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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122화 (122/139)

122화

-따악!

아가레스가 손을 튕긴다.

동시에 내 주변에 마나가 응축되는 게 느껴진다.

휘몰아치듯 모여든 마나가 허공에서 압축되고.

동시에.

나 또한 손을 들었다.

-딱!

내 손짓에 한계까지 압축된 마나가 흩어진다.

아가레스의 체술을 같은 기술로 받아쳐 없앤 것이었다.

[성공이구나!]

그 광경에 데우스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하나, 나는 데우스를 시선에 두지 않았다.

내 시선 끝에 있는 건 아가레스.

자신의 기술을 내가 똑같이 따라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모양이다. 휘둥그레진 눈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그 눈빛을 보는 순간 나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드디어……!’

드디어 재현해 내는데 성공했다.

암즈의 초대 가주가 직접 창안한 체술.

수격마폭手擊魔爆을.

격폭擊爆이라는 준말로도 불리는 이 체술은, 팔의 혈맥에 마나를 응축한 뒤 그것을 매개채로 삼아 조준한 허공에 마나를 압축해 터트리는 기술이었다.

사실상 마법에 준하는 기술.

‘이게 왜 체술이라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아가레스가 무가武家의 종주였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본인은 이 기술이 체술이라고 생각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중간한 명칭 탓에 오히려 더 헤맸다.

기술의 시전 방식이 검식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걸 깨닫지 못했더라면, 아마 아직도 익히지 못했으리라.

‘그래도…… 겨우 성공해냈어.’

113회의 죽음을 겪은 끝에 가까스로 깨우친 기술인만큼, 성공했다는 사실에 참으로 감개가 무량하였다.

하나.

그렇다고 정신을 놓을 수는 없었다.

여전히 나는 아가레스와 전투 중이었으니까.

‘성공까지 한 만큼, 어처구니없게 죽을 수는 없지.’

이번에는 50합 이상을 겨뤄보자.

그러한 목표를 속으로 다짐하며, 나는 미스틸테인을 고쳐 잡았다.

그리고는 땅을 박찼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달려든 것이다.

내 접근에 아가레스가 헛웃음을 지었다.

곧, 그의 머리 뒤에 펼쳐진 수레바퀴, 병기창의 바큇살 하나가 빛무리가 되어 흩어졌다.

동시에 그의 손에 육중한 전투 도끼가 생겨난다.

-휘익!

도끼가 날아든다.

곧바로 허리를 굽혀 피해낸다. 도끼날에 일렁이는 오러에 내 얼굴이 언뜻 비쳤다. 동시에 도끼가 말도 안 되는 각도로 휘어지며 내 어깨를 노렸다.

‘어딜!’

미스틸테인을 휘둘러 도끼날을 쳐냈다.

-캉!

“큭!”

절로 신음이 터졌다. 이제 고작 한 합을 교환했을 뿐인데, 벌써 어깨가 벌써 욱씬 거렸다.

어마어마한 근육의 소유자인 만큼, 아가레스의 근력은 인간을 초월한 지 오래였다.

여기서 마나 하트까지 운용하면, 절대로 힘싸움에서는 상대가 안 되리라.

하나, 어째서인지 기억으로 구현된 아가레스는 나를 상대로 마나 하트를 운용해 근력을 강화하지 않았다.

나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만약 마나 하트까지 운용했다면, 싸움 자체가 성립이 안 되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검손잡이를 빙글 돌렸다.

내 손짓을 따라 검끝이 휘릭 돈다.

그 끝에 있는 건, 아가레스의 복부.

그대로 찌르기를 내질렀다.

-카각!

하나, 어느새 다가온 도끼날에 공격이 막힌다.

마치 도끼와 한 몸이 된 것 같은 반응 속도.

내가 내지른 혼신의 찌르기를 아가레스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막아내었다.

어떤 공격이든 마찬가지였다.

이 심상 세계에 들어온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아가레스에게 공격을 성공시킨 적이 없었다.

마치 철벽으로 둘러싸인 성을 공격하는 기분.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흥이 났다.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계속 검을 휘둘렀다.

“하앗!”

내지르고, 휘두르고, 베어낸다.

성공한 공격은 없으나, 그렇다고 실망하진 않는다.

상대는 시대를 풍미한 영웅.

역사를 새로 써 내리던 초인.

그런 자와 검을 겨루어 볼 수 있다는 것.

그 사실 자체가 영광스러운 일이다.

공격이 실패한다고 실망할 이유가 없다는 거다.

물론.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지.’

고작 그걸로 만족하기에는 나는 욕심이 많았다.

