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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135화 (135/139)

135화

-쿵!

마치 망치로 내려친 것 같은 묵직한 충격이 몸을 덮친다.

동시에 우리는 새로운 공간에 내동댕이쳐졌다.

“으억.”

바닥에 내팽겨진 다르킨이 신음했다.

나는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주변을 살폈다.

인간의 손이 닿은 것이 분명한 통로가 눈에 들어온다. 각진 벽면에는 기묘한 그림과 글자들이 가득했다.

천장에는 마법 등불이 달려 있었다. 꽤 오랜 시간 작동한 건지, 등불의 밝기는 그다지 밝지 않았다. 덕분에 통로는 약간 어두침침했다.

나는 빠르게 이곳이 어떤 곳인지 파악했다.

‘미로인가?’

아무래도 두 번째 유적은 미로형 유적인 것 같았다.

“으, 주군. 여긴……?”

공간 이동 마법 특유의 울렁거림 때문인지, 델리우스가 속이 안 좋은 얼굴로 물었다.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두 번째 유적이다.”

“두 번째 유적?”

“그래. 이중 유적 말이다.”

그 말에 바닥에 엎어져 있던 다르킨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땀과 흙, 그리고 개미가 흘린 체액이 뒤섞여 지저분해진 그의 근육이 불끈거렸다.

“이, 이중 유적이라니!”

다르킨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주변을 살폈다, 하나, 고고학자가 아닌 이상, 미로에 새겨진 벽화를 해석하는 능력은 다르킨에게 없었다.

벽화를 노려보던 그가 고개를 돌렸다.

“설마, 형님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소?”

의심 가득한 눈이 나를 쳐다본다.

설마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냐. 나도 들어와서 알았지.”

다음 유적이 있다는 사실은 나도 내부에 진입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물론 전생의 기억이 있었기에 알 수 있었던 정보였지만, 하여튼 속인 건 아니다.

“그보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내 말에 다르킨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건 그렇소.”

중요한 것은 빌헬름 슈미트, 10번단 단주가 토벌단의 전멸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장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쓸데없는 생각에 투자할 심력 따위는 없다.

“그 새끼가 대체 왜 너를 노리는 거냐?”

하지만 이건 좀 궁금한데.

전생에도 그렇고.

대체 왜 빌헬름이 다르킨을 노리는 걸까?

빌헬름 슈미트는 암즈의 원로 중에 원로다.

소드마스터도 아니고, 고작 8성에 불과한 성취로도 그는 암즈의 단주 직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물론 10번단이 암즈의 주력 단이 아니긴 했지만, 그가 원로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그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대체 왜 다르킨을 죽이려 했을까?

“나 말이오? 형님을 노린 게 아니고?”

내 질문에 다르킨은 어처구니 없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나?”

“아까 하던 짓을 생각해보면, 빌헬름 단주가 나보다는 형님을 더 죽이고 싶었던 것 같던데 말이오.”

“뭐…….”

확실히 그렇긴 했지.

하지만 그건 내가 놈의 배신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원래 놈의 목적은 내가 아니라 다르킨 암즈였다.

“아냐. 놈이 노리던 건 내가 아니다. 나한테 더 지랄하던 건, 그냥 배신을 눈치챘기 때문이겠지.”

“그래. 그것도 궁금하구만. 대체 어떻게 알았소? 아까 보니까, 빌헬름 단주가 날뛰자마자 형수님께서 바로 마법을 때려박으시던데. 그것도 형님이 시키셨소?”

다르킨의 말에 함께 들어온 암즈의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은 수상쩍다는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확실히. 저들이 볼 때, 가장 수상한 건 나겠지.

하지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냥, 감이다. 그리고 그놈의 형수님 타령은 좀 집어치우고.”

그저 대충 뭉게는 수밖에.

그 순간.

“지금 중요한 건.”

아멜리아가 우리의 대화 흐름을 끊으며 입을 열었다. 그녀는 몸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낸 뒤, 차분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왜, 가 아니라 어떻게, 아니야?”

맞다.

놈이 배신한 이유가 뭐 그리 중요하겠나.

8성 기사가 우리들 전원의 목을 따려고 미쳐 날뛰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놈을 죽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계획이 있었다.

