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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128화 (128/139)

128화

-콰광!

천지를 뒤흔드는 것 같은 폭음과 함께 다르킨 암즈가 뒤로 나가떨어진다.

멀리서 결투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델리우스 게인은 그 광경을 보고 남몰래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역시, 주군!’

드레커 리텐슈노프가 결투에서 승리했다.

열두 살의 나이로 5성의 실력자인 다르킨 암즈를 꺾는 데 성공한 것이다.

“후우.”

델리우스는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군. 계획대로 주군께서 승리하셨으니.’

무구라고는 한평생 쥐어본 적도 없던 델리우스마저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싸움이었다.

그만큼 격렬했고, 누구도 승패를 쉬이 짐작할 수 없어 보이는 결투였다.

……물론 사실 델리우스가 무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던 것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만약 어느 정도 실력 있는 무인이 이번 결투를 보았다면, 드레커가 시종일관 다르킨을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델리우스는 무인이 아니었기에, 그런 사실을 알아차릴 식견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딱히 델리우스에게 중요한 것도 아니었으니, 더더욱.

“좋아.”

델리우스는 손에 흥건한 땀을 옷소매에 슥슥 닦고는, 주먹을 쥐었다 피며 생각했다.

‘이번 유적 토벌 임무는 쉽게 끝마칠 수 있겠군.’

델리우스는 바닥에 쓰러진 다르킨 암즈를 바라보며 미소를 입에 머금었다.

‘다르킨은 절대로 허언을 하지 않지.’

스스로 약속한 게 있는 만큼, 분명 드레커가 동업(?) 제안을 한다면 거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좋아할지도 모른다.’

싸움광, 투귀라고 불리는 자다.

자신을 꺾은 상대와 함께 합을 맞추어 싸워볼 기회가 주어졌는데, 다르킨이 절대로 놓칠 리가 없었다.

“아주 좋아.”

어쨌든.

드레커의 활약 덕분에 이번 유적 토벌 임무는 큰 문제없이 성공하리라.

그렇게 결론을 내린 델리우스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

공터 왼쪽에 리텐슈노프 측 토벌단의 부단장과 그 휘하 기사로 보이는 자의 얼굴이 보였다.

창백해진 얼굴로 대련장을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

마치 나라를 잃은 것 같은 얼굴이다.

‘표정 관리 진짜 못 하네.’

델리우스는 두 사람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주군을 방해하려는 음모를 꾸밀고 있다고 해도, 최소한 안 들키려고 노력은 해야지.’

저렇게 대놓고 감정을 훤히 드러내고 있으면 세상에 그 속내를 못 알아볼 사람이 대체 어디 있겠는가?

“무능하기는.”

델리우스는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작게 심호흡했다.

‘이제는 내 차례다.’

델리우스는 목깃을 조이는 넥타이를 살짝 풀었다.

사전에 약속한 대로, 드레커는 다르킨를 꺾고 협상의 기회를 붙잡아 왔다.

그럼 이제 그 협상을 완벽하게 이끌어, 최대한의 이익을 얻어내는 것은 바로 책사인 자신의 임무.

“주군께서 보여주신 신뢰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델리우스는 공터 한 가운데에서 다르킨과 무어라 대화를 나누는 드레커를 보며 고개 숙여 다짐했다.

* * * * *

“형님을 형님이라고 부르지 못하다니!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드레커 형님, 아우가 존경심을 담아 부르오. 부디 아우의 충정을 받아주시오!”

다르킨이 호들갑을 떨며 내게 고개를 숙였다.

‘아니, 이 미친 인간이 진짜……!’

그 괴상한 행태에 절로 얼굴이 일그러진다.

“제발 미친 소리 좀 그만 하십시오. 당신 나보다 일곱 살이나 더 나이가 많다고.”

“나이는 중요치 않소. 중요한 건 강함이오.”

다르킨은 그렇게 대답하며 내 몸을 힐끔 살폈다.

곧 그가 헛기침 하며 고개를 돌렸다.

“물론, 형님께서는 위대한 근육이 조금, 아주 조오금 빈약하지만…… 그래도 나보다는 강하니 형님이오.”

동시에 어째서인지 다르킨의 근육이 꿈틀거린다.

그 모습에 절로 이마가 지끈거렸다.

‘이 근육 털돼지가 돌았나 진짜.’

대체 뭐 하는 짓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찡그린 미간을 꾹꾹 눌러 폈다. 절로 머리가 아팠다.

물론 다르킨은 내 심정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저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다르킨이 일부러 나를 엿먹이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바보에 불과한 것인지 의심하는 사이, 그는 박살 난 채로 바닥에 굴러다니는 자신의 창을 집어들었다.

