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일장[一章], 당하소소[唐下素笑] 4
당소소는 지친 기색으로 독봉당의 객실에 앉아있었다. 장장 두 시진에 걸친 세신과, 환복은 남성이었던 그녀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가혹했다.
그녀는 힘 빠진 고갯짓으로 객실을 둘러보았다. 평소에 사용하지 않았는지, 청소로는 채 감추지 못한 낡은 가구들이 당소소의 눈길에 밟혔다. 그녀는 안보단 바깥을, 가족보단 타인을 좋아했었기에.
‘슬슬, 올 때가 되었을 텐데.’
“선생께서 오셨습니다.”
당소소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따분함을 죽이고 있다, 학사가 들어온다는 하연의 목소리에 몸가짐을 갖추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김수환의 삶에서, 선생이라는 사람들은 그의 인생에 관심을 가져주던 몇 안 되는 인물들이었다.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예의를 차리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학사에겐 그것이 당연하지 않았다. 흰 수염이 성성한 학자는 그녀가 정중한 자세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자신의 눈이 의심되는 듯, 눈가를 비비적거리며 당소소에게 시선을 더욱 가까이 가져다 댔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어, 음…. 그래요…. 당소소 아가씨…?”
“제자라고 편하게 부르셔도 됩니다.”
“……?”
학사는 자신을 안내해준 하연을 슬쩍 돌아보며 생각했다.
‘내 차례인가?’
당소소는 성도 내의 학자들에게 꽤나 유명한 존재였다. 그것도 매우 안 좋은 쪽으로.
수염을 자랑하고 다니던 학자의 수염을 잘 가르치지 못한다고 태워먹기도 했고, 그 학자가 충격으로 개인선생을 고사한 뒤, 후임으로 온 학사의 애지중지하던 장서를 잘 모르겠다며 손톱으로 북북 찢어발기기도 했다.
흰 수염의 학자는 장서를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던 자신의 전임자가 아직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 난폭한 처자는 최근 어느 한 남자에게 꽂혀서 자신의 수업을 거부하고 밖으로 쏘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흰 수염의 학자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슬쩍 비틀며 당소소에게서 수염을 가렸다.
“앉으세요, 선생님.”
“히익! 으음, 크흠!”
당소소는 생글거리며 일어섰다. 학자는 당소소의 움직임에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당소소는 그의 반응을 낯설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사정을 아는 하연만이 학자의 뒤편에서 숨죽여 웃고 있었다. 갈 곳 모르고 이리저리 떠도는 눈은 절박함마저 느껴졌다.
하연은 겨우 웃음을 멈추고, 당소소의 맞은편에 있는 의자를 슬쩍 당겨 학자에게 앉으라 종용했다.
“어서 앉으시지요.”
“아니, 그…. 그러지….”
학자는 들고 온 장서를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대학[大學]이라는 제목이 적힌 책은 당연하게도 저렴한 재질의 것이었다. 장서야 이런 식으로 대처를 할 수 있다지만, 수염은 가짜를 들고 올 수 없었기에 학자는 턱을 당기고 손으로 수염을 가렸다. 당소소는 그런 학자의 행동에 마냥 웃음을 던지고 있었다.
“그 책이 제가 오늘 배울 것인가요?”
“그, 그렇긴 하네만….”
“그럼 잠시….”
당소소는 공손한 손길로 대학을 집은 뒤, 한 장 한 장 넘기며 가볍게 훑어봤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당소소의 미간이 팍 찌푸려졌다. 학자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으로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의 수염을 가렸다. 당소소는 학자의 이상한 태도를 잠시 구경하다,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읽을 수는 있어. 이건 당소소의 기억일거야. 하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이런 먼 곳에 있는 학문이 아냐.’
“선생님.”
“장서는 괜찮으니 수염은…!”
“선생님?”
“으, 으흠! 왜, 왜 그러십니까. 제자님.”
당소소는 학자의 앞으로 책을 밀며 말했다.
“선생님은 사천성에 대해서 조금 아시나요?”
“무슨 의미인지….”
“말 그대로에요. 오늘은 사천성을 주름잡는 세력들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었어요.”
“그건, 본인이 더…!”
그건 본인이 더 잘 알지 않냐라는 말을 꺼내려고 했던 학자는, 황급히 자신의 말을 잘라내었다. 한 단어만 더 나왔다간, 잘리는 것은 말이 아닌 자신의 수염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에 등줄기가 시큰거렸다.
‘정말 다채로운 방식으로 사람을 골탕 먹이는 처자야.’
