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일장[一章], 당하소소[唐下素笑] 1
오하아몽[吳下阿蒙]이라는 말이 있다.
오나라의 어리석은 여몽이라는 말장난에 가까운 사자성어. 무력은 높으나, 오성은 그 무력을 쫒아가지 못하는 사람을 일컬을 때 쓰이는 말이다. 당가의 안에선 그 말을 이렇게 쓴다.
당하소소[唐下素笑].
가주가 애지중지하는 고명딸이라 권세는 하늘을 찌르나, 인성과 능력은 그 권위를 쫒아가지 못하는 당소소. 가주인 당진천은 그 말을 듣자마자 불같이 화내며 시비들과 시종들을 매질했지만, 그녀의 오라비인 당청은 내색하진 않았지만 동의하고 있었다.
당가의 여식인 주제에 하루가 멀다 하고 남자들을 쫒아 다니며, 사치를 좋아하고 성격은 괴팍하며 무공에 대한 재능은 전혀 없었다. 실로 당하소소라는 말은 그녀에게 알맞은 말이었다. 그녀의 남은 쓰임새라곤, 멀쩡한 생김새로 무림의 고수들을 낚아 데릴사위로 들이는 것 뿐.
당청은 그녀가 깨어났다는 소식에 데릴사위로 내정한 자들을 머릿속에서 떠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대로 당가의 재물만 축내고 죽어버리는 줄 알았는데, 다행이군. 그럼 누가 멍청한 동생에게 속아 결혼할 수 있을까. 왕오정도가 적절할 것 같은데.’
당청의 머릿속엔 한 사내가 떠올랐다.
독두낭인[禿頭浪人] 왕오.
빛나는 대머리를 과시하며 근래에 사천지역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낭인이었다. 최근엔 아미파의 속가제자를 제압하고 희롱했다는 소문과 함께, 절정고수에 버금가는 무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풍문이 전해져오는 자. 나이는 지천명을 바라보는 사십 구세.
비록 사파의 인물이었지만, 호색한인 그는 당가의 뒷배와, 겉보기에는 미인인 당소소를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당가는 고수들의 인성, 행동 같은 것들에 거리낌을 느끼는 가문이 아니었다. 소문은 암기로, 통제는 독으로 하는 것은 이젠 당가에겐 습관과도 같은 것이었다.
“소가주께서 오셨습니다.”
시종의 낭랑한 알림과 함께 당청이 당소소가 머물고 있는 별채로 들어섰다. 당청은 별채에 걸린 현판을 흘끗 보며 비웃음을 머금었다.
-독봉당[毒鳳堂]
막무가내인 동생은 자신을 봉황이라 불러주길 원했다. 그녀의 오라버니는 그 모습을 보며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당가의 소가주는 합리적인 인물이었다. 고작 뱁새를 봉황이라 부르는 것만으로 당가에 절정고수 한 명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봉황이든 용이든 무슨 대수일까?
그는 현판에 둔 시선을 고개를 숙인 시녀에게 돌리며 물었다.
“소소는 어떻지?”
“겉으로는 멀쩡하십니다.”
“그렇겠지. 그 덜 떨어진 년을 살리려고 얼마나 많은 금전이 소모되었는데. 헌데, 내가 묻는 건 그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잖나.”
시비에게 날선 말을 뱉는 당청. 꽤나 신경질적인 반응에 시비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당가의 안에서 일하고자 하면, 지켜야 할 수칙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당청에게 당소소의 일을 보고할 때. 그는 그녀의 소식을 두 번에 걸쳐 듣는 것을 싫어한다.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하지 않으면, 당소소에 대한 혐오가 시비에게 번질 때가 많았다.
그녀는 몸을 떨어대며 서둘러 나머지 말을 덧붙였다.
“거, 겉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나, 정신이상과 기억에 대한 혼탁이 있사옵니다. 자신의 가슴을 만지며 욕설을 뱉는다던지, 갑자기 탄식을 하며 자신은 곧 죽는다던지…. 그런 말들을 하며 칠혼독을 먹기 이전의 일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청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비를 물러서게 했다. 시비는 머리를 조아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는 당소소의 침소 앞에서 한숨을 쉰 뒤, 방 안으로 들어섰다.
실속 따윈 없이 그저 화려하기만 한 장신구들을 비롯해 여기저기에 묻어있는 사치의 흔적들. 당청은 당소소의 방에 들어올 때 마다 그녀에 대한 혐오가 더욱 배가되는 것 같았다.
