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일장[一章], 당하소소[唐下素笑] 5
하연은 안색이 파리해진 당소소를 침상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마치 전신의 피가 빠져나간 듯, 그녀의 몸은 얼음장 같았다.
혹시, 자신이 목욕을 오래 시킨 탓은 아닐까? 아니면, 채 가시지 않은 칠혼독의 여파가 아직 남아있는 것일까? 부정적인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녀의 머릿속을 빈틈없이 메워가고 있었다.
당소소가 떨림이 가득한 손길로 하연의 소매를 부여잡았다.
“난, 괜찮아.”
“거짓말이 너무 서투르세요.”
하연은 당소소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냈다. 당소소는 고개를 저었다. 그저, 그녀의 몸이 겁에 질린 것뿐이었다. 어찌할 도리가 없는 악의에게 느끼는 단순한 공포. 그녀는 비척거리며 침상에서 일어났다. 하연은 그런 그녀를 강제로 눕히기 위해 다가갔다.
그러자, 당소소는 고개를 젓고 손을 들어 하연을 제지했다.
“하연.”
“…네, 아가씨.”
“잠시, 자리를 좀 비켜줘.”
“아가씨, 휴식을….”
“하연!”
당소소는 버럭 소리를 지른다. 하연은 그 소리에 어깨를 움찔거린다. 기억 속의 그 목소리였다. 하연을 바라보는 그 눈빛도, 기억 속의 그것과 흡사했다. 하연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자리를, 비켜줘.”
당소소의 명령에, 하연은 아랫입술을 질끈 물었다. 하연은 고개를 숙이고, 도망치듯 침소를 빠져나갔다. 하연이 사라지자, 당소소는 잔뜩 달아오른 숨을 뱉었다.
그리고, 곧장 탁상 위에 놓인 장식품을 손으로 밀쳐 떨어뜨린다.
챙그랑!
장식품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당소소의 난동이 시작되었다. 금으로 만든 비녀를, 옥을 깎아 만든 노리개를. 장인이 빚어낸 청자를 모조리 땅으로 던졌다. 그리고, 다시 숨을 뱉었다.
“하앗, 하아…!”
정신이 혼미했다. 필사적으로 이성을 유지하려는 김수환의 정신을, 당소소의 감정이 멱살을 쥐고 이리저리 흔드는 듯 했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너는 왜 참으려고 하느냐. 가슴 속에서 터져 나오는 격정은 그리 외치고 있는 듯 했다.
당소소의 시선은 흘러가, 자신을 비추고 있는 동경에 도달했다. 당소소는 곧바로 손에 쥐고 있는 조각상을 동경에 던진다.
쩌억!
동경에 여러 줄기의 금이 생겼다. 당소소의 모습이, 여러 갈래로 부셔져 있었다. 당소소는 동경에 다가가 상체를 들이민다. 김수환의 이성을 부여잡고 있던 당소소의 감정이 느슨해진다.
숨을 들이 쉬고, 여러 조각의 자신을 바라봤다. 그러자, 뜨거웠던 머릿속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당소소는 어이가 없다는 듯, 자조의 웃음을 터뜨렸다.
“뭐하는 짓이야, 이게.”
당소소는, 당소소를 책망했다. 그녀는 동경의 한 조각에 손을 가져다 대어본다. 손가락에선, 피가 배어 나와 동경을 적셨다. 그리고, 자신이 벌인 난동을 돌아봤다. 발화점은 김수환의 일생과 당청의 악의였지만, 자신을 움직이게 한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넌, 대체 무슨 일을 겪었던 거냐?’
칠혼독을 먹기 이전부터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쌍검무쌍에도 나와 있지 않은 시간에 가려진 당소소의 결함이었다. 학사의 앞에서 난데없이 찾아든 아득한 공포와, 홀로 남은 방에서 느끼고 있는 목을 죄여오는 분노. 모두 자신의 것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것이 되어버린 과거의 당소소가 품에 담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의 몸에 남아있는 그 감정적인 결함이, 사소한 것에도 격한 반응을 보이며 김수환의 정신을 제 멋대로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거야?’
당소소는 피에 젖은 동경의 조각을 바라봤다. 그녀가 작중에 등장하는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이 년 후.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가씨,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서 와봤…!”
도저히 참지 못하고 다시 침소로 들어온 하연을 맞은 것은, 풍비박산이 난 방과 손가락에서 피를 흘리며 어깨를 들썩이는 당소소였다. 작은 어깨를 파르르 떨면서 하연의 시선을 피하는 당소소. 하연은 그 광경을 말없이 바라보다, 소매에서 천 하나를 꺼내 당소소의 손가락을 지혈했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그녀의 행동에, 당소소는 맥이 풀린 음성으로 하연에게 말했다.
“나, 과거에도 종종 이랬었나?”
“자주 그러셨어요.”
“이유는 알고 있어?”
“아뇨, 아가씨가 난동을 부리는 이유는 가주님조차 알지 못하셨어요.”
하연은 그렇게 대답하며 당소소의 손가락을 동여매고, 바닥에 떨어진 장신구들을 익숙한 모양새로 주웠다. 당소소는 침상에 털썩 앉아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하연. 힘들다면, 도와주지 않아도 돼.”