“완전히 부셔졌군!”

“배상을 원하면 우리 가문으로 청구하시죠.”

내 말에 다르킨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고는 반짝이는 이를 씩 드러내며 웃었다.

“한데, 형님. 아직 원하는 것을 말씀하지 않으셨소.”

“아니,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내가 정색했지만, 다르킨은 그저 껄껄 웃기만 했다.

“형님을 그럼 형님이라고 부르지, 뭐라고 부르오?”

저딴 소리나 지껄일 뿐.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이 인간,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군.’

다르킨 암즈는 레이첼 리텐슈노프 같은 종류의 사람이다. 그들은 상대방의 의사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자신의 흥미만 고려하는 광인의 무리였다.

말이 통할 리가 없다.

[무어, 어차피 상관없잖느냐? 그저 호칭일 뿐이거늘. 축하한다, 꼬맹아. 귀여운 아우가 생겼구나!]

‘미친 털복숭이 근육뇌를 잘못 말한 거 아닙니까?’

내가 빈정거렸지만, 데우스는 폭소할 뿐이었다.

결국, 나는 뚱한 얼굴로 혀를 찼다.

“쯧, 어쩔 수 없지.”

“오! 드디어 이 아우를 인정해주는 것이오?”

다르킨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수염 난 근육 사내가 눈을 반짝이는 광경이라니.

정말로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일단 대련을 이겼으니, 요구사항을 말하겠습니다.”

“이 아우를 무시하지 마시오. 마음이 아프오.”

“……요구사항을 말하겠습니다.”

내가 끝까지 무시하자, 다르킨이 입맛을 다셨다.

“쩝, 일단 알겠소. 말씀해보시오. 최대한 형님의 부탁을 들어드리도록 노력하겠소. 하지만…….”

다르킨은 말끝을 흐리며 힐끔 자신의 뒤쪽에 서 있는 암즈 측 기사들을 곁눈질했다.

아직도 휘둥그레 눈을 뜨고 이쪽을 바라보는 기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내가 결투에서 다르킨을 이겼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 것이겠지.

다르킨은 다시 시선을 돌리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당연히 너무 무리한 부탁은 불가능하오. 이 아우 또한 가문의 명령을 받고 온 만큼, 물러설 수 없는 선이라는 것이 존재하니까 말이오.”

“그건 나도 감안하고 있습니다.”

“형님, 아우에게 말을 낮추지 마시오.”

“……젠장, 감안하고 있어. 이러면 됐냐?”

결국, 나는 두 손을 들어버렸다.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이니 하는 무가치한 말싸움을 계속하고 있느니, 차라리 나보다 일곱 살 많은 동생을 두는 게 더 속이 편할 것 같았다.

내가 항복의 제스처로 두 손을 들자, 그제야 다르킨은 호탕하게 웃었다.

“아주 바람직하오, 형님.”

“……그래, 참 바람직하네. 동생.”

전혀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래서, 요구 사항이 무엇이오?”

속으로 쓴웃음을 짓고 있으니, 다르킨이 웃음기를 빼고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담담히 대답했다.

“이 유적을 두 가문이 함께 토벌하는 것.”

“함께?”

뜬금없는 소리라고 생각했는지, 다르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나, 곧 그는 알겠다는 듯 가벼이 손뼉을 쳤다.

“아하, 확실히. 괜찮은 선택이오, 형님.”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두 가문이 힘을 합쳐 유적 토벌을 진행하고, 그 기여도에 따라서 아티팩트를 나눈다. 이 정도라면 암즈 측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이잖아?”

“그러할 것이오. 물론, 아무리 선을 넘지 않았다고 해도 가문에서 반발을 안 할 리는 없겠지만…….”

다르킨 암즈가 씨익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가지런한 치아가 번쩍인다.

“내 힘으로 충분히 ‘설득’할 수 있소.”

동시에 불끈 근육에 힘을 주는 다르킨.

뭐지? 몸으로 설득하겠다는 소리인가?

그 어이없는 대답에 내가 말없이 그를 가만히 바라보니, 다르킨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재미없으셨소, 형님?”

“재밌으라고 한 거냐?”

“나름의 유머였다오.”

어떤 부분에서 웃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뭐, 일단 자세한 협상은 여기 있는 녀석이랑 상의하고 결정하면 될 거야.”

나는 천천히 내게 다가온 델리우스를 가리켰다.

델리우스는 내 손짓에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델리우스 게인이라고 합니다. 고귀한 암즈의 정통 후계자를 뵙게 되어 참으로 영광입니다.”

“흠.”

델리우스의 인사에, 다르킨이 콧소리를 내었다.

