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일장[一章], 당하소소[唐下素笑] 3
“우으윽….”
당소소는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내뱉는 숨에선 짙은 주향이 풍겼다. 당소소는 이불을 걷고 자리에서 일어나 흩어진 기억의 파편을 조금씩 모아갔다.
‘당청! 좆같은 새끼, 넌 진짜 뒤졌어. 씨발놈이, 좆도 아닌 게…!’
‘정말 그만 드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가씨….’
‘야! 나 안 취했어…. 씨발, 술은 무슨. 그냥 달달한 음료수 같구만! 한잔 더 줘!’
‘아이, 참….’
‘인생 참 좆같다…. 그치, 하연?’
‘네…. 정말 좆같네요….’
당소소의 머릿속에 비로소 어젯밤의 모든 기억이 모였다. 지끈거리는 머리보다, 부끄러움이 먼저였다. 당소소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붉어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다.
“뭐, 뭐야. 고작 두 잔에 갔단 말이야? 김수환일때는 현장소장이 두 병을 먹여도 거뜬했는데…!”
“일어나셨습니까, 아가씨.”
하연의 목소리가 당소소의 기상을 반겼다. 하지만, 당소소는 썩 반갑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양 손으로 얼굴을 감추고 과거의 기억을 부정하고 있을 뿐.
하연은 저 귀여운 생물이 밥 먹듯 시비를 갈아 치우고, 당가의 권위를 이용해 남을 핍박하고 다니는 것을 즐기는 미친년이 맞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당소소는 쉰 목소리로 하연에게 말했다.
“…네.”
“우선, 이것을.”
하연은 뜨거운 김을 풍기는 찻잔을 내밀었다. 당소소는 한동안 양 손을 가리고 부끄러움을 삭이더니, 헛기침을 하며 내민 찻잔을 쥐었다. 하연은 그 광경을 보며 조용히 웃더니 잔에 담긴 것에 대해 설명했다.
“가문에서 만든 탕약입니다. 주취를 쫒아내는데 좋아요.”
“고, 고마워요.”
“수고했어, 라고 하셔야합니다.”
“수고했어….”
하연은 그녀의 말투를 지적한 후, 당소소의 침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당소소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탕약의 냄새를 맡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쓴 향이 코를 찌르고 머릿속을 헤집는 주취를 부여잡았다. 당소소는 울상이 돼서 하연을 바라본다. 하연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요청을 거절했다.
“병상에서 일어나신지 이제 하루가 지났어요, 아가씨. 혹시라도 몸에 이상이 있을 수도 있으니 드셔야 합니다.”
“그치만, 난 주량이 두 병이었는데….”
“푸흡, 두 병이요? 두 잔도 다 못 드셔서…. 으흠!”
하연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하연을 당소소가 째려보자, 하연이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저토록 귀여운 아가씨지만, 칠혼독을 먹기 전에는 그저 난폭한 미친년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엄숙한 표정을 유지했다.
당소소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다가, 체념하며 탕약을 들이켰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약재의 향이 당소소의 혀를 유린했다. 마치 혀가 뽑히는 듯한 착각에, 당소소는 약재를 서둘러 삼키고 혀를 내밀었다.
“으에엑…. 이제 평소의 난 뭘 했지?”
“아가씨는 이 이후에 시비들이 데운 물로 세신을 하시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가씨를 가르치라 명받은 학사를 피해서 도망가셨습니다. 그리고 저잣거리에 나가 화검공자[花劍公子]라는 무인을 만나셨죠.”
당소소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잔을 내려놓았다. 하연은 그 행동에 흠칫 놀라며 몸을 움찔거렸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손톱을 만지작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세신을 하고, 공부를 째고, 남자를 만나고 다녔다….”
“째, 째다니요.”
“…도망가고.”
“네. 그럼 세안부터 하실까요, 아가씨?”
“그런데.”
당소소는 하연을 바라봤다. 하연은 잔뜩 긴장한 채로 고개를 끄덕이며 당소소의 질문을 기다렸다.
“화검공자라는 듣도 보도 못한 좆밥은 뭐하는 새끼야?”
“조, 좆밥….”
“…그 무명소졸은 무슨 인물이었니?”
하연은 당소소의 입에서 나오는 육두문자에 기겁을 했다. 당소소는 하연의 반응에 자신의 발언을 서둘러 정정했다. 하연은 잠시 마음을 가다듬더니, 화검공자에 대해 설명했다.
