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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138화 (138/139)

138화

집중된 감각 덕분에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푸슉!

잘려나간 팔이 허공을 빙글빙글 돌고, 빌헬름의 어깨에서 피가 푸확 치솟는 게 똑똑히 보였다.

빌헬름의 눈동자가 화악 커진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

‘하지만 이건 현실이지.’

나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휘두른 검격을 회수했다. 그대로 놈을 스쳐 지나간다. 동시에 감각의 확장이 풀리며 시간의 흐름이 빨라진다.

“끄아악!”

잘린 팔이 바닥을 나뒹구는 것과 동시에, 빌헬름이 비명을 질렀다.

나는 자세를 바로잡으며 손안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정신을 집중했다.

검신을 타고 몸 속으로 마나가 흘러들어오는 게 느껴진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꽤 많은 양의 마나가 몸 속으로 흡수된다.

그건 순리를 거스르는 흐름이었다.

분명 검격을 날릴 때 오러를 만들기 위해 검에 마나를 담기는 했지만, 그 마나가 다시 되돌아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그것이 그람Gramr, 마룡포식검이 가진 힘이다.]

데우스가 나직히 중얼거렸다.

‘마룡포식검…….’

[마룡의 가슴을 찔러, 놈의 심장을 먹어치운 검. 그렇기에 마룡의 힘을 흡수해 마나로 바꿀 수 있도다. 지금 네가 직면한 상황에서는 최고의 능력이지!]

그 말이 맞다.

지난 전투들로 인해 내 마나는 바닥이 나버린 상황.

지금 내게 마나 회복은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오러를 피웠음에도 오히려 전보다 마나가 찼다.’

그렇다면 마나를 양껏 써도 된다는 뜻!

나는 그람을 고쳐잡으며, 검 끝으로 빌헬름을 겨누었다. 동시에 검신에 검붉은 오러가 피어 올랐다.

“크으윽, 네놈!”

정신을 차린 빌헬름이 이를 갈며 나를 노려본다.

이글거리는 검은 눈동자에 가득 담긴 살의가 나를 옥죈다.

마치 강한 몬스터의 피어에 노출된 것 같은 감각.

평소였다면 몸이 일순 굳었으리라.

하지만.

“후우.”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는 걸로도 그 피어를 이겨냈다. 그람은 마룡의 힘을 흡수하는 것 외에도, 그 힘에 대한 저항력까지 가지고 있는 듯했다.

내가 끄떡도 안 하자, 분노한 빌헬름이 달려들었다.

“이놈!”

순식간에 땅을 박차고 달려든 빌헬름이 오른손을 휘둘렀다. 뾰족한 손톱이 섬뜩하게 빛나며, 마치 클로처럼 날아든다.

마룡의 힘으로 강화된 덕분에 빌헬름의 손톱은 평범한 철검 따위는 푸딩 가르듯 부러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쥔 검은 평범한 철검이 아니다.

‘마룡포식검 그람Gramr.’

무려, 마룡의 심장을 먹어치운 검이다.

마룡도 아니고, 그저 그 힘의 편린을 빌렸을 뿐인 하수인의 몸뚱이는 언제든지 찢어발길 수 있었다,

빌헬름 또한 그 사실을 인지한 것인지 의도적으로 그람에 닿는 것을 피했다. 이 검이 닿는 순간 살갗을 찢고 베어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내가 공세로 나설 차례라는 뜻이다.

멱살을 노리고 뻗은 손을 피하며 검 끝을 휘돌렸다.

빠르게 치고 올라가는 올려베기.

-서걱!

그람의 검끝이 놈의 쇄골을 스친다.

순식간에 살갗이 찢겨나가고 뼈가 잘린다.

“크윽!”

빌헬름이 이를 악물며 발악했다.

“이노오옴!”

하나, 그의 공격은 더 이상 내게 통하지 않았다.

“흡!”

숨을 삼키며 그대로 검격을 흩뿌렸다.

검은 섬광이 번쩍이며 빌헬름을 덮친다.

오러가 가득 담긴 검격이 마치 비처럼 쏟아진다.

폭풍과 함께 몰아치는 해일 같은 검격의 향연.

-파바바박!

“크아아악!”

순식간에 전신을 난자당한 빌헬름의 몸에서 피분수가 솟구쳤다.

하나, 놈은 그렇게 당했음에도 죽지 않았다.

“허.”

당연히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빌헬름은 마치 쥐새끼처럼 급소에 닿을 공격만 피해냈다. 강화된 육체를 최대한 활용한 결과물이었다.

‘이걸 피해?’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하지만 상관 없다.’

나는 입꼬리를 씩 끌어올렸다.

어차피, 이번 공격으로 기세는 뒤집혔다.

‘상처를 많이 입은 시점에서 끝이다.’

이제부터 내가 계속 공세를 이어가는 이상, 빌헬름은 더 이상 회피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것은 놈이 승기를 잡을 방도가 없다는 뜻.

