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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123화 (123/139)

123화

[네 정인의 손등에 문양이 있었다는 게냐?]

데우스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분명 보았습니다.”

아멜리아의 손등에 있던 문양.

그건 분명 내 왼손에 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못 보았다만…….]

데우스가 말끝을 흐렸다.

“그렇다면 저와 연결된 것이겠군요.”

데우스가 보지 못했다면, 그건 데우스와는 상관 없는 연결이라는 뜻. 그렇다는 건 왼손의 문양은 아멜리아가 나와 연결되었다는 증표이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마자, 절로 얼굴이 굳어졌다.

‘젠장.’

아멜리아에게 데우스의 정체나, 그와 내가 교류한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은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나와 연결되었다는 것은 큰 문제였다.

아멜리아가 내 기억을 엿봤다는 건.

‘내가 회귀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 몸에 빙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수도 있다는 소리이니까.’

모든 게 들통났을 수도 있다는 거다.

“빌어먹을.”

물론 그녀는 리텐슈노프의 사람이 아니다.

당연하지만, 내 비밀이 리텐슈노프에 당장 들어갈 일은 없다. 마그너스가 나를 내칠 일도, 다른 순혈들이 날 숙청할 빌미가 될 리도 없다.

하나, 앞으로도 그러할까?

위험 요소가 생긴 것 자체가 문제였다.

[한데, 그럴 수가 있던가? 그녀는 그저 마법의 시전을 도왔을 뿐이잖느냐. 내가 알기로는 그런 일로 서로가 연결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단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었잖습니까?”

나는 입술을 씹으며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젠장, 진짜로 어떻게 할 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하자 있는 마법을 알려주시면 어찌합니까?”

[하자가 있다니! 이건 유구한 전통이 깃든…….]

“말대답하지 마세요.”

내 뾰족한 언사에, 데우스가 입을 다물었다.

[으음. 아, 그렇지!]

하나, 곧 데우스가 밝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다면, 그녀의 기억을 엿봤더냐?]

“네?”

[아니지, 그녀와 연결되었다면 기억을 엿보기는 했을 터. 그 양이 중요하다. 얼마나 엿보았느냐?]

그 물음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기억?’

그런 게 있었나?

문득, 짐작 가는 게 하나 떠올랐다.

“……무언가 목소리 같은 걸 듣기는 했습니다.”

[목소리?]

“네. 물론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분명 목소리 같은 것을 들었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목소리는 분명히 아멜리아의 것이었다.

[목소리라…….]

“네. 뭐라고 했더라……. 도와달라?”

[도와달라니?]

데우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도와달라니.’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아멜리아 아이스본, 그녀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심지어 절망에 가득 찬 목소리로?

‘그게 그녀의 기억을 읽은 거라고?’

상상이 안 가는데.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데우스에게 물었다.

“잘못 들은 것일 리는 없겠죠?”

차라리 그저 착각한 것이라면 좋겠는데.

[목소리를 들었다면, 그럴 가능성은 작을 게다.]

“그렇습니까…….”

나는 착잡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그런 나에게, 데우스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이겠구나.]

“네?”

[목소리를 들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기억을 읽은 건 아니로다. 기억의 파편 중의 파편. 그저 아주 조그마한 일부가 오갔으리라.]

“하긴…….”

내가 생각해도 그 목소리로 무언가를 유추해 낼 수 있는 건 없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아멜리아도 나와 같으리라.

[그보다는 말이다. 네 정인의 기억이 더 궁금하구나. 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래, 도와달라는 게…….]

데우스가 궁금하다는 듯 묻는 순간.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문이 열리며 제복을 입은 사내가 실내로 발을 들였다. 수련동 상급반 교관 제복을 입은 사내였다.

나는 곧바로 그가 무슨 일로 방문했는지 깨달았다.

“드레커 도련님, 리텐슈노프의 전언을 전달해드리러 왔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내 예상대로였다.

