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124화 (124/139)

124화

“암즈와 협상을 하면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멜리아의 전언을 받자마자 델리우스 게인은 곧바로 오르피스로 달려왔다. 어째서인지 이전보다 살이 토실토실하게 찐 델리우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탁월하신 생각이십니다. 협상은 제 전문이죠.”

“알고 있어. 그래서 불렀지.”

“하하. 감사합니다.”

신뢰가 듬뿍 담긴 내 말에 델리우스가 쑥쓰러운 듯 볼을 긁적였다.

통통한 그의 볼을 보고 있으니,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으로 푹 찌르고 싶다는 충동이 느껴졌다.

‘뭔 생각을 하는 거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말해주지.”

“정보는 많을수록 좋죠.”

나는 델리우스에게 명령서를 넘기며 말했다.

“이번에 발견된 유적의 이름은 티오크의 성소다.”

“티오크의 성소, 입니까?”

건내준 서류를 살피던 델리우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명칭은 적혀있지 않은데…… 어디서 들으신 정보입니까?”

티오크의 성소라는 명칭은 그 유적이 공략된 이후에 고고학자들이 명명한 것이다. 당연하지만 지금에는 그런 명칭 하나 없는, 그저 ‘던전형 유적’일 뿐이다.

나는 대답 대신 턱짓으로 옆방을 가리켰다.

옆방에서는 아멜리아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아.”

그 행동에 델리우스가 곧바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하, 그렇군요. 확실히 아이스본 쪽이 정보력이 좋기는 하지요. 대단하네요. 아직 발굴도 끝나지 않은 곳의 이름까지 알아내다니. 역시 아이스본!”

델리우스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웃었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했다.

[거짓말쟁이. 사기꾼.]

‘조용히 하세요.’

협상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미래 지식을 델리우스와 공유해야만 했다.

아멜리아에게는 미안하지만, 이제부터 내가 가진 고급 정보의 출처는 죄다 그녀가 될 것이었다.

‘왠지 거짓말을 하는 것 같군.’

[실제로 사실이잖느냐?]

‘조용히 하시라니까요.’

데우스에게 핀잔을 준 뒤, 나는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티오크의 성소는 고대의 위대한 검사가 묻힌 무덤이라고 하더군. 아마 검사와 관련된 유적이 잔뜩 출토될 거야. 이건 우리 가문 산하 고고학자들도 동의한 바지.”

“음, 그렇다면 암즈 쪽에서도 물러서지 않겠군요.”

델리우스가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렇지. 그곳도 무가니까.”

암즈는 이름 높은 무가武家.

당연하지만 고대에 검성이라고 불리우던 사내가 잠든 유적을 포기할 리는 없다. 무인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 만한 것들이 가득 잠들어 있을 게 뻔하니까.

지도를 살피던 델리우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일단 유적의 위치로는 저희가 불리합니다.”

“그래?”

“네. 지도를 아무리 살펴봐도 암즈 령에 더 가까워요. 보통 무덤형 유적은 남쪽에 입구가 있고, 북쪽으로 올라가게 되는데, 입구의 위치나 방향을 볼 때, 입구 쪽만 저희 쪽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 유적은 암즈 령이라는 소리군.”

“그렇습니다.”

쯧.

나는 혀를 찼다.

‘역시, 에르반은 알고 있었군.’

입구가 우리 쪽에 나 있으니 분쟁으로 뭉갤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굳이 영지를 넘기며 협상을 할 이유가 없다. 이건 그 당시에 실제로 이 유적이 무슨 유적인지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는 소리다.

‘무서운 놈.’

에반 녀석의 말을 인용하는 건 불쾌하지만, 그의 말대로 에르반은 음흉한 구렁이 같은 인물이다. 물론 음흉하다고 해서 정보력이 뛰어난 건 아니지만…….

‘그 음흉함을 현실에 구현해 줄 뛰어낸 책사가 있겠지.’

나는 힐끔 델리우스를 바라보았다.

역시, 델리우스를 내 사람으로 만든 건 최고의 선택이었다. 아무래도 아멜리아에게 이자를 듬뿍 쳐서 빚을 갚아 줘야겠다.

“왜 그런 눈으로 보시는 겁니까?”

“아무 것도 아니야.”

“음, 하여튼 그렇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명분에서는 저희가 밀립니다. 암즈가 동네 남작가도 아니고, 제가 알고 있는 지식 정도는 다 알고 있을테니 자신들이 유리하다는 건 이미 인지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그쪽도 오대명가니까 말이다.

거두어 둔 고고학자들은 충분할 거다.

“그러니,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시죠.”

“다른 방향?”

