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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화 〉이장[二章], 만마과해[瞞魔過海] 5 (11/130)



〈 11화 〉이장[二章], 만마과해[瞞魔過海] 5

잔뜩 지친 기색의 당소소가 자신의 침상 위로 쌓여가는 옷가지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체념을 한 듯  방에서 옷을 무더기로 가져오는 하연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건 어떠세요? 빨간 색을 중심으로 해서, 금색의 장식들. 그리고 비취 장식품을….”

“괜찮은 것 같아. 그걸로 할까?”


“음, 너무 화려한 것 같은데. 이건 어떠세요? 연한 보라색에 분홍으로 수를 놓은 저고리에요. 백금을 녹여 만든 노리개를 찬다면 꽤나 우아하게 보이실 것 같은데….”


“…괜찮은 것 같아. 그, 그만하면 된 거 같은데….”

“저건 너무 돋보이는 것 같으면, 노란색의 치마에 진홍빛의 저고리와 연한 보라색실을 엮어서 만든 금색 노리개는….”


“에휴.”




당소소는 한숨을 쉬며 턱을 괴고, 부산을 떠는 하연을 외면했다. 김수환의 삶에서 골라본 옷이라곤 교복과 수수한 셔츠, 청바지뿐이었다. 옷은 그냥 걸치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는  그녀의 평소 지론이었다. 입어봤자 누구하나 보여줄 사람은 없었으니까.

하연은 뚱한 표정의 당소소를 바라보며, 들고 있는 진홍빛 저고리를 겹쳐본다. 그리곤,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당소소는 쌓여있는 옷을 뒤적거리더니, 회색의 저고리를 들어 올리며 말한다.




“그냥 회색 저고리에 회색 치마를 입자. 장식품은…, 굳이 없어도 되지 않나?”


“정말, 옷 갈아입으실 때 마다 시비들을 한 시진씩 들들 볶으시던 아가씨는 어디가고…. 저잣거리 왈패가 되셨어요?”


“자 봐. 회색은 잘 더럽혀지지도 않고, 색도 무난하잖아? 거기에 당가의 가풍인 실용성까지….”

“일단, 그건 놔두시고. 이거부터 입어보세요.”


하연은 당소소에 상아색의 저고리를 내민다. 당소소는 길게 한숨을  뒤, 상아색의 저고리를 받아들었다.



“이것만 입어볼 거야.”

“일단 입어보세요. 음, 아닌가…. 그래도 연분홍색이…?”


“에휴.”



당소소는 자신이 걸치고 있던 회색의 저고리를 벗고, 상아색의 저고리를 걸쳤다. 몸매를 드러내는 옷을 입는다는 거부감 같은 것은, 하연이 자신을 들들 볶기 시작한지  시진이 지난 뒤부턴 말끔히 사라졌다. 그 후로 다시 한 시진. 이젠 제발 자신을 놓아줬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하연은 당소소가 지친기색을 보이는 것을 눈치 채고, 묘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역시, 평소에 입으시던 색이 가장 잘 어울리시는  같네요.”

“…그런  있으면 진작 말해야할 거 아니야.”


“그래도, 혹시라도 더 나은 색조가 있을 수도 있고…. 아가씨의 분위기도 묘하게 달라지신 것 같아서 한번 느낌을 바꿔보고 싶었어요.”

“어서 가져와.”

당소소는 질색을 하며 하연을 재촉했다. 하연은 그런 당소소가 마냥 귀여운지 웃음을 흘리며 침상 위의 옷가지들을 집었다. 그녀는 녹색의 치마, 그녀의 눈동자와 똑같은 색인 자줏빛의 적삼을 당소소에게 보여주었다. 당소소는 하연이 혹여 다른 것을 내밀까, 허둥지둥 옷을 갈아입었다. 당소소가 엉성한 손길로 주섬주섬 옷을 입는  보던 하연은, 당소소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제가 입혀드릴게요.”

“으, 응.”