“도련님께 새로운 임무가 할당되었습니다.”

새로운 임무가 본가에서 내려왔다.

* * * * *

“던전?”

명령서를 팔락이던 아멜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텐슈노프에서는 어떤 식으로 명령서를 작성하는지, 그 서식이 궁금하다길래 보여준 것이었는데…….

“보겠다는 서식은 안 보고, 다른 걸 보고 있냐.”

“어머나. 지금 나, 바가지 긁는 거야?”

오른손으로 입술을 가린 채, 깜짝 놀랐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떠 보이는 아멜리아.

그 과장된 행동에 나는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던전 토벌 임무야. 로도스테 후작령 안에서 새롭게 유적형 던전이 하나 발견되었다는데, 꽤 규모가 큰 것 같더라고.”

“아하.”

아멜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또한 아이스본 출신인 만큼, 이 던전 토벌 임무가 대충 어떤 임무인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유적 아티팩트 선점 때문이구나.”

이번 명령은 모험가나 채굴꾼 따위의 쓸데없는 파리가 꼬이기 전에 유적을 공략하고 안에 있는 아티팩트를 선점하기 위해서 내려온 것이었다.

오대명가가 선점했다는 사실이 퍼지면 어지간한 놈들은 죄다 손을 떼겠지만, 가끔 미친놈들이 아티팩트를 노리고 도박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지간하면 리텐슈노프는 유적 선점 같은 걸 안 하지 않았어? 신기하네.”

“아마도 우리 가문 산하에 있는 고고학자들이 꽤 괜찮은 유적이라고 결론을 지은 거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할 리가 없잖아?”

아멜리아는 내 대답에 턱을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보였다.

“그쪽이면 벨하임 유적들 나오는 곳 아니었나?”

그녀가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간단했다.

벨하임 유적은 벨하임 아크사인이라는 고대의 위대한 마법사를 기리는 유적들을 말했는데, 그곳에서는 주로 마법 관련 아티팩트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아니, 우리 가문이 관심을 가지는 걸 생각하면 아무래도 그쪽은 아닌 거 같은데.”

“그래?”

“아마도? 일단 지도로 위치를 제대로 봐야지 알겠지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명령서에 첨부된 지도를 살펴보았다. 명령서부터 훑느라고 지도는 확인하지 않았기에, 나도 정확한 위치는 아직 잘 몰랐기 때문이다.

“어디 보자, 위치가……. 응?”

뭐야?

“무슨 일이야? 왜?”

내가 갑작스레 눈을 찌푸리자, 아멜리아가 의아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하나, 나는 대답 대신 지도를 더욱더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거…….”

내가 기억하는 거기가 맞나?

축적 때문에 아직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내 생각이 맞는 것 같았다.

‘티오크의 성소.’

티오크의 성소.

그곳은 고대, 검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위대한 천재 검사가 잠들어 있는 무덤 유적이었다.

검성이라고 불릴 정도의 영웅이 묻힌 곳인 만큼 성소에는 수많은 명검이 매장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출토된 검은 고대의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명검 순위를 뒤바꿀 정도로 대단했으니, 그 유적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하나, 내가 당황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이게 벌써 발견된다고?’

문제는 티오크의 성소는 앞으로 5년 뒤에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유적이라는 것이다.

5년 후, 상급반 수련생이 된 란체스와 반체스가 임무를 받아 공략한 이 유적이 어째서 지금 이 시점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걸까.

‘역사의 흐름이…… 바뀌었다.’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회귀자인 내가 계속해서 과거를 바꾸었으니, 미래가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문제는 그 변화의 크기였다.

‘내가 바꾼 과거들이…… 이 정도의 변화를 이끌어 낼 정도였다, 이건가.’

무려 5년 후에야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냈을 유적이 벌써 발견되었다. 그렇다는 건, 내가 기억하는 미래의 흐름이 꽤 많이 뒤틀려 있다는 걸 의미했다.

