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137화 (137/139)

137화

그 순간.

-찰칵!

마치, 걸쇠가 풀리는 소음이 들렸다.

동시에 세상이 부서지며 시야가 축소된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의식이 흐려진다.

정신을 차리자, 나는 어떤 동굴에 서 있었다.

“큭!”

의식을 자각한 순간, 가슴에서 둔통이 느껴진다.

흡사, 누군가가 심장을 꽉 쥐어짜는 것 같다.

“허억, 허억.”

거기다가 어째서인지 호흡도 거칠어졌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다. 전신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고산병과 비슷한 증상…….’

하지만 이곳은 고산이 아니다. 이곳은 지저의 동굴. 그것조차도 진짜 현실이 아닌, 심상 세계에 불과하다.

이 유적의 특성인 건가?

“젠장.”

나는 혀를 찼다.

움직임과 활동을 제약하는 환경이라니.

시작부터 난해하기 그지없었다.

‘일단…….’

정보를 수집하자.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넓은 공간이었다.

동굴이라고 해야 할까, 광장이라고 해야 할까. 조금 헷갈리는 곳이었다. 바닥에는 거대한 연못이 있었고, 그 한 가운데에는 제단이 있었다.

“……저곳인가?”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제단 쪽을 바라보았다.

제단 위에는 무언가 검의 손잡이 같은 것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마치 제단에 박혀 있는 것 같은 모습.

아무래도 저게 삼중 유적의 신기神器인 것 같았다.

“좋아.”

목표를 찾았으니, 이제 움직여야지.

나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연못으로 다가갔다.

연못에는 검푸른 액체가 가득 차 있었다.

‘물…… 은 아닌 것 같은데.’

물이라면 자연스레 속이 비쳐야 할 텐데, 이 액체는 그렇지 않았다.

반투명하다고 해야 할까?

하여튼 묘하게 꺼림칙한 액체였다.

일단 깊이를 확인해 볼까.

나는 조심스레 연못에 손을 들였다.

그 순간.

“끄, 으아아아악!”

액체에 닿은 손부터 시작해서, 팔, 어깨, 척추를 타고 눈이 튀어나올 정도의 격통이 짜릿하게 치솟는다. 마치 신경을 찢고 불태우는 것 같은 고통.

마치 뜨거운 물건을 잡았을 때처럼, 나는 황급히 손을 떼며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크흑, 컥. 제, 젠장. 뭐지?”

나는 이를 악물며 연못을 노려보았다.

‘삼중 유적에는 ‘시련’이라는 게 있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이게 그 시련인 것 같았다.

“쯧.”

절로 얼굴이 구겨졌다.

‘시련’은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일단 피부에 직접적으로 닿으면 안 된다.’

닿는 순간 지옥불에 내던져진 것 같은 고통이 전신을 관통한다. 참기 힘들 정도의 고통이라는 건 둘째치고서라도, 이 정도라면 쇼크로 죽을 수도 있다.

방법은 물에 안 닿는 것뿐.

문제는 그러지 않고서는 제단으로 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배……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지.”

그런 게 있으면 ‘시련’이라고 불릴 리도 없다.

나는 고개를 숙여 신발을 확인해 보았다. 역시나 내 신발은 ‘디딤돌’이 아닌, 평범한 부츠였다. 꼼수 따위는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절절히 느껴진다.

‘물의 깊이는…… 그건 문제가 아니겠군. 어차피 물 위로 걸어가는 수밖에 없으니까.’

결국 해답은 하나뿐이다.

물 위를 걸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5성 기사쯤 되면 충분히 물 위를 걸을 수 있다. 발에 마나의 막을 형성해 그걸 밟으면 되니까.

문제는 몸을 짓누르는 압박감과 가슴에서 느껴지는 둔통, 불규칙해지는 호흡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마나를 다루는 것도 힘들고, 흐름을 제어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하지만.

“좋아.”

나는 깊게 심호흡을 하며 제단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물 위로 발을 올렸다.

-퉁

묘하게 맑은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물을 밟고 섰다. 정확히 수면 위에 뜬 몸. 완벽하기 그지없는 마나 컨트롤이었다. 마나 컨트롤에 관해서라면, 나는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다.

‘할 수 있다.’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침착하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 * * * *

-쿠구구궁!

무언가 파괴되고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마, 빌헬름 슈미트가 미로를 때려 부수는 소리겠지.