하연은 축 늘어진 녹색 치마를 위로 한단 접어 올렸다. 이어서 당소소가  엉성한 매듭을 풀고, 상아색의 저고리를 단단히 끌어 모았다. 펑퍼짐하게 보이던 옷은 몸에 달라붙어 당소소의 맵시 있는 몸매의 곡선을 드러냈다. 그리고 정갈하게 매어지는 매듭. 그 위로, 자주색의 적삼이 얹힌다. 하연은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선다.

“한 번 보시겠어요?”



하연의 말에,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경 앞에 섰다. 지친 기색의 미녀가 흑단 같은 머리를 늘어뜨리고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옷의 색채는 각자 맞물려 당소소에게 고귀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당소소는 자신의 미모가 믿기지 않는지, 팔을 들어 구석구석을 살폈다.



“항상 쓰시던 비녀에요.”



하연은 그런 그녀에게 다시 다가가 머리칼을 한 움큼 쥐고 위로 올린다. 그리고, 옆머리와 뒷머리의 반 정도를 동여매고, 비녀를 꽂아 고정시킨다. 당소소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비취를 깎아 만든 비녀를 확인했다.

“예쁘죠?”

“…그렇네.”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독화라고 불릴 만한 미모였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입가의  끝을 끌어올렸다. 고귀한 분위기에서 묻어나오는 앳된 미소가, 한층 더 분위기를 살려주었다. 당소소는 뒤돌아서 하연을 바라본다.

“나, 예쁜가?”


“네, 아가씨. 병상에 눕기 전 보다 훨씬 예쁘세요.”

당소소는 그 대답을 듣자, 곧바로 적삼을 벗으며 하연에게 말했다. 하연은 과거의 당소소와 그녀를 비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치켜뜨던 눈가가 느긋한 눈초리로, 표독스럽던 표정이 무덤덤하게 굳어, 약간 냉랭해 보이는  다른 당소소가 자신의 앞에 서있었다.

“어쨌든, 다 끝났지? 빨리 이거 다 집어넣자.”


“무슨 소리세요, 아가씨.”


“……?”

“내일 낭군 되실 분을 뵈려면, 분도 바르고 연지도 좀 찍어 봐야하지 않겠어요?”

“…….”

당소소는 하연의 말에 입꼬리를  내렸다. 목욕 건도 그렇고, 옷을 고르는 것도 그렇고 일단 시작되면, 몇 시진은 기본으로 잡아먹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당소소는 하연의 눈치를 슬쩍 보며 옆걸음질로 자신의 침실을 빠져나오려고 했다.


“아가씨?”


“으, 으흠?”


“어디 가시는 거예요. 그래도 가볍게 화장을 해보셔야죠?”


“…가볍게?”

당소소는 하연의 제안에 불신을 가득담은 반문으로 답했다. 그럼에도, 하연은 빙긋 웃으며 동경의 옆에 놓여있는 분과 연지가 담긴 상자를 쥐었다. 당소소는 그런 하연의 마수를 피해, 재빨리 옆으로 도망쳤다.

“앗, 아가씨!”


“내일해, 내일!”


“옷의 색조와 맞춰야 한단 말이에요!”

“몰라!”


당소소는 치마를 입은 발로 서둘러 침소를 나섰다. 그런 그녀의 뒤를, 하연이 황급하게 따라가며 말했다.



“아가씨, 외투! 외투만 입어 봐요!”


*

마차의 앞에 서있는 단혼사는, 백발을 쓸어 넘기며 고개를 들었다. 중천에 뜬 해가 어느덧 미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이 나타나질 않고 있었다. 단혼사의 미간의 좁혀졌다.

‘분명 어제, 정오에 만나자고 했건만.’


그녀가 그럭저럭 말썽을 부린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자신의 손으로 맺어야 한다던 혼사를 성사시키는 상견례  까지 사람을 골려먹는 것은 단혼사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단혼사가 팔짱을 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저 멀리서 당소소가 걸어 나왔다. 단혼사는 그녀를 돌아보며 꾸짖었다.

“너무 늦지 않았느냐.”

“죄송해요, 단혼사님. 하연이 자기가 죽어도 화장은 하고 가라면서 절 붙잡고 늘어져서…. 좀 괜찮아 보이나요?”