‘이러다간 앞으로 내가 가진 정보들이 쓸모없어질 수도 있겠는걸.’

나는 입술을 살짝 씹었다.

역시, 지금보다 더 빠르게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강해지고, 더 운신의 폭을 넓혀서, 내가 기억하고 있는 미래의 이점을 최대한 많이 활용해야 했다.

“후우.”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내 모습에 아멜리아가 슬쩍 내 손에서 지도를 빼앗았다. 지도의 유적 위치를 확인해 본 아멜리아가 알겠다는 듯 콧소리를 내었다.

“흐응. 그렇구나. 그래서였어?”

그 의미심장한 말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긴장한 얼굴로 퍼뜩 고개를 들어 아멜리아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평온한 얼굴. 난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소리야?”

“아니, 그렇잖아?”

아멜리아는 지도를 팔랑거렸다.

“아무래도 위치가 위치인 만큼, 이 유적을 선점하려면 암즈랑 시비가 붙을 거잖아. 그게 걱정되는 거 아니야?”

“암즈?”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나는 황급히 지도를 다시 받아서 살폈다.

그러자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선이 보였다.

“어?”

티오크의 성소는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정확히 암즈와 리텐슈노프의 경계선에 놓여 있던 것이다.

문제는…….

‘여기, 분명 리텐슈노프 령 아니었나?’

분명 전생의 기억으로는 그랬다.

티오크의 성소가 위치한 곳은 리텐슈노프 령이었고, 당연하지만 그 당시에는 암즈와 이곳의 소유권으로 시비가 붙었던 적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음…….”

진짜로 어중간한 경계선. 이 정도면 충분히 암즈에서도 유적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위치였다.

어째서 이런 일이?

그 순간.

“아.”

무언가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3년 후에 뜬금없이 에르반이 관할령 관련해서 협상하기 위해 암즈로 갔던 적이 있었지?’

분명 그 협상단은 어떻게 해석을 해도 리텐슈노프가 더 손해를 보는 말도 안 되는 협상을 체결하고 와버렸다.

‘덕분에 에르반은 마그너스에게 엄청난 질책을 받았고.’

하나, 차후 티오크의 성소가 발견된 이후에는 그 평가가 정확히 반대로 뒤바뀌었다고 들었다. 당시에 넓은 관할령을 넘기고 받아온 곳 중에 저 지역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에르반이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짜고 치는 포커였던 건가.

하여튼.

이 관할령 교환이 일어나는 건 앞으로 3년 뒤.

아마, 에르반은 그 이전에 티오크의 성소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딱 시간을 맞추어 협상을 수행하는 건 말이 안 되니까.

하나, 지금은 내가 마구 운명을 뒤틀어놓은 탓에 티오크의 성소가 5년이나 일찍 발견되고 말았다.

“쯧.”

거기까지 생각이 닿는 순간, 나는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깨달았다.

‘에르반 리텐슈노프, 쓸데없는 개수작을 부리는군.’

어찌 되었든, 이렇게 된 이상 암즈 쪽과 유적의 소유권 관련하여 협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대외적으로 이런 일을 수행할 수 없지.’

나를 따르는 가신단이 없기 때문이다.

가신단 중에는 이런 외교 업무를 전문적으로 하는 가문도 존재했다. 당연히 그런 게 없는 만큼, 이런 협상에서는 나는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나를 엿 먹이려고 수작을 부린 것 같은데.’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아멜리아.”

“응?”

“혹시 사람 좀 쓸 수 있나? 내 영지로 전언을 보내야 하는데.”

“뭐, 알겠어. 근데 무슨 전언인데?”

아멜리아의 물음에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전에 내가 거두었던 녀석, 기억하지? 델리우스 게인. 그 녀석을 이곳으로 좀 불러와야 해서 말이지.”

에르반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미 나에게는 희대의 천재 책사가 있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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