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이장[二章], 만마과해[瞞魔過海] 1
만천과해[瞞天過海].
하늘을 속여서, 바다를 건넌다. 적의 눈을 속이고, 심리의 맹점을 찔러 승리하는 것.
지금부터 나는, 악마의 눈을 속여야한다.
*
“질투하는 거야?”
당소소는 그 말에 하고 싶은 수많은 말을 입꼬리와 함께 꾹 눌러 담고 사마문에게 다가갔다. 당청이야 자신을 팔아먹는다는 명확한 보험이 있었기에, 욕설을 입에 담아도 별 탈이 없었지만 마도공자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수틀린다면 죽인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빼앗았으며, 원하는 여자가 있다면 주저 없이 겁간하는 쌍검무쌍 후반부의 악역. 무공은 그의 더러운 인성과 걸맞게 기연을 거듭한 주인공과 겨룰 정도로 고강했다. 그는 정말로, 정말로 걸어 다니는 재앙이었다.
“앉아, 소소 네 덕분에 깨진 흥. 책임져줘야겠어.”
당소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사마문의 곁에 앉았다. 사마문은 굳어있는 당소소를 보며 엷은 미소를 띠더니, 짓궂은 말투로 대답이 없는 당소소에게 말했다.
“너무 그렇게 화내진 마. 처음 볼 때도 그랬잖아? 난 자유로운 바람과 같은 사람이라고 말이야. 그렇게 집착하는 건, 그런 귀여운 외모랑 안 어울려. 비록 이 몸이 독화 당소소의 마음에 쏙 든다고 해도 말이야.”
‘내가 이 미친놈을 어떻게 대했을까.’
당소소는 마냥 웃고 있는 그를 바라봤다. 그는 화검공자로서 당소소에게 편하게 대하라는 태도를 취했을까? 아니면, 마도공자로서 당소소에게 우러러보는 대상이 되길 원했을까. 그가 마도공자가 아니었다면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자신의 태도를 정한 뒤, 평소의 자신에 대해 물어볼 수라도 있었을 것이다.
태도에 대한 고민하던 당소소는 미간을 찌푸렸다. 사마문이 그녀의 옆에 찰싹 붙어 술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쌀쌀맞네. 평소엔 그렇게 좋아서 엉겨 붙더니 말이야.”
“그, 그런가?”
당소소는 사마문을 슬쩍 밀어내며 옆으로 조금 옮겨 앉는다. 사마문은 낯선 태도의 당소소를 유심히 지켜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술잔을 당소소의 앞으로 내밀었다. 당소소는 몸을 흠칫하며 사마문을 경계했지만, 이내 빈 술잔을 확인하고선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 잔 따라줘. 오늘도 사문에서 계집질이나 한다고 혼났지 뭐야. 풍류를 즐기는 것뿐인데 말이야. 영웅호색, 당연한 이치 아니겠어?”
“으, 응…. 뭐….”
당소소는 미적지근한 태도를 앞세우며 고분고분하게 사마문의 잔을 채웠다. 사마문은 자신의 잔을 유심히 살피더니, 픽 웃으며 잔을 꺾었다. 입 안을 가득 메우는 미주의 향기에, 미소는 절로 짙어진다. 사마문은 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헌데 말이야. 소소.”
“왜…? 아니, 왜요?”
“어울리지 않게 존댓말은. 꽤나 많이 삐진 모양이야.”
“아니요, 아니…. 삐진 거 아니야.”
당소소는 고개를 저으며 사마문의 말을 부정했다. 슬쩍 떠본 바로는, 사마문은 마도공자보다 화검공자로서 당소소에게 다가간 듯 했다. 그가 그것을 원한다면, 호색한에, 음주가무를 즐겨하는 청성의 탕아로 대해주는 것이 옳았다. 그래도.
‘진짜 못해먹겠네, 씨발.’
남자의 자아를 가지고 자신에게 껄떡이는 남자에게 비위를 맞추는 것은 여간한 일은 아니었다. 당소소는 치밀어 오르는 본능을 지그시 누르고, 잔뜩 굳어있는 얼굴에 웃음을 그리며 물었다.
“그런데, 뭘 물어보려고 했던 거야?”