“네. 함께 공략하는 겁니다.”

델리우스가 눈을 반짝였다.

그 말에 나는 눈을 찌푸렸다.

“아니, 그건 안 되지.”

나는 이마를 문지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유적 협동 공략이라니. 아티팩트 분배는 어떻게 하려고? 그리고 우리 쪽도 그렇지만, 암즈가 절대 수긍하지 않을 걸? 어차피 그쪽이 유리하다며. 그런데 그런 제안을 왜 받겠어?”

유적을 함께 공략하는 건 안전성 면에서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채산성에서는 최악의 선택이다.

‘거기다가 안전도 확실치 않지.’

암즈와 리텐슈노프가 서로 다른 가문인 만큼, 공략대 간의 합이 안 맞을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오히려 협동하는 탓에 역으로 위험해질 수도 있다.’

거기다가.

지금 상황에서 그렇게 유적 공략을 끝내면 리텐슈노프 쪽에서는 쓸데없이 힘만 빼고 얻은 건 없게 된다.

‘그런 결과물을 가지고 갈 수는 없지.’

확신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이번 임무를 끝마쳤다가는, 에르반 쪽에서 곧바로 나를 공격할 게 뻔했다.

내가 그릇된 판단을 내려, 암즈와의 협상을 망치고 리텐슈노프에 손해를 입혔다고 말이다.

‘그 시류에 편승해, 함께 나를 찍어내려고 날뛸 아덴은 덤이고 말이지.’

그렇기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에르반.’

에르반이 짠 함정의 그물은 생각보다 질겼다.

과연 빠져나갈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음.”

내가 침음성을 흘리고 있자, 델리우스가 턱을 긁적였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문득, 델리우스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손을 딱 튕겼다. 그리고는 호쾌하게 한참을 웃었다.

“푸하하하핫! 푸하핫!

갑작스러운 행동에, 나는 영문을 몰라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곧 웃음을 그친 델리우스가 내게 말했다.

“주군. 손해를 보지 않을 방법을 떠올렸습니다.”

“응?”

절로 눈이 커졌다.

델리우스는 신이 난 얼굴로 소리쳤다.

“아니, 손해 정도가 아닙니다! 암즈를 이용하면서도, 그쪽과 동등, 또는 그 이상의 분배율을 받아낼 방법이 있습니다. 크, 역시 나는 천재라니까?”

“그래?”

그런 방법이 있다고?

내 시선에, 델리우스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대신.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제가 어떤 이상한 짓을 하고, 기괴한 이야기를 해도 말입니다.”

“기괴한 짓이라니, 그게 무슨…….”

무어라 입을 열려던 나는, 델리우스의 눈에 가득 담긴 확신을 보았다.

전생에 익히 보았던 눈.

마치 시간이 되돌아 간 것 같았다.

델리우스 게인은, 전생과 똑같은 눈빛으로.

아덴 리텐슈노프가 아닌,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를 믿으시겠습니까?”

그 눈빛에, 곧 내 입꼬리도 씩 올라갔다.

“그럼. 당연하지.”

믿는 게 당연하다.

누가 뭐래도, 내 기억 속 최고의 책사는.

바로, 델리우스 게인이었으니까.

* * * * *

델리우스의 말을 믿고, 우리는 곧바로 로도스테 후작령에 있는 티오크의 성소로 향했다.

티오크의 성소 근처에는 이미 도착한 리텐슈노프 쪽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근처에 암즈 쪽 사람들로 보이는 자들은 없었다.

아마 그쪽은 암즈 령 쪽에 진영을 세운 것 같았다.

“충성! 드레커 도련님, 만나뵙게 되어 광영입니다!”

짧은 검문을 통과한 뒤, 우리는 곧바로 진영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가 탄 마차가 천막이 세워진 곳 근처에 도착하자, 저 멀리서 수련생으로 보이는 소년과 기사 한 명이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다가오는 두 사람을 게슴츠레 뜬 눈으로 살폈다.

‘현재 이곳의 관리자인가? 그렇다기에는 너무 어린데.’

부단장 역을 맡기에는 너무나도 젊은 얼굴.

물론 실력이 있다면 충분히 불가능할 것은 없겠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딱히 대단치 않았다.

그 사실에 내가 의아해하고 있으니, 두 사람이 어느새 마차 앞에 도착했다.

둘 중 선임으로 보이는 기사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로도스테에 어서 오십시오, 드레커 도련님. 저는 카빈 랭커스터입니다. 만나뵙게 되어 광영입니다.”