그녀는 저 순진한 얼굴로, 자신에게 선생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하라 협박하고 있는 중이었다. 고작 학자 따위가 무림에 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지, 가볍지만 잔혹하게. 당연한 이야기지만, 본인은 그런 복잡한 생각 같은 건 하고 있지 않았다.
학자는 헛기침을 하며 장서를 다시 회수하고, 입을 열었다.
“사천성은, 굳이 말하자면 정파의 땅입니다. 그렇지요?”
“어떤 이유에서죠?”
“먼 과거부터 정파의 열 기둥이라 불렸던 구파일방의 두 문파. 아미산의 아미파와 청성산의 청성파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거기에, 최근 성도를 중심으로 급격히 세력을 팽창시키고 있는 사천의 당문까지. 감히 다른 사상의 세력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힘들지요.”
“그렇군요.”
“그렇기에 맹점이 존재합니다.”
학자는 그 말과 함께 탁자 위로 큰 원을 그린 뒤, 그 원의 가운데에 세 개의 점을 찍었다.
“보이십니까?”
“설명해주세요.”
“셋은 지리적으로 사천성의 중심인 성도와 가깝습니다. 그렇기에 성도를 가운데에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지요. 그리고, 한 방향으로 쏠린 시야는 다른 방향의 공백을 낳게 됩니다.”
당소소는 학자의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큰 원의 가장자리를 짚으며 학자를 바라봤다. 학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다른 이들은 그 공백의 그늘을 마시고, 성도를 제외한 나머지 땅을 갉아먹고 있지요.”
“구파일방이라고 불리는 두 문파가 그것을 쉽게 허락하나요?”
“강력하기 때문에 허락하는 거지요. 성도의 이권만 가져온다면, 그런 오합지졸들은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당소소는 학자의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당청의 행동을 이해했다. 왜 독천의 금지옥엽을, 미모로 이름이 높은 독화를 그런 같잖은 사파무인 나부랭이에게 팔아치웠는지. 당소소는 그 이해가 사실인지, 마지막 확인을 거쳤다.
“그 공백의 그늘을 마시는 사람은?”
“사천쌍괴[四川雙怪]라고 불리는 잔혈객 진명, 독두낭인 왕오겠지요.”
“역시….”
당소소는 학자의 말에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을 굳혔다.
김수환은 처음 쌍검무쌍을 볼 때, 왜 당소소라는 미인을 그런 사파 나부랭이에게 팔아 넘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미인이라면, 거기에 당가의 가주가 아끼는 여식이라면 애매한 사파의 무인이 아니라 고강한 정파의 고수를 꼬시는게 맞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
이렇게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다. 이 악명 높은 아가씨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대륙 전역, 구주팔황[九州八荒]을 통틀어도 그리 많지 않았다. 거기에 그런 여자를 위해 자신의 성을 버리고 데릴사위로서 당가에게 평생 충성을 바쳐야 하는 불이익을 감수할 고수들은 더더욱 없었다.
당소소에 관한 소문이야 통제를 하면 된다지만, 그 강력한 통제도 당가의 세력인 사천성을 벗어난다면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사천성 바깥의 고수들은 부적합했다.
거기에 당문과 비슷한 급의 문파라면, 당가의 눈에 차는 고수정도라면 그 통제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래서, 사천성 안의 정파고수도 부적합했다.
그리하여 당청은 시야를 돌렸다. 성도를 두고 다투는 두 거대문파에게서, 사천성의 외곽을 서서히 갉아먹는 자들에게로. 정파와 사파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무인들을 흡수해 그 몸집을 키우고 있는 사천성의 두 사파무인들에게로.
‘정파의 무인들은 절대로 자신의 동생을 팔아먹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겠지…. 아무리 당가가 암기와 독을 사용한다곤 해도 정파라는 세력이었으니.’
당소소는 새삼 당청에 대한 혐오감이 한 층 더 상승했다. 그의 방식은 비인륜적이었고, 추잡하며 냉혹했다. 약간의 금전적 이득을 위해 김수환을 핍박하던 그들과 같았다.
아직 정산이 끝나지 않았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월급을 깎아야 할 것 같다, 현장의 업무가 끝나지 않았으니 나중에 주겠다…. 김수환은 그들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그들의 악의에게서 지켜줄 가정이 없었으니까. 그 말을 마친 후, 그들은 꽤나 비싸 보이는 차를 타고 퇴근했다.
