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화 〉이장[二章], 만마과해[瞞魔過海] 2 (8/130)



〈 8화 〉이장[二章], 만마과해[瞞魔過海] 2

마도공자 사마문은 자리에 앉아 턱을 괴었다. 바닥에는 당소소가 던져둔 술병의 조각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당소소는 화검공자를 연기하기 위한 도구이자 막간의 여흥이었다.

“눈깔을 파버린다라….”



사마문은 한쪽 눈을 감으며  위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그녀의 발언은, 필시 자신이 마도공자임을 모르기에 나온 결과라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에 사마문은 두 눈을 모두 감고 잠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자를 유린하는 것을 즐겼다. 믿을  없는 것을 보고난 뒤, 거대해진 동공과 경악어린 표정은 그에게 있어선 여인의 몸이 주는 쾌락보다 더 거대한 전율을 가져다주었다.  상상만으로, 사마문은 천국을 맛보는 기분이었다.



“하아….”



달아있는 숨을 뱉는 그의 옆으로 조그마한 목소리가 찾아들었다.



“그 무례한 년, 죽일까요?”


“…요재[妖災].”


“예, 소교주님.”

“내가 화검공자를 연기하고 있을 때는 어떻게 하라고 했었지?”



사마문이 나지막이 말하자, 요재라 불린 무복의 여인이 고개를 숙이며 바닥에 엎드렸다. 그녀는 격한 공포가 요동치는 음성으로 말했다.




“모습을 보이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습을 보였구나.”


“네, 소교주님.”

“그럼 이제 사라져야겠지.”



사마문은 턱을 괴고 있던 손을 풀어 앞으로 내밀었다. 요재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는 머리를 기울이며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그녀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은근한 분노가 담긴 말투로 말했다.




“이상하군. 아직  손에 네 심장이 없는 걸?”


“죄송합니다, 소교주님. 제 목숨은, 소교주님을 천마의 자리에 올려놓을  쓰여야 하기에.”

“크흣흣! 그것도  아비인 부교주가 알려준 것이냐?”


“…이건, 저의 순수한 경의입니다. 소교주님. 그 무례한 년도 감히 천마를 업신여기기에 소첩의 좁은 속으론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마문은 요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유능했다. 자신의 소교주 자리를 온존시키는 데에는, 꽤나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죽이는 것은, 자신의 배에 칼을 찔러 넣는 것과 같을 것이다. 사마문은 이해했다.


하지만  연소되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는 그의 심중에 남아 불쾌한 감정을 만들어냈다. 사마문은 그녀를 훑어본 뒤, 고개를 까딱이며 말했다.


“기어서 이리와라.”

“예, 소교주님.”


요재는 별다른 의문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다음 대의 천마였고,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뤄주라는 아버지의 명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천마가 된다면 그런 명령 따윈 없어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테니까.

요재가 그의 곁으로 다가오자, 사마문은 몸을 일으켜 엎드려있는 그녀의 허리 위에 앉았다. 그리고, 잿빛을 띄는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요재.”


“예, 소교주님.”


“이 곳은 마교가 아니다. 그렇기에, 난 너를 한번 용서해 줄 수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두 번은 없어.”



사마문은 요재를 쓰다듬던 손을 거두고, 그녀의 머리를 툭툭 때렸다. 요재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들어올렸다. 사마문은 그런 그녀의 태도에, 그녀의 무례를 지웠다. 그녀는 똑똑했다. 그렇기에 굳이 많은 말은 필요 없을 것이다.


대신, 그의 머릿속을 채우는 것은 차갑게 굳은 당소소의 얼굴이었다. 두 달만에 모습을 보인 그녀는 꽤나 다채로운 색이었다. 그저 화려하고 표독스럽기만 하던 그녀의 얼굴은 수줍음과 분노와 경멸과 동정, 수많은 실들이 엮인 하나의 예술품과도 같이 변해있었다.

‘화검공자, 나에게 좀  붙어있도록 해. 이 버러지 년들, 어서 떨어지지 못해?’

