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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126화 (126/139)

126화

“결투?”

델리우스의 설명에, 아멜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물었다.

“암즈에서 결투를 신청할 거라는 게 무슨 뜻이야?”

“응?”

나는 의아한 눈으로 아멜리아를 바라보았다.

뭐야, 설마 그 녀석에 대해 모르는 건가?

“너, 다르킨 암즈를 본 적 없어?”

내 물음에 아멜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암즈 쪽 사람들은 딱히 흥미가 안 가서 만난 적은 없어. 서로 나이도 차이가 많이 나니까.”

“음.”

“그래도 어떤 인물인지는 알고 있어. 암즈의 정통 후계자잖아?”

다르킨 암즈는 암즈의 정통 후계자다.

그러나 그는 마르스 호엔슈타펠처럼 제 동생에게 가주 자리를 빼앗기는 능력 없는 병신은 아니다.

암즈는 진짜로 오로지 무력 하나만을 보고 가주 직위를 결정하는 가문.

그런 곳에서 남들을 다 제치고 후계자가 되었다는 건 대단한 실력자라는 의미다.

실제로 현 시점에 다르킨 암즈는 19살의 나이로 5성의 초입에 들어선 강자였다.

“그래서, 다르킨이 너한테 결투를 신청한다는게 무슨 뜻인데?”

아멜리아의 물음에 나는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그 인간, 미친놈이야.”

“무슨 뜻이야?”

“싸우는 데 미쳐 있다고.”

내 대답에 아멜리아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입술을 달싹이며 어떻게 표현을 해야 그녀가 잘 알아들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미친개, 투귀. 그게 다르킨의 별명이야. 싸움 생각만 하면 피가 끓는 건지, 실력이 있는 상대를 만나면 어떻게든 서로 무기를 맞대보려고 한다더군.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한 상대라고 해도 말이야.”

승산이 전혀 없는 싸움이라고 해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에게 싸움은 이기기 위한 게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하는 유희 같은 것이니까.

그야말로 투귀鬪鬼.

내 설명에 아멜리아가 질색을 했다.

“으음. 듣기만 해도 미친 사람 같네.”

“그렇지.”

어떻게 보면 레이첼 리텐슈노프와 같은 과.

솔직히 나도 어지간하면 다르킨과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귀찮게 할 게 뻔하니까.

우리를 바라보던 델리우스 게인이 씩 웃었다.

“그래도 그 인간 덕분에 저희는 기회가 생겼잖습니까? 제가 장담할 수 있습니다. 다르킨 암즈라면 그런 조건을 내걸어도 좋다고 덤빌 겁니다.”

맞다.

다르킨 암즈의 성격상, 대련을 해주는 대가로 우리가 먼저 유적을 공략하겠다는 제안을 던져도 군침을 다실 것이다.

물론 그 또한 가문의 임무를 받아서 이곳에 온 만큼, 그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은 받지 못하겠지만…….

‘함께 공략하자는 제안이라면…….’

장담할 수 있다. 다르킨은 암즈의 정통 후계자라는 권위로 토벌단을 찍어눌러서라도 어떻게든 그 제안을 수락할 게 분명했다.

“믿을 수는 있고?”

잠시 침묵하던 아멜리아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델리우스 게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네. 믿을 수 있습니다. 다르킨이 좀 정신이 나간 사람이기는 해도, 졸렬하거나 비겁한 자는 아니니까요.”

델리우스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확신했다.

“분명 승패가 결정나면 약속을 지킬 겁니다.”

-짝!

나는 가볍게 박수를 쳐,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럼 결정되었군. 다르킨이 찾아와 결투를 신청하는 걸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네.”

내가 내린 결론에 다른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지요.”

“살살 해 드레커. 암즈는 귀찮게 구는 녀석들이야.”

두 사람 모두 결투 그 자체를 걱정하지는 않았다.

이 천막 안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5성 초입 따위는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저, 드레커 님… 지금 밖에…."

“……뭔 소리야?”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하나 있다면.

“리텐슈노프 가의 드레커! 어서 나오라!”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지 세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다르킨 암즈가 나를 만나겠다고 찾아온 것이었다.

* * * * *

“오호, 네가 드레커 리텐슈노프인가?”

덩치 큰 사내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생각했던 것 보다는 키가 큰데? 열두 살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후후후! 언제나 소문은 사실과 다르군!”

