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빌어먹을. 일이 이렇게 꼬이다니.’
리텐슈노프 본가의 최심부에서 내려온 호출 명령.
그 명령을 따라 철혈궁으로 향하던 에르반 리텐슈노프는 치밀어 오르는 불쾌감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속내가 뒤틀릴 수밖에 없었다.
‘방해를 하라고 보냈더니…… 다 죽어?’
자신의 수하들만으로도 모자라, 아버지인 제랄드의 사람들까지 써서 드레커의 임무를 방해하도록 했다.
한데, 방해하라는 명령을 실패한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자신이 보낸 수하들이 죄다 목숨을 잃었단다.
암즈의 단주가 뜬금없이 배신하는 바람에 말이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일이 어떻게 이렇게 꼬일 수가 있지?’
에르반 리텐슈노프는 이를 빠드득 갈았다.
자신의 수하들을 잃은 것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그 정도 실력을 지닌 자들은 넘쳐났으니까.
아버지의 사람이 죽은 것도 문제는 아니었다.
자신의 수하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별 볼 일 없는 수준의 기사들. 제랄드는 그런 자들이라면 몇십 명이 죽어나간다고 해도 절대 신경쓰지 않을 테니까.
‘문제는…….’
이번 사태로 인해 드레커가 얻은 이득.
그것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었다.
유적 안에서 암즈의 단주가 배신했다. 그건 분명히 암즈 측의 실책이다. 당연히 보상을 해 줘야만 했다.
그리고 실제로 암즈 측에서는 이번 유적에서 출토한 아티팩트의 70%를 리텐슈노프에 넘기겠다 선언했다.
아티팩트 분배율로 리텐슈노프가 입은 피해를 보상하겠다는 것이다.
그래. 거기까지는 상관없다.
아티팩트를 더 많이 받는다?
가문의 이득인 만큼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문제는 그 모든 게 놈의 공이 되어버렸다는 거지.’
그렇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암즈의 배신자를 쓰러트리고, 몇 명 남지 않은 토벌단원과 다르킨 암즈를 구한 게 누구인가?
바로 드레커였다.
드레커가 빌헬름을 처치한 덕분에, 암즈가 책임져야 할 문제를 리텐슈노프가 해결한 모양세가 되었다.
덕분에 리텐슈노프는 명분을 챙길 수 있었다.
아티팩트 뿐만이 아니라 더욱 더 많은 이권을 암즈로부터 챙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에 얻은 공은 모두 다 녀석이 이룬 셈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책임자인 만큼 드레커가 모든 공을 독차지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도 않았고.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재수가 없을 수 있지?’
임무 실패의 책임을 지라고 전권을 몰아줬는데, 오히려 그 전권을 가진 덕분에 모든 걸 얻게 되다니!
절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에르반 리텐슈노프는 미간을 꾹꾹 누르며 생각했다.
‘운이 진짜 좋은 놈이군. 가문의 수호룡께서 녀석과 함께하기라도 하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행운이 따를 리가 없다.
엿을 잔뜩 먹도록 판을 짜 놨더니, 어떤 미친놈이 날뛰어 준 덕분에 오히려 판돈을 독식해 버리지 않나.
배신자라는 놈은 에르반의 수하들은 죄다 쳐죽였으면서, 고작 4성에 불과한 드레커는 못 죽였다.
못 죽이기만 했나, 역으로 당해버렸다!
‘대체 어떻게 하면 8성 기사가 4성 따위에게 죽지?’
대놓고 공격을 맞아주면서 싸워도 지기 힘들텐데?
‘틀림없다. 무언가 속임수가 있어.’
그렇기에 에르반은 드레커가 빌헬름을 죽였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분명 강한 힘을 가진 조력자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아마 그 ‘멜’인가 하는 기사 녀석이 도와줬겠지.’
-빠드득!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절로 이가 갈렸다.
‘이런 웃기지도 않는 연극에 어울리게 되다니.’
지금 에르반은 드레커가 이룬 성과를 축하해주기 위해 철혈궁에 가고 있었다.
에르반이 볼 때, 사기나 다름없는 그 성과를 말이다.