‘그리고.’

나는 검을 휘두르면서, 놈의 상처를 살폈다.

잘려나간 왼팔, 베인 쇄골.

그 외에도 자잘한 상처까지.

‘상처가 안 낫는군.’

분명 처음에 한 번 죽였을 때도 그렇고, 그 이후에도 놈이 입은 상처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하지만.

지금 놈의 상처는 전혀 재생이 되고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람’의 힘 때문인 것 같은데…….

이것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이 검으로 베면 되살아날 수 없다는 것.’

더 이상, 부활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였다.

“형님!”

그 사실을 깨달은 건 나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토벌단원들, 다르킨, 그리고 아멜리아까지.

승기가 보이자, 모두의 기세가 되돌아왔다.

“흐아압!”

내 검격을 피해낸 빌헬름이 등짝에 다르킨의 검이 직격한다. 즉시 뒤돌아선 빌헬름이 다르킨을 걷어찼으나, 다른 토벌단원이 옆구리를 찌르는 걸 막지는 못했다.

“이, 버러지 같은 놈들이!”

빌헬름이 자신을 찌른 토벌단원의 목을 쥐고 분지르며 고함을 내질렀다.

하나, 내 눈에는 다 죽어가는 맹수의 단말마로만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제 다 끝났다.’

놈의 최후가 멀지 않았다는 걸.

“드레커!”

그 순간, 아멜리아의 외침이 들려왔다.

동시에 느껴지는 강렬한 마나의 파동.

나는 황급히 땅을 박찼다.

그 즉시 수십 개의 얼음창이 빌헬름에게 내리꽂혔다.

-콰과과곽!

땅에 쳐박힌 얼음창이 터지며, 주변이 얼어붙었다.

물론 얼음은 빌헬름에게 큰 피해를 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 이런!”

얼음 폭발로 인해 놈이 얼어붙었다는 게 중요했다.

다리가 얼어붇은 빌헬름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걸 본 순간.

나는 그대로 양 다리에 힘을 주고 도약했다.

검을 꽉 틀어쥔 채, 바인더샤칼의 오러를 피워올린다. 지금까지 흡수한 마나를 그람에 전부 쑤셔박았다.

내가 강대한 기운을 모으는 걸 느꼈는지, 빌헬름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이, 이놈들이!”

빌헬름은 성애가 낀 손으로 얼어붙은 다리를 내리쳤다. 얼음이 산산조각이 나며 놈의 다리가 빠져나왔다.

그러나.

“늦었어!”

내 검이 더 빨랐다.

크게 휘두른 검격이.

정확히 놈의 목을 노린다.

내 검의 궤도를 읽었는지, 빌헬름은 황급히 오른팔을 들어 목을 방어했다.

하지만.

-와드득!

“크아아악!”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대로 팔을 뜯어먹힐 뿐.

-쿠당탕!

마지막 남은 팔을 잃은 빌헬름이 뒤로 나뒹굴었다.

검붉은 피가 흩뿌려지고 살점이 바닥에 튀긴다.

사실상 무력화된 상태.

물론 방심할 생각은 없었다.

-푸욱!

나는 그대로 놈의 심장에 그람을 쑤셔박았다.

“커헉!”

심장이 뚫린 빌헬름이 눈을 크게 떴다.

“쿨럭!”

곧, 그는 핏물을 울컥 토하며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으그윽.”

빌헬름이 다리를 버르적거리며 발악했다.

하나, 양팔이 없는 이상 무의미한 행동일 뿐.

그제야 나는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아.”

절로 긴장이 탁 풀렸다.

동시에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나는 이마를 짚은 채,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죽였다.’

8성 기사를, 내 손으로 쓰러트렸다.

물론.

그람도 그렇고, 다른 동료들도 그렇고. 이번 성과는 오로지 나 혼자 힘으로 성공한 일은 아니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룬 위업이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이겼으면 됐지.’

그래.

이겼으면 된 거다.

“끄르르륵.”

그 순간, 쓰러진 빌헬름이 피가래 끓는 소리를 냈다.

모두의 시선이 빌헬름을 향했다.

그러자 우리는 놈의 몸이 점점 변하기 시작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보랏빛에 가까웠던 살갗이 본래 색을 되찾는다. 눈에 가득 찼던 검은 빛도 점점 빠져나갔다. 피부에는 검버섯이 피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 잡히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초라하게 쪼그라드는 빌헬름.

모두의 얼굴이 굳었다.

“…….”

머리에 솟았던 뿔이 툭 떨어지는 것을 끝으로, 빌헬름은 완전히 말라비틀어진 노인이 되어 버렸다.

“허.”

빌헬름의 숨이 끊어졌다는 걸 확인한 다르킨이 헛웃음을 지었다.

“빌어먹을 인간이군. 이렇게 덜컥 죽어버리다니. 이래서는 빌헬름 놈이 어째서 우리를 배신했는지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잖는가.”