“두 달 정도 애월루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더라고. 소소도 나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애월루 단골이었잖아?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아아, 그거…. 잠깐 몸이 좀 아팠어.”
사마문은 당소소의 말을 듣자, 몸을 숙여 당소소의 눈앞으로 얼굴을 가져다 댄다. 당소소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움츠렸지만, 뒤통수를 잡은 사마문의 손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짙은 눈썹에 날카롭고 영준한 미형의 얼굴이 당소소의 얼굴에 맺힌다.
“…괜찮은 거 맞지, 소소?”
“으, 응….”
“그럼 다행이야. 사천성이 모두 아끼는 당소소 아가씨의 용태가 중하지 않다니, 나도 안심이고.”
사마문은 눈웃음을 던지며 멀어진다. 그제서야 그녀는 왜 당소소가 그에게 반했었는지 깨달았다. 일단 그는 잘생겼다. 그리고, 자신이 잘생겼음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 외모를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하는지도.
그 점이, 남자였던 당소소에겐 심히 불쾌했다.
‘내가 쓰러져 있던 기간은 두 달. 애월루의 단골이고, 화검공자에겐 단단히 반해있었다….’
짤막한 대화로 알아낸 정보치곤 꽤나 괜찮았다. 거기에 화검공자가 사실은 마도공자라는 사실까지. 다 괜찮았다. 옆에 앉아서 손을 만지작거리는 사마문을 제외하면.
‘이 새끼, 왜 이렇게 노골적이지?’
당소소는 사마문의 태도에 의심을 품었다. 아직 그와 이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런 것을 시도했다면, 당소소를 팔아 사천을 지배하려는 당청과 당소소를 끔찍이 아끼는 당진천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곳은 마교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 제아무리 마도공자라도 사천의 호족인 사천당가의 분노를 맨몸으로 받는 것은 너무 위험하니까.
‘하연은 내가 화검공자를 쫒아 다녔다고 말했어.’
당소소는 그 말에 동의했다. 그녀라면 그랬을 것이다. 쌍검무쌍 속 당소소에게도 맹목적인 성격이 자주 묻어나왔다. 주인공을 너무 사랑해 주변인을 중독 시키는 행동이나, 당가에서 가져온 마비독으로 그를 마비시켜 자신의 방으로 데려오려고 하려는 것이나.
‘새삼 느끼는 거지만 진짜 미친년이었네.’
당소소는 쌍검무쌍 속 자신의 행적에 고개를 저었다. 겁을 먹어 사 층을 황급히 떠나던 기녀들에게서도 그 편린이 묻어나왔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당소소는 자신의 변화에 내심 놀랐다. 김수환 시절의 그였다면, 기녀들의 태도에는 관심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남에게 관여하지 않는 성격이니까.
당소소의 그런 생각은 사마문의 접촉에 의해 달아났다. 사마문이 손을 얹자, 슬쩍 손을 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사마문은 퇴짜를 맞은 자신의 손을 조용히 바라보다, 당소소를 노려봤다. 당소소는 히끅, 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 시선을 마주했다. 제아무리 그를 대하기 껄끄럽다 하더라도 그는 마도공자였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티를 내면 그녀의 목숨이 위태할 것이다.
“아하하, 아직 몸이 좋지 않아서….”
“…그런가. 소소, 그래도 병상을 털고 일어난 기념으로 술 한 잔은 마셔야 하지 않겠어?”
사마문은 당소소에게 보란 듯이 술병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당소소는 미주의 달큰한 향에 침을 삼키면서도, 엊저녁의 자신의 모습이 자신의 충동을 성공적으로 묶어놨다. 당소소는 고개를 저으며 거부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사마문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녀의 안온한 심정을 찢고 들어왔다.
“오늘 같은 날 마셔야지, 언제 마시겠어? 당문이 엄하다곤 해도 오늘 같은 날은 마셔줘야 해.”
“아직 스무 살 도 안됐고, 혹시라도 마시고 탈이 날 수도 있으니까….”
“싫어?”
