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삼장[三章], 암해고도[暗海孤島] 2
당소소는 단혼사의 인도에 따라 한 무리의 무인들에게 다가간다. 그 앞에 서있는 자가 매서운 눈초리로 째려본다. 당소소는 뭄을 움찔했지만, 그 시선을 맞으며 그의 얼굴을 훑었다.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눈매와 튀어나온 광대, 매부리코. 소설 속에서 나온 잔혈객의 모습 그대로였다. 당소소는 그 얼굴을 확인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 그에게 포권을 취했다.
“안녕하세요, 잔혈객 진명 대협, 당소소라고 해요.”
“아, 예…. 진명이라고 합니다. 당소소 소저.”
당소소는 그 대답을 들으며 진명을 바라봤다. 이 자가, 자신을 학대하는 자신의 낭군이 되었을 자였다. 괜스레, 밉상으로 보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웃음으로 그 감정을 숨겼다. 아직 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일렀다. 다음 문장에 도달하기 위해선, 그의 존재가 있어야 했으니까.
당소소는 미움대신, 살가움을 가장했다. 그것은 김수환이 가장 잘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미움받지 않았으니까.
“서신은 잘 받으셨는지요?”
“예, 받긴 했습니다만…. 저랑 결혼을…?”
“네. 늠름하고 차가운 진명님의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했답니다.”
“늠름, 차가운…?”
당소소는 자신의 입에 주먹질을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아무리 목적을 위해서라지만, 남자의 정신으로 남자에게 반했다는 말을 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무리였다. 당소소는 슬쩍 시선을 돌리며 거부감을 덜어낸다. 그리고, 그를 사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래요, 참 늠름하네요….”
“우리 형님의 어디가 늠름하다는 것이오? 나처럼 생겼구만.”
“음. 늠름한…, 귓방망이? 장법으로 때려주고 싶은…. 앗!”
왕오의 물음에, 당소소는 자신도 모르게 속내를 털어내곤 재빨리 말을 주워 담았다. 그리고 얼버무리기 위해 슬쩍 웃었다.
‘…위험한걸. 쌍검무쌍에서 당한 걸 돌려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녀는 요즘 자신이 보이는 행동에 대해 재고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당소소의 감정이 만든 영향인지, 속내의 생각을 숨김없이 털어놓는 일들이 많아졌다. 그것까진 괜찮았다. 제아무리 ‘당소소’의 영향이어도, 진짜 본심을 털어놓진 않았으니까. 문제는, 김수환의 언어습관이었다.
‘에이, 씨벌. 시마이치자!’
‘야 새끼야, 못 들었어? 공구리 그만 비비고 막삽 놓으라고. 오야 말 안 들려?’
‘내버려둬. 니미럴, 어쩌다가 저런 시다도 못하는 새끼가 불러온 거야? 하루면 나가떨어질 줄 알았다만.’
‘어머니 도망가셨습니다.’
‘…….’
당소소는 전생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그녀의 언어는, 학교의 국어교과서보다 공사판의 어르신들에게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가 김수환일 때는 특유의 숫기 없는 성격과 주변에 관심이 없는 태도 덕택에 이 점이 드러나진 않았었다.
당소소는 달랐다. 그녀의 몸속에 남은 감정은 느낀 바를 바로바로 토해내야하고, 그래도 해소되지 않아 활달한 몸짓과 뚜렷한 감정으로 나타내야 했다.
‘난, 확실히 김수환으로서 당소소의 몸에 있어. 하지만, 그럼 본래 있던 당소소의 인격은…?’
확실히, 이건 이상했다. 당소소가 겪어왔던 기억의 편린들은 느껴지고 그녀의 성격은 자신의 인격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그녀의 인격만은 당최 어디로 갔는지 느껴지지 않았다. 당소소의 인격만을 깔끔하게 도려내 그 자리에 김수환을 덧대어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발작에서 튀어나오는 헛소리가 그녀의 인격인 걸지도. 그럼, 그녀가 인격을 되찾는다면 김수환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단혼사는 뜬금없이 고뇌에 잠긴 당소소의 소매를 슬쩍 당겨, 상념에서 건져냈다. 당소소는 얼버무리는 미소에 농도를 더욱 더하며 변명했다.
“소소.”
“아, 이거 실례를 저질렀네요. 요즘 흰소리를 하는 나쁜 버릇이 들어서.”
“…아닙니다. 무례는 제 동생인 독두낭인 왕오가 먼저 저지른 것인데요. 그럼, 손님을 세워두기도 좀 그러니 안으로 드시지요. 정천오화의 독화가 이곳에 온다기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 중입니다.”
“호의에 감사를.”
‘그러고 보니 그런 설정도 있었구나.’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명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가 언급한 정천오화에 대한 것을 생각했다.