다르킨이 주먹을 꽉 움켜쥐며 중얼거렸다.

빠드득 하고 이를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도,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니! 대체 형제들의 무덤에 무어라 고하라는 말인가!”

총 마흔 명이 넘는 토벌단원이 고작 네 명 밖에 살아남지 못했다. 그야말로 전멸이나 다름 없는 피해.

그런 상황 끝에 배신자를 쓰러트렸지만, 정작 어떠한 정보도 캐내지 못했다. 아무 의미 없는 죽음이 되어버렸다는 뜻이다.

“…….”

다르킨의 분노는 지도자로서 당연한 반응이었다.

“젠장…….”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다르킨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다른 토벌단원들 또한 대부분이 우울한 얼굴이었다.

“…….”

문득 내 시선 끝에, 저 멀리 쓰러져 있는 한 소년의 얼굴이 들어왔다.

우리와 함께 이중 유적으로 넘어왔던 상급반 수련생. 그는 빌헬름의 손길에 몸이 두 토막이 난 채로 죽어 있었다.

나는 공허한 표정으로 눈을 뜬 채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소년에게 다가가, 그의 눈꺼풀을 덮어 주었다.

살아남았지만, 입맛이 썼다.

* * * * *

유적 안에서 단주가 배신했다는 초유의 사태가 해결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약간의 휴식을 취한 뒤, 곧바로 유적 밖으로 빠져나았고, 외부에서 대기하는 나머지 토벌단원들에게 곧장 사태를 알렸다.

그 즉시, 사태 파악과 수습을 위해 두 가문에서 사람을 바글바글할 정도로 보내왔다.

유적에서 아티팩트를 회수하고, 죽은 자들의 유해를 챙기고 조금 남은 몬스터를 처치하는 데까지 걸린 기간은 총 일주일.

그 기간 동안 우리는 양 가문의 합동 조사를 위해 계속 유적에 붙잡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당연한 일이지만, 이번 사태는 빌헬름 슈미트 개인이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빌헬름이 다른 누군가와 모의했다는 증거도 안 나왔고, 범인도 결국 던전 안에서 죽어버렸기에, 더 이상 조사 자체가 될 수가 없었던 탓이었다.

‘사실 동기라고 할 것도 없고.’

그렇기에 사태는 광증이 도진 빌헬름이 미쳐 날뛰었을 뿐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빌헬름의 육체가 변이한 것 또한, 제대로 확인한 사람이 없었기에 그냥 유야무야 넘어가 버렸고.

물론 나는 그 힘의 정체를 알고 있었으나, 굳이 언급할 이유는 느끼지 못했다.

애초에 마룡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해 봤자, 믿어줄 사람이 없다.

미친놈 소리를 듣느니, 그냥 입 다무는 게 최선이다.

‘뭐, 나한테는 차라리 잘 된 일이지만.’

나는 품 속에 든 그람을 만지작거리며 웃었다.

빌헬름이 쓰러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람은 자그마한 단검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힘의 원천이 될 마룡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서 형태를 바꾼 거라던가?

‘덕분에 그람의 존재를 들키지 않을 수 있었지.’

단검 형태로 변한 그람은 퍽 평범한 모습이다.

장검 형태일 때처럼 섬뜩하고 강대한 기운이 흘러나오지 않는 탓이다.

덕분에 아무도 그람이 유적의 아티팩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그람을 소지하고 있는 걸 의심하는 사람 또한, 한 명도 없었고 말이다.

‘아주 운이 좋군.’

[……바보같기는! 어차피 마룡을 상대할 때가 아니면 쓸모없는 무기다. 그냥 쓰기에는 네가 지닌 미스틸테인이 더 좋은 검이란 말이도다.]

‘없는 것 보다는 낫겠죠.’

사실 좀 양심이 찔리기는 했다.

다르킨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번 사태는 휘하의 단주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암즈의 책임이 되었다.

덕분에 리텐슈노프는 나름대로 보상 차원에서 원래 계약보다 훨씬 더 높은 분배율을 받을 수 있었다.

거기에 더불어 다르킨이 사과의 의미로 내게 개인적인 보상까지 해주기로 했다.

어쨌든 자신들의 단주가 나를 공격했으니, 당연히 보상해야 한다고 했던가?

굳이 더 준다는데 안 받을 이유도 없던지라, 나는 옳다구나 수긍하고 다르킨을 용서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티팩트도 더 받고, 삼중 유적의 신기神器도 얻고. 거기에 보상까지. 정말 배가 터질 정도로 이득 봤네. 이거, 양심에 좀 찔리는데 어쩌죠?’

[양심이 찔린다고?]

‘당연히 찔리죠.’

나도 사람이고 양심이 있는데, 안 찔릴 리가 있나?

[하! 그렇다고 돌려줄 생각은 없잖느냐?]

“거, 당연한 소리를.”

내가 바보인가.

그걸 돌려주게.

위대한 명가의 막내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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