“화검공자는 최근 성도(成都)를 중심으로 사천성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청성파의 속가제자에요. 특이한 점은, 무예로 이름을 날리는 것이 아니라 얼굴로 이름을 날린다는 점이죠.”
당소소는 하연의 설명에 곧바로 쌍검무쌍의 초반부를 떠올렸다. 역시, 화검공자라는 별호는 김수환의 기억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천성은 주인공이 독에 당해 해독제를 구하기 위해 잠시 동안만 들렀던 무대이니만큼 자세한 배경과 그 곳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쓰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당소소는 그를 알아야했다. 쌍검무쌍에 나오지 않은 것은, 설령 그것이 무해하다는 것이더라도 확인을 해야 할 테니까. 당소소는 생각을 끝마치고 말했다.
“오늘은 화검공자를 만나러 가야겠어.”
“그럼, 학사에겐 아가씨가 아직 와병중이라 보고할까요?”
하연의 물음에 당소소는 고개를 저었다. 당소소는 그저 스쳐가는 조연이었고, 토벌당하는 악역이었다. 그렇기에 쌍검무쌍에 채 묘사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알아가기 위해선 정보가 필요하다.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학사라면, 금상첨화일터.
“아니. 학사에게도 오라고 전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보다 많은 것을 알아야하니까.”
하연은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당소소의 말에 쓴 웃음을 지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당소소의 명을 받았다.
“학사에겐 그렇게 말하겠습니다, 아가씨.”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마.”
“예?”
“옛날엔 좀 유난스러웠어도, 지금의 난 평범한 일상이 좋으니까.”
하연은 어쩐지 애달파 보이는 대답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소소가 처음부터 이런 고운 심성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라버니인 소가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상상을 하며.
“네, 아가씨. 그럼, 자리에서 일어나실까요.”
“응?”
“학사를 만나라면, 세신을 하셔야죠.”
하연의 말에 당소소의 얼굴은 당혹감을 넘어선 위기감으로 얼룩져갔다. 하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당소소를 바라봤다. 그리곤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저 아가씨는 귀여웠다.
*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마셔요, 아가씨.”
“아니, 그게…. 음…. 그러니까….”
당소소는 하연의 말에 질색을 하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앞에는 적당히 뜨거운 목욕물과 그녀의 세신을 돕기 위해 서있는 세 명의 시비, 그리고 전신을 비출 수 있는 커다란 동경이 있었다.
당소소는 이 상황이 낯부끄럽고 혼란스러웠다. 제아무리 자신이 당소소로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인지했다지만, 김수환으로서 스물하고도 다섯 해를 넘게 살아간 것도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 스물다섯 해 동안 김수환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머니를 제외한 이성과는 전혀 관련이 없던 인물이었다.
“잠깐만, 마음의 준비를….”
“네?”
“처음이라고…!”
“그게 무슨…?”
요컨대, 시청각 자료로만 보았던 여체를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그 여체는 자신이었다. 당소소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이건 내 몸이야, 이건 내 몸이라고. 이건 내 몸일까?’
“병상에서 방금 일어나셔서 하는 첫 번째 세신이라 긴장하신 모양이야. 채 보지 못한 곳에 흉이 져있진 않을까, 그런 걱정을 하신 거지. 그렇지요, 아가씨?”
“으, 응…. 아니, 음…. 맞아….”
하연은 낯설어하는 시비들에게 당소소의 상황을 말하고 동의를 구했다. 당소소는 어지러운 생각이 만든 그물을 가까스로 젖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연은 망설이는 당소소의 얇은 옷을 거침없이 벗겼다. 비단으로 짜낸 젖가리개와 나비가 수놓인 속곳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비들은 익숙한 손길로 그 조그마한 천마저 벗겨냈다.
당소소는 동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헛숨을 들이켰다. 적당한 크기의 가슴과, 분홍색의 첨단. 그리고 말끔하고 아름다운 곡선을 지닌, 털오라기 하나 없는 전신과 은밀한 부위는 몽롱한 감각마저 들게 했다. 당소소는 아름다웠다. 그리고, 요염했다.
‘꼴리네.’
“…핫!”
