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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136화 (136/139)

136화

마룡 가간투스.

그저 이름만 들었을 뿐인데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단어 자체에 담긴 원초적인 무게감?

그런 것들이 나를 짓누르는 기분이다.

분명 처음 들어본 이름일지언데, 그저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존재라니.

심상치 않은 존재라는 건 확실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간투…… 스가 누굽니까?’

하나, 데우스는 대답 대신 엉뚱한 소리를 했다.

[드래곤이라는 생물이 대체 이 세상에 왜, 어떻게 존재하는지, 혹시 너는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요.’

드래곤이 왜 존재하느냐고?

딱히 고민해 본 적은 없지만……

‘굳이 생각해본다면, 확실히 드래곤의 존재는 불가해한 면이 있네요.’

드래곤은 가히 신에 가까운 존재다.

세상을 오시할 수 있는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고, 마법과 검식을 자유로이 다루며, 필멸자가 범접할 수 없는 시간을 살아오며 지혜를 쌓아 올린 존재가 대체 신이 아닐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한데, 그런 압도적인 능력을 지녔음에도 드래곤은 세상의 흐름에 개입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 탓에, 그들은 어린아이들이 읽는 동화책 속에서나 나올 법한 허황된 존재 취급을 당한다.

퍽 웃기는 일 아닌가?

[그건 다 이유가 있는 일이었도다.]

‘이유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데우스가 조용히 설명을 시작했다.

[태초에, 이 세계에는 여섯 드래곤이 존재했도다. 우리들은 신의 뜻에 따라, 이 세계를 지켜는 보되 개입은 하지 않는 역할을 부여받고 창조되었도다.]

‘설마 천지창조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입니까? 젠장, 딱 봐도 지루할 것 같은데……. 쓸데없는 부분은 조금 압축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빌어먹을 꼬맹이 같으니라고.]

데우스는 혀를 차며 투덜거렸지만, 내 부탁대로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쳐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하여튼, 우리에게는 따로 금제禁制가 걸려 있지는 않았도다. 애초에 태생부터 존재가 목적하는 바가 있었기에 굳이 다른 행동을 할 동기도, 이유도 없었지.]

‘그건 좀 끔찍하네요.’

태어날 때부터 삶의 목적이, 타인에 의해 정해진 삶이라니. 전생의 내 운명이 그와 같았기 때문일까? 듣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중요한 건, 여기서부터다. 가간투스라는 드래곤이 있었도다. 우리 형제들 중 막내에 해당되는 놈이었지. 그 녀석은 태생부터 우리와는 조금 달랐도다. 녀석은 이 세계에 직접 개입하기를 원했다. 자신이 가진 강대한 힘을 휘두르기를 원했고, 세계를 손에 쥐고 흔들고 싶어했지. 힘을 가진 자로서 당연한 일이라던가?]

“…….”

[그래서 그렇게 했다.]

“네?”

그렇게 했다니, 그게 뭔 소리야?

[그 말 그대로다. 녀석은 세상의 흐름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 관찰자에서, 대국을 두는 기사가 된 거지.]

“……세상에.”

[가간투스는 대륙이 온당히 자신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를 위해서 녀석은 자신의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세계를 불태웠도다. 놈이 마룡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고작 파편에 불과한 권능만으로도 사람을 차원이 다른 경지에 오르게 할 수 있다. 그런 드래곤이 본인이 가진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세상을 정복하려 들었다면, 그야말로 인세의 지옥이 펼쳐졌을 것이다.

[막아야만 했다.]

데우스는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이 불타는 꼴을 눈앞에 두고도, 태생의 목적 따위를 논하는 녀석은 없었다. 우리가 관찰해야 할 세계가 사라질 판인데, 행동하는 건 당연하지 않겠느냐?]

‘그렇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데우스는 잠시 말끝을 흐렸다가, 이내 뱉어내듯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놈을 죽이기로 했다. 그래도 직접적인 개입은 아무래도 다들 꺼림칙해 하였기에, 당대 최고의 재능을 가진 다섯 명의 영웅들과 계약하고 그들에게 힘을 빌려주었다. 그리고 그 결과, 영웅들의 활약으로 마룡 가간투스는 죽었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었지.]

‘……그럼 그 다섯 영웅이 오대명가의 시조입니까?’

[맞다. 우리가 그들이 가문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세상을 구한 자들에게 걸맞는 보상이라고 여겼지. 수호룡으로서 가문에 깃들어 그들의 후손을 보호해주는 것 또한 그때의 계약 때문이도다.]

그렇군.

오대명가의 수호룡에 이런 비밀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조용히 물었다.

‘그럼, 아까 그 놈은 뭡니까?’

