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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129화 (129/139)

129화

“단주님!”

다르킨이 화색을 띠며 빌헬름 슈미트에게 달려갔다.

“어찌 찾아오셨습니까? 분명 피곤하시다고…….”

“허허, 다르킨 님께서 리텐슈노프의 자제와 결투를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늙은 몸이 어찌 침상에 가만히 누워있을 수 있겠습니까? 한데…….”

빌헬름은 온화한 얼굴로 박살이 난 공터를 힐끔 바라보고는, 다시금 웃었다.

“이미 서로 간에 승부가 난 모양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참으로 아쉬운 일입니다. 이 늙은 몸도 그 결투를 한번 구경하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빌헬름이 안타깝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그 말에, 다르킨이 미안한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이런. 제가 미처 단주님을 배려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재밌는 구경을 놓치게 만들다니, 미안합니다.”

“허허, 아니요. 아닙니다. 그래서…….”

빌헬름이 싱긋 웃으며 다시금 나를 바라보았다.

“누가 승리하였지요?”

마치 탐색하는 듯한 시선.

[마음에 안 드는 눈이로다.]

데우스 말대로, 껄끄럽기 그지없는 눈빛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무표정한 얼굴로 다르킨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에 다르킨이 겸연쩍은 얼굴로 빌헬름에게 말했다.

“제가 패배하였습니다, 단주님.”

그 대답에 빌헬름의 눈이 순간 흔들렸다.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를 완전히 압도하셨지요.”

“압도…….”

그 말에 빌헬름은 약간 놀란 눈으로 다시금 나를 바라보았다.

곧 빌헬름의 시선이 바뀌었다.

묘한 눈빛.

다르킨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그건 분명 경계의 눈초리였다.

그 시선에 담긴 의미를 눈치챈 데우스가 내게 물었다.

[저 늙은이는 왜 너를 경계하는 거냐?]

‘제 예상이 옳다면, 아무래도 자기가 계획한 일에 방해될 수도 있다고 여겨서 그런 것일 겁니다.’

[계획? 무슨 계획 말이더냐?]

데우스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저 늙은이. 다르킨 암즈를 암살하려 할 겁니다.’

[암살?]

‘네.’

그 말에 데우스가 깜짝 놀랐다.

[왠 암살이더냐? 저 녀석, 암즈의 단주라고 하지 않았더냐? 단주가 왜 가주의 혈통을 암살하는 게야?]

나는 빌헬름을 주시하며 대답했다.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은 전생에 10번 단주가 다르킨 암즈를 암살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도망쳤다는 겁니다.’

그건 꽤 큰 사건이었다.

수십 년간 암즈에 충성을 바친 단주가, 뜬금없이 가문의 후계자 목을 치려고 했던 사건이니까.

결과적으로 실패하기는 했으나, 그 충격의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어지간하면 가문의 사람들을 내치지 않은 암즈가 대대적인 숙청을 벌였을 정도이니까.

[허어. 어찌 가주에게 충성을 맹세한 단주가 칼을 거꾸로 쥘 수 있다는 말인가. 말세로다, 말세야.]

‘그러게 말입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여전히 빌헬름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온화하기 그지없는 시선.

하나, 아멜리아의 눈을 몇 번이고 마주했던 탓일까?

나는 알 수 있었다.

저 눈빛 너머에는 경계와 의심이 담겨 있었다.

“…….”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빌헬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드레커 리텐슈노프입니다. 반갑습니다.”

내 인사에, 빌헬름이 웃으며 대답했다.

“허허, 빌헬름 슈미트입니다. 늙은 몸에 과분하게도 암즈의 10번 단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내 대답에 빌헬름의 눈이 순간 가늘어졌다.

집중하지 않았다면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의 변화였다. 아마도 내가 한 대답이, 그저 평범한 인사치레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허허…….”

빌헬름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웃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다르킨에게 물었다.