그의 눈초리에서 과거가 읽혔다. 당소소의 눈썹이 움찔거리며 위기를 감지했다. 꽤나 자주 겪었던 상황이었다. 건설현장의 회식 자리. 현장소장의 술잔을 거부하던 김수환이 어떻게 되었는지, 당소소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물며 상대는 마도공자이니, 더한 꼴이 될 것이라는 것은 어린아이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한잔 따라줘.”
“당문 아가씨의 첫 술은 역시 사천성의 노주노교[瀘州老窖]겠지. 이봐!”
“네, 부르셨나요?”
사마문의 부름에 점소이 한명이 쟁반을 손에 들고 올라왔다. 당소소의 눈에 익숙한 그녀의 손엔, 소면과 죽엽청이 들려있었다.
“마침 주문하신 소면과 죽엽청을….”
“잠깐. 너,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그런 조잡한 음식을 가져오느냐?”
사마문은 축 깔린 음성으로 점소이를 핍박했다. 점소이는 황당한 얼굴로 당소소를 바라봤다. 그리곤 억울함이 뚝뚝 묻어나는 말투로 그의 말을 반박했다.
“전, 당소소 아가씨의 주문 대로 가져온 것뿐인데….”
“너, 애월루에서 근무한지 얼마나 됐어?”
“이제 반 년 정도입니다.”
“그 정도 근무했으면 당문 아가씨의 취향도 몰라? 남해의 생선을 튀긴 것이잖아. 정신 차려야지. 단골도 그냥 단골이 아니라 애월루의 매상 반을 올려주는 단골이잖아. 안 그래? 평생 보잘 것 없는 점소이로 구를 거야?”
사마문은 웃는 낯으로 점소이에게 다가갔다. 미형의 얼굴에선, 어딘지 모를 공포가 묻어나왔다. 점소이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벌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슬쩍 당소소를 돌아봤다. 그가 봐왔던 당가의 아가씨는, 이런 식으로 남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을 즐겨했었다. 하지만, 썩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부족한가보군,’
사마문은 그런 점소이의 품에 은전 하나를 꽂아주며 거만하게 말했다.
“처신 잘하라고.”
“죄, 죄송합니다! 서둘러서 다시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가봐. 사천성에서 살고 싶으면 똑바로 하고 다니고.”
“아니. 내가 시킨 거 맞으니까, 여기 내려놔.”
차가운 당소소의 목소리가 점소이의 발걸음을 얼어붙게 했다. 사마문을 만날 때부터 복잡한 감정이 요동치던 얼굴은, 아무런 감정을 보이지 않은 채 굳어있었다. 사마문은 정색하는 당소소를 보며 키득거리며 점소이의 뺨을 툭툭 쳤다.
“소소답지 않게 왜 그래? 이런 쓰레기가 가져온, 쓰레기 음식엔 손도 안 댔었잖아? 이 새끼 이거, 가만 보니까 복장도 좀 비뚤어 졌는데? 야, 진짜 너 제정신이 아니….”
“내려놓으라고.”
“예? 예! 아가씨.”
“…….”
사마문은 그런 당소소를 바라보며 흥미가 동했다. 화검공자가 아닌, 마도공자로서의 관심이었다. 그는 웃음을 멈추지 않고 점소이에게 말했다.
“너, 움직이면 죽는다.”
“…예?”
“농담하는 거 같아?”
점소이가 의문을 토해내자, 사마문은 점소이의 목에 얇은 칼집을 내며 그 의문을 다시 집어넣어주었다. 검은 튀어나오지 않았는데, 어찌 자신의 목에 칼자국이 나있는 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검이 있든 없든 자신의 목숨이야 주머니 속의 물건을 꺼내듯 쉬운 일 일 것이다.
점소이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떨리는 동공으로 당소소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시선이었다. 당소소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녀의 다리는, 사마문이 풍기는 냉랭한 기운에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주길 바랬다. 거울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김수환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제발 도와줘. 공허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던, 증명사진 속 그는 그렇게 절규하고 있었다. 당소소는 떨고 있는 점소이와 눈을 마주친다. 아마, 그도 그렇게 울부짖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살려줘.
“알았어.”
“소소, 너도 와서 한마디 해. 이 쓰레기가 거슬리지 않아?”
“…….”
당소소는 건들거리며 질문을 던져오는 사마문을 무시하고, 점소이이게 다가선다. 점소이의 눈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 물기에 젖어있었다. 자신에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원망이라도 하는 듯 했다.