당소소의 말에 하연이 몸을 일으켜 그녀를 바라본다. 당소소는 짧은 시간 안에 이 격정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이것은 김수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닌, 이전의 당소소에게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누구보다 혼자인 것이 익숙했다, 당소소는 누군가 반드시 상처를 받아야 한다면, 그것에 익숙한 사람이 받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해 있었다. 당소소의 결정은 자신의 기준에선 일견 타당한 면이 있었다. 당소소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어떻게든 혼자 해볼 테니까. 남의 평범한 인생을 뺏어서까지 내 평범한 인생을 찾는 건 불공평하잖아.”
“아가씨.”
“그래. 고마웠어.”
하연은 잔뜩 상처받은 얼굴을 하고선 눈을 감은 당소소를 바라봤다. 마치 거대하고 순한 개가 벌 받는 것을 기다리는 듯한 그 모습에 하연은 더 이상 참지 못하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정도껏 귀여우세요.”
“…어?”
하연은 그렇게 대꾸한 뒤, 나머지 장신구들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당소소는 그저 멍한 얼굴로 하연의 모습을 쳐다볼 뿐이었다.
*
하연이 청소를 마친 방 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했다. 당소소는 하연의 등쌀에 못 이겨, 이불을 덮고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검공자에겐 오늘은 보지 못한다고 하겠습니다, 아가씨.”
“아니야. 오늘 봐야겠어.”
당소소는 그렇게 말하며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켰다. 약간 비틀거리는 것이, 감정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듯 했다. 하연은 걱정스런 말투로 당소소를 제지했다.
“아직 진정되시지 않은 것 같은데요.”
“이제 괜찮아.”
“아가씨, 지금 팔이 떨리고 계셔요.”
“아, 아닌데?”
당소소는 하연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팔을 부여잡았다. 하연은 당소소의 행동에 웃으면서도 걱정스런 눈길을 던졌다. 그럼에도, 당소소에겐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최대한 빨리 사천성의 사건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전생의 기억에서도 쌍검무쌍의 초반부, 사천성 편은 미지의 공간이었다. 주인공은 그저 당소소를 구하고, 당가에서 해독제와 함께 간단한 보상을 받고 떠날 뿐이었다.
만독불침지체[萬毒不侵之體]라는, 별것 아닌 보상을.
‘씨발, 진짜 좆같네.’
당소소는 속으로 주인공의 운을 부러워했다. 하다못해, 다른 장소의 등장인물이었다면 이것보다 막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인공이 얻을 수십 가지의 기연 중에 단 하나만 가져와도 지금의 상황은 해결이 가능했을 것이니까.
하지만 사천성의 기연은 접근이 불가능했다. 죽은 줄 알았던 당가의 초절정고수인 독무후[毒武后]가 주인공이 당가에 찾아올 시점에 등장하고, 당소소를 구해준 대가로 해독제와 함께 만독불침지체를 선물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주인공을 맞이한 당가의 가주는 당청이었다.
‘독천 당진천은 소설 속에서 없었어.’
소설 속에서 신화 속 인물처럼 묘사되는 천하십강[天下十强].
그들을 구시대의 망령으로 취급하며, 현시대의 최고 고수들이라며 내세워진 구주십이천[九州十二天]의 한명, 독천 당진천. 쌍검무쌍에서 그의 등장은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존재하고 있었다.
‘당청의 계획을 엎어버리기 위해선 아버지의 힘이 필요해.’
당소소는 아빠라고 부르자, 헤벌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당진천을 떠올렸다. 그리고, 쌍검무쌍 속의 당소소를 떠올렸다.
자신이 누리던 모든 것을 잃고 추락한 뒤, 유일하게 자신을 생각해주던 아버지조차 없었던 그녀는 어땠을까. 그런 그녀를 구해준 주인공은 그녀에게 있어선 얼마나 큰 존재였을까.
그리고, 그런 존재에게 버림을 받은 그녀는 또 어떤 기분이었을까.
“후우.”
당소소는 숨을 고르며 부정적으로 뻗어가는 생각을 접었다. 아직 아버지는 존재했으며, 주인공 또한 자신을 버리기는커녕 조우하지도 않았다.
그런 부정적인 것들보다, 당청의 계획을 무산시키고 사천성이라는 무지의 감옥을 빠져나가는 것이 가장 우선이었다. 빠져나가기만 한다면, 쌍검무쌍의 이야기들을 이용할 수 있으니까.
하연은 그런 당소소의 외투를 갈아입히며 넌지시 말했다.
“꼭 가셔야겠다면, 마차를 준비해놓도록 할게요. 아마 지금쯤이면 화검공자는 애월루에 있을 거예요.”
“애월루[愛月樓]라면?”
“…그, 기녀들이 있는….”
하연은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당소소는 갈아입은 외투의 옷깃을 여미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갔다 올게.”
“…네, 아가씨.”
하연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당소소를 보냈다. 바뀐 아가씨는, 너무나도 위태로워보였다.
