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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134화 (134/139)

134화

“마룡?”

[그래.]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마룡이라니, 그게 뭐야?

[설명할 시간 따위 없다. 일단 도망치거라!]

당장 이 상황에 대한 해명을 데우스에게 듣고 싶었지만, 평소답지 않게 다급히 외치는 그의 목소리.

그 반응이 절로 상황의 심각함을 알려주고 있었다.

“젠장!”

나는 재빨리 땅을 박찼다.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저 놈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빠르게 달리며 주변을 훑었다.

빌헬름의 난입에 휘말린 터라, 암즈고 리텐슈노프고 살아남은 기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끽해봐야 열다섯 명은 넘으려나?

하나, 일단은 최대한 살려서 데려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전장을 훑으며 소리쳤다.

“아멜리아!”

앞길을 가로막는 개미를 짓밟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동시에 거대한 광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재빨리 사방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 바닥에서 버르적거리는 다르킨이 보인다.

좀 다친 것 같지만, 자신에게 달려드는 개미를 잘라내는 모양을 보니 아직 상태는 멀쩡해보인다.

눈알을 반대쪽으로 굴린다.

광장 한쪽 벽에 반원 형태로 개미들이 몰려든 게 보인다.

마치 투명한 장벽에 가로막혀 더 이상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는 것 같은 모양세. 반원 한 가운데에서 마법으로 장벽을 유지하는 아멜리아와 벽면을 더듬더듬 살피는 델리우스가 보인다.

‘남서쪽. 광장 끝.’

아멜리아의 위치를 머릿속에 쑤셔박으며 곧바로 허공을 박찬다.

마치 떨어지는 유성처럼, 나는 다르킨에게 덤벼들려는 병정 개미의 척추를 베어내며 다르킨의 눈 앞에 떨어졌다.

“으아아……? 어? 형님!”

병정 개미에게 검을 휘두르려던 다르킨이 깜짝 놀랐다. 설명할 시간이 없다. 나는 재빨리 아멜리아가 있던 방향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쪽, 북서쪽 벽으로 가야 해!”

“북, 북서쪽 말이오?”

“아멜리아가 거기에서 다음 유적으로 갈 길을 찾고 있다! 일단 다음 유적으로 넘어간다! 다음 일은 거기에 가서 생각해!”

“형수님이? 다음 유적이오?”

“질문하지 말고, 얼른! 다른 토벌단원도 전부 저쪽으로 오게 해!”

“아, 알겠소이다, 형님!”

대충 상황을 파악한 건지, 아니면 일단 생각은 뒤로 미뤄두고 행동부터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다르킨이 재빨리 허공에 소리쳤다.

“암즈의 형제들이어! 토벌단이여! 북서쪽 벽으로 오라!”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이 광장을 가득 채운다.

“예!”

사방에서 미약하게나마 목소리가 들려온다.

됐다.

이제 남은 기사들의 인솔은 다르킨이 할 것이다.

내가 할 일은 다음 유적으로 가는 길을 뚫는 것.

‘이곳은 3중 유적.’

뭐가 되었든, 신기神器에 가까운 무구가 이 유적의 끝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얻는다면 빌헬름이던 빌헬름 할아버지던 다 죽여버릴 수 있을 거다.

문제는 유적을 지키는 가디언들인데…….

‘할 수 있다.’

나는 미스텔테인을 힘껏 움켜쥔 채, 바인더샤칼의 오러를 피워올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참격을 흩뿌리며 내달린다.

“간다!”

눈앞을 막아서는 수많은 개미들.

하나 하나가 별 볼일 없는 나약한 놈들이지만, 숫자가 문제다. 끝없이 달려들며 길을 막아서는 개미들.

수십, 수백 마리가 눈앞에서 바글거린다.

심지어 우리의 진행 방향 근처에 여왕이 있는 터라, 개미들의 저항은 더욱 더 거샜다.

“끝이 없소이다, 형님!”

내 뒤를 따르며 검을 휘두르던 다르킨이 외쳤다.

“당연한 소리를!”

애초에 이곳은 놈들의 둥지.

벌집을 뒤쑤셔놨으니 지랄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젠장!’

절로 입술이 말랐다.

마치 사막에 내동댕이쳐진 것 같았다.

‘너무 많다.’