당가의 가풍은 실용[實用]과 독심[毒心]. 암기와 독을 다루는 가문이기에 자연스레 실용을 중시한다. 거기에, 선대부터 이어져오는 은[恩]과 원[怨]은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독심. 그런 마음가짐이 없다면 검과 명예를 이야기하는 자들과는 말조차 섞을 수 없었다. 이 방은 그런 당가의 가풍과는 정확하게 반대편에 위치한 곳인 것 같았다.
“…일어났나.”
당청은 초췌한 행색의 당소소를 바라봤다. 치켜선 눈가에서 묻어나는 거만함과, 멍청해 보이는 눈빛. 그리고 산발이 된 머리칼과 예쁘장한 얼굴. 과연 당가의 독화[毒花]라고 불릴법한 미모였다. 하지만 당청에게는 그저 가문을 갉아먹는 벌레 같은 존재였다.
당소소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당청은 그 모습을 언짢게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멍청한 그녀도 당청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쯤은 아는지, 그와 말을 섞지 않은지 이제 두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당청은 얼굴을 굳히며 시비의 말을 되짚었다.
“칠혼독을 먹기 전의 기억이 희미하다는 건 어떻게 된 것이지?”
당청은 시비의 보고를 떠올렸다. 칠혼독은 당가에서도 취급이 독특한 독이었기에,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증상에 대해서 듣고자 한 물음이었다. 하지만, 당소소는 당청의 물음에도 또 다시 인상을 썼다. 답하기 싫다는 표현인 듯 했다. 당청은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답하기 싫다면 되었다. 평소와 같아 보이니 문제는 없어 보이는군. 괜한 발걸음을 했어.”
“그게….”
푹 잠긴 당소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 안을 나서는 당청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래, 말할 생각이 든 모양이군. 당가의 방식대로 네가 겪은 증상을 보고 해봐.”
“그러니까, 오빠…. 아니, 오라버니라고 불러야 하나…, 요…?”
“…뭐?”
당소소는 그 말을 하며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붉힌다. 뒤돌아서 그 광경을 바라보는 당청은 지독한 후계자 수업에서 배운 평정심으로도 가라앉히기 힘든 당혹감을 느꼈다. 평생을 남보다 못한 사이로 살아온 사이에서 들을 말은 아니었다.
당청은 기억에 혼탁이 있다는 시비의 말을 기억하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라고 불러라.”
“저는 칠혼독을 먹고 쓰러진 것이군요.”
“그래. 그래서 당가의 재화를 사용해 혼돈의(混沌醫)를 고용했다. 널 치료하기 위해 당가의 재산 일 할이 소비된 셈이야.”
당청은 냉랭한 어투로 당소소를 책망했다. 독두낭인을 고용하기 위한 투자라기엔, 혼돈의의 고용비는 너무 과하다. 그렇기에, 그녀의 몸으론 좀 더 큰 것을 가져와야 했다. 그것이 당가의 가풍이니까.
‘기억의 혼탁이 있다면, 좀 더 머릴 굴릴 줄 아는 잔혈객[殘血客] 진명 정도도 가능하겠어.’
“그렇다면, 전 잔혈객 진명에게 시집을 가는 건가…, 요? 아니면, 독두낭인?”
“……!”
당청은 당소소의 말에 적잖이 놀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에게 이런 사안을 생각할 오성은 없었다. 사치와 향락을 대명제로 정하고 행동하던 그녀는 그저 자신의 데릴사위는 잘생기고 강할 것이라고만 지껄이고 다녔을 뿐. 그런 그녀가 당청이 내정하고 있는 데릴사위를 정확히 짚고 들어온 것이었다.
‘칠혼독에 뇌를 일깨우는 효능이라도 있는 것인가?’
당청은 당소소의 발언에 칠혼독의 효능을 재고할 수밖에 없었다. 당청은 잠시 당소소를 째려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사실이더라도 그녀의 성격과 아버지가 막내딸에게 극성인 점을 떠올린다면 일단은 부정을 해놓아야 했기에.
“아니. 아니다. 그 자들은 당가의 격과는 맞지 않는다.”
“이상하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어째서 그들이 네 반려로 내정되었다 생각하는 거지?”
당소소는 당청의 말에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그의 물음에 답했다.
“오라버니는 날 좆같이 생각하니까, 엿먹어보라고 좆같이 생긴 놈들이랑 맺어주려고 하실 거잖아…. 요….”
“…….”
이어지는 침묵.
당청은 당소소의 욕설에 할 말을 잃었는지 얼굴을 굳힌 채 침묵을 던졌고, 당소소 또한 마음 속 말을 그대로 뱉은 것이 부끄러운지 눈을 꼭 감고 고개를 숙였다. 그 추상같은 적막은 당청이 말없이 방을 빠져나가며 깨졌다.
“좆같이, 라. 핫!”