정파의 다섯 미인, 정천오화. 작중에서는 당소소를 제외한 정천사화라고 더 자주 불렸기에,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별명이었기도 했다. 주인공의 옆에서 모두를 못살게 굴던 여인은, 독화가 아니라 나찰독녀라고 불렸으니까.
그리고 당연하게도, 정천사화의 모든 여인들은 주인공을 좋아했다.
‘정말 부러운 새끼….’
당소소는 다시금 주인공의 강운을 부러워했다. 그 생각이 이어지길 기다리지 않고, 쌍괴파의 무인들이 움직였다. 당소소가 그들의 뒤를 따르자, 단혼사는 그녀의 뒤편에 자리를 잡고 그녀를 보호했다. 당소소는 그런 단혼사에게 귀엣말을 했다.
“무언가 사파답지 않고 고분고분한걸요?”
“흥, 내가 없었다면 넌 만나자마자 변괴를 당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단혼사는 순진한 당소소를 타이르며 자신을 조우하기 전, 쌍괴파들의 눈빛을 떠올렸다. 번진 화장에 대한 당황감, 그 당황한 얼굴로도 숨길 수 없었던 탐욕. 필시 어쭙잖은 자들에게 호위를 맡겼었다간, 그녀에게 무슨 변고가 있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럴 땐 가주가 팔불출인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할지….’
단혼사가 당소소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당소소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아직, 전 죽지 않으니까.”
“…묘하게 확신을 하고 있군. 하지만 내가 말한 변괴는 그런 게 아니다.”
“죽는 게 아니라면, 어떤…?”
“그, 크흠. 너도 여성이지 않느냐?”
“여성?”
설명하기 부끄러웠던지, 단혼사는 헛기침을 하며 당소소에게 말했다. 맹한 눈초리로 단혼사의 말을 곱씹던 당소소는, 이내 홍시보다 붉은 얼굴로 변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여성이 당하는 변고는, 대게 그렇고 그런 것들이었으니까. 김수환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그것.
“아니, 음…. 네. 저도 여성…. 네, 여성, 이니까요. 몸을 조심해야겠죠. 네.”
“알면 되었다. 긴장을 늦추지 말도록.”
단혼사는 그렇게 말하며 빠른 걸음으로 당소소를 지나쳤다. 뒤편으로 얼핏 보이는 그의 뺨이 빨간 색으로 보이는 것은, 당소소 자신의 착각이라 생각하며 부지런히 그의 빠른 걸음을 쫒았다.
*
거대한 전각에 쌍괴파의 무인들과 단혼사가 들어선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당소소가 들어왔다. 당소소는 쭈뼛거리며 단혼사의 뒤에 바짝 붙었다. 그런 그들을, 긴 탁자를 놓고 앉아있던 이궁이 맞이했다.
“어서오시오! 흑서파의 두목인 이궁이외다. 소문으로 듣던 독화…. 독화…?”
“안녕하세요. 당가의 여식, 당소소라고 해요.”
‘뭐야, 저거.’
뭉개진 화장을 그대로 들고 짓는 당소소의 미소에 이궁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일부러 엿을 먹이려고 시험을 하는 것인가? 사파에 예의가 있는지 없는지….’
이궁은 저 얼굴이 쌍괴문에 대한 시험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냐의 문제였다. 이를 조심스럽게 우회해 역린을 피해야 할지, 아니면 완곡한 태도로 그 얼굴을 지적해야할 지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그의 옆에 앉아있던 흑규가 일어섰다.
“아가씨, 얼굴이 그게 뭐야? 귀신도 아니고.”
“네? 제 얼굴이요?”
이궁의 얼굴이 구겨졌다. 맞은편에 있던 진명은 얼굴을 감싸 쥐었으며, 왕오 또한 고개를 저으며 참담한 심정에 동참했다.
“…뭐라고 하셨소?”
그리고, 단혼사의 입꼬리가 내려가며 주변의 분위기가 차게 식었다. 그의 얼굴은 숫제, 지옥의 염왕이라도 되는 듯 했다. 단혼사는 어간 하나하나에 살기를 꾹꾹 눌러 담아 물었다.
“그, 약간의 슬픔이 소저의 얼굴에 근심을 그린 듯합니다. 여봐라, 세안을 준비해!”
모량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흑규의 실책을 수습했다. 단혼사는 그를 잠시 째려보더니, 콧방귀를 뀌며 팔짱을 꼈다. 이궁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흑규를 책망했다.
“이 무식한 새끼야, 사천당가의 여인이 저 몰골이 되었다는 걸 정말 몰라서 저랬겠냐?”
“그럼, 뭐 우리 보고 오줌 좀 지려보라고 그런 얼굴을 하고 있던 건가?”
“우릴 시험하려고…. 아니다, 씨팔. 말을 말아야지….”
흑규가 코를 파며 이궁에게 대꾸하자, 이궁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흑규는 말해서 이해시킬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점을 감안하고 최대한으로 판을 짜는 수밖에 없었다. 이궁은 사근하게 웃으며 단혼사에게 말했다.