자신을 카빈이라고 소개한 기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금 고개를 꾸벅 숙였다. 카빈은 자신이 데려온 수련생 소년은 소개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내게 알리지 못한 게 아쉬웠는지, 소년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토벌단의 단장님께서 중앙 천막 안에서 도련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카빈은 그렇게 말하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어서 마차 밖으로 나오라는 듯한 제스쳐.

“하.”

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언뜻 보면 카빈의 행동은 예의를 차리는 것 같다.

하나, 사실 그 행동은 굉장히 무례한 짓이었다.

‘이 새끼들이…….’

일단, 명령서 상으로 이 토벌단의 단장은 나다. 당연히 다른 단장이 있을 수는 없다.

물론 임시로 누군가에게 지휘권을 줄 수는 있겠지만…….

‘주인이 왔으면 당장 달려왔어야지.’

나보다 그 단장이라는 놈을 제 윗전으로 생각하지 않고서야 나보고 마차 밖으로 나오라고 할 수는 없다.

‘어처구니가 없군.’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에르반의 수작인지, 아니면 그냥 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불쾌한 일이었다.

‘어떻게 할까…….’

[무어를 어떻게 한다는 게냐? 네 성격이라면 이미 정해져 있거늘.]

데우스의 빈정거림에, 절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내 방식대로 해야지.

난 카빈을 지그시 노려보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토벌단의 단장이라……. 이봐, 카빈 경.”

“예.”

“진짜 죽고 싶은 건가?”

서늘하게 식은 내 목소리에 카빈이 눈을 깜빡였다.

“예?”

나는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피며 말했다.

“본가의 명령서에는 분명 내가 이번 토벌단을 이끌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내가 단장이라는 뜻이지.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단장’이 먼저 와 있을 수 있지?”

“아, 그것은…….”

카빈이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죄송합니다, 드레커 도련님. 제가 말실수를 하였습니다. ‘임시 단장’님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렸어야…….”

-스르릉!

카빈은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허, 허억!”

순식간에 내가 꺼내든 미스틸테인이, 그의 목젖을 겨누었기 때문이다. 내가 검을 뽑는 걸 눈치채지도 못한 모양인지, 카빈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나는 카빈의 목을 지그시 살폈다.

마치 어디를 찌를까 고민하는 것 같은, 그 노골적인 시선에 카빈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그래, 어쨌든 아직 ‘진짜’ 단장이 도착하지 않았으니, 임시로라도 지도자를 세우기는 해야지.”

“아, 아.”

“그러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불문에 붙이겠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미스틸테인을 쥔 손에 힘을 꾹 주었다. 검 끝이 카빈의 목젖을 살짝 찔렀다.

“하지만, 이런 무례는 곤란해.”

“읏……. 죄, 죄송합니다.”

카빈은 식은땀을 흘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를 가만히 노려보다가, 이내 검을 거두었다.

“당장 그 ‘임시 단장’한테 이곳의 진정한 주인을 맞이하러 나오라고 전하도록.”

“예, 예!”

카빈이 재빨리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전해.”

나는 미스틸테인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무례를 용서해주는 건 이번 뿐이라고.”

“아, 알겠습니다.”

“그럼, 가보도록.”

카빈은 내가 축객령을 내리자마자 곧바로 뒤돌아서 도망치듯 진영 안으로 들어갔다.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휘둥그레 뜬 눈으로 바라보던 이름 모를 소년도, 카빈이 떠나자 황급히 그의 뒤를 따라 진영 안으로 들어갔다.

“개판이군.”

나는 힐끔 마차 안의 델리우스와 아멜리아를 바라보았다. 아무 말 없이 나를 응시하는 아멜리아와는 달리, 델리우스는 절레절레 고개를 휘저었다.

“확실히, 상태가 메롱하긴 하네요, 주군.”

델리우스가 볼을 긁적였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우리 집안이 바람 잘 날 없긴 하지.”

“에휴, 벌써부터 내부가 이 꼴이면 암즈 쪽이랑 협상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데요.”

그렇게 한탄한 델리우스는 힐끔 내 눈치를 보더니 덧붙였다.

“뭐, 방해꾼만 없으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만.”

“성공만 하면 상관없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한 마차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저 멀리, 티오크의 성소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였다.

‘검성의 무덤.’

수많은 명검이 묻힌 보물 창고.

그런 곳이기에, 에르반이 이런 웃기지도 않은 수작까지 부리면서 열심히 나를 견제하려는 것이겠지.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문득 누군가가 떠올랐다.

검이라면 눈이 뒤집히는, 어떤 여자가.

나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번 일이 잘 끝나면, 레이첼 누님께, 검이나 한 자루 가져다 드려야겠군.”

그리고, 이번 임무는 완벽하게 끝날 것이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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