을 품는 순간.

-똑똑.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아멜리아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무슨 일이야?”

마치 중요한 시간을 방해받아 불쾌하다는 듯, 아멜리아가 짜증이 약간 섞인 목소리로 차갑게 물었다.

그 물음에 대답은 곧바로 들려왔다.

“아멜리아 님, 객이 찾아왔습니다.”

“누구?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정확히는, 드레커 도련님의 객입니다만…… 어떻게 할까요?”

그 말에 아멜리아가 토끼 눈이 되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찾아올 손님?

그런 게 있을 리가.

하나.

찾아온 인물은 내 손님이라고 하니, 내가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누구입니까?”

“……자신을 요정왕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그 말에 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뭔 개소리야, 이건 또?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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