‘가주님……. 이건 실수하시는 겁니다. 아무리 그 녀석을 총애하신다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란 말입니다.’
에르반은, 이번에 드레커가 이룬 성과가 그저 자신이 총애하는 손자가 무언가 대단한 일을 이뤄냈기를 바라는 가주의 그릇된 욕망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엿 같군.’
이건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다.
마음 같아서는 침이나 뱉어주고 싶다.
하나, 가문 내에 온화하고 예의바른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한 에르반은 이런 행사에 빠질 수 없었다.
그저 속내를 숨긴 채, 허허 웃는 수밖에.
물론, 그렇게 호구처럼 웃고 끝낼 생각은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좀 더 노골적인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에르반이 그렇게 결론을 내리는 순간.
“충성!”
문득 들려오는 경례에 그는 정신을 차렸다.
저 멀리 철혈궁의 전경과 함께, 호위 기사가 보인다.
“수고하세요.”
에르반은 철혈궁을 지키는 기사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주고는,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저택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꽉 움켜쥔 주먹은 몰래 숨긴 채…….
* * * * *
아멜리아와 헤어진 뒤, 나는 곧장 본가로 돌아왔다.
임무의 성공에 관해 보고도 해야 하고, 이번 토벌 중에 생긴 돌발 상황에 대한 설명도 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본가에 도착하자마자 쉴 틈도 없이 곧바로 철혈궁의 호출을 받을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그냥 호출이 아닌, 철혈궁에서 열리는 연회에 참석하라는 명령이라니.
‘할아버지께서 참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구만.’
철혈궁에서 열리는 연회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면, 마그너스가 이번에 내가 이룬 성과에 정말 만족스러워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뭐, 잘 된 일이지.’
마그너스의 호의는 받을수록 좋다.
나를 총애하는 모습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가문 내에서 내 입지가 늘어날 태니까.
물론 큰아버지들의 눈 밖에 나는 건 경계해야 한다.
아직은 그들과 겨루기에는 힘이 부족하니까.
그렇기에, 나는 이미 술수를 써 두었다.
“흠.”
철혈궁으로 향하는 동안, 나는 나를 바라보는 가문 사람들의 눈빛을 곁눈질했다.
무언가 묘한 표정들이 이어진다.
그 표정을 보며 나는 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일단, 소문 자체는 잘 퍼진 것 같군.’
내 술수가 잘 먹혀들어간 게 틀림없다고 말이다.
유적에서 사태 조사가 시작될 무렵.
나는 일부러 조사단에게 이번 사태를 축소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내가 빌헬름을 죽인 부분은 최대한 언급하지 않고 피하면서, 얻어낸 이득에만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조사단에 분명히 끼어 있을 큰아버지들의 눈과 귀들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아마 내가 빌헬름을 남들에게 대놓고 드러내기에는 심히 곤란한 방법으로 쓰러트렸다고 여길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눈과 귀가 내가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서 빌헬름을 쓰러트렸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
멜 랭커스터라는, 이러한 상황에 딱 적당한 인물도 내 주변에 존재했다.
끼워맞추기에 참 알맞은 퍼즐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는 좀 달라지지.’
내 본신의 힘이 아닌, 마그너스가 붙여준 조력자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인식.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이상, 큰아버지들은 마그너스가 내게 보내는 총애가 너무 크다는 점을 걱정할지언정 정작 나라는 개인은 경시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실력이 없다면 가주가 되는 건 불가능하지.’
리텐슈노프에 소속된 자라면 누구나 하는 생각이다.
실력 없는 자는 가주로 인정할 수 없다.
그러니 총애 덕분에 당장은 승승장구하지만, 본인의 실력은 별 볼일 없는 나는 절대 가주 자리에 오를 수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총애가 크더라도 그런 식으로 후계를 정하는 건 절대 마그너스의 방식이 아니니까.
이 정도라면.
‘큰아버지들 경계심이 좀 옅어지겠지.’
속으로 그런 기대를 품으며.
나는 철혈궁 안으로 들어섰다.
-터벅터벅!
‘일단 집무실부터.’