당청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독봉당을 걸어 나갔다. 그 걸음은, 헐레벌떡 들어온 중년의 사내에 의해 멈춰 섰다. 중년사내는 숨을 몰아쉬며 당청을 바라봤다. 당청은 흐트러진 표정을 다시 굳히고, 짧게 목례를 하며 말했다.
“오셨습니까, 가주님.”
“청, 소소는 일어났나?”
“일어났습니다. 헌데….”
“헌데? 어디 잘못된 구석이라도 있는 것이냐? 혼돈의, 이 찢어죽일 새끼가!”
당진천이 고함을 지르며 발을 구르자, 독봉당의 담벼락이 잘게 떨렸다. 당청은 그런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내심 짜증이 났다. 그녀는 당가의 걸림돌일 뿐이었다. 한때 독천[毒天]이라 불리며 당가의 부흥을 이끌었던 자의 행동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당진천은 거만한 고명딸에게 끔찍한 애정을 쏟았다.
당청은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누른다. 이해할 순 없지만, 납득은 할 수 있었다. 그 애정 덕에, 당소소는 비로소 자신에게 쓸모 있는 도구가 된다. 독천이 신줏단지 모시듯 아끼는 당가의 고명딸은 확실한 가치가 있으니까. 당청은 목을 가다듬어 당진천을 진정시킨 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흠, 그런 뜻이 아닙니다. 몸과 기혈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단지, 칠혼독의 여파로 기억의 혼탁이 찾아온 것 같아서.”
“…혼돈의가 깨어난 직후 잠시 혼란이 있을 수는 있다고 하긴 했지.”
“그럼, 소소의 병세도 확인했으니…. 아. 가주님께 하나 여쭤볼 게 있었습니다.”
“무어냐? 긴 것이라면 나중에 따로 말하거라.”
당청은 자신의 딸을 보기 위해 몸이 달아있는 아버지를 잠시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저으며 얼버무렸다.
“아닙니다. 아, 짧게 물어볼 것은 있습니다. 칠혼독의 효능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했습니다.”
“칠혼독에 관해서라면 나보다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칠혼독이 뇌를 일깨우기도 합니까?”
뜬금없는 당청의 물음에 관자놀이를 잠시 긁던 당진천은 고개를 저으며 당청의 물음을 부정했다.
“칠혼독은 기(氣)와 혈(血)에 작용하는 독이다. 신경과는 연관이 없어.”
“역시, 그렇겠지요.”
“헌데, 그런 건 왜 물어보느냐?”
“가보시면 아시게 될 겁니다.”
당청은 그 말을 던진 채 독봉당을 떠났다. 당진천은 의뭉스런 아들의 태도를 애써 무시하고, 당소소의 방 안으로 들어간다. 초라한 기색의 당소소가 침상에서 일어서며 당진천을 반긴다. 당진천은 복잡한 얼굴로 당소소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몸은 괜찮으냐? 어디 마비된 곳이나 저린 곳은 없는 것이냐? 기혈을 무너뜨리는 독이라 몸에 부담이 꽤 갔을 텐데, 흉진 곳은 없는 것이냐?”
“그것이….”
“그래, 어서 말해보아라.”
당진천의 채근에, 당소소는 멋쩍게 웃으며 당진천을 향해 물었다.
“제가 가주님이라고 불렀나요? 아니면, 아, 아빠라고 불렀나요, 아니면 아버님이라고 불렀나…, 요?”
그 대답에 당진천의 사고는 멈췄다. 그리고, 멈춘 사고에서 당청이 던져놓은 발언만이 허공을 유영하고 있었다. 대답을 바라며 바라보는 당소소의 수줍은 눈빛에, 당진천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빠라고 해라. 넌 어릴 때부터 날 아빠라고 불렀어.”
“…네, 아빠. 몸은 멀쩡해요.”
“그래, 그래. 혹시 모르니 시비가 달여 오는 약은 잘 챙겨먹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점이 있으면 바로 나한테 이야기하고.”
당진천은 그 대답에 감격하며 입꼬리를 씰룩였다. 그리고 칠혼독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모르는 성분이라도 들어간 건가?’
당진천은 당소소의 부끄러운 웃음을 보며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당소소가 자신에게 살갑게 대했던 기억은 당소소가 아직 젖먹이이던 시절밖에 없었으니까.
‘씨발, 이게 뭐야! 아저씨!’
‘아니, 그냥 금화 다섯 닢만 달라고. 아버지라고 불러 줄 테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겠다는데 무슨 참견이야? 꼰대가.’
당진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당장이라도 자신에게 험한 말을 뱉을 것 같은 당소소는, 조신하게 동경 앞에 앉아 당진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 칠혼독의 성분은 아무래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