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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133화 (133/139)

133화

-쾅! 카가강! 콰직!

사방에서 들려오는 전투의 소음.

급박한 전장의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진다.

하나.

내 주변은 마치 전장과 괴리된 것 같이 고요했다. 무겁게 내려앉은 분위기는 마치 침묵을 강요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 또한 억지로 만들어진 것에 불과했다.

조금이라도 균형이 깨지는 순간, 이 평화 아닌 평화는 곧바로 박살이 나겠지.

숨이 막힐 것 같은 긴장감 속에서, 나는 미스틸테인을 꽉 움켜쥔 채 눈앞의 노인을 노려보았다.

빌헬름 슈미트.

암즈의 10번단 단주이자, 8성의 경지에 올라선 자.

그리고 암즈의 배신자.

‘8성이라고 해서 얕보면 안 된다.’

소드마스터의 경지는 아니었으나, 빌헬름 슈미트의 무력은 이곳에 있는 토벌단을 전멸시키기에 충분했다.

절대로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놈…….”

백발의 노인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나는 침착하게 시선을 돌려 전장의 상황을 확인했다.

‘전장은 백중지세인가.’

빌헬름 슈미트의 난입으로, 제국 개미를 몰아붙이던 토벌단의 기세는 완전히 꺾인 지 오래였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토벌단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하나, 암즈 측 기사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믿고 따랐던 8성 기사이자 원로 단주가 배신했다는 상황에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나는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일단은 후퇴하는 게 맞다.’

애초에 뒤통수를 맞고 시작한 상황이다.

토벌단이 제대로 된 전투력을 보여줄 리 만무하다.

심지어 하나의 통일된 집단도 아니고, 리텐슈노프와 암즈라는 개별적인 세력이 힘을 합친 상황.

이런 상황에서는 지휘체계가 이원화될 가능성이 컸다.

‘심지어 리텐슈노프 쪽은 내 사람들도 아니지.’

위급한 상황이기에 내 명령을 따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런 상황을 이용해 나를 엿 먹일 가능성도 있었다.

‘결국, 답은 하나군.’

나는 마음을 정리했다.

‘에르반 녀석이 보낸 기사들을 미끼로 던진다.’

어차피 빌헬름이 목격자를 살려둘 리 없다.

빌헬름 슈미트에게 있어서, 이 전장에서 자신의 배신을 목격한 자들은 죄다 적이라는 뜻이다.

‘어차피 전원을 다 살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최대한 내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수밖에.

“다르킨.”

“왜 그러시오, 형님.”

“절반, 그 이상이 죽을 거다.”

내가 나직이 중얼거리자, 다르킨의 눈이 순간 흔들렸다. 하나, 곧 다르킨은 피식 웃었다.

“지금 상황에서 그 정도나 살릴 수 있다는 거요?”

“그래. 최소한 열 명은 살릴 수 있겠지.”

여왕이 움직이지 않는 이상, 토벌단이 상대해야 할 적은 일개미와 병정개미뿐. 이 정도라면 4성 이상의 기사들이 전투 중에 개미에게 당하는 일은 없을 거다.

‘빌헬름이 배신하지 않았다면 무난하게 토벌할 수 있는 유적이었으니까 말이지.’

다르게 말하면, 빌헬름이 그만큼 위협적이라는 뜻.

3성 이상의 기사가 40명이나 있음에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강자.

8성 기사는 그런 전력이다.

그 순간.

“뭘 중얼중얼, 떠들어대는 거냐.”

빌헬름 슈미트가 우리를 향해 한 발자국 다가왔다.

동시에 살갗을 저미는 듯한 살기가 우리를 짓누른다. 피부가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저릿저릿하다.

-빠드득!

나는 긴장으로 굳은 몸을 풀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다르킨 또한 콧김을 내뿜으며 자세를 잡는다.

그런 우리를 노려보던 빌헬름이 천천히 곡도 끝으로 나를 가리켰다. 노인이 으르렁거린다.

“대체 내 속내를 어떻게 알아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상관 없다.”

그의 눈이 번뜩였고.

“어차피 토해내게 될 터이니.”

-쾅!

다음 순간, 순식간에 빌헬름이 쇄도했다.

“온다!”

재빨리 땅을 박차고 왼쪽으로 피했다.

-카가각!

동시에 내가 서 있던 자리에 깊게 검흔이 남는다.

오러조차 담지 않은 검격에 땅이 패인 것이다.