이 광장 안에서 날뛰는 수천 마리의 개미 때.

이 놈들을 전부 죽일 수는 없다.

‘하지만.’

굳이 다 치울 필요는 없지.

“내가 길을 뚫는다.”

“뭘 뚫는다고요?”

“길!”

나는 그렇게 외치며 손가락에 낀 렐릭의 반지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세계수의 뿌리가 진동하며 마나의 성질이 바뀐다.

압축.

‘그리고.’

나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동시에 눈앞에 뭉친 개미 틈바구니를 향해 내 마나가 쭉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순간적으로 드는 탈력감.

역시 압축한 마나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많은 양이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 효과는 확실했다.

“흡!”

-딱!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콰과광!

산산조각이 난 개미가 사방으로 튕겨나가며.

동시에 눈앞의 공간이 뻥 뚫렸다.

[거, 마나 작작 쓰거라! 그게 얼마나 마나를 쳐먹는 기술인데 마구 써대는 것이더냐!]

“좀 닥쳐요!”

도움도 안 될 참견을 던지는 데우스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나는 순식간에 확보된 공간을 내달렸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손을 튕겼다.

-쾅! 콰광! 쾅!

시원시원한 폭음과 함께 계속해서 길이 열린다.

역시, 마나를 잔뜩 쳐넣은 덕분일까.

효과는 확실했다.

“혀, 형님. 그거 무슨 기술이오?”

함께 내달리는 다르킨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애초에 대답해 줄 생각도 없었지만, 그럴 시간도 없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계속 길을 뚫었다.

“큭!”

격폭을 쓸수록 점점 몸이 무거워진다.

시야가 흔들리고 구역질이 났다.

‘마나를 한 번에 너무 많이 날렸어.’

하지만.

나는 이를 악물며 다리에 힘을 더 주었다.

‘여기서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이렇게까지 멀리 떨어졌음에도, 여전히 등 뒤에서는 불길한 기운이 잔뜩 느껴진다. ‘마룡’이 대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라면 절대로 만만찮은 힘이다.

‘빌헬름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을 때 도망쳐야…….’

-파바박!

몬스터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생각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등 뒤에서 어마어마한 기세가 터져나왔다.

“그아아아아아!”

힐끔 뒤돌아보자, 우리를 뒤쫓는 개미들 너머로 무언가가 휙휙 허공을 날아가는 게 보인다.

사람의 팔다리로 보이는 무언가. 아마도 빌헬름에게 검을 찔러넣은 암즈의 기사들 ‘일부분’인 것 같았다.

“이런 제기랄! 미치겠군!”

다르킨이 힐끔 옆을 봤다가, 이내 비명을 질렀다.

-까가가가각!

기괴하기 짝이 없는 울음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육중한 무게감.

자신의 둥지가 개판이 된 탓인지, 아니면 산란이 끝나서 배가 고픈건지 모르겠지만 여왕 개미까지 이 난장판에 참전하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덩치에 비해 말도 안되는 속도로 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라리 잘 되었군! 저 개미가 날뛰어주면 마룡의 하수인도 계속 너를 쫒지 못할 것이다!]

데우스의 말대로, 아직 상황 파악이 안된 탓인지, 아니면 강자를 알아보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여왕 개미는 곧바로 빌헬름을 향해 달려들었다.

-까가가가각!

“이, 빌어먹을 벌레 년이!”

하지만.

‘그래봤자다.’

여왕 개미는 아무리 대단해봐야 7급 몬스터.

8성 기사에게 7급 몬스터는 까다롭기는 해도 상대할 수 없는 적은 아니었다.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등 뒤에서 검광이 번쩍인다.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운 예기가 사방을 훑는 게 느껴졌다. 절로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이게 8성.’

저렇게 나이를 먹고도 아직 놈의 검은 날카로웠다.

“다 왔다!”

그 순간, 눈앞에 거대한 장벽이 들어온다.

우리가 달려듬과 동시에, 장벽에 순간적으로 두 개의 구멍이 뚫렸다. 망설임 없이 나는 구멍 안으로 몸을 던졌다.

-털썩!

바닥에 나동그라졌지만, 몸을 사릴 틈은 없었다.

‘시간이 없다.’