*
성도의 밤. 침묵과 어둠이 내린 한 거리를, 마차 한 대가 조용히 움직였다. 홍등이 걸린 샛길로 방향을 틀자, 거리에서 사라진 소음과 활기가 마차를 반겼다. 집집마다 걸린 홍등은 길거리를 거니는 자들의 욕망을 비추고 있었고, 간드러지는 비음과 비파의 소리가 그들의 손을 잡아 기루로 이끌고 있었다.
유흥가에 들어선 마차는 가장 큰 활기를 토해내는 기루 앞에서 멈춰 섰다. 마부가 마차의 문을 열자, 수수한 복색의 당소소가 모습을 보였다. 길을 거닐던 자들은 그녀의 정체를 확인하더니, 딴청을 피우며 애월루에서 멀어졌다. 당소소는 그들을 흘낏 바라보더니, 고개를 올려 기루의 현판을 확인했다.
-애월루
당소소는 기루의 이름을 확인한 뒤, 애월루로 들어섰다.
“어서오…. 어, 어서오십쇼, 당소소 아가씨!”
느슨한 태도의 점소이가 목에 핏줄을 세워가며 인사를 했고, 왁자하던 기루의 일 층이 침묵에 빠졌다. 당소소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점소이의 인사를 받았다. 그러자, 점소이가 바짝 긴장한 몸짓으로 그녀에게 다가와 말했다.
“화검공자님은 사 층에 있습니다. 늘 먹던 것으로 드릴까요?”
“…내가 늘 뭘 먹었는데요?”
“애월루 특제 오향장육과, 저 먼 남해에서 잡아온 생선 튀김, 애월루에서만 맛볼 수 있는 연와 요리, 운남성에서만 구할 수 있는 과일들….”
“소면이랑 죽엽청으로 주세요.”
점소이는 당소소의 태도에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당소소가 아닌가? 당가에 쌍둥이 딸이 있던가? 아닌데…. 원래 보자마자 복장이 마음에 안 든다고 지랄했을 텐데…?’
“저기요?”
“아, 앗! 네. 바로 사 층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점소이는 기겁을 하며 발을 놀렸다. 그녀는 애월루의 몇 안 되는 단골이자 큰 손. 예민한 그 심기를 거슬렸다간, 애월루주에게 무슨 꾸지람을 들을지 몰랐다. 옷소매에 먼지가 묻었다며 당장 루주를 불러오라던 그 지랄은 이미 업계에서 유명한 일화였다.
그는 넋을 놓고 있던 자신을 책망하며 서둘러 당소소를 사층으로 안내했다.
“이곳입니다.”
점소이의 안내로 들어선 사층. 값비싼 예술품들이 벽에 걸려있었고, 창가엔 붉은 빛으로 밝힌 밤과, 달 한 조각이 걸려있었다. 천장에는 형형색색의 꽃등이 걸려있었고, 그 곳의 가운데에 한 사내가 여러 기녀를 끼고 놀고 있었다.
“요년, 가슴 봐라. 만지니까 커지잖아.”
“아핫! 그런가?”
왼 편에 위치한 기녀의 분홍빛 과실을 주무르며 입가에 가져다 대는 사내. 얇은 신음을 내던 기녀는, 당소소의 얼굴을 보고 헛바람을 들이키며 사색이 되었다.
“독화, 님….”
“여어, 왔네. 오늘은 좀 늦었는걸.”
당소소가 말없이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옆에 있던 기녀들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서둘러 자리를 피하고 있었다. 그는 아쉬운 얼굴로 기녀들을 불렀다.
“어디가. 내가 옆에 있으면 괜찮다니까.”
“화검공자님이 항상 있을 것도 아니잖아욧!”
“아니, 뭐 그것도 그렇긴 한데….”
“아, 저 미친년한테 찍혔어…. 나 어떻게 해….”
어떤 기녀들은 울음을 보이기까지 했다. 화검공자는 황당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당소소를 향해 말했다.
“얼마나 애들을 못살게 굴었으면 저러는 거야, 소소.”
“…….”
당소소는 화검공자의 달콤한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짙은 눈썹, 미형의 얼굴. 화검공자라는 별호가 전혀 아깝지 않은 자였다. 그리고 시선을 사로잡는 푸른색의 눈동자.
그 눈동자는, 쌍검무쌍이라는 작품 안에서도 단 한명에게만 존재하는 특징이었다.
‘마도공자[魔道公子] 사마문이 대체 왜 여기에?’
“어서 옆으로 와, 소소. 할 이야기들이 오늘도 많아.”
쌍검무쌍 후반부에 등장해, 주인공을 매번 역경에 빠뜨리고 온갖 혈사를 일으키고 다니던 마교의 소교주, 마도공자. 화검공자의 정체는, 마도공자 사마문이었다. 사마문은 잔뜩 굳어있는 당소소의 얼굴을 보며 은근한 웃음과 함께 말했다.
“질투하는 거야?”
‘뭐라는 거야, 미친새끼가.’
당소소의 볼살이 움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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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편독심[一片毒心] - 일장[一章], 당하소소[唐下素笑]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