하나, 놀랄 시간은 없었다. 내 움직임을 따라, 마치 뒤따라붙듯 빌헬름의 곡도가 뱀처럼 휘어진다.

“이크!”

-팟! 파앗!

그 즉시, 디딤돌로 허공을 박차며 검격을 피했다.

곡도가 번쩍이며 순식간에 몇 마리의 제국 개미가 잘려나간다. 그런데도 힘을 잃지 않은 검격은 마치 사냥개가 사냥감을 추적하듯 계속해서 날 쫓는다.

‘이 새끼, 왜 나한테 지랄이야?’

원래 목표였던 다르킨은 안중에도 없는지, 줄곧 내게 검격을 뿌리는 빌헬름.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그만큼 배신을 알아차린 게 충격적이었다는 걸까?

아니면…….

“형님!”

그 순간, 공격이 자신에게 집중되지 않아 운신이 자유로워진 다르킨이 오른쪽에서 치고 들어왔다.

쾌속의 검격이 마치 빛살처럼 빌헬름에게 뿌려진다.

-카가가각!

그러나 빌헬름은 그 검격들을 너무나도 쉽게 받아쳤다. 다르킨이 눈을 휘둥그레 뜬 순간, 빌헬름이 그의 옆구리를 걷어차 날려버렸다.

“커헉!”

펑 소리와 함께, 다르킨이 개미 십여 마리를 순식간에 짓뭉게며 저 멀리 날아갔다.

그런 다르킨을 노려보며 빌헬름이 일갈했다.

“다르킨, 너는 거기 구석에 쳐박혀 있어라. 네놈 목은 저 쥐새끼를 처치한 다음이다.”

“쥐새끼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블러드하운드 54식의 오러를 뽑아내며, 곧바로 빌헬름에게 달려들었다. 즉각적으로 내 검격을 받아치려던 놈이 눈을 가늘게 떴다.

“기묘한 검식을 쓰는군.”

‘알아차렸나?’

젠장, 방심한 틈을 타, 곡도를 부숴버릴려고 했는데.

그 순간.

빌헬름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병정 개미의 사체를 내게 걷어찼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거대한 사체가 순식간에 내게 날아든다.

곧바로 땅을 박차며 허공으로 뛰었다.

그게 실책이었다.

“……!!”

병정 개미의 시체 뒤에 몸을 숨긴 채, 어느새 코앞까지 접근한 빌헬름이 한치 앞에서 눈을 번뜩인다.

놈의 곡도가 휘둘러진다.

검날에 흐르는 오러가 번쩍인다.

나는 곧바로 검을 끌어당겼다.

“크으윽!”

오러 대 오러의 승부.

승패는 내 쪽의 패배였다.

반발력에 의해 튕겨져 나가 땅을 굴렀다.

“커헉!”

흙먼지에 뒤덮힌 채, 나는 숨을 토해냈다.

그래도 다행이다.

검과 함께 반으로 잘려나가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

“10번단 단주!”

“그만 멈추시오, 배반자!”

여기까지 흐른 시간이 30초 정도.

그 시간 동안 자신이 상대하던 개미를 썰어버리고 도착한 암즈의 기사들이 빌헬름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버러지 같은 것들.”

하나, 막아선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크아악!”

“쿨럭!”

애초에 여기 있는 기사들이 전부 합심해도 상대하기 힘든 게 8성 기사다. 토벌단 전원도 아니고, 고작 몇 명이 막아선다고 해서 8성 기사를 멈출 수는 없었다.

그저 무의미한 희생자만 더 늘어날 뿐.

“아, 안돼!”

그 무렵, 정신을 차린 다르킨이 비명을 질렀다.

다르킨이 악을 쓰며 소리쳤다.

“젠장, 빌헬름 슈미트! 대체 왜 암즈를 배신한 거요! 조부님께서 당신을 섭섭히 대한 것도 아닐 텐데!”

“알 것 없다.”

빌헬름이 나를 싸늘하게 노려보며 대꾸했다.

아니, 근데 왜 나를 노려보는 거야?

“어차피 네놈들은 죽을 거다. 의문 따위는 사치일 뿐. 그냥 곱게 죽어라. 물론…….”

다르킨이 다시금 내게 쇄도했다.

“네놈은 전부 실토해 줘야겠다!”

순식간에 노인이 나와 가까워진다.

곧바로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발목이 시큰거리는 게 느껴졌다. 묘한 불균형에 순간 머뭇거렸다. 동시에 나는 회피할 기회를 놓치고 말했다.