‘아하하, 아직 몸이 좋지 않아서….’



화려한 옷을 입은 채 색욕에 번들거리는 눈을 빛내던 당소소와, 펑퍼짐하고 수수한 옷을 입은 채로 수줍은 눈초리를 하던 당소소가 교차한다.


‘꺄르르, 맞아.   혼이 나봐야 해. 화검공자, 더 몰아쳐. 더 추한 꼴을 보이게 해요.’


‘아니, 여기 내려놔. 내려놓으라고.’



거만하게 웃던 당소소의 얼굴과, 차갑게 굳은 당소소의 얼굴이 교차한다. 마치, 같은 얼굴을  다른 사람 같았다.


‘입  닥쳐, 씨발아.’


“가지고 싶군.”

“예?”


“요재, 최근 두  동안 당소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와.”



사마문은 그리 명하며 요재의 머리칼을 쥐었다. 요재는 순종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문은 당소소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녀의 인격을 짓뭉개어 굳어있는 얼굴을 경악으로 물들이고 싶었다.

사마문은 숨을 들이키며, 마음속의 가학심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차마 가릴  없는 잔학한 웃음이 그의 입가에 묻어있었다.



*



“으음…. 씨발, 머리야….”

당소소는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푹신하고  의자 위, 비취색의 겉옷이 자신의 몸 위로 덮여있었다.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이 옷의 주인은 당소소가 잘 알고 있는 그 사람일 것이다. 당소소는 시선을 돌려 은은한 빛이 새어나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책상 위를 밝히는 등불 옆으로, 당진천이 몇 장의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그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당소소를 바라봤다.

“일어났느냐, 소소.”


“…네, 가주님.”

“…….”


“……?”

당소소는 그 대답에 서운하다는  바라보는 당진천의 눈길을 느끼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생각했다. 일어날  욕을 한 게 문제였을까? 아니면, 술을 마신 것? 화검공자와 만난 것? 여러 생각이 끝나고, 당진천이 헛기침을 하며 당소소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 호칭이 잘못 되었잖느냐.”

“아, 아빠….”

“그래, 우리 딸.”


‘으, 으으! 이 미친년이, 진짜 아빠라고 불렀었다고?’

당소소는 당진천의 요구에 그를 아빠라고 부르며, 자신의 팔을 벅벅 긁었다. 김수환은 항상 무뚝뚝함을 견지하고 있던 사람이었기에, 다른 사람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에 내성이 그다지 없었다. 당소소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당진천은 그런 당소소의 행동이 사랑스럽다는 듯,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짐짓 근엄한 체 하며 당소소에게 물었다.



“헌데, 어쩌다가 술은 먹게 되었느냐? 스무  이전엔 술은 안 된다고 했잖느냐?”

“그게, 심경이 좀 복잡하여서….”

“심경이 복잡하면, 이 아비를 찾아올 것이지 어찌 소녀의 몸으로 술을 마시느냐.”


“…죄송합니다.”

당진천은 손에 쥔 서류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당소소의 곁에 다가와 말했다.



“화검공자,  놈팽이 때문이더냐?”


“…….”




당소소는 당진천의 물음에 섣불리 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 한마디면, 화검공자는 사라질 것이다. 청성과의 잡음도, 독천 당진천의 힘이라면 어느 정도 무마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마도공자가 무대 위로 올라올 거야.’

마도공자 사마문은 아직 쌍검무쌍이라는 이야기 안에 등장하지 않은 주역이었다. 그를 섣불리 건드렸다간, 어떤 미래가 찾아올지 모른다. 당소소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당진천은 숙취와 고뇌로 얼룩진 귀여운 딸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혼란스러울 것이다. 혼탁한 기억, 주변의 차가운 시선. 거기에, 앙숙인 당청의 견제까지.




‘그래서 그렇게나 주의시키던 술에도 손을 댄 것이겠지.’