왜 시조들 칼침 맞고 뒈졌다는 마룡의 힘을, 빌헬름 슈미트가 쓰고 자빠졌는데? 죽었다며?

설마 확인 사살도 안 해본 건가?

[……나도 그건 잘 모르겠도다.]

참으로 대책이라곤 한 줌도 없다는 듯한 말에 절로 열불이 뻗쳤다. 자연스럽게 큰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니, 그걸 왜 몰라!”

“응? 무슨 일이오, 형님?”

“……아무 것도 아니다. 계속 나아가기나 해.”

“싱겁긴. 알겠소이다.”

내 고함 소리에 반응한 다르킨을 저 멀리 보낸 뒤, 나는 데우스에게만 들릴 수 있게 속으로 속삭였다.

‘그 놈이 마룡의 힘을 쓴다는 건, 마룡의 하수인이 되었다는 뜻입니까?’

[……아마도 그럴 것이도다.]

‘그럼 마룡이 살아있다는 뜻이잖습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본다면, 그렇겠지?]

‘그럼, 좆된 거 아닙니까?’

세상을 불태우겠다고 날뛰는 괴물이 살아있다고?

그것도 그냥 괴물도 아니고, 무려 오대명가의 초대 시조들이 전부 달려들어서 겨우 잡아낸 드래곤이?

머리가 지끈거렸다.

안 그래도 왠 미친 8성 기사가 목숨을 노리는 탓에 신경이 날카로운데, 그 8성 기사가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드래곤의 하수인이었다니!

‘심지어 마룡의 하수인이 되었으니, 평소보다 더 강해졌을 터.’

이 상태로는 못 이긴다.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어쨌든, 데우스는 한 번 마룡을 잡아보았다.

그렇다면 상대법 정도는 알고 있을 터.

‘빌헬름을 상대할 좋은 방법, 혹시 없습니까?’

하나, 데우스는 침음성을 흘릴 뿐이었다.

[딱히 없다고 봐야 할 게다. 물론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만, 우리가 성물이라고 부르던 무구가 있어야 해서……. 당장은 쓸모가 없는 방법이도다.]

‘젠장, 진짜 도움이라고는 하나도 안 되네.’

비아냥거려 보았으나, 평소와는 다르게 데우스가 발끈하는 일은 없었다. 그만큼 데우스가 생각하기에도 현 상황은 심각할 대로 심각하다는 뜻이리라.

쯧.

일단은 이 미로의 끝으로 가는 방법뿐이다.

그곳에서 정비를 하고, 새 무구도 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빌헬름 놈에게 최소한 이빨이라도 들이밀어 볼 수 있을 거다.’

체력도 마나도 바닥난 지금 상태에서 다시금 빌헬름과 마주친다면, 그 결과는 전멸 뿐이다.

나는 그 생각을 곱씹으며 계속해서 미로를 나아갔다.

두 번째 유적의 공략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유적의 끝자락에 도착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첫째는 이곳이 그다지 가디언이 없는 유적이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미로의 시작 지점이 아닌 한가운데 지점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이다.

“거의 다 왔습니다, 주군.”

“얼마나 남았지?”

“두 블록…… 아니, 세 블록 정도입니다.”

그 말에 다르킨이 화색을 띠었다.

“오호! 드디어 도착인가! 드디어 이 그지같은 검을 내다 버릴 수 있겠구만!”

내가 다르킨에게 건네 준 예비용 철검은 계속되는 전투와 다르킨의 무지막지한 근력에 의해, 이미 그 형태를 잃은 지 오래였다.

이제는 검‘이었던 것’이 되어버린 쇳덩이를 대충 흔들어 보이던 다르킨이 성큼 앞장서며 중얼거렸다.

“새로운 검을 얻으면…… 형제들을 배신한 그 인간말종에게 죄를 물을 수 있겠지.”

성격 때문에 내색하지 않았을 뿐, 다르킨 또한 빌헬름을 향해 끓어오르는 분노를 품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대답해 주었다.

“그럴 수 있을 거야.”

아니.

꼭 그래야만 했다.

* * * * *

유적의 끝자락에는 엘리트 가디언이 하나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 나타난 가디언의 수준이 수준인 만큼, 엘리트 가디언의 능력은 별 볼 일 없었다.

끽해야 5급 몬스터 정도일까?

그 탓에 토벌단의 암즈 측 기사 둘이 칼질을 좀 하자, 곧바로 사지가 잘리며 가디언은 무너져 내렸다.

-쿠구궁!

돌무더기로 변한 가디언을 잠시 지켜보다가, 나는 유적의 끝자락, 제단실을 살폈다.

제작자의 악취미적인 면모가 물씬 풍기던 아라크네의 연옥과는 달리, 이곳의 제단실 디자인은 평범했다.

