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유적 공략은 일반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던전화 된 유적이라면 더욱 더 그랬다.
안 그래도 침입자를 막기 위해 함정과 가디언, 방어 마법으로 가득 떡칠된 곳이 유적인데, 던전화 되었다는 건 몬스터라는 방해물까지 곁들여졌다는 뜻이니까.
일반 유적과 비교하면 난이도가 말도 안 되게 높을 수밖에 없었다.
당장 이전에 들어갔던 ‘아라크네의 연옥’만 해도 그렇다.
내부에 설치된 함정이나 가디언 따위는 솔직히 별 볼 일 없는 유적임에도, 내부에 10급 몬스터가 똬리를 트는 바람에 수십 년간 아무도 공략하지 못한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어버리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유적 공략 작업은 ‘보통’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서 최대한 신중히, 조심스럽게 진행한다.
던전화 된 유적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고.
‘……일반적으로는 그렇겠지.’
그러나.
암즈와 리텐슈노프의 토벌단은 달랐다.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시간을 꼼꼼히 투자하는 정석이 아닌, 그야말로 폭풍처럼 몰아치는 듯한 방식의 거침 없는 공략.
그렇게 하는 이유?
간단하다.
‘이 정도 전력이면, 그딴 거 고려 안 해도 되니까.’
3성 기사 7명, 4성 기사 23명, 그리고 5성 기사 8명.
거기에 더불어 감독 역할을 하는 8성 기사 1명까지.
비전투 인원이라고 할 수 있는 상급반 수련생들과 나, 아멜리아, 델리우스, 그리고 다르킨을 제외해도 이 정도 숫자였다.
솔직히 말해서, 고작 중형 유적 한 곳을 공략하기 위해서라기엔 너무나도 과잉 전력이다.
당연히 공략 진행 속도는 월등히 빠를 수밖에 없다.
“1층 정리, 끝났습니다.”
암즈 쪽 기사의 보고에, 나는 입맛을 다셨다.
‘정말 빠르군.’
티오크의 성소는 계층형 유적.
계층형 유적은 특성상 아래층으로 갈수록 난이도가 증가한다. 그렇기에 1층 공략은 전체적으로 볼 때는 그다지 어려운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고작 3시간 만에 끝날 일은 아니지만.
“빠르군. 이 속도라면 모레쯤에는 공략이 끝나겠소, 형님.”
다르킨이 껄껄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렇겠지.”
그렇게 대답하는 순간, 나는 의아한 점을 깨달았다.
‘뭐지?’
분명 전생에는 이렇게 빨리 끝나지 않았었는데?
티오크의 성소는 총합 5층의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연하지만, 지금의 공략 속도라면 아무리 늦장을 부려도 최종 공략에 삼 일 이상 걸릴 리는 없다.
아무리 계층형 유적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난이도가 올라간다고 해도, 그 상승 폭이 갑자기 수직으로 치솟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이상한데.’
문제는 전생에 체스 형제가 이 유적을 공략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분명 최종 공략에 일주일 정도가 걸렸다고 했는데…….’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체스 형제가 그 당시 데려간 기사들의 수준이 지금과 비교할 때 크게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공략에 걸리는 시간 또한 비슷해야 맞다.
하나, 예상되는 공략 시간은 분명히 차이가 났다.
‘못해도 4일의 시간이 빈다.’
체스 형제가 설렁설렁 놀면서 유적을 공략했을 리는 없을 테니, 틀림없이 다른 이유가 있었으리라.
그리고.
‘공략 일정이 예상보다 4일이나 더 늘어날 만한 일이라면 역시 그것뿐이겠지.’
아무래도, 숨겨진 또 다른 유적이 있는 것 같았다.
* * * * *
“유적을 조사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주군?”
1층의 공략을 끝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간.
무너진 기둥 위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던 델리우스는, 내 뜬금없는 명령에 눈을 깜빡였다.
“조사라니요, 여기서 더 조사할 게 있습니까?”
델리우스는 콜마운트 식 특제 칠면조 샌드위치(마리 유모가 전수한 레시피를 이용해 바르헴 영지의 주방장이 만들었다고 한다.)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걸리는 게 있어서.”
“걸리는 것, 말씀이십니까?”
델리우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암즈 측 기사들을, 그중에서도 특히 빌헬름 슈미트의 거동을 살폈다.