다르킨 암즈는 마른침을 삼키며 새롭게 얻은 검을 꽉 틀어쥐었다. 절로 등골에 식은땀이 맺혔다.

‘이거 정말…… 죽을 수도 있겠는걸.’

10번단 단주를 상대해야 한다니.

빌헬름의 배신은 다르킨으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런 기색을 보인 적도 없었고, 빌헬름이 암즈를 배신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시점에도 여전히 현실감이 없었다.

하지만 사태는 이미 벌어졌고, 이건 현실이었다.

다르킨은 이를 악물었다.

‘이길 수 있을까?’

이곳의 전력으로는 빌헬름을 상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새로운 아티팩트를 얻고, 체력과 무구를 정비하기는 했으나, 고작 그뿐.

8성 기사를 상대하기에는 한참은 모자라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후우. 어쩔 수 없지.”

죽을 때 죽더라도, 맞서는 수밖에.

다르킨은 그렇게 마음먹으며,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 제단 옆에서 가부좌를 트고 있는 청년이 보인다.

드레커는 아까부터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정신을 잃은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멜리아가 말하기를, 드레커는 지금 이 총체적 난국을 타개할 수를 찾고 있다고 했다.

눈을 감고 고민한다고 해서 활로가 생길 상황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개소리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

다르킨은 착잡한 마음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거요, 형님.’

고민한다고 해서 방도가 나올까?

뭐, 그렇다고 다른 수가 있는 건 아니지만…….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의 직감은 드레커가 성공하리라 말하고 있었다.

* * * * *

-퉁 퉁 퉁

한 걸음, 한 걸음.

나는 계속해서 연못을 나아갔다.

분명 오랜 시간 나아갔을 텐데, 놀랍게도 아직 반절도 가지 못했다. 아무래도 압박감이 시간 감각을 왜곡하는 것 같았다. 걸음걸이도 느려진 것 같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집중력을 한계까지 끌어다가 쓰는 기분.

시야에는 오로지 제단만 보였고, 주변의 사물은 인식 범위를 벗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흐릿했다.

발을 움직이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가만히 멈춰 서 있다고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나는 분명히 나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내 장기인 마나 컨트롤 능력을 살릴 수 있어서.

만일 이런 ‘시련’이 아니었다면, 꽤 심각하게 시간을 낭비했을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시간 낭비는 위험하지.’

이 심상 세계는 데우스의 것과는 다르게, 시간이 바깥과 똑같이 흘렀다. 처음 오자마자 깨달은 부분이었다. 빠르게 탈출하지 못한다면, 큰일이 날 수도 있다.

그렇게.

한참을 더 걸었을까.

“……도착했다.”

마침내, 나는 연못의 한 가운데에 도달했다.

드디어 이 끔찍한 호수와는 안녕이다.

나는 제단의 턱을 밟고 올라섰다. 그제야 다리에 집중하고 있던 마나를 풀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후우, 자 그럼…….”

잠시 심호흡을 한 뒤, 나는 제단을 살폈다.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제단에는 한 자루의 검이 꽂혀 있었다.

깊이 꽂힌 탓에 검날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투박하다면 투박한, 장식 하나 없는 무미건조한 디자인.

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검…….’

이 검이, 어마어마한 힘을 품고 있다는 걸 말이다.

-꿀꺽!

나는 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검을 꽉 움켜쥐었다.

그 순간.

“큭!”

마치 빨아들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검 손잡이에 손이 착 달라붙었다. 움켜쥔 손을 펼칠 수 없었다. 마치 접착제로 붙이기라도 한 것 같았다.

절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하, 그래. 뽑으라 이거지?”

그렇다면 뽑아 줘야지.

나는 힘차게 검을 잡아당겼다.

검을 쥔 팔의 근육과 뼈가 삐걱댄다. 쉽게 뽑힐 것 같다는 예상과는 다르게, 박힌 검은 뻑뻑했다. 하지만 조금씩이나마 뽑혀나오고 있었다.

“크으으윽!”

손에 더욱 더 힘을 주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

마치 벽을 넘어서는 것처럼, 검이 쑥 뽑혔다.

동시에.

세상이 무너져내린다.

이전에, 데우스의 심상 세계에서도 보았던 그 광경.

나는 그 아름다운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감은 눈을 떴다.

어두컴컴한 미로. 다르킨과 토벌단원들이 무기를 꽉 움켜쥔 채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멜리아 또한 마법진을 펼친 채 전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현실로 돌아왔다.’