당청도 자신의 동생을 사천성 사파의 두목에게 팔아치운 뒤, 동생이 당명의 폭력에서 신음하는 대가로 얻은 비대칭적인 힘으로 사천성의 실권을 쟁취했을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속이 메스꺼웠다. 김수환의 무지로 겨우 버텨왔던 그들의 악의는, 당소소에겐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녀의 팔이 서서히 떨리기 시작하더니, 창백해진 안색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이변을 눈치 챈 하연이 안부를 물어왔다.
“하악…, 하아…!”
“…아가씨?”
“아니, 아니야. 아직 괜찮으니까. 아…!”
당소소는 이내 눈물을 보였다. 헐떡이는 숨을 주체할 수 없었다. 평생을, 아니 어쩌면 그 이상동안 이어져 내려온 악의에 대한 공포는, 혈관을 타고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하연은 서둘러 당소소의 곁에 다가가서 상태를 살폈다. 그리곤 학자를 바라보며 축객령을 내렸다.
“아가씨가 병상에서 일어나신지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시네요.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그런가.”
학자는 복잡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신의 귀중한 수염을 지켰다는 안도감과,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보이는 당소소에 대한 궁금함, 그 당소소가 눈물을 보이는 것에 대한 애처로움이 뒤엉킨 표정이었다.
당소소는 눈물에 젖은 눈으로 학자를 바라봤다. 학자가 그 시선을 마주치자, 당소소는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
당소소는 무서웠다. 김수환이 겪었던 짙은 고독이, 당장이라도 찾아올 것 같았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공포는 전신을 통제했다. 온 몸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아득해져가고 있었다. 그녀는 파래진 입술을 떨며, 조용히 절규했다.
“도와주세요….”
“아가씨, 지치셨습니다. 그만 쉬러 가시지요.”
학자는 당소소의 그 말에 숨을 멈추고 멈춰 섰다. 하연은 그런 학자에게 짧게 목례를 건네며 당소소를 침소로 이끌었다. 하연과 당소소가 사라진 뒤에도, 학자는 그녀들의 빈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무엇을 도와달라고 한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꽤나 오랫동안.
*
학자는 독봉당을 걸어 나와, 조금 더 걸어 별채 구역을 완전히 빠져나온다. 그리고, 뒤를 돌아 자신이 지나온 곳을 바라봤다.
당가의 중심인 내각[內閣]과 꽤나 먼 거리인 외각[外閣]구역. 그리고, 그 외각에서도 떨어져있는 별채. 독봉당은 그 별채 구역에서조차 멀리 떨어져있었다. 당소소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는 그저 유난스런 아가씨이기에, 막연하게 개인적인 의사를 존중해 이런 구조를 만들었거니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젠 개인적인 의사만이 들어간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업은 잘 마치셨는지요, 학사님.”
낯익은 목소리에 학사는 다시 몸을 돌렸다. 자신에게 당소소의 교육을 맡아 달라 부탁하던 자가 눈앞에 서있었다.
“…소가주께서 여동생의 학업에 그리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구려.”
“천방지축이긴 하지만, 그래도 혈육이잖습니까?”
“잘 마쳤다네. 궁금한 점은 그것뿐이신가?”
“소소는 당가의 독에 중독되어 어제 병상에서 일어났습니다.”
당청은 학사의 말에 슬쩍 운을 띄웠다. 당청의 그 말에, 학사는 파리한 그녀의 안색과 떨림을 주체하지 못하는 손을 떠올렸다. 당청은 웃는 낯으로 나머지 말을 덧붙였다.
“수업 중에 이상한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기억의 혼탁 때문이지, 당가내부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군.”
“학사님이라면 잘 이해하실 거라 믿습니다. 저의 스승이기도 하셨으니.”
학사는 당진천의 등쌀에 못 이겨 맡았던 어린 시절 당청을 떠올렸다. 당진천의 호들갑대로, 그는 꽤나 머리가 비상했다. 하나를 알려주면 열은 아니어도 다섯 정도는 깨우쳤고, 채 깨우치지 못한 다섯은 잔꾀로 채우는 성격의 천재. 그 천재의 성격은, 지나치게 이성적이었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정도로.
“…덕을 잃지 마시게. 소가주.”
“어릴 때 지긋지긋하게 듣던 말이군요, 학사님.”
“그저 늙은이가 노파심에 하는 이야기니, 너무 마음 쓰진 말고.”
“항상 걱정해주시는 덕에.”
당청은 학사를 향해 포권을 했다. 학사는 짧은 목례로 답하며 당가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