당소소를 꾸짖을 생각이 가득하던 단혼사의 머릿속은, 이내 그녀의 모습을 마주하고 말끔히 증발했다. 당소소의 모습은 꽃망울을 터뜨린 난과 같았다. 옷이 감싼 잘록한 몸에선 성숙한 청초함이, 연지와 분을 얇게 바른 얼굴에선 은근하게 퍼지는 고귀한 향이 느껴졌다.

“…크흠. 뭐, 평소보단 낫구나.”

“음,  이상한건가….”

단혼사는 당소소의 모습을 확인하고, 헛기침을 하며 미적지근한 태도로 말했다. 당소소는 그런 단혼사의 태도에 자신의 옷 어디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이곳저곳을 뜯어봤다. 불편하고 낯선 감각의 옷이라 더욱 신경이 예민해지는 듯 했다. 단혼사는 부산스런 당소소를 보며 마지못해 솔직한 한마디를 내밀었다.

“내가 봐왔던  모습 중에 가장 예쁘다. 이제, 가도록 하자꾸나.”

“엣, 네….”




단혼사는 마차에 올라타며 당소소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소소는 잠시 손을 내미는 것을 주저하다, 이내 단혼사의 손을 잡고 마차에 올라탔다. 당소소가 자신의 맞은편에 앉자, 뒤편의 벽을 한차례 두드리며 말했다.

“출발해라.”


푸륵-

말이 투레질을 하는 소리와 함께,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창 밖으로 풍경들이 스치고 있었다. 당소소는 무덤덤한 얼굴로 그 풍경들에게 눈길을 주고 있었다. 단혼사는 그런 당소소를 불렀다.

“소소.”


“네?”


“우선 어제 청혼의 의사를 밝히는 전갈을 보내놓았다. 어떤 식으로 그들을 구슬릴 것인지 자세히 말해보아라.”


당소소는 자신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다, 단혼사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줄 생각이에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



단혼사의 물음에,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다행스럽게도 사천편 초반, 당소소를 학대하던 당명을 격살하는 장면에서 짤막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행동에 나설 수 있었다. 대답을 바라는 단혼사의 눈치였지만, 당소소는 고개를 젓는다.

“도착하면 알게 되실 거예요. 정말,  것 아닌 것이니까.”


“…너, 병상에서 일어난 뒤로 많이 바뀌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는 건가? 단순히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하는 방식이나 태도의 궤도가 달라졌다는 걸.”


“주변인을 통해서 듣곤 있습니다.”


“인지하고 있다면 되었다.”



단혼사는 그렇게 말을 마치며 고개를 돌렸다. 그는 쓸데없는 것에 말을 많이 하는 수고를 좋아하지 않는다. 기억을 잃은 그녀에게 무엇을 말하든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그는, 말을 줄이고 창가로 시선을 옮겼다.


창밖의 풍경은, 짙은 녹음을 드리운 숲으로 들어섰다. 햇볕마저 드문드문 보이는 산림에, 마차안은 잠시 암전했다.



‘…사파 놈들 답게, 음산한 곳을 선택했군.’

단혼사는 고개를 돌리며 당소소에게 말했다.



“곧 도착할 것이니…?”

“허억, 허억….”



돌아본 당소소는, 가쁜 숨을 뱉으며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단혼사의 미간이 좁혀졌다. 분명 혼돈의의 말대로 칠혼독의 독기는 모두 제거되었을 터이다. 혼돈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지금 당소소가 보이는 이상은 다른 원인에서 나오는 것이 분명했다.



“무슨 일이지?”

“너무, 어두워…. 차가워….”

“소소? 내말이 들리나?”

“죄송, 죄송해요…. 허억, 허억…!”

당소소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점점 몸을 숙였다. 그리고, 슬픔이 끓어오르는 음성으로 울음을 토해냈다.



“오라버니, 제발…. 절 팔지 마세요. 흐윽…!”

“마차를 멈…!”