전신의 근육을 팽팽히 당겼다.

감각이 바짝 곤두서고, 시야가 넓어진다.

검 끝에 담은 기세를 더욱 더 날카롭게 가다듬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검격.

흩뿌린 오러가 마치 파도처럼 몰아친다.

물론 여전히 먹히는 공격은 없었다.

하나.

상관없다.

‘느껴진다.’

전신의 감각이 또렷해지는 것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움직임에 성공하는 것이.

검을 휘두르는 순간순간마다.

나는 다음 경지로 발을 내딛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피샷!

그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아가레스의 볼에 붉은 실선이 그어진다.

고작 살갗을 살짝 베어낸 것뿐이지만.

처음으로 그의 몸에, 내 검이 닿았다.

“하하, 하하!”

그 사실이, 다음 경지로 넘어서는 관문에 도달했다는 것이. 미칠 듯이 기뻐 웃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다음 순간, 아가레스가 내지른 검에 심장이 꿰뚫리면서도.

내 입가에서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 * * * *

격폭을 익히겠다는 목표를 달성한 만큼, 나는 그 시점에서 아가레스와의 대련을 중지했다.

물론 속마음은 계속해서 대련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정신적으로 너무나도 피로했다.

심상 세계인 만큼 육체적인 피로는 잠시 기다리면 대부분 회복되었으나, 정신적 피로는 계속해서 쌓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나가겠느냐?]

“그래야죠.”

데우스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도다. 슬슬 준비하마. 나중에 또 다시 이곳에 돌아오고 싶다면 말하거라. 준비해 줄 터이니.]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답했다.

그런데, 문득 드는 의문이 있었다.

“그런데, 데우스 님.”

[왜 그러느냐?]

“이 안에서는 시간이 어떻게 흐릅니까?”

[시간?]

데우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제가 꽤 오랜 시간동안 이곳 안에 있었으니, 바깥 세상에서 시간이 안 흐를 리는 없잖습니까? 그 비율을 물어보는 겁니다.”

[시간의 흐름이라…….]

데우스는 턱수염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았도다. 이 정도라면 바깥 세상에서는 대략 5분 정도 지났겠지. 원칙적으로는 이 세계는 내 기억을 읽어내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렇습니까?”

그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심상 세계 안에 있는 동안 바깥의 육체는 대체 어떻게 되는 건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짧은 시간 이라면 크게 상관없겠지.’

안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음에도 바깥의 시간 흐름이 고작 5분 정도라면, 충분히 습격 따위를 대비할 수 있을 테니까.

“좋습니다. 그럼 일단 밖으로 나가겠습니다.”

[그러려무나. 어찌되었든 네가 심상 세계에 있는 동안 바깥의 네 육신은 정신을 잃을 터. 그 모습에 네 정인이 크게 걱정을 할 수도 있을 터이니 말이다.]

“정인 같은 거 아니라니까 그러네…….”

나를 놀리는 데우스를 무시한 채, 나는 조용히 바닥에 주저앉아 가부좌를 트고 눈을 감았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였다.

심상 세계의 밖으로 나가는 법은 이미 깨우치고 있었다. 처음 들어온 순간부터 본능적으로 어떻게 밖으로 나가야 하는 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자.

다시금 세상이 뒤바뀌는 게 느껴졌다.

압축되어 콩알만 하게 느껴졌던 세상의 기척이 순식간에 확장되고, 눈앞의 시야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으음.”

짧게 신음하며, 나는 몸을 일으켰다.

전신이 어째서인지 조금 찌뿌둥했다.

고작 5분이 지났을 뿐일 텐데,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낮선 천장이 보였다.

“……?”

뭐야 이건?

‘여긴 어디야?’

분명 내가 처음 심상 세계로 들어올 때, 앉아 있었던 유곽 객실의 천장은 온데간데 없었다.

나는 처음 보는 방의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미약하게 풍겨오는 약초 냄새가 이곳이 병실 비슷한 곳이라는 걸 말하고 있었다.

영문을 알 수 없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순간.

방 한켠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방 안으로 들어온 것은 아멜리아였다.

“어?”

물수건 한 장을 손에 쥔 아멜리아가 나를 보곤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곧 눈을 지긋이 찌푸렸다.

“드디어 깨어났네.”

“……드디어?”

드디어라니.

무언가 불길한 단어 선택이었다.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그녀와 그녀가 손에 쥔 물수건을 바라보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그, 혹시 내가 마법을 쓴 뒤 정신을 잃었나?”

“맞아. 그것도 꽤 오랫동안.”