“한데, 유적 토벌은 어떻게 하기로 하였습니까? 고고학자들에게 들어보니, 분명 아측이 더 유리하다고 하였는데……. 어찌, 협상은 잘 진행이 되었습니까?”

“아, 그게…….”

그 말에 다르킨이 겸연쩍은 얼굴로 대답했다.

“리텐슈노프와 함께 들어가기로 하였습니다.”

그 말에 빌헬름이 눈을 끔뻑였다.

“허어, 어찌 그런 결정을……?”

다르킨은 부끄러운 듯 솥뚜껑 같은 손으로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결투의 대가로 승리하는 쪽이 원하는 것을 한 가지 들어주기로 하였습니다. 한데, 제가 패배하였으니 형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들어줄 수밖에 없잖습니까?”

“아니, 그것은……. 그보다 형님이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늙은이가 알기로는 분명 드레커 님이 다르킨 님보다 나이가 적은 거로…….”

“단주님.”

“…….”

“형 동생을 나누는 데, 나이는 중요치 않습니다.”

다르킨이 당연한 사실을 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것은 가진 바 힘이 얼마나 뛰어난가. 그것뿐이지요. 그리고 저는 형님께 패배하였습니다. 그러니 아우가 되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단주님?”

“…….”

그 대답에 빌헬름이 어처구니없다는 눈빛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뭐라고 말은 하고 싶은데, 딱 봐도 전혀 들어먹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는 듯한 상황.

결국, 빌헬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오랜 경험으로 저렇게 나오는 다르킨을 막아설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대체 어떤 취급을 당하고 있는 거야, 저 녀석.’

자신을 노리는 암살자마저도 포기하다니.

여러 모로 대단한 인간이다.

“허허……. 그럼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그것은…….”

다르킨은 말끝을 흐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팔짱을 낀 채 대답했다.

“일단은 협상이 끝나면 바로 출발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양측 가문의 힘을 합치면 아무것도 아닌 유적을 토벌하는데, 며칠이나 쓸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렇습니까.”

내 말에 빌헬름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남들이 보면 그저 가문의 것이어야 할 이익을 다른 곳과 나누어야 하는 현 상황이 불만족스러워서 그러는 것이라고 느끼겠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인간…….’

저 표정은, 자신의 계획이 어그러진 탓에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것.

빌헬름 슈미트는 이곳에서 다르킨을 암살하려는 게 틀림없었다.

‘……귀찮은 일에 말려들어 버렸군.’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어째서 몇 년 후에야 일어날 암살 사건이 지금 내 앞에서 일어나는 걸까.

‘아니, 이것 또한 내가 일으킨 나비효과인가?’

원래 예전부터 기회를 노리던 빌헬름이, 우연히 이곳 유적 토벌의 우두머리로 다르킨이 참가한다는 소식에 옳다구나 암살을 시도하려는 것이겠지.

“……내가 싼 똥을 내가 치우는 건가.”

“음? 뭐라고 하셨소, 형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좀, 귀찮아 질 것 같다.

* * * * *

유적의 분배 문제는 원만하게 합의되었다.

델리우스의 활약 끝에, 출토되는 아티팩트의 45%를 리텐슈노프가 가져가기로 결정이 끝난 것이다.

“나름대로 최대한 당겨봤는데, 이게 한계였습니다. 송구합니다, 주군.”

델리우스가 분한 얼굴로 내게 보고했다. 아무래도 더 높은 분배율을 받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모양.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45%면 충분히 잘한 거지. 더 가져오는 건 내가 봐도 무리다.”

애초에 원칙적으로 따지면 한 줌도 못 얻었을 아티팩트다. 그걸 절반 남짓 받아온 것부터가 엄청난 일.

그야말로 델리우스 게인만이 낼 수 있는 성과였다.

“좀 더 자신감을 가져라. 이걸로도 충분히 자랑할 수 있는 성과니까.”

내 치하에 델리우스가 감격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군.”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전방에 시선을 집중했다.

‘저곳이 티오크의 성소…….’