당소소는 그런 점소이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맨 정신으로는 절대 하지 못할 일을 해야 했기에, 당소소는 잠깐의 망설임을 끝내고, 쟁반 위의 죽엽청을 뺏어들어 병째로 들이켰다.
쨍그랑!
그리고, 병을 바닥에 던지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점소이를 노려봤다. 점소이는 이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눈을 감고 체념한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끄윽. 취하네.”
“소소? 그걸 한번에…?”
“그만 좀 껄떡이고 입 좀 닥쳐, 양아치 새끼야.”
“……?”
“좆같은 새끼가 못하는 짓이 없어. 개같이 잘생겼으면, 착하게나 살 것이지.”
사마문은 갑작스레 내뱉어진 욕설에 넋을 놓았고, 당소소는 비틀거리며 점소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야.”
“네, 넷!”
“당장 꺼져.”
“히이익!”
사마문은 태도가 바뀐 당소소에게 흥미를 느끼고,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점소이를 잡지 않았다. 단지, 이 술 취한 처자가 어떤 짓을 하는 지가 그의 관심사였을 뿐. 당소소는 멍한 얼굴로 사마문을 바라봤다. 사마문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그 시선에 대해 물었다.
“왜 그러지?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착하게 살아라, 씨발아. 안 그럼 그 시퍼런 눈깔, 너보다 더 잘난 누가 파버릴 거니까.”
“…….”
“어, 천장이 도네.”
쿵!
당소소는 그 말을 남긴 뒤, 풀썩 쓰러졌다. 사마문이 쓰러진 당소소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수많은 그림자들이 사마문을 덮는다. 사마문은 당소소에게서 손을 거두며 말했다.
“당가의 무인들이신지?”
“단혼사[斷魂士]라고 불리곤 있네. 청성의 탕아여.”
자신을 단혼사라 소개하는 백발의 노인. 사마문은 단혼사라는 말에, 거둔 손으로 주먹을 쥔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당가의 이인자가 말괄량이 아가씨를 돌보고 있을 줄이야.”
“앞으로도 실례할 일이 없다면 좋겠네. 가주께서 끔찍하게 아끼는 고명딸을, 자네 같은 놈팽이에게 놀아나게 할 수는 없지 않겠나?”
“…깊이 새기겠습니다, 어르신.”
사마문은 단혼사의 말에 딱딱한 미소를 그렸다. 치솟는 살심. 하지만, 이곳은 사천당가의 영역이었다. 그들은 지독했다. 그리고, 철저했다. 건들 순 있지만, 굳이 건들고 싶진 않았다. 마교는 아직 침묵을 지키고 있었고, 자신도 아직 화검공자라는 가죽이 마음에 들었다.
“그럼, 다음에 뵙지요.”
사마문은 뒷짐을 진 채, 슬쩍 목례를 하며 아래로 내려갔다. 단혼사는 그런 사마문의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쉬며 쓰러진 당소소를 내려다봤다.
“그래도 술은 안 마셨었는데….”
단혼사는 부쩍 자신에게 딸 자랑을 하는 가주를 떠올리며 그녀를 들쳐 업었다.
‘아니, 아빠라고 불렀다니까? 자네, 딸없지?’
‘아들은 있습니다만….’
‘쯧쯔! 그 나이가 되도록 딸아이가 없다니. 그러니까 그렇게 폭삭 늙었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저씨라고 불리셨다고…?’
‘어허!’
그는 당가의 문제아가 병상에서 일어나더니 좀 더 교활해 졌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만천과해[瞞天過海].
하늘을 속여서, 바다를 건넌다. 적의 눈을 속이고, 심리의 맹점을 찔러 승리하는 것.
지금부터 나는, 악마의 눈을 속여야한다.
*
“질투하는 거야?”
당소소는 그 말에 하고 싶은 수많은 말을 입꼬리와 함께 꾹 눌러 담고 사마문에게 다가갔다. 당청이야 자신을 팔아먹는다는 명확한 보험이 있었기에, 욕설을 입에 담아도 별 탈이 없었지만 마도공자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수틀린다면 죽인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빼앗았으며, 원하는 여자가 있다면 주저 없이 겁간하는 쌍검무쌍 후반부의 악역. 무공은 그의 더러운 인성과 걸맞게 기연을 거듭한 주인공과 겨룰 정도로 고강했다. 그는 정말로, 정말로 걸어 다니는 재앙이었다.