내부 한 가운데에는 거대한 제단이 하나 놓여 있었다. 제단 위에는 흰색 구슬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무슨 용도로 사용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벽면에는 수십 자루의 검이 빼곡히 거치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이곳은 금고 방이 없는 대신, 제단실에 모든 아티팩트가 보관된 형식인 것 같았다.

“검이다, 검!”

다르킨은 손에 쥔 쇳덩이를 냅다 던져버리고는 벽면에 거치된 검을 향해 달려갔다. 한 자루, 한 자루가 역사에 이름 한 번쯤은 남겼을 명검들. 무인으로서 눈이 돌아가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삼중 유적으로 넘어가는 입구는 어디에 있지?’

당장 빌헬름 슈미트가 우리를 뒤쫓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명검과 아티팩트, 그리고 무구를 사용해도, 이곳의 전력으로는 놈을 이길 수 없다.

그놈을 상대할 방법은, 삼중 유적에서 출토되는 신기를 쓰는 것뿐이다.

‘젠장, 어디지? 대체 어디야!’

하나, 아무리 찾아도 입구로 보이는 공간은 없었다.

나는 델리우스를 불러 속삭였다.

“다음 유적으로 넘어가는 입구는 어디지?”

“그, 그게…… 송구합니다, 주군. 찾을 수 없습니다.”

“뭐?”

“어째서인지 다음 유적으로 넘어가는 방법이 어디에도 써 있지 않습니다. 보통은 이런 걸 안 적는 경우는 없는데…… 마치 그 부분만 지워진 것 같습니다.”

다음 유적으로 넘어갈 방법을 못 찾는다고?

그럼…… 빌헬름은 어떻게 처치하지?

절로 등골에 소름이 쫙 끼치고, 얼굴이 굳었다.

침이 마르다 못해 입술이 텁텁해지는 것 같다.

“괜찮아?”

내 상태가 많이 꼴불견이었는지, 아멜리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살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전혀 겁먹은 표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겁을 안 먹을 수 있지?’

물론 그녀는 삼중 유적에 관한 건 알지 못한다.

하나, 객관적인 사실만 볼 때, 우리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8성 기사를 이 전력으로 이긴다는 건 어불성설이니까. 사실상 죽음을 기다리는 시한부나 다름없다는 거다.

실제로 다른 토벌단원들은 얼굴이 새까맣게 죽거나, 퍼렇게 질린 자들이 태반이었다.

다르킨 또한 식은땀으로 얼굴이 축축하게 젖은 상태였고.

그런데 오로지 아멜리아만, 그녀만이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괜찮지는 않은 것 같은데. 너는 괜찮아?”

“나는…… 괜찮은 것 같아.”

“어떻게?”

내 물음에 아멜리아가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설마, 너 여기서 죽을 생각이야?”

“뭐?”

“여기서 죽고 싶은 거냐고.”

“아니, 그럴 리가 없잖냐.”

무슨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거지?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냐.

내가 얼굴을 찌푸리자, 그녀가 풋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살아남는 것만 생각해. 왜 죽을 걱정을 해?”

“…….”

그 간단한 대답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네 정인이 참 옳은 말을 하는구나. 자살을 할 게 아니라면, 활로를 찾는 데 전력을 집중하는 게 옳지!]

그래, 그 말이 맞다.

난 죽을 자리를 찾아 이곳에 온 게 아니다.

‘살기 위해서 왔지.’

그 즉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전신의 감각을 곤두세웠다.

용의 권능으로 강화된 감각이 사방의 정보를 수집한다. 순식간에 끔찍할 정도로 많은 정보가 감각 기관을 타고 흘러들어온다.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의 양.

나는, 그 자리에서 모든 정보를 분석했다.

‘찾는다.’

이곳을 빠져나갈 활로.

다음 유적으로 넘어가는 입구.

“…….”

몸이 뜨거워지고, 절로 전신에서 땀이 흘러내린다. 불쾌하고 찝찝했지만, 땀을 닦아낼 시간 따위는 없다.

참는 수밖에.

그 순간, 아멜리아가 손수건을 꺼냈다.

그녀는 내 이마에 맺힌 땀을 슥 훔쳐 주었다.

“힘내.”

그리고는 내게 들릴락말락 조용히 속삭였다.

“…….”

대답 할 시간은 없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상황이니까.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

마침내.

나는 세 번째 유적의 입구를 찾아냈다.

‘이딴 식이니까 입구를 못 찾았지…….’

내 예상과는 다르게, 입구는 이곳에 있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세 번째 유적의 입구는…….

‘심상 세계라니……!!’

바로 내 정신 속에 있었으니까.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나는 곧바로, 정신 너머의 문을 열어 젖혔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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