당진천은 그녀가 다시 막무가내인 성격이 되더라도, 기억은 되찾지 않길 원했다. 순수한 그녀에겐, 사천당가는 그리 깨끗하지만은 않은 곳이었으니까.


“소소야.”

“네. 아, 아빠.”

“많이 혼란스러우냐?”

“음, 아니라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당소소는 당진천의 물음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면한 문제를,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지 꽤나 막막한 상황이었다.

자신을 팔아넘기려는 당청, 사라지는 당진천에 최종적으론 천마의 위치에 오르는 마도공자와의 만남. 주인공이 해결할 무림의 사건들을 제하고서라도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거기에, 해결한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들이 아니었다. 해결하면, 쌍검무쌍의 이야기가 개변한다. 골치를 썩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소소의 답변에, 당진천은 그녀의 곁에 앉는다. 당진천의 귓속에서 환청이 들려왔다.

‘아저씨냄새나, 저리가!’


“…내가 웬만해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인데….”


“네?”

“으흠, 별 것 아니다. 딸아. 무엇이 고민인지 이 아비한테 말해줄 수 있겠느냐?”

당소소는 당진천의 요구에 인상을 찌푸리며 얽힌 사건의 실마리  어떤 것을 선택해야할지 고심했다. 화검공자? 당청? 자신을 학대할 사천쌍괴? 그것도 아니면,  년 후의 주인공과의 조우?


당소소는 고개를 저으며 그 고뇌를 내려놓았다. 당진천에게, 당소소의 아버지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은, 그게 아니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당소소의 감정이 김수환의 등을 떠민다. 당소소는 당진천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가슴 속에서 물음을 쥐어짜냈다.




“저를,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당소소는  말을 던진 뒤, 눈을 감고 숨을 참았다.


이 무서움의 발화점은 김수환의 일생, 그리고 움직인 것도 자신의 의지. 그 의지가 예민한 당소소의 감정에 실려 토해진 것이었다. 가정이 무너진 그의 나머지 반생은 사람 하나 겨우 누울 수 있는 자그마한 고시원의 바닥이었다. 고등학교를 그만  그는, 평범한 가정을 원했다. 집 문을 여는 순간 짤막하게 느낄  있는, 그  줌의 안온함을 원했다.


그러나 지금의 당소소는 당진천이 바라보던 당소소와는 달랐고, 다를 것이다. 과연 당소소의 아버지가, 엉망진창으로 뒤엉켜있는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당소소는 그것을 물어왔다.

당진천은 애처롭게 웅크린 당소소를 바라봤다. 그리고, 땅에 떨어진 자신의 겉옷을 주워 그녀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우리 딸, 더 묻고 싶은 것은 없느냐?”


“…윽, 네에.”

당소소는 당진천의 말에 울음을 삼켰다. 그리고, 사무치는 비애를 삼켰다. 이렇게나 간단한 것을, 어찌 김수환은 누리지 못했을까. 이렇게나 간단한 것을, 어찌 당소소는 쉽게 놓았을까.

당소소는 길게 숨을 뱉는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저  한마디면 되었다.  말 한마디에, 김수환은 웃을  있었다. 그녀는, 안심할 수 있었다. 당소소는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들었다. 당진천은 그런 딸이 대견하면서도,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당진천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혼란스럽더라도,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독하게 마음먹고, 마음을 어지럽히는 잡다한 것을 잊은 채로 그저 눈앞에 닥친 일을 하나하나 해결하면 되는 것이야. 그것이 당가의 독심 아니겠느냐?”

“…독심 말인가요.”


“그래. 언젠가, 네가 넘어지더라도…. 이 아비는 네 편이란다.”


당진천은 그렇게 말 하며 뒤돌아 붉어진 얼굴을 숨겼다. 그리고, 멋쩍은 듯 헛기침을 하며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만지작거렸다. 당소소는 그런 당진천을 바라보며 가슴께에 손을 올렸다.



‘아, 이것이 한 줌의 안온함이구나.’