“앉아, 소소 네 덕분에 깨진 흥. 책임져줘야겠어.”
당소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사마문의 곁에 앉았다. 사마문은 굳어있는 당소소를 보며 엷은 미소를 띠더니, 짓궂은 말투로 대답이 없는 당소소에게 말했다.
“너무 그렇게 화내진 마. 처음 볼 때도 그랬잖아? 난 자유로운 바람과 같은 사람이라고 말이야. 그렇게 집착하는 건, 그런 귀여운 외모랑 안 어울려. 비록 이 몸이 독화 당소소의 마음에 쏙 든다고 해도 말이야.”
‘내가 이 미친놈을 어떻게 대했을까.’
당소소는 마냥 웃고 있는 그를 바라봤다. 그는 화검공자로서 당소소에게 편하게 대하라는 태도를 취했을까? 아니면, 마도공자로서 당소소에게 우러러보는 대상이 되길 원했을까. 그가 마도공자가 아니었다면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자신의 태도를 정한 뒤, 평소의 자신에 대해 물어볼 수라도 있었을 것이다.
태도에 대한 고민하던 당소소는 미간을 찌푸렸다. 사마문이 그녀의 옆에 찰싹 붙어 술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쌀쌀맞네. 평소엔 그렇게 좋아서 엉겨 붙더니 말이야.”
“그, 그런가?”
당소소는 사마문을 슬쩍 밀어내며 옆으로 조금 옮겨 앉는다. 사마문은 낯선 태도의 당소소를 유심히 지켜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술잔을 당소소의 앞으로 내밀었다. 당소소는 몸을 흠칫하며 사마문을 경계했지만, 이내 빈 술잔을 확인하고선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 잔 따라줘. 오늘도 사문에서 계집질이나 한다고 혼났지 뭐야. 풍류를 즐기는 것뿐인데 말이야. 영웅호색, 당연한 이치 아니겠어?”
“으, 응…. 뭐….”
당소소는 미적지근한 태도를 앞세우며 고분고분하게 사마문의 잔을 채웠다. 사마문은 자신의 잔을 유심히 살피더니, 픽 웃으며 잔을 꺾었다. 입 안을 가득 메우는 미주의 향기에, 미소는 절로 짙어진다. 사마문은 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헌데 말이야. 소소.”
“왜…? 아니, 왜요?”
“어울리지 않게 존댓말은. 꽤나 많이 삐진 모양이야.”
“아니요, 아니…. 삐진 거 아니야.”
당소소는 고개를 저으며 사마문의 말을 부정했다. 슬쩍 떠본 바로는, 사마문은 마도공자보다 화검공자로서 당소소에게 다가간 듯 했다. 그가 그것을 원한다면, 호색한에, 음주가무를 즐겨하는 청성의 탕아로 대해주는 것이 옳았다. 그래도.
‘진짜 못해먹겠네, 씨발.’
남자의 자아를 가지고 자신에게 껄떡이는 남자에게 비위를 맞추는 것은 여간한 일은 아니었다. 당소소는 치밀어 오르는 본능을 지그시 누르고, 잔뜩 굳어있는 얼굴에 웃음을 그리며 물었다.
“그런데, 뭘 물어보려고 했던 거야?”
“두 달 정도 애월루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더라고. 소소도 나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애월루 단골이었잖아?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아아, 그거…. 잠깐 몸이 좀 아팠어.”
사마문은 당소소의 말을 듣자, 몸을 숙여 당소소의 눈앞으로 얼굴을 가져다 댄다. 당소소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움츠렸지만, 뒤통수를 잡은 사마문의 손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짙은 눈썹에 날카롭고 영준한 미형의 얼굴이 당소소의 얼굴에 맺힌다.
“…괜찮은 거 맞지, 소소?”
“으, 응….”
“그럼 다행이야. 사천성이 모두 아끼는 당소소 아가씨의 용태가 중하지 않다니, 나도 안심이고.”