사내가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린다. 그가 웃을 때마다 우락부락한 근육이 꿈틀거리는 게 묘하게 징그럽다. 나는 시선을 올려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성인 남성의 허벅지만한 목과 덥수룩한 수염. 어째서인지 탈의한 상의와, 목에 두른 늑대 털목도리.

그리고 완전히 삭아버린 얼굴.

‘이 인간, 분명 열아홉 살 아니었나?’

아무런 정보 없이 만났다면 삼십 대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다르킨은 나이가 들어 보였다.

“…….”

“과묵하군! 생긴 것처럼 냉혹한 성격인가?”

세월의 파도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것 같은 그의 파멸적인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더니, 다르킨은 제멋대로 내가 과묵한 인간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과묵한 게 대체 냉혹한 거랑 무슨 상관인가.

[미친 인간이 맞는 것 같구나. 하긴, 이놈들은 초대 가주부터 정신이 좀 이상한 녀석들이긴 했지.]

암즈의 직계와 대화를 나누어 볼 일이 없었던 탓에, 나는 이쪽 집안의 성격을 그저 소문으로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정말 정신이 없군.’

상대하기 피곤한 족속들이라는 말이, 이런 뜻이었나.

벌써부터 기가 빨리는 기분이다.

“흠.”

나는 뒤통수를 벅벅 긁적이며, 다르킨의 어깨 너머를 살폈다. 암즈 측 토벌단의 숫자는 리텐슈노프 쪽의 인원과 비슷했다.

총원 여덟 명. 아마 실제 숫자는 스물 정도이리라.

‘그럼 우리 쪽과 합치면 총 마흔 명인가.’

그 정도라면 전생에 리텐슈노프에서 이곳의 유적을 토벌할 때 데려온 인원수보다 1.5배는 더 많다.

‘공략은 충분히 성공하겠군.’

그 당시 란체스와 반체스가 사상자 숫자로 질책받은 적은 없었으니, 인원수가 그때보다 더 많은 지금은 토벌단이 입을 피해도 그다지 크지 않으리라.

‘그럼 이제 남은 건…….’

나는 떨떠름한 시선으로 다시 다르킨을 바라보았다.

“흠, 검을 찬 걸 보니 검을 주로 다루는구만. 그렇다면 나도 검을 가지고 왔어야 했나? 이거 미안하군! 지금은 창 밖에 없어서 말이지.”

다르킨은 뭐가 그리 신난 건지, 내가 제대로 듣고 있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일단.”

더 떠들게 나두었다가는 한참 시간이 지날 것 같아, 나는 손을 들어 다르킨의 말을 끊었다.

“이곳에 온 목적부터 말씀하시죠.”

“하하, 그거 참. 단호하구만.”

다르킨이 껄껄 웃으며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야, 왜 왔겠는가?”

다르킨은 등에 맨 창을 툭툭 건드렸다.

그가 씩 웃었다. 고른 치열이 반짝인다.

“당연히 너와 싸우러 왔지.”

“…….”

“그게 아니라면 내가 왜 왔겠는가? 귀찮게시리.”

[진짜 뜬금없는 인간이로다.]

데우스의 촌평을 들으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 이 인간이 그럼 그렇지.’

예상했던 일이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알겠습니다.”

내 대답에 다르킨이 껄껄 웃었다.

“하하! 역시 너도 무인이로군! 참된 무인이라면 오는 싸움은 피하지 말아야지! 아니면 찾아가도 좋고!”

그렇게 말하며 굵직한 손가락으로 등에 매어둔 창을 주섬주섬 푸는 다르킨. 나는 그 모습에 미간을 좁혔다.

“저기, 아직 싸운다고는 안 했는데요?”

“엉?”

창을 손에 쥔 다르킨이 내 말이 끝나자마자 황급히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등허리를 굽힌 채, 한 손으로 창을 쥐고 고개만 삐딱 돌려 날 바라보는 모습.

“푸훗!”

동시에 등 뒤에서 델리우스가 폭소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그를 나무랄 수 없었다.

저 포즈를 하고 있는 다르킨은, 아무리 봐도 고대 역사서에서 본 원시 부족의 야만인 같았으니까.

어째서인지 귓전에 들려오는 우가우가 하는 환청을 무시하며, 나는 헛기침을 했다.

“아니, 그렇잖습니까? 제가 그쪽이랑 왜 대련을 해요?”