당소소는 어깨에 걸쳐진 당진천의 옷을 그러쥐었다. 그저 비단일 뿐인 데도, 다양한 것이 느껴졌다. 톡 쏘는 약재의 냄새, 서류를 처리하느라 앞섶에 튄 약간의 먹. 그리고, 뒤편에만 보이는 덧댄 자국들 까지. 잠시  옷에 뺨을 비비던 당소소는, 그 옷을 고이 접어 의자 위에 올려놓는다.

‘이건, 내꺼야.’


모든 것을 잃어 보았던 그는, 이제 더는 그녀의 것을 잃기 싫었다. 당진천의 외투, 하연의 잔소리, 자신을 괴물 보듯 바라보는 하인들의 달갑잖은 시선까지도. 모두 그녀의 것이었다. 주인공의 이야기에 가려졌었던, 온전한 그녀의 것이었다. 쌍검무쌍의 이야기는 그것까진 이야기 하고 있지 않았다.  생각을 떠올리자, 당소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쌍검무쌍의 이야기를 섣불리 바꿀 순 없었다. 그녀도 그것을 원치 않았다. 그렇다면 이야기에 도달하기 전, 문장과 문장 사이에 가려진 과정만을 바꾸는 것이라면.


그 생각이 당소소는 계속되던 그녀의 고뇌에 방점을 찍어 주었다. 당소소는 쾌활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빠.”

“그래, 우리 딸. 말해보아라.”

“저 결혼할래요.”



으직! 쿵!

당진천의 책상이 반으로 쪼개지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당진천은 고개를 숙인 채, 눈썹을 치켜뜨고 입가를 부들거리고 있었다. 난데없는 바람이 불어 닥치더니, 바닥에 떨어진 등불은 삽시간에 불꽃을 잃고 사그라졌다. 당진천은 힘겹게 입꼬리와 고개를 들어 올리며 당소소를 바라봤다.



“결혼, 말이냐?”


“네. 결혼이요.”

“그, 그래. 아직은 어린 나이긴 하지만, 관심을 가질 나이는 되었지…. 어느 좆…. 아니. 어느 고명한 가문의 자제를 생각하고 있느냐? 그 화검공자인가 뭔가 하는 기생오라비를 말하는 게냐?”

“저도 보는 눈은 있어요, 아빠.”

“그래, 우리 소소가 그런 잡놈…. 아니, 무명소졸을 원할 리가 없지.  아비가 잠깐 실수 했다. 그래서, 격식 있는 따님께선 어느 고명한 가문의 자제를 생각하고 있을까?”


당소소는 그런 당진천의 태도에, 마냥 좋다는 듯, 베시시 웃고 있었다. 당진천은 그런 당소소를 바라보며 속이 탔다. 그는 재빨리 사천성 내의 유력가를 떠올리고, 그들의 자제를 떠올렸다.

‘그 청성의 씨발놈이 아니라면, 대체 어떤 미친 새끼가  딸을 건든 거지? 묵가장[墨家場]? 아니. 그 돌덩이들은 딸의 취향이 아니야. 청랑검문[靑浪劍門]? 옳아, 그 쪽의 자제가  논다는 소문은 들었어. 화검공자인가 뭔가 하는 놈이 아니라면, 그  이겠군.’

“청랑검문의 자제는 좀…. 비실비실하니 남자구실을 못하지 않겠니?”

“사천쌍괴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는데. 그, 이름이…. 잔혈객 진명이라고 했었나?”

“…….”

“사천….쌍괴?”


“네, 사천쌍괴, 잔혈객, 진명.”



당진천은 당소소의 입에서 나온 어처구니없는 단어의 나열에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사천쌍괴, 잔혈객, 진명.


절대 입에 담아선  되는 단어들이 연속해서 고운 딸의 입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당진천은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뒤 잘못 들은 거겠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떠올렸다.

사천쌍괴, 잔혈객, 진명.


좆같은 사파새끼들의 우두머리.


당진천은 자신이 들은 것을 되새겨보고,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음, 맞군.



“허, 씨발.”

쿵!



“…아빠?”

그리고, 당진천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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