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5계층은 거대한 광장 같은 지형이었다.
리텐슈노프 본가의 대형 연무장보다 두 배는 넓을 정도의 거대한 공간. 그 한 가운데에 마치 작은 동산 같은 검은색 덩어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형태부터 기괴했다.
분명 분류는 ‘제국 개미’의 여왕이었으나, 그것의 형태는 절대로 개미 따위와 흡사하지 않았다.
굳이 표현하자면 고깃덩이에 껍데기를 대충 붙여놓은 뒤, 다리 여섯 개와 수백 가닥의 촉수를 콕콕 붙여놓은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마치 아귀의 것을 뜯어서 달아놓은 듯한 주둥이 위에는 수백 개가 넘는 인간의 눈알이 꿈뻑이고 있었고, 굵직한 여섯 개의 다리에는 인간의 손이 붙어 있었다.
마치 지옥에서 기어올라온 것 같은 모습.
저것이 바로 제국 개미들의 여왕.
최소 5급부터 최대 7급까지 분류되는 괴물이었다.
“초대형이로군. 아주 실한 놈이야! 7급은 되겠어!”
여왕을 본 다르킨이 눈을 번뜩이며 웃었다.
물론 웃는 것은 다르킨 뿐. 다른 토벌단원들은 전부 긴장을 끌어올리며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산란 시간이군요. 그나마 다행입니다.”
델리우스가 조용히 내게 속삭였다.
제국 개미 여왕의 행동 패턴은 두 가지다.
산란, 그리고 식사.
산란 때에는 오로지 알을 낳는 데 집중한다. 여왕이 움직이는 건 오로지 식사 시간 뿐. 그리고 지금 제국 개미 여왕은 알을 낳고 있었다.
거대한 꽁무니 끝에서 검붉은 구슬 같은 게 끈적거리는 액체와 함께 흘러내리는 게 그 사실을 증명했다.
“재미 없구만. 산란 중이라니.”
“다행스러운 일이지. 병정과 일개미를 먼저 처리할 시간이 생긴 셈이니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빠르게 광장을 훑었다.
못해도 천 마리는 훌쩍 넘을 정도의 제국 개미들.
비대할 정도로 머리만 어마어마하게 큰 병정 개미도 백 마리는 될 정도로 넘쳐났다.
내 핀잔에 다르킨이 입맛을 다셨다.
“뭐, 형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오.”
다르킨은 킬킬 웃으며 손에 쥔 철검을 고쳐 잡았다.
당장이라도 저 개미 무리로 달려들 기세다.
나는 미스틸테인을 움켜쥔 채, 여전히 뒤쪽에서 뒷짐을 진 채 이쪽을 지켜만 보는 노인을 살폈다.
‘언제냐. 언제 시작할 셈이냐.’
여전히 선한 노인네 연기를 하는 빌헬름.
나는 이마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훔쳤다.
최선은 5층에 내려오기 전에 놈이 배신하는 것이었다.
차악은 전투가 완전히 끝나고, 토벌단원들이 다들 지친 상태에서 놈이 배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최악은…….
“일단 잡것들부터 치우자고! 돌격하라, 암즈여!”
그 순간, 다르킨이 함성을 지르며 광장으로 달려 내려갔다. 동시에 그 뒤를 따라 토벌단원들도 무기를 쥔 채 광장으로 뛰었다. 전투에서 기세가 중요한 만큼, 먼저 공격해 기선제압을 하겠다는 의도였다.
“……젠장할.”
나는 입술을 짓씹었다.
‘최악의 상황은, 전투 중에 배신하는 것.’
그리고 내가 판단할 때, 빌헬름이 노리는 건 최악의 상황이 분명했다.
나 같아도 그럴 테니까.
나는 미스틸테인을 꽉 틀어쥔 채, 곁에서 개미 무리를 구경하던 델리우스의 목덜미를 콱 움켜쥐었다.
“어, 어어? 주, 주군?”
“닥치고 뛰어!”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깜짝 놀란 델리우스가 당황하는 순간, 동시에 등 뒤에서 엄청난 기세가 터져나왔다. 등골이 오싹오싹해지는 위압감.
“끄아아악!”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가 비명을 지른다. 나는 이를 악물며 델리우스를 이끌고 개미 무리가 최대한 적게 뭉친 곳으로 파고들었다.