내 대답에 다르킨이 펄쩍 뛰며 소리쳤다.

“뭐가 그렇다는 건가! 실력이 있는 무인이 서로 만나게 되었으면, 무기를 맞대어 서로 몸의 대화를 하는 것이 하늘의 이치인데! 도망치지 말게. 맞서 싸워!”

“뭘 맞서 싸우라는 겁니까. 내가 이득이 없는데.”

“나와 무기를 겨루는 것 자체가 이득일세.”

다르킨이 가슴을 활짝 펴며 외쳤다.

그의 대흉근이 좌우로 꿈틀거린다. 동시에 내 곁에 있던 아멜리아의 얼굴이 무섭도록 굳어진다.

그녀의 마나가 맹렬히 휘몰아치려는 걸 느끼자마자, 나는 황급히 아멜리아의 손목을 꾹 잡으며 외쳤다.

“일단 그놈의 옷 좀 입으시죠. 남사스럽습니다.”

“남성성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네.”

“알겠으니까 제발 좀 입으십시오. 옷 안 입으면 대련이고 뭐고 안 합니다.”

내가 단호하게 선을 긋자, 다르킨이 시무룩해졌다.

동시에 뒤에 있던 암즈 측 기사가 황급히 셔츠와 제복을 들고 달려와 다르킨에게 건넸다.

다르킨이 주섬주섬 옷을 입자, 나는 그제야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만약 아멜리아가 무언가 일을 벌였다면, 수습이 참 귀찮았을 것이다.

“드레커.”

“어, 왜?”

“언제 놔 줄 거야?”

그제야 나는 내가 아직도 아멜리아의 손목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슬쩍 손을 풀자, 아멜리아는 내가 붙잡았던 손목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다 되었네!”

그 무렵, 다르킨이 옷을 전부 갈아입고 다시 등장했다.

“자, 이제 무기를 맞대자꾸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볼 이득이 없으면 안 합니다.”

“아니, 이득이 있다니까?”

“뭔 이득이 있습니까?”

다르킨이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주먹을 흔들었다.

“이, 나와 겨루어 보는 것 자체가 이득이지! 너도 나름 강자이지만, 나보다는 약하잖아? 그러니 나와 겨룸으로서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갈 수 있을 터.”

다르킨이 이를 드러내며 미소 지었다.

“그러니 어찌 이득이 아니겠는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곧 피식 웃었다.

“……그럼 더욱 더 내가 이득이 없는데?”

“뭐라?”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다르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팔짱을 낀 채, 다르킨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와 그쪽이 검을 맞대면, 배워가는 건 그쪽일텐데. 그럼 내가 더 손해 아닙니까? 뭐, 얻는 게 없는데.”

“……그 말은 네가 나보다 강하다는 뜻인가? 내가 듣기로는 너는 4성 정도라고 하였는데. 나는 5성이다만.”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그렇죠?”

다르킨이 불신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조금도 믿을 수 없군.”

“믿는 건 자유인데, 하여튼 제 입장은 그러합니다. 그러니 저는 대련을 안 할 겁니다. 저와 결투를 하고 싶으면, 입찰을 하십시오. 입찰을.”

내가 팔짱을 낀 채 그렇게 말하자, 다르킨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모습.

“…….”

그러나, 곧 다르킨은 눈을 부릅떴다.

다시금 뜬 다르킨의 눈은 번쩍이고 있었다.

“좋다!”

“어우, 깜짝이야.”

“대련을 입찰하겠다. 하지만, 고작 대련하는 것만으로 대가를 줄 수는 없지.”

다르킨이 창을 휙 빼들어 나를 겨누었다.

“대련에서 나를 상대로 승리하라! 그렇다면 대가를 주마. 네가 부탁하는 걸 들어주겠다!”

동시에 그의 몸의 근육이 불끈거리며 방금 입은 와이셔츠가 툭툭 찢어졌다. 동시에 아멜리아가 휙 돌아서 저 멀리 뒤로 가버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다르킨에게 물었다.

“뭐든?”

“무엇이든지!”

“뭐, 그렇다면…….”

슬쩍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자, 천막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아멜리아의 모습과 함께 내게 몰래 엄지손가락을 내밀어 보이는 델리우스가 보였다.

나는 다르킨에게 씩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좋아, 거래를 받아주지.”

찰진 호구를 낚았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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