문득 손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힐끔 시선을 내리자, 언제부터 쥐고 있었는지 모를 거무튀튀한 검이 보였다.

‘유적에서 얻은 검.’

삼중 유적의 신기神器. 그것을 의식하는 순간, 곧바로 머릿속에 검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람.’

[뭐, 뭐냐. 그건! 어디서 얻은 게야?]

그 순간, 데우스가 깜짝 놀라며 기겁했다.

평소답지 않게 당황한 목소리.

‘왜 그러십니까?’

[아니지, 어차피 잘 되었다. 일단 그 검으로 저놈부터 죽이거라.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면 되는 일!]

데우스의 외침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아까부터 계속해서 들리던 폭음이 멈추었다.

곧장 제단실에는 침묵이 찾아왔다.

마른침 삼키는 소리도 들릴 것 같은 고요함.

-콰과광!

다음 순간.

눈앞의 미로 벽이 박살나며 흙먼지가 쏟아졌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 너머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일렁인다. 빌헬름 슈미트는 먼지구름을 해치며 저벅저벅 다가왔다.

“찾았다, 이 쥐새끼들!”

빌헬름이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어마어마한 살기가 쏟아진다.

하지만 우리의 몸을 굳게 한 것은, 살기가 아닌 빌헬름의 외모였다.

“……저, 저게 무슨!”

악룡의 힘으로 되살아난 탓일까?

빌헬름은 도저히 같은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푸르딩딩한 색으로 물든 피부는 가뭄이라도 든 것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신체는 기형적으로 뒤틀려 있었고, 이마에는 양의 뿔이 돋아 있다.

그야말로 괴물의 외형.

“끔찍하군……!”

다르킨이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흐, 끔찍하다니. 내가 두려운가?”

빌헬름이 웃었다.

그의 검게 물든 눈알이 번들거린다.

“암즈의 대단하신 혈통께서도 두려운 것이 있다니. 그것 참 놀랍군.”

다르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검을 겨눌 뿐.

다르킨이 반응하지 않자 빌헬름이 눈을 찌푸렸다.

“재수 없는 놈. 죽어라.”

그리고는 곧장 달려들었다.

빌헬름의 손가락이 다르킨의 얼굴을 노린다.

뾰족한 손톱이 날카롭게 빛났다.

다르킨은 검을 휘둘러 그 손톱을 쳐내며 외쳤다.

“이젠 무기도 쥐지 않는 것인가! 빌헬름 슈미트!”

“진정한 힘이 있다면, 무기 따위 필요 없다!”

“헛소리!”

순식간에 다르킨과 빌헬름이 몇 합을 교환했다.

-캉! 카강!

하나, 당연하지만 다르킨은 빌헬름을 이길 수 없었다. 실력 차이가 나는 것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공격이 아예 안 들었다.

분명 피부와 검이 부딪쳤는데, 쇳소리가 났다. 아무래도 신체가 바뀌면서 피부가 강철만큼 단단해진 게 분명했다.

“이, 이런!”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다르킨이 당황했다.

그 모습에 다른 토벌단원들이 즉시 합세했다.

“큭!”

“커헉!”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빌헬름은 맨몸으로도 이곳의 전원을 압도했다.

점점 토벌단원들의 얼굴에 절망이 깃들기 시작했다.

하나.

나는 그 상황 속에서 승리의 기회를 엿보았다.

‘확실해. 이전보다 약해졌어.’

직접 검을 맞대는 자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뒤에서 살피는 내 눈에는 빌헬름의 움직임이 어색한 게 훤히 보였다.

‘저놈은 이전에 한 번 죽었지.’

분명 죽을 정도의 상처를 입었다. 팔도 잘렸고.

그런 몸을 마룡의 힘으로 새롭게 구축한 거다.

분명, 아직 회복이 안 끝났으리라.

거기다가.

나는 손에 쥔 그람을 꽉 틀어쥐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람은, 마룡의 힘을 상대할 때 완전히 우위를 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길 수 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는 순간.

이미 나는 놈에게 검격을 흩뿌리고 있었다.

내가 뿌린 검격을, 놈은 대놓고 무시했다.

아마 강화된 육체를 믿고 벌인 짓이겠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운이 좋군.’

놈의 방심 덕분에, 첫수를 성공시킬 수 있었으니까.

-푸슉!

“크아악!”

다음 순간, 놈의 왼팔이 허공을 날았다.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