동시에.
-콰과과광!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치솟는 화염이 등 뒤에서 몰아쳤다.
아멜리아가 날린 화염계 마법이 빌헬름에게 직격하는 소리였다.
* * * * *
“쿨럭.”
레이드 랭커스터는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자신의 하반신으로 보이는 것이 눈 앞에서 굴러다니는 걸까?
그것도 내장을 줄줄 흘리면서?
“서, 선배…… 커헉!”
동시에 눈 앞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 그 목소리의 주인도 곧 섬뜩한 소리와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레이드는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다가 자신의 하반신 곁에서 멈춰서는 카빈의 머리통을 떨리는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레이드는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순식간이었다.
진영의 최후미에서 과연 어떻게 해야 드레커 리텐슈노프를 엿먹일 수 있을지 고민하던 두 사람에게 백발의 노인이 참격을 휘두른 것도.
동시에 그의 시야가 빙빙 돌며, 몸이 토막난 것도.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어…… 째서.’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레이드는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암즈의 단주라는 노인이 자신들을 공격했는가?
어째서?
하나, 그는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순식간에 작렬한 아멜리아 아이스본의 마법에 주변 공기가 끓어올랐고, 동시에 넘실거리는 불꽃이 피어올라 레이드의 육신과 함께 주변 일대를 불태웠으니까.
전신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끼며, 레이드는 피눈물을 흘렸다. 곧 그 피눈물 또한 열기에 끓어 증발했다.
화염이 멈추고, 그가 서 있던 자리에 남은 건.
그저 타들어간 숯덩이 뿐이었다.
그 숯덩이를 콱 짓밟아 터트리며, 백발의 노인이 눈을 부라렸다.
“어찌, 어찌 알아차렸지?”
노인, 빌헬름 슈미트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완벽히 연기했다고 생각했거늘, 어째서 자신의 배신이 들통난 걸까?
아니, 이게 들통날 수 있는 일이 맞긴 한 건가?
다르킨 암즈의 암살.
그것은 무려 몇 년간 아무도 모르게 계획하던 일이었다.
암즈 가의 어느 누구도, 심지어 가주조차도 빌헬름의 변절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만큼 빌헬름은 완벽한, 심지어 자신조차도 속아넘어갈 수준의 연기를 언제나 펼치고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연기가 들통난 것은 분명 아닐 터.
하나, 그렇다고 자신의 변절이 들통났을 리도 없다.
‘불가능해. 이번 일은 ‘그분’께서 내게 직접 명령하신 일. 내 배신을 알아차릴 수 있는 증거 따위가 있을 리 없다. 누구도 알 수 없단 말이다!’
하지만 들통났다.
들통나 버렸다.
-빠드득!
빌헬름이 이를 악물며 마나 하트를 운용했다.
동시에 노인의 눈에 귀화가 일었다.
푸른 눈동자가 빠르게 전장을 훑는다.
갑작스러운 폭발에 깜짝 놀라 뒤돌아보는 기사, 전투에 집중하느냐고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기사, 그리고 최전선에서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는 다르킨 암즈.
하나, 빌헬름이 찾는 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자신의 배신을 눈치챈 것이 분명한 소년.
“드레커 리텐슈노프……!”
분명했다.
드레커 리텐슈노프는 빌헬름의 변절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드레커와 함께 온 아이스본의 계집이 갑자기 자신에게 마법을 쏘아낼 이유가 없었다.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모른다. 이해할 수도 없고.
하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잡아 놓고 사지를 찢어발기면, 알아서 구구절절 실토하게 될 터. 정 안되면 그놈이 데려온 두 사람도 같이 인간 돼지로 만들어버리면 된다.
중요한 건 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 있느냐.”
빌헬름이 손에 쥔 곡도를 터질 듯이 움켜쥐었다.
그리고 곧, 빌헬름의 눈에 검은 머리의 소년이 보였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개미를 썰어버리며 어디론가 내달리는 소년이.
“찾았다……!”
빌헬름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다, 단주! 갑자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어째서!”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다르킨의 고함 소리가 저 멀리서 울려펴진다. 하나, 이미 빌헬름의 눈에는 다르킨 암즈 따위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비밀을. 그리고 ‘그분’의 존재를, 계획을 알고 있을지 모르는 쥐새끼만 보일 뿐이었다.