숲 한가운데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 석제 사원.

크기 또한 큼지막한 게, 어디서든 눈에 띈다.

식견이 없는 사람이 봐도 곧바로 유적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곳이었음에도 티오크의 성소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넓은 범위의 인식 저해 마법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나는 유적 주위를 촘촘히 둘러싼 채 세워진 수정들을 흘낏 바라보았다. 완전히 금이 간 수정들. 저 수정이 바로 인식 저해 마법의 중심축이었다.

물론 지금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평범한 수정일 뿐이다. 수정에 흥미를 보이는 아멜리아를 뒤로한 채, 나는 기사들과 함께 사원 한 가운데로 향했다.

“저곳입니다.”

사원의 중심에는 신전으로 보이는 건축물이 하나 있었다.

건축물 안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넓은 계단이 존재했다.

마치 심연의 입구처럼 보이는 계단을 내려다보던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내부에 관한 정보는?”

내 물음에 암즈의 기사 한 명이 대답했다.

“아직 진입을 시도하지 않았기에 정보가 없습니다. 다만 입구 부분에 마법적인 함정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뭐, 함정 따위가 있으면 또 어떻소? 다 부수고 넘어가면 될 일이오, 형님.”

“미친 소리는 작작 하자, 동생아.”

여전히 상의를 탈의한 채 근육을 불끈거리는 다르킨에게 핀잔을 준 뒤, 나는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며 침을 삼켰다.

‘씁.’

정보가 없다는 건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다. 내부에 어떤 함정이나 몬스터가 있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도 이곳은 잘 모르는데.’

전생에 이 유적을 탐사한 건 란체스와 반체스.

그 당시 나는 쇠매 기사단에서 구르고 있었기에, 딱히 들은 정보가 없었다.

‘뭐, 그 머저리 둘이 이끄는 기사로도 충분히 공략에 성공했으니, 그다지 어려울 건 없겠지만…….’

문제는 불안 요소가 있다는 것이겠지.

나는 유적을 살피는 빌헬름을 쳐다보았다.

그저 평범하게 벽에 그려진 벽화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듯했지만, 그의 시선은 꾸준히 주변을 훑고 있었다. 아마, 지형을 기억해두려는 것이겠지.

‘다르킨을 죽이고 도망칠 때, 또는 도망치는 다르킨을 추적할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겠지.’

저런 걸어 다니는 폭탄을 두고 유적을 공략하는 게 쉬울 리가 없다.

다른 사람들은 진실을 모르니 별로 신경 쓰이지 않겠지만, 당장 모든 사실을 아는 나로서는 저 인간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걱정될 뿐이었다.

“드레커.”

문득 등 뒤에서 들려온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힐끔 고개를 돌렸다. 아멜리아가 수정 조각을 손에 쥔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아멜리아가 수정을 아무렇게나 휙 던지며 말했다.

“내 생각에는, 마법적인 함정은 무시해도 될 거야.”

“그래?”

“응. 수정에 걸려 있는 마법 자체가 조악해. 이 정도 수준이라면 이곳에 있는 마법 함정의 수준은 별 볼 일 없을 거야. 설사 있다고 해도 다 낡았을 테고.”

그렇게 말하며 나를 지그시 응시하는 아멜리아.

나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그럼 그냥 들어가면 되겠군.”

유적에 흔히 설치되는 기계적인 함정이야, 이곳의 기사들 실력이라면 충분히 받아칠 수 있을 테니까.

‘역시 괜히 체스 형제가 성공한 게 아니었군.’

이 정도라면 충분히 공략 가능한 수준이다.

“오호! 그렇단 말이오?”

한편, 아멜리아가 내린 결론을 들은 다르킨이 씩 웃었다. 다르킨은 아멜리아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확인 작업 참으로 감사하오. 역시, 형님이 선택한 형수님답소.”

그 말에, 절로 얼굴이 구겨졌다.

“……누가 누구 형수라는 거야, 이 미친 털보야.”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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