빌헬름 슈미트는 여전히 유적 내부의 지형을 살피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딱히 우리 쪽을 주시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정도 거리라면…….’
아마 대화가 새어 나갈 리는 없으리라.
그제야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네가 볼 때, 이 유적은 몇 계층짜리 유적이지?”
내 물음에 델리우스가 미간을 좁혔다.
“음.”
델리우스 또한 눈치가 좋은 자. 내가 목소리를 줄인 이유를 곧장 깨달은 델리우스가 슬쩍 내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확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짧으면 3층. 아무리 깊어도 5층일 것 같습니다.”
“3층에서 5층.”
델리우스는 자신이 깔고 앉은 기둥을 탁탁 두드렸다. 기둥에는 못생긴 돼지 문양이 각인되어 있었다.
“이 기둥에 음각된 사자 보이십니까?”
“그게 사자였나?”
돼지인 줄 알았는데.
“네. 좀 못생기긴 했는데, 일단 사자입니다. 350년 전쯤에 유행하던 문양이죠. 그리고 그 시절에 만든 유적은 전통적으로 3층을 기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5층은 넘기지 않았고요.”
“아무리 많아도 5층이라는 거군.”
그렇다는 건, 내 예상이 맞다는 뜻이다.
“네.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시는지……?”
델리우스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다시금 암즈 쪽을 살피고는. 조용히 미스틸테인의 검집으로 바닥에 슥슥 글자를 적었다.
「이중 유적, 비밀 계층」
내가 바닥에 적은 내용을 본 델리우스의 눈이 커졌다. 델리우스는 황급히 목소리를 깔며 내게 속삭였다.
“이거, 확실한 정보입니까?”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 무언가를 오물거리는 아멜리아를 턱짓했다. 전생의 기억으로 얻은 정보의 출저를 아이스본으로 세탁하기 위해서였다.
‘미안하다. 자꾸 출처로 써먹는군.’
내가 아멜리아에게 닿지 않을 사과를 하는 사이, 델리우스는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중 유적이라니……. 그렇다면 숨겨진 입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
“아마도 그렇겠지. 떡하니 5층에 진입 통로가 있으면, 그건 그냥 6계층이니까.”
“으음.”
델리우스가 찡그린 이마를 마구 문질렀다. 곧, 그는 품속에서 수첩 한 장과 펜을 꺼내 들곤 내게 물었다.
“저에게 이 정보를 말씀해 주신 것은…… 이중 유적의 입구를 찾으라는 명령입니까?”
“그래. 가능하겠어?”
내 말에 델리우스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으으, 일단은 해보겠습니다. 결국, 유적이라는 건 상징적인 의미가 가득 담긴 공간이니까요. 그 상징을 전부 해석하면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부탁하지.”
나는 델리우스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명령으로 충분합니다, 주군.”
내 손길에 델리우스가 씩 웃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지금 당장 이중 유적을 찾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안 찾는 게 더 이득일 수 있다.
‘분명, 두 번째 유적에 있는 보물들이 더 가치가 높겠지. 꾸역꾸역 숨겨둔 이유가 있을 테니까.’
그리고.
암즈 쪽은 아직 티오크의 성소가 이중 유적이라는 진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니 대충 첫 유적만 털어먹고, 나중에 찾아와 두 번째 유적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해도 상관은 없었다.
‘문제는 저 인간이라는 말이지…….’
자연스럽게 시선이 절로 저 멀리 서 있는 빌헬름 슈미트를 향했다. 8성의 경지에 오른 노인은 여전히 주변을 샅샅이 살피며 공간의 구조를 눈에 담고 있었다.
[저 정도로 철저하니, 오히려 병 같구나. 애초에 8성 대 5성이면 도망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거늘, 어찌 저리 꼼꼼하게 준비한다는 말이더냐?]
‘뭐, 원한이 그만큼 큰가 보죠.’
물론 나는 빌헬름이 왜 다르킨을 암살하려고 했는지는 모른다. 사실 관심도 딱히 없다.
‘중요한 건.’
그가 다르킨을 죽이려 한다는 것.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암살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을 살려둘 리가 없다는 것 정도였다.