당소소는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되찾았다. 그리고, 서둘러 자신의 가슴과 음부를 가렸다. 무언가 보아선 안 될 것을 보는 야릇한 죄악감이 있었다. 그 죄악감은, 김수환이었던 그녀가 버티기엔 너무나도 자극적이었다. 그녀는 겨우 되찾은 정신을 가다듬고,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화, 확실히 흉터는 없네! 다, 다행이야.”
“……?”
생전 처음 보는 당소소의 행동에 세 명의 시비 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뭐지? 칠혼독을 처먹고 정신이 이상해졌다더니, 미친년이 이젠 진짜 미친 거 같은데?’
‘계집애, 너 한두 번 당해보니? 헛소리 하나 안하나 보는 거잖니.’
‘진짜 이젠 지랄도 창의적으로 하는구나.’
당소소는 시비 세 명과 하연의 눈치를 보며 시선을 아래로 내리 깔았다. 세 명의 시비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연은 그런 시비들에게 고개를 저으며 티를 내지 말라는 신호를 주고, 혼란스러워 하는 당소소에게 말했다.
“자, 아가씨. 그만 부끄러워하시고 안에 들어가셔요.”
“그, 부끄러워하는 건 아니고…. 좀, 자극적이라서….”
당소소의 대답에 시비들은 더 이상 표정관리를 하지 못했다. 그녀들의 얼굴은 정확히 ‘초절정고수급의 지랄을 하는 중인 당소소를 지켜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연은 벌레를 씹은 얼굴을 하고 있는 시비들에게 어서 물러나라는 손짓을 했다.
시비들은 당소소의 지랄을 혼자의 몸으로 받아내겠다는 하연의 결의를 느꼈다. 그리고 재빨리 감사의 눈빛을 보내곤 서둘러 세신실을 빠져나왔다. 당소소는 하연을 슬쩍 흘겨보며 말했다.
“하연, 너도 잠깐 물러나면 안 될까?”
“왜죠?”
“…어색해.”
“학사님이 오시기까지의 시간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아가씨. 서두르셔야 해요.”
당소소는 그런 하연의 말을 듣고 체념했다. 정확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김수환이 알던 여성들은 기본이 세 시간 이상 목욕을 했었다. 하연의 말이 사실이라면, 혼자서는 힘들겠다는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거기에 자신은 부분적으로 기억을 잃었다는 설정이었다. 과거의 당소소를 자연스럽게 이어받기 위해선 하연의 인도에 따르는 것이 이성적으로 옳았다.
‘…세신사에게 등을 맡겼다고 생각하자.’
당소소는 그 생각으로 심란한 마음을 정리한 후, 조심스레 손을 목욕물에 담갔다. 적당한 온기가 그녀의 손끝을 타고 잔뜩 긴장한 몸을 안정시켰다. 매일 물을 준비하는 시비들의 노고가 느껴지는 온도였다. 이내 그녀는 전신을 물속에 넣고 눈을 감으며 찾아오는 안온감을 즐겼다.
하연은 풀어진 당소소의 얼굴을 보며 그녀의 머리에 온수를 끼얹고, 은근한 약재의 향이 나는 약병을 꺼내 당소소의 머리에 꼼꼼하게 바른다. 몇 다경의 시간동안 꼼꼼하게 약재를 바른 하연은, 다시 온수를 끼얹으며 머리를 씻겨냈다.
다되었거니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당소소의 어깨를 하연의 손이 막아선다.
“아직 두 개 더 남으셨어요.”
“그냥 머리만 감으면 끝 아니야?”
“평소에는 머리의 탄력을 유지하신다며 일곱 개의 약재도 바르셨는걸요.”
“미친년 아니야?”
당소소는 절로 솟는 욕설을 뱉으며 자신의 머리를 매만졌다. 하연은 단호한 표정으로 다음 약병을 쥐고 고개를 저었다.
“들어가세요, 아가씨. 나오는 것은 몸을 씻을 때에요.”
“설마 몸도…?”
“부드럽고 흰 살결을 유지하신다고 다섯 개 바르셨어요.”
“씨발.”
당소소는 팍 인상을 쓰며 다시 목욕물에 몸을 담갔다. 하연은 그 모습에 후후 웃으며 당소소의 머리칼 한 올 한 올에 약재를 발라갔다. 부끄러워하던 당소소의 표정이 잔뜩 따분해하는 표정으로 바뀌기까지는 약 한 시진이 걸렸다.
그녀가 세신을 마친 것은 그로부터 다시 한 시진이 지난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