오랜 시간이 지났다니.

더욱 불길해졌다.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그 물음에, 아멜리이가 터벅터벅 내게 다가왔다.

내 침대 곁에 놓인 의자에 털썩 걸터앉은 그녀가 나를 노려보았다.

“무려 5일이 지났어. 그 이후로.”

미약한 분노가 섞인 목소리.

나를 마치 책망하는 듯했다.

“아무 문제없을 거라며? 왜 거짓말을 한 거야?”

그녀의 타박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데우스에게 물었다.

‘아니, 5분이라면서요? 5일이 지났다는데요?’

[그, 그럴 리가 없도다. 그건 불가능하다.]

‘아니, 뭐 그럼 아멜리아가 저한테 거짓말을 한다는 겁니까? 저를 깜짝 놀래켜, 골려먹으려고요?’

[아니, 내 말을 믿거라. 이 마법은 굉장히 안정된 마법이란 말이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도다!]

‘절대로?’

[극히 미미한 확률로 무언가 잘못될 수가 없지는 않지만…… 하여튼, 이상하다! 이건 일어날 수 없어!]

데우스는 그렇게 웅얼거리며 대답했다.

나는 이마를 꽉 짚은 채, 미간을 주물렀다.

‘어이가 없네.’

그러니까, 무언가 오류가 생겨서 무려 5일간 기절해 있었다고?

‘이, 미친 드래곤이 진짜……!’

그나마 지금은 안전한 곳에 있어서 다행이지. 만일 내 목숨을 노리는 적이 지척에 있었다면, 나는 꼼짝없이 죽었을 수도 있다는 소리 아닌가!

[나, 나는 모르겠도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잘못은 아닌 것 같도다.]

‘변명하지 마십시오. 데우스 님.’

[……미안하도다.]

데우스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내게 사과했다.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 뭐, 이득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저 작은 사고가 터졌을 뿐, 어쨌든 나는 안전했고, 데우스 덕분에 격폭 체술도 익힐 수 있었으니까.

‘조금 더 골려먹다가 봐주도록 할까.’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이불을 붙잡았다.

5일이나 누워 있었으니, 슬슬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했다. 오랫동안 누워 있으면 몸에 좋지 않았다.

그런데 내 시야에 무언가 이상한 게 들어왔다.

이불을 잡은 내 손등에 묘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날개를 편 드래곤을 형상화 한 것 같은 문양.

분명, 이전까지는 없었던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심상 세계와 연관된 문양 같았다.

‘이건 뭡니까?’

내 질문에 데우스는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그것은 연결고리의 증표이니라. 그것이 있다면 서로 상대방의 기억을 읽을 수 있게 되느니라.]

‘그렇습니까?’

근데, 이렇게 대놓고 드러나 있으면 좀 그런데.

그런 내 속내를 눈치챈 것인지, 데우스가 대답했다.

[그 증표는 서로 연결된 사람이 아니면 보이지 않느니라. 서로가 연결되어 있어야만 보이는 것이지.]

‘그럼 다른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인다는 것이군요.’

그렇다면 다행이다.

괜한 의심을 피할 수 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묘한 게 있었다.

‘근데, 이거 양손에 생기는 겁니까?’

연결고리의 증표는 내 오른손 뿐만이 아니라, 왼손에도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왼손의 증표는 어째서인지 흐릿한데다가 이곳저곳이 끊겨 있었다.

마치 무언가 망가진 것처럼 말이다.

[으응? 그럴 리 없다만? 그리고 어디 있다는 게냐?]

한데, 내 물음에 데우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황당한 상황에 내가 반문했다.

‘이게 안 보여요?’

내 눈에는 이렇게 뚜렷이 보이는데?

[내 눈에는 안 보인다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구나.]

한데, 데우스도 모르는 듯했다.

‘이게 내가 심상 세계에서 5일이나 갇혀 있던 이유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마법 좀 똑바로 알려 주지.’

어떻게 하면 이런 실수를 다 하는지. 역시 데우스는 탈모 걸린 노인 드래곤답게 치매도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혀를 차며 아멜리아를 돌아보았다.

“으, 응?”

그러자 아멜리아가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틀었다.

놀란 토끼눈이 된 아멜리아.

그 모습이 몹시 수상쩍어,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뭐야, 왜 그래?”

“아무 것도 아냐.”

아멜리아는 그렇게 대꾸하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황급히 실내를 빠져나갔다.

그 순간, 나는 보았다.

그녀의 손등에는, 내 왼손의 것과 흡사한 문양이 그러져 있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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