사마문은 눈웃음을 던지며 멀어진다. 그제서야 그녀는 왜 당소소가 그에게 반했었는지 깨달았다. 일단 그는 잘생겼다. 그리고, 자신이 잘생겼음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 외모를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하는지도.
그 점이, 남자였던 당소소에겐 심히 불쾌했다.
‘내가 쓰러져 있던 기간은 두 달. 애월루의 단골이고, 화검공자에겐 단단히 반해있었다….’
짤막한 대화로 알아낸 정보치곤 꽤나 괜찮았다. 거기에 화검공자가 사실은 마도공자라는 사실까지. 다 괜찮았다. 옆에 앉아서 손을 만지작거리는 사마문을 제외하면.
‘이 새끼, 왜 이렇게 노골적이지?’
당소소는 사마문의 태도에 의심을 품었다. 아직 그와 이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런 것을 시도했다면, 당소소를 팔아 사천을 지배하려는 당청과 당소소를 끔찍이 아끼는 당진천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곳은 마교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 제아무리 마도공자라도 사천의 호족인 사천당가의 분노를 맨몸으로 받는 것은 너무 위험하니까.
‘하연은 내가 화검공자를 쫒아 다녔다고 말했어.’
당소소는 그 말에 동의했다. 그녀라면 그랬을 것이다. 쌍검무쌍 속 당소소에게도 맹목적인 성격이 자주 묻어나왔다. 주인공을 너무 사랑해 주변인을 중독 시키는 행동이나, 당가에서 가져온 마비독으로 그를 마비시켜 자신의 방으로 데려오려고 하려는 것이나.
‘새삼 느끼는 거지만 진짜 미친년이었네.’
당소소는 쌍검무쌍 속 자신의 행적에 고개를 저었다. 겁을 먹어 사 층을 황급히 떠나던 기녀들에게서도 그 편린이 묻어나왔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당소소는 자신의 변화에 내심 놀랐다. 김수환 시절의 그였다면, 기녀들의 태도에는 관심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남에게 관여하지 않는 성격이니까.
당소소의 그런 생각은 사마문의 접촉에 의해 달아났다. 사마문이 손을 얹자, 슬쩍 손을 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사마문은 퇴짜를 맞은 자신의 손을 조용히 바라보다, 당소소를 노려봤다. 당소소는 히끅, 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 시선을 마주했다. 제아무리 그를 대하기 껄끄럽다 하더라도 그는 마도공자였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티를 내면 그녀의 목숨이 위태할 것이다.
“아하하, 아직 몸이 좋지 않아서….”
“…그런가. 소소, 그래도 병상을 털고 일어난 기념으로 술 한 잔은 마셔야 하지 않겠어?”
사마문은 당소소에게 보란 듯이 술병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당소소는 미주의 달큰한 향에 침을 삼키면서도, 엊저녁의 자신의 모습이 자신의 충동을 성공적으로 묶어놨다. 당소소는 고개를 저으며 거부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사마문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녀의 안온한 심정을 찢고 들어왔다.
“오늘 같은 날 마셔야지, 언제 마시겠어? 당문이 엄하다곤 해도 오늘 같은 날은 마셔줘야 해.”
“아직 스무 살 도 안됐고, 혹시라도 마시고 탈이 날 수도 있으니까….”
“싫어?”
그의 눈초리에서 과거가 읽혔다. 당소소의 눈썹이 움찔거리며 위기를 감지했다. 꽤나 자주 겪었던 상황이었다. 건설현장의 회식 자리. 현장소장의 술잔을 거부하던 김수환이 어떻게 되었는지, 당소소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물며 상대는 마도공자이니, 더한 꼴이 될 것이라는 것은 어린아이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한잔 따라줘.”
“당문 아가씨의 첫 술은 역시 사천성의 노주노교[瀘州老窖]겠지. 이봐!”
“네, 부르셨나요?”
사마문의 부름에 점소이 한명이 쟁반을 손에 들고 올라왔다. 당소소의 눈에 익숙한 그녀의 손엔, 소면과 죽엽청이 들려있었다.
“마침 주문하신 소면과 죽엽청을….”
“잠깐. 너,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그런 조잡한 음식을 가져오느냐?”