마그너스가 나를 부른 건 연회가 시작하기 한 시간 전. 아마 따로 나와 독대를 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렇기에 나는 곧장 가주 집무실로 향했다.
붉은 가죽과 황금으로 장식된 거대한 문이 보인다.
몇 년 전의 내게는 드높았던 문이었지만, 성장한 지금의 내게는 그 꼭대기가 그다지 멀지 않게 느껴졌다.
나는 잠시 심호흡하고는, 곧바로 문을 열어 젖혔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가주의 책상 앞까지 다가갔다.
책상 앞에 도착한 뒤, 나는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드레커 리텐슈노프, 임무를 마치고 귀환했습니다.”
내 보고에, 뒤돌아서 있던 의자가 빙글 돌아섰다.
“왔느냐.”
검제劍帝 마그너스 리텐슈노프가 형형한 눈으로 나를 훑는 모습이 보였다. 겉보기에는 차갑기 그지 없는 시선이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마그너스가, 나를 대견해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그래, 꽤 곤란한 일을 겪었다더구나.”
“네.”
“돌발 상황에 대한 보고는 나도 들었다. 그런 일이 터졌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잘 대처했다지?”
“네, 그렇습니다.”
잘 대처하기는 했다.
미래를 알지 못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어쨌든 놈의 배신을 먼저 눈치챘을 뿐만 아니라, 그를 상대할 방법을 내가 강구한 건 사실이니까 말이다.
“다행히 운이 좋아서 빌헬름 단주를 죽일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지만 말입니다.”
나는 담담히 고했다.
아멜리아, 다르킨. 그리고 그 외에 빌헬름에게 죽어나간 수많은 토벌단원들까지. 그들이 도움이 없었다면 내가 빌헬름을 쓰러트리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느냐.”
마그너스가 무언가 생각이 많은 듯한 눈빛으로 나를 지그시 살폈다.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똑바로 마주한 뒤에야 나는 보았다.
‘……아.’
주름이 가득한 노인의 피부를.
하얗게 세다 못해 푸석푸석해진 머리카락을.
오대명가의 수장도, 검제劍帝라는 위명을 가진 전설의 기사조차도 피할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이라는 것을.
“……가주님.”
마그너스 리텐슈노프는 이제 너무 늙었다.
세월의 풍파는 강자라고 해서 비껴나가지 않는다.
그저 조금 더 오랫동안 버틸 뿐, 결국 모든 사람은 세월의 흐름에 스러져 한 줌 흙이 될 뿐이다.
언제나 건제할 것 같은 이 철혈의 노인도.
결국 다가오는 죽음은 피할 수 없다.
‘……큰일이군.’
그리고 그 사실은 내게 너무나도 불행한 일이었다.
마그너스가 죽으면, 명가 리텐슈노프의 빈 가주 자리를 채우기 위해 후계 경쟁이 더욱 가속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 때, 내가 설 자리가 있을까?
지금 내가 구축한 나의 입지는 내 본연의 실력도 있지만, 마그너스의 총애가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이미지를 바꿀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 후광을 믿고 가문 내 입지는 뒤로한 채, 내 성취를 올리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최소한 8성에서 9성 정도의 성취만 이루면, 더 이상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이유는 없어지니까.
내가 전면에 나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계획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마그너스가 나를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그러니.
‘죽게 둘 수는 없다.’
그의 죽음은, 내가 어떻게든 막아야 할 일이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생각을 정리했다.
‘마그너스가 죽는 건 내가 앞으로 6년 뒤.’
정확한 사망 원인은 모른다.
노환은 아니고, 아마 병사病死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그리고 만일, 병 때문에 죽는 것이라면.
‘병을 고쳐드린다면 더 오래 살 수 있겠지.’
그 운명은 내가 바꿀 수 있었다.
‘엘릭서.’
전설에나 나오는 기적의 명약.
모든 병을 고쳐줄 수 있는 신비한 포션.
전생에도 엘릭서의 존재는 헛소문으로 치부되었지만, 최소한 내게는 그건 소문 따위가 아니었다.
‘전생에는 닿지 못했지만.’
이번 생에는.
‘꼭 찾아야겠어.’
나는 마그너스 몰래, 가볍게 주먹을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