“일단, 움직이자. 가만히 있는 건 좋은 생각이 아냐.”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떻게 하자는 말이오?”

“일단 이곳, 두 번째 유적을 공략한다.”

이 미로의 끝에는 다음 유적, 그러니까 세 번째 유적으로 넘어갈 입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발견된 모든 삼중 유적에서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자랑하는 무기가 잠들어 있었다.

‘이곳에도 그런 무기가 있을 거다.’

물론 통계에는 언제나 함정이 있고, 모든 삼중 유적에 신기神器에 가까운 무구가 잠들어 있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리고 어차피 체력과 마나도 회복해야 한다.’

이전 유적, 그리고 두 번째 유적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나는 너무나 많은 양의 마나를 소모했다.

설사 이곳의 끝에 신기가 없다고 해도, 마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벌어야 했다.

“이 유적을 공략한 뒤, 아티팩트를 확보한다. 쓸만한 게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없는 것 보다는 낫겠지.”

“좋은 생각이오, 형님.”

더군다나, 다르킨이 쓰는 검은 예비용 무기다.

맞춤 제작품도 아니고, 질도 떨어진다. 차라리 이 유적의 끝에 잠들어 있을 명검들을 쓰는 게 나으리라.

내 설명에 주저앉아 있던 다르킨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몇 명 남지 않은 토벌단원들 또한 일어섰다.

“형제들이 얼마 남지 않았군…….”

열 명도 채 되지 않는 기사들의 숫자에 다르킨이 이를 악물었다. 기사들 또한 침울한 얼굴로 장비를 점검했다.

그들 대부분이 암즈 소속 기사였다.

우리 가문 소속 기사는 고작 두 명에 불과했는데, 그 중 하나는 무려 상급반 수련생이었다.

얼굴을 보니, 처음 내가 이곳에 왔을 때 카빈인지 칼빈인지 하는 놈팽이와 함께 왔던 그 수련생이었다.

두려움이 가득한 수련생의 얼굴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아무래도 다 같이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전력이 말이 아니군.’

전력이 온전한 상태에서도 빌헬름을 상대하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고작 8명. 그것도 한 명은 수련생에 불과하다라…….

착잡한 마음을 숨기며 델리우스에게 명령했다.

“델리우스, 길을 찾아라.”

“알겠습니다, 주군.”

내 명령에 델리우스가 재빨리 벽화를 살폈다.

그가 길을 찾는 동안, 나는 아멜리아에게 다가갔다.

“상태는 어때?”

“체력이랑 마나는 충분해. 애초에 나는 이번 공략에서 그다지 한 게 없잖아?”

“그건 그렇지.”

아멜리아는 이번 토벌전에서 사실상 부외자였다.

암즈고 리텐슈노프고 상관 없이, 양쪽 다 아멜리아가 나서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유적과 관련 없는 아이스본 측 사람이 토벌에 도움을 주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 덕분에 아멜리아는 만전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걸 다행이라고 봐야 하나?

나는 그녀의 눈을 응시하며 나직히 말했다.

“아무래도, 네가 고생을 해야 할 것 같다.”

“맨입으로?”

아멜리아가 샐쭉 웃었다.

“빚에 달아둬.”

“좋아. 이자도 두둑히 챙겨줘야 해?”

“그래.”

여기서 살아서 나간다면 그깟 이자 따위, 얼마든지 줄 수 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멜리아가 씩 웃었다.

“음. 주군. 찾은 것 같습니다.”

델리우스의 목소리가 들린 건 그 무렵이었다.

“일단, 아무래도 여기는 유적의 한 가운데인 것 같습니다.”

“한가운데? 입구가 아니라?”

델리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여긴 중간 지점입니다. 사실, 저희가 공간 이동 마법으로 넘어오지 않았습니까?”

“맞아, 공간 이동 마법이었어.”

아멜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희는 그 마법을 발동시켜서 넘어온 게 아니었죠. 사실상 깨부수고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 나는 볼을 긁적였다.

델리우스 말대로, 사실 입구를 찾았다기보다는 내가 강제로 오러를 쑤셔박아 틈을 열어버린 것에 가까웠다.