사마문은 축 깔린 음성으로 점소이를 핍박했다. 점소이는 황당한 얼굴로 당소소를 바라봤다. 그리곤 억울함이 뚝뚝 묻어나는 말투로 그의 말을 반박했다.
“전, 당소소 아가씨의 주문 대로 가져온 것뿐인데….”
“너, 애월루에서 근무한지 얼마나 됐어?”
“이제 반 년 정도입니다.”
“그 정도 근무했으면 당문 아가씨의 취향도 몰라? 남해의 생선을 튀긴 것이잖아. 정신 차려야지. 단골도 그냥 단골이 아니라 애월루의 매상 반을 올려주는 단골이잖아. 안 그래? 평생 보잘 것 없는 점소이로 구를 거야?”
사마문은 웃는 낯으로 점소이에게 다가갔다. 미형의 얼굴에선, 어딘지 모를 공포가 묻어나왔다. 점소이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벌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슬쩍 당소소를 돌아봤다. 그가 봐왔던 당가의 아가씨는, 이런 식으로 남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을 즐겨했었다. 하지만, 썩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부족한가보군,’
사마문은 그런 점소이의 품에 은전 하나를 꽂아주며 거만하게 말했다.
“처신 잘하라고.”
“죄, 죄송합니다! 서둘러서 다시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가봐. 사천성에서 살고 싶으면 똑바로 하고 다니고.”
“아니. 내가 시킨 거 맞으니까, 여기 내려놔.”
차가운 당소소의 목소리가 점소이의 발걸음을 얼어붙게 했다. 사마문을 만날 때부터 복잡한 감정이 요동치던 얼굴은, 아무런 감정을 보이지 않은 채 굳어있었다. 사마문은 정색하는 당소소를 보며 키득거리며 점소이의 뺨을 툭툭 쳤다.
“소소답지 않게 왜 그래? 이런 쓰레기가 가져온, 쓰레기 음식엔 손도 안 댔었잖아? 이 새끼 이거, 가만 보니까 복장도 좀 비뚤어 졌는데? 야, 진짜 너 제정신이 아니….”
“내려놓으라고.”
“예? 예! 아가씨.”
“…….”
사마문은 그런 당소소를 바라보며 흥미가 동했다. 화검공자가 아닌, 마도공자로서의 관심이었다. 그는 웃음을 멈추지 않고 점소이에게 말했다.
“너, 움직이면 죽는다.”
“…예?”
“농담하는 거 같아?”
점소이가 의문을 토해내자, 사마문은 점소이의 목에 얇은 칼집을 내며 그 의문을 다시 집어넣어주었다. 검은 튀어나오지 않았는데, 어찌 자신의 목에 칼자국이 나있는 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검이 있든 없든 자신의 목숨이야 주머니 속의 물건을 꺼내듯 쉬운 일 일 것이다.
점소이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떨리는 동공으로 당소소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시선이었다. 당소소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녀의 다리는, 사마문이 풍기는 냉랭한 기운에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주길 바랬다. 거울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김수환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제발 도와줘. 공허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던, 증명사진 속 그는 그렇게 절규하고 있었다. 당소소는 떨고 있는 점소이와 눈을 마주친다. 아마, 그도 그렇게 울부짖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살려줘.
“알았어.”
“소소, 너도 와서 한마디 해. 이 쓰레기가 거슬리지 않아?”
“…….”
당소소는 건들거리며 질문을 던져오는 사마문을 무시하고, 점소이이게 다가선다. 점소이의 눈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 물기에 젖어있었다. 자신에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원망이라도 하는 듯 했다.
당소소는 그런 점소이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맨 정신으로는 절대 하지 못할 일을 해야 했기에, 당소소는 잠깐의 망설임을 끝내고, 쟁반 위의 죽엽청을 뺏어들어 병째로 들이켰다.
쨍그랑!
그리고, 병을 바닥에 던지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점소이를 노려봤다. 점소이는 이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눈을 감고 체념한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끄윽. 취하네.”
“소소? 그걸 한번에…?”
“그만 좀 껄떡이고 입 좀 닥쳐, 양아치 새끼야.”
“……?”
“좆같은 새끼가 못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