나는 마법을 시전하느냐고 눈을 부릅 뜬 아멜리아를 지나치며, 여전히 벽을 더듬거리는 델리우스의 곁으로 달려갔다. 그의 어깨를 콱 붙잡으며 소리쳤다.

“입구 열어!”

“아직 찾는 중입니다!”

“이런 씨발!”

아직도 입구를 못 찾았다고?

절로 낭패감이 들었으나 절망할 시간은 없다.

나 또한 같이 벽을 노려보며 입구를 찾았다.

하나, 벽면 빼곡이 그려진 고대 문자와 벽화들은 내가 해석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건 델리우스의 전공이지, 내 전공이 아니다.

“허억, 허억!”

“다르킨 님! 이제, 어떻게 합니까!”

그 사이 속속들이 다른 토벌단원들이 장벽 너머로 들어왔다. 나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이곳에 도착한 건 8명이 채 안 되었다.

‘기다릴 시간이 없다.’

빌헬름이 여왕 개미를 치워버리는 데 끽해야 얼마나 더 걸리겠는가? 빨리 다음 유적으로 넘어가는 입구를 찾지 못하면 이대로 전멸이다.

‘생각하자, 생각.’

다음 유적으로 넘어갈 단서가 있나?

‘기억나는 건 없다.’

애초에 이중 이상의 유적이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것 아니었나. 더 이상의 정보는 없었다.

[눈을 감아라.]

그 순간 데우스가 나직히 말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즉각적으로 반문이 튀어나왔다.

‘뭐라고요? 눈을 쳐 감으면 어떻게 찾습니까?’

[너는 용의 권능을 지니고 있도다. 그까짓 유적 입구 따위를 찾는 게 어렵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입 닥치고 그냥 내 말대로 해보거라!]

데우스가 버럭 소리쳤다.

그 말에 나는 입술을 달싹였다.

“……젠장.”

모르겠다. 어차피 이판사판이다.

나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하지만 정신은 어지럽기 짝이 없었다.

여전히 사방에서는 전투의 소음과 개미의 비명이 울려퍼지고, 후각은 피냄새로 마비되었다. 눈이야 당연히 감았으니 안 보이고,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차근히, 감각을 하나씩 지운다고 생각하거라.]

하나, 데우스가 내가 헛소리를 할 리는 없다.

지금까지 이 변태 꼰대 드래곤이 미친 소리는 자주 했어도, 내게 도움이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지는 않았다.

[숨을 고르고,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필요 없는 정보들을 지워나갔다.

청각, 후각, 시각, 촉각, 미각.

스스로의 감각을 일부러 죽인다는, 참으로 기괴한 행위.

하나.

놀랍게도 그 짓을 하자 보였다. 흐릿하기 짝이 없고, 부정확하지만. 마치 어둠 속에서 빛이 느껴지는 것처럼, 감은 눈두덩이 너머로 무언가가 ‘느껴졌다.’

“찾았다.”

“찾았다? 찾으셨다고요, 주군?”

열심히 벽면을 매만지던 델리우스가 황급히 나를 돌아봤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는 벽면 한 구석을 노려보며 미스틸테인을 들었다.

거대한 용의 해골이 그려진 벽화.

저곳이 바로 입구였다.

‘마법으로 막아둔 입구다. 물리적인 게 아니야.’

당연하지만 어지간한 힘으로는 뚫릴 리가 없다.

‘강력한 한 방.’

제대로 한 방을 먹여야 한다.

그렇다고 아예 입구를 부숴도 안 된다.

‘정확히 구멍만.’

잠시 지나갈 틈만 만들면 되는 일.

“그렇다면.”

미스틸테인을 힘껏 쥔 채, 마나 하트를 운용해 체내에 남은 마나를 한 줌 남김 없이 끌어모은다.

동시에 검 끝에 오러를 피워올린다.

‘필요한 건 닫힌 길을 열 수 있는 이빨.’

가장 날카로운 송곳니.

-키이이잉!

동시에 미스틸테인에 맺힌 오러가 울부짖는다.

-까가가가가각!

그 순간, 등 뒤에서 여왕 개미의 비명이 들려온다.

[어서!]

데우스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나는, 마치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양.

“흡!”

그대로 벽화에 검을 쑤셔 박았다.

동시에.

뚫린 구멍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고, 우리는 동시에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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