“잡아 족쳐주마!”
다음 순간.
-콰과곽!
빌헬름이 땅을 박차며 도약했다.
동시에 그가 박찬 땅이 움푹 내려앉았다.
8성 기사가 전장에 난입했다.
* * * * *
“크아아악!”
“아악!”
“컥!”
마치 내게 다가오는 듯한 비명 소리.
빌헬름이 순식간에 전장을 돌파하는 소리였다.
나는 힐끔 고개를 돌려 등 뒤를 살폈다.
빌헬름은 가히 화살처럼 내달리고 있었다.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베어낸다. 그가 지나간 자리를 따라, 전장에 일직선으로 긴 통로가 생겨났다.
“쯧!”
나는 혀를 차며 손에 쥔 델리우스를 흔들었다.
“으, 으억! 주군! 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계속 끌려다닌 터라, 속이 어지러운지 델리우스가 구겨진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다음 유적 입구!”
“유, 유적이요?”
“아멜리아랑 함께 찾아, 빨리!”
동시에 나는 델리우스를 공중으로 던지며 소리쳤다.
“아멜리아!”
힘껏 던진 델리우스가 허공을 날았다.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던 델리우스가 공중에서 턱 멈추었다.
동시에 마치 누군가에 의해 끌려가듯, 델리우스가 전투가 한참인 전장 위를 날아갔다.
아멜리아가 마법으로 그를 낚아챈 것이다.
‘좋아.’
이제 짐 덩이는 치웠다.
남은 건, 델리우스가 다음 유적으로 넘어갈 길을 찾을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 뿐.
나는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저 멀리, 다르킨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병정 개미의 목을 베는 게 보인다.
‘찾았다!’
나는 곧바로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디딤돌의 힘을 이용해 공중을 도약해, 곧장 다르킨의 곁에 떨어졌다.
“혀, 형님?”
내가 허공에서 뚝 떨어지자, 다르킨이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다르킨의 등 뒤를 노리는 개미를 찔러 죽이며 소리쳤다.
“빌헬름이 배신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오?”
“놈이 네 목숨을 노리고 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나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그게 무슨……!”
다르킨이 반사적으로 고함을 치려다가,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도 본 것이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암즈의 4성 기사를 썰어버리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익숙한 얼굴의 백발 노인을.
다른 건 몰라도, 지금 저 노인이 토벌단의 편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똑똑히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다르킨이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젠장, 이게 무슨 상황인지 나중에 꼭 말해주어야 하오!”
“네 목숨을 구한 값이나 제대로 뱉어내라.”
“설명만 똑바로 해주신다면 못 뱉을 것도 없지!”
다르킨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에 쥔 철검에 오러를 둘렀다.
나 또한 마나 하트를 운용했다.
순식간에 전신에 퍼진 마나가 검신을 타고 흘렀고, 동시에 미스틸테인에 검붉은 오러가 피어오른다.
동시에 다르킨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마치 개구리처럼 그의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다음 순간, 다르킨이 전장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고함을 내질렀다.
“암즈의 형제들이여!”
그 외침이 울려퍼지자, 사방에서 제국 개미들과 난전을 펼치던 기사들이 동시에 악을 쓰며 답했다.
“악!”
“빌헬름 슈미트가 암즈를 배신했다!”
“……!!!”
“놈이 혈맹으로 맺어진 우리의 형제를 죽이고, 우리를 몰살할 의도로 함정에 빠트렸다!”
그 고함 소리에, 달려오는 빌헬름의 발걸음에 가속이 붙었다.
저 속도면 십여 초면 코앞까지 도착하리라.
하나, 다르킨은 개의치 않았다.
그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배신자에게는 죽음 뿐!”
“죽음 뿐!”
“그러니, 형제들이여! 암즈의 적을 죽여라!”
그 선언이 떨어짐과 동시에, 전장 곳곳에서 기사들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부질 없는 짓이다.”
눈앞을 가득 채운 제국 개미들이 반으로 잘리며, 기다란 곡도를 든 노인이 천천히 다가온다.
노인의 눈에 일렁이는 귀화가 시퍼렇게 번뜩였다.
“너희는 어차피 여기서 다 죽을 테니까.”
암즈의 10번단 단주, 빌헬름 슈미트가 우리를 향해 곡도를 겨누며 으르렁거렸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