다르킨은 매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델리우스의 팔다리를 슬쩍 살피더니, 이내 불만스럽다는 듯 말했다.

“단련이 필요해 보이는 녀석이로군.”

묘하게 섬뜩하기까지 한 발언에 델리우스가 고개를 숙이다 말고 움찔 몸을 떨었다.

‘이 미친 근육덩이가 내 책사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나는 슬쩍 다르킨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뭔 놈의 단련이야? 쟤는 책사라고.”

“그거 아시오, 형님? 뇌도 근육으로 만들어져 있소.”

“와, 진짜. 가지가지 하네, 진짜.”

“근육이 없으면 진짜 사나이라고 할 수 없소. 책사라고 해서 몸에 칼이 안 들어가오? 오히려 나약하기만 한 녀석은 주인의 발목을 잡을 수 있소.”

다르킨은 콧김을 내뿜으며 장광설을 토했다.

“단련을 통해 자신을 지킬 줄 알아야 진정한 신하라고 할 수 있소! 이 아우만 해도 그렇소. 아우를 따르는 신하들은 전원 훈련을 통해 근육을 단련하고 체력을 가꾸고 있소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오?”

그 말을 듣자, 문득 안경을 낀 빼빼 마른 학자들이 헐떡이며 연무장을 내달리는 광경이 상상되었다.

나와 같은 상상이라도 한 것인지, 등 뒤에서 델리우스가 몸을 부르르 떠는 게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네 신하들이 불쌍하네. 하여튼, 자세한 협상은 델리우스와 하면 돼. 델리우스, 네게 전권을 위임할테니, 암즈와 협상을 끝마치고 오도록.”

“알겠소, 형님.”

“아하하……. 알겠습니다.”

델리우스는 쭈뼛대며 자신의 볼살을 불만족스럽게 쳐다보는 다르킨을 지나쳐, 황급히 암즈 쪽 기사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째, 점점 발걸음이 빨라지는 게, 어지간히도 다르킨이 두려운 것 같았다.

“매일 구보를 열 바퀴씩……. 기마 자세와 팔굽혀 펴기를 100번씩 시키면…….”

‘뭐, 저 꼴을 보면 누구라도 두려움에 떨겠지만.’

번들거리는 눈으로 델리우스를 바라보며 무어라 중얼거리는 다르킨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다르킨 님.”

암즈 쪽에서 한 명의 기사가 황급히 달려왔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게, 당황한 눈초리.

다르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무슨 일인가?”

“단주님께서 다르킨 님을 뵙고자 합니다.”

“단주님께서?”

다르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또한 의아한 눈으로 기사를 바라보았다.

‘단주?’

‘단주’는 암즈의 고유한 직책명으로, ‘단’이라는 단체를 총괄하는 수장을 말했다.

리텐슈노프로 친다면 기사단의 단장 정도의 직위인데, 사실 정확히는 그보다 훨씬 더 높은 위치였다.

리텐슈노프에는 수십 개의 기사단이 존재하지만, 암즈의 ‘단’은 고작 열 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런 자가 이번 임무에 참가했다고?’

의아한 일이었다.

단주 쯤 되면 어지간한 일로는 잘 움직이지 않는다.

엉덩이가 무거운 족속들인 만큼, 웬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번 일이 단주가 움직일 정도로 무게감 있는 일이라는 건데…….

‘티오크의 성소가 그 정도는 아닐 텐데?’

아무리 검성의 무덤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유적.

내부에 있는 아티팩트라고 해도 고작 검 몇 자루다.

단주가 움직일 정도는 절대로 아니었다.

‘……수상한데.’

나는 팔짱을 낀 채, 조용히 그들을 지켜보았다.

“단주님께서 어째서 나를? 분명 오늘은 몸이 피로하셔서 진영에서 쉬신다고 하시지 않으셨던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습니다.”

“허어, 그런가. 그럼 곧바로 단주님께 가면 되겠는가?”

“아닙니다, 사실은…….”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노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우리 세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소리가 들려온 곳에는 수염을 길게 기른 백발의 노인이 서 있었다.

노인은 인자한 얼굴로 허허 웃고 있었다. 겉으로만 보면 선하고 자애로운 사람으로 보인다. 눈에는 인정이 가득하고, 입은 은은한 미소만을 머금고 있다.

하나.

“…….”

나는 필사적으로 굳은 얼굴을 숨겼다.

‘뭐야, 저 배신자가 왜 여기 있어?’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노인의 이름은 빌헬름 슈미트.

암즈의 10번 단의 단주였던 노인이자.

전생에 다르킨 암즈를 암살하려고 시도한 자였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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