“아무래도 그것 때문에 마법에 오류가 생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로 한 가운데에 떨어졌다?”

“네. 그런 셈이죠.”

나는 대답 대신 아멜리아를 돌아보았다.

“저 말은, 빌헬름도 내가 한 것과 똑같은 방법을 써서 이 위치로 넘어올 수 있다는 뜻인가?”

내 시선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쉽지 않을 거야.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 우연에 가깝다고 봐야 할 걸?”

“그래?”

“그리고 네가 이미 문을 열어 놨잖아? 그럼 아직도 열려 있을 텐데, 그럼 그 사람은 그 문을 통과해서 들어올 테니, 원래 가야 할 입구로 가겠지.”

그렇군.

뭐, 그렇다면 어찌 되었든 나쁜 일은 아니다.

오히려 더 잘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빌헬름이 넘어오더라도, 그는 유적의 입구에서 출발하게 될 터. 거리를 벌리고 시작하는 셈이니, 나쁠 건 없다.

“좋아. 그래서? 어디로 가야 하는데?”

델리우스는 내 물음에 손가락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입니다. 물론 미로형 유적인 만큼, 계속 길을 찾아야 합니다. 아마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그냥 벽을 부수는 건 어떻겠는가?”

다르킨이 물었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유적을 공략할 때는 나쁘지 않은 방법일 수도 있지만, 지금 우리는 쫒기는 상황이잖아. 놈에게 우리가 향한 곳을 알려주는 일이 될 수도 있어.”

“아하! 알겠소이다, 형님.”

그 말을 끝으로 대화는 끝이 났다.

우리는 곧장 미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

미로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어두컴컴한데다가 똑같이 생겨먹은 길이 끝없이 이어지는 꼴을 보면, 솔직히 죄다 부숴버리고 싶어진다.

그래도 다행히 미로의 벽화나 고대어를 델리우스가 있었기에 길을 잃지는 않았다.

미로의 습도나 온도가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었기에, 다들 체력적으로 피로를 느끼지도 않았다.

덕분에 크게 어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따라온 기사들이 전면에 선 덕분에, 나 또한 나름대로 체력을 회복할 시간도 벌었다.

물론 소모한 마나는 거의 회복하지 못했지만.

[수격마폭手擊魔爆을 그렇게 마구잡이로 써 댔는데, 마나가 멀쩡히 남아돌겠느냐? 네, 그 조막만한 심장이 터지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거라.]

데우스가 나를 타박했다.

하나, 나도 변명할 거리는 있었다.

‘그 상황에서 다른 수가 있었습니까?’

만약 거기서 칼질하며 개미 무리를 뚫으려고 했다가는 빌헬름에게 뒷덜미를 붙잡혔으리라.

나는 최선의 행동을 했을 뿐이다.

‘그보다 이젠 설명해주시죠.’

[으응? 무얼 말이더냐?]

‘……마룡이 대체 뭡니까?’

내 물음에 데우스가 침음성을 흘린다.

말을 꺼내기를 망설이는 모습.

평소의 그답지 않았다.

‘제가 알면 안 되는 이야기입니까?’

[아니, 그건 아니다. 아니겠지.]

데우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오대명가의 시조에 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느냐?]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나, 동화 말입니까?’

전해지는 이야기는 많지.

‘수호룡 관련된 전설이라면 조금 압니다.’

오대명가의 시조들이 드래곤과 계약했다는 건 아주아주 유명한 전설이니까.

물론 현재는 동화 속 이야기 취급당하지만, 데우스와 만난 덕분에 그게 음유시인의 개소리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말이다.]

데우스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이내 물었다.

[어떤 이유 때문에 오대명가의 시조들이 드래곤과 계약했는지는 알고 있느냐?]

‘글쎄요. 책에서는 그 이유는 나오지 않았던지라.’

내가 고개를 젓자, 데우스는 조용히 말했다.

[그건 바로, 여섯 번째 드래곤 때문이다.]

‘여섯 번째 드래곤이요?’

처음 듣는 이야기.

내가 의아해하자, 데우스는 무겁게 중얼거렸다.

[그래. 여섯 번째 용. 마룡 가간투스 말이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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