‘혹시라도 저 인간이 뒤통수를 친다면, 곧바로 이중 던전으로 몸을 피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곳, 유적은 데우스의 심상 세계와 같이 완벽하게 제한된 환경이 아니다.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 3성이나 실력 차이가 나는 상대와 대놓고 싸우는 건 미친 짓이다.
‘도망쳤다가,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그리고 현 시점에서 아무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중 던전은 몸을 숨길 장소로 완벽한 곳이었다.
“…….”
나는 지그시 빌헬름 슈미트를 노려보았다.
‘8성의 단주.’
나 혼자서 상대한다면 쓰러트리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아멜리아 아이스본, 다르킨 암즈.
이곳에는 미래의 오대명가 가주가 두 사람이나 있다.
‘그들과 함께 합을 맞춘다면…….’
8성 기사, 못 이길 것도 없다.
“드레커.”
“아멜리아.”
문득, 아멜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어째서인지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다르킨과, 인상을 와락 찌푸린 아멜리아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탁인데 이 덩어리, 좀 멀리 치워줄 수 있어? 자꾸 나한테 이상한 이야기를 하거든. 땀냄새도 나고.”
“아니, 형수님. 이상한 이야기라니? 형님, 이 아우는 절대로 형수님께 찝쩍거린 적 없소이다. 믿어주시오.”
“제발, 좀 저리 꺼져. 덩어리.”
“혀, 형수님…….”
“…….”
……이길 수 있을 것이다.
* * * * *
유적 토벌은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었다.
고작 하루.
하루 만에 합동 토벌단은 3층 돌파에 성공했다.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는데, 생각보다 유적 안에 자리 잡은 몬스터의 숫자가 적었던 탓이었다.
덕분에 3층까지 돌파하는 동안, 토벌단 중 상처를 입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엄청난 성과였다.
“흠.”
3층의 토벌이 끝난 뒤.
나는 무너진 벽에 걸터앉은 채, 몸이 반으로 잘려 죽은 몬스터의 사체를 살폈다.
암회색의 갑각을 지닌 어린아이 정도의 몸집을 가진 거대 개미. 3급 몬스터, 제국 개미였다.
제국 개미는 제국 말벌의 하위종이다.
놈들은 제국 말벌이 가지는 무기 사용 능력이나, 기사에 준하는 전투 능력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사실 행동 양식을 보면 이놈들은 그냥 덩치 큰 개미에 불과했다. 전투 방식이라고 해봤자, 꽁무니에서 산성액을 쏘거나, 턱으로 무는 것뿐.
그런데도 3급으로 분류된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놈들의 어마어마한 번식력 때문이었다.
제국 개미는 그야말로 자가 분열을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증식하는 거로 유명했다.
여왕 한 마리만 있는 무리가, 한 달 만에 천여 마리의 개미 군단으로 불어날 정도다.
“형님, 그거 아시오? 개미는 대단한 벌레요. 개미는 제 몸무게의 50배가 넘는 무게도 들 수 있다고 하오. 이것이 바로 근육의 승리가 아니고 무엇이겠소?”
“개미를 잔뜩 쳐죽인 놈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그야, 이건 개미가 아니라 몬스터잖소.”
다르킨이 껄껄 웃으며 바닥에 쓰러진 제국 개미의 머리를 짓밟았다.
쓸데없는 소리에는 대답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난 그를 무시하며 검에 묻은 진액을 천으로 닦아냈다.
그 순간.
“주군.”
델리우스가 긴장한 눈으로 황급히 내게 다가왔다.
곧바로 그가 무언가 알아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미스틸테인을 검집에 집어넣고 델리우스와 함께 한적한 유적 구석으로 향했다.
“무언가 알아냈나?”
“네. 일단 이곳이 유적 하나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확실합니다. 벽화의 그림들을 살펴보니, 이곳 말고도 다른 유적이 존재한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입구 위치는?”
나는 급하게 되물었다.
만일 위치가 5계층이 아닌 곳에 있으면 곤란하다. 빌헬름을 피해 계층 단위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내 물음에 델리우스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일단 5계층에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자세한 위치나, 진입 방법은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
그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면 계획이 꼬이지는 않으리라.
“그, 한데……. 주군. 유적이 두 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응?”
무슨 소리야?
두 개가 아니라니?
내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델리우스가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이거, 아무래도…… 삼중 유적 같습니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