[야, 임마!]

‘젠장!’

검격이 내 목을 노리고 휘어진다.

나는 재빨리 놈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콰광!

순식간에 휘몰아친 마력이 허공에서 폭발한다.

나는 그대로 뒤로 날아갔다. 데굴데굴 굴러가던 나는 개미 사체에 쳐박히자마자 피를 토했다.

전신이 욱신거렸다.

마치 몽둥이찜질을 당한 것 같았다.

심장은 마치 누가 쥐어짠 것 같고, 전신에 마나가 쪽 빨려나간 것처럼 깊은 탈력감이 느껴졌다.

나는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이렇게 마나를 담아본 건 처음인데.’

수격마폭手擊魔爆.

암즈의 비전 체술이 나를 살렸다.

당황한 나머지 마나를 전부 털어넣어 터트렸는데, 다행히 시전자는 본인의 마력이라서 그런지 그다지 큰 피해를 받지 않았다.

이런 식이라면 조금 더 다체로운 방식으로 수격마폭手擊魔爆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감상은 나중에 해도 된다.

“크아악!”

생각치도 못한 폭발에 직격으로 얻어맞은 탓일까.

빌헬름이 양눈에서 피를 흘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의 얼굴은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다.

아무래도 격폭이 얼굴에서 직격한 것 같았다.

‘기회다!’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뼈마디부터 근육까지. 여전히 전신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참고 검을 쥐었다.

미스틸테인에 시커먼 오러가 피어오른다.

바인더샤칼 13식.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빌헬름에게, 물어뜯는 검을 휘둘렀다. 채찍처럼 날아든 이빨이 놈의 어깨를 물어뜯는다.

-와드득!

놈의 왼팔이 어깨를 잃고 잘려나감과 동시에, 기회를 노리던 두 기사가 녀석의 등에 검을 쑤셔박는다.

-푸욱!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빌헬름의 가슴팍으로 두 자루의 검날이 꼬치처럼 솟아났다.

“좋아, 잡았다!”

빌헬름의 등에 검을 꽂아넣은 기사가 외쳤다.

그 말대로, 아무리 8성 기사라도 저렇게 당하면 버틸 수 없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묘한 불길함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렇게 쉽게 처치했다고?’

물론 방심한 상태라면 마스터 급도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죽을 수 있다. 이전에 라헬 엘븐하임도 그렇게 내게 목이 잘린 게 아니었나.

하지만.

내 직감은 이게 끝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쿨럭!”

그 순간.

빌헬름이 피를 토했다.

그 모습에 빌헬름의 등에 검을 꽂아넣은 기사들이 칼자루를 마구 휘저었다. 끝장을 내기 위해서인 모양.

하나.

“……이 버러지 같은 것들이.”

빌헬름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하나 남은 손으로 뱃가죽을 뚫고 튀어나온 검을 꽉 움켜쥐었다. 당연히 베인 손바닥에서 핏물이 흘러내리고, 손가락이 찢어지며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빌헬름은 그딴 건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나를 향하는 순간, 나는 몸이 얼어붙었다.

‘어, 어떻게?’

놈의 눈이 재생되고 있었다.

마치 재조립되는 것처럼 눈알이 천천히 재건된다.

눈알 뿐만이 아니었다.

등 뒤에서 검을 꽂아넣은 기사들은 보지 못한 것 같지만, 내가 잘라낸 왼쪽 어깨에서도 천천히 뼈와 근육이 솟아나고 있었다.

동시에 불길하기 짝이 없는 기운이 놈의 몸에서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보랏빛 연기가 놈의 몸에서 흘러나온다.

[야, 꼬맹아.]

그 괴이한 광경에 내가 굳어있는 순간.

[꼬맹아, 당장 도망칠 준비를 하거라!]

데우스가 내게 고함을 질렀다.

‘네?’

갑작스러운 외침에 내가 의아해하는 순간.

데우스가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도다. 하지만 말이다. 저놈, 저놈이 사용하는 저 재생 능력. 내가 확신할 수 있도다. 저건…… 용의 힘이다.]

‘요, 용이요?’

[……그래.]

데우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평소의 웃음기라고는 한 줌도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 그 반응에 절로 불안해졌다. 이렇게까지 당황한 데우스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심지어 그냥 용이 아니도다.]

‘네? 그냥 용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데우스는 충격적인 말을 던졌다.

[저건, 마룡의 힘이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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