당장 마차를 멈추려는 단혼사의 소매를, 당소소의 손이 부여잡았다. 당소소는 의식의 끈을 부여잡으며, 괴로움으로 붉게 물든 눈동자를 들어 단혼사를 노려봤다.




“자주, 이랬으니…. 괜찮아요…. 흐윽, 이대로 가요. 버틸 수, 있어요.”


“…자주?”

“흐윽! 뭐든지  테니…, 오라버니, 제발,  그에게 데려가지 말아줘….”


“미치겠군.”

단혼사는 등을 보듬어 그녀가 편히 숨  수 있게 도와주는 것 밖에 할  있는 일이 없었다.

당소소가 겨우 쥐고 있던 의식의 끈은, 격하게 밀려오는 공포라는 이름의 파도에 떠밀려 그대로 끊어졌다. 공포는 다시금, 신경을 타고 흘러 혈관의 곳곳으로 번져갔다. 어두운 마차의 안이, 그녀에겐 마치 좁은 뒤주 안과도 같이 느껴졌다.


당소소는 눈물을 쏟아내며 단혼사의 소매를 거세게 쥐었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그 약은 제발…!”

“소소, 진정하거라. 소가주는 당가에 있고, 넌 지금 멀리 떠나 나의 곁에 있다.  팔리지 않는다. 나도 널 지키마. 네 아버지 또한  지킬 것이니, 고통스러워하지 말거라.”

“으으윽!”

단혼사는 쩔쩔매며 다급한 심정으로 그녀를 토닥였다. 당소소는 괴성을 흘리며 몸을 완전히 굽혔다. 들썩임이 잦아드는 등과, 점차 완만해지는 숨소리가 겨우 당소소의 곁으로 찾아왔다. 당소소는 긴  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그의 소매는 꼭 쥐고 있는 상태였다.



“이제 괜찮아요. 이제 괜찮은데…, 잠시만…. 잠시만 이렇게 있을게요.”


“…….”

“죄송해요, 제가 이런 사람이라.”

당소소는 떨림이 묻어나는 목소리를 토해내며 창가 너머를 바라봤다. 그늘진 숲을 지나, 빛이 창문을 타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온 몸의 힘이 빠져나간다. 당소소는 단혼사의 소매를 놓고, 앞으로 쓰러졌다. 단혼사는 그런 당소소를 부축했다.



“괜찮아요. 다시, 앉혀주세요.”


“괜찮지 않다. 가서 휴식을 취해야해.”


“그럼 괜찮지 않다면 어떻게 하죠…? 저는 이렇게 시들어가고, 조용히 메말라가야 하나요?”


“그건….”



단혼사는 그녀에게 해줄  있는 말이 그다지 많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변변찮은 위로와, 건강을 위해 다시 당가로 돌아가야 한다는  뿐. 그렇기에 별다른 말없이 그녀를 다시 의자위로 앉혀주었다.

당소소는 눈을 가늘게 뜨며 벽에 머리를 기댄다. 그리고, 창문너머로 한 무리의 무인들이 마차를 노려보고 있는 풍경을 바라본다.

‘이 사천성은, 악마들이 숨어있는 나라.’



마도공자라는 악마는 잔혹했다. 당청이라는 악마는 교활했으며, 시비의 모양새를 한 악마의 무리들은 가슴속에 저마다의 증오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당소소라는 사람 안에는,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이라는 악마가 거친 숨결을 내뱉고 있었다.

김수환은, 당소소는 이 악마들의 눈을 속여야한다. 그리고, 공포가 물결치는 망망대해를 넘어 쌍검무쌍의 다음 문장에 도달해야한다.

“…갈 시간이군.”



마차가 멈춘다. 단혼사가 일어서, 당소소에게 우려의 시선을 던진다. 당소소는 힘없이 손을 내밀었다. 단혼사는  손을 잡아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당소소를 일으켜 세운 단혼사는, 먼저 마차를 나서며 그녀를 호위했다.


그를 보내고, 당소소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절도 있는 발걸음으로 마차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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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편독심[一片毒心] - 이장[二章], 만마과해[瞞魔過海]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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