“그럼, 우선 식사라도 드시면서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난 호위이니, 당사자에게 말하도록.”
“아, 네. 실례했습니다. 소저?”
“그러도록 해요.”
이궁은 당소소의 허가에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가슴에 흑서[黑鼠]라는 자수를 새긴 사내들이 음식을 나르기 시작했다. 당소소는 가볍게 코를 움찔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기억에 있는 냄새였다.
“애월루의 음식들이군요?”
“아, 네. 유독 좋아하신다 하시기에. 오향장육과 튀긴 생선 요리를….”
“소면은 없나요? 죽엽청…. 은 없어도 되겠고.”
당소소가 죽엽청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자, 단혼사가 눈을 슬쩍 돌려 그녀를 노려보았다. 당소소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다시 그 단어를 주워 담는다. 이궁은 볼살을 움찔거리며 당소소를 노려보았다. 계속되는 시험. 하지만, 동요해선 안됐다. 그녀가 단혼사의 곁에 있는 한은.
“…당장 준비해오라고 이르겠습니다. 우선 이것을.”
이궁은 수하가 내미는 물이 담긴 대야를 받아 그녀에게 넘겼다. 단혼사가 그 대야를 받아, 고개를 까딱이며 호의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손으로 물을 적셔 당소소의 얼굴을 꼼꼼히 닦아내기 시작했다.
“아니, 잠깐. 제가 직저어업….”
“시끄럽다.”
“쪽팔린데에엡….”
“쪽팔린 것을 알면 애초에 오질 말았어야지. 적지에 있는 이상, 행동은 나를 통해서 해라.”
단혼사가 그녀의 얼굴을 닦아낸 뒤, 이궁에게 손을 까딱였다. 이궁은 잠시 저의를 파악하다, 이내 수건을 내밀었다. 단혼사는 다시 고개를 까딱인 뒤, 수건으로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아냈다.
“제가 한다고 했잖아요.”
“네가 하면 꼼꼼하게 닦지 않을 것 같아서.”
토라진 얼굴로 입을 삐죽 내미는 당소소. 번진 화장에 가려졌던 미모가 드러나자, 쌍괴파의 모두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 중, 흑규만이 정신을 차리고 당소소에게 말을 걸었을 뿐.
“아가씨, 좀 예쁘장하게 생겼어. 누가 깔치로 삼을지 정말 부럽구만!”
“야 이, 씹…!”
진명은 튀어나오려던 욕설을 구겨 넣고 흑규에게 다가갔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냐는 듯한 무구한 눈빛을 흑규. 진명은 흑규의 뒤통수를 당장이라도 후려갈겨서 저 방정맞은 입을 멈추고 싶었다.
“…장로님이 많이 오락가락 하십니다.”
“그렇군요. 괜찮답니다. 많이…, 들어봤던 말투니까요.”
“야, 누가 오락가락해?”
“…이게 쌍괴파의 본의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알아요, 제 신랑이 되실 분이신데.”
당소소는 진명의 변명을 받아들이며 웃어주었다. 그 미소를 보면 볼수록, 진명은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런 사려 깊은 여인이, 당가의 금지옥엽이 어째서 자신을? 이라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진짜 요즘 나쁜 남자가 유행하나?’
‘진짜 일 끝나면 다 뒤졌어.’
당소소는 움찔거리는 입꼬리를 더욱 끌어올렸다. 본래에도 원작에서 당했던 것만큼, 그에게 돌려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제 명분은 차고 넘쳤다. 그런 둘의 생각을 김을 풍기는 음식들이 무사히 끊어주었다. 이궁은 천천히 차려지는 음식들을 보며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앉으시지요. 매번 드시던 것이라 조금 빈곤해 보이실 수도 있으나….”
“아니에요. 갑자기 찾아온 저희가 잘못한걸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이 이 모 감동입니다.”
이궁이 포권을 하며 당소소에게 예의를 차리는 동안, 흑규가 음식들을 마구 뒤적거리며 말했다.
“우와, 씨벌! 이게 다 뭐야? 야, 모량! 저 생선 튀긴 것 좀 봐라. 새끼, 돈을 어디에 꿍쳐놨나 했더니 다 여기에 썼구나.”
“흑규, 조용히 하게. 촌사람도 아니고.”
모량은 흑규에게 핀잔을 주며 강제로 자리에 앉혔다. 흑규는 음식을 앞에 두고 몸을 움찔거리며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진명은 음식이 다 차려지기 까지를 기다리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당소소에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다시 한 번 저를 소개하겠습니다. 이름은 진명, 별호는 잔혈객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사천쌍괴라는 부끄러운 이름으로 묶이고 있고, 그에서 따온 쌍괴파의 수장이기도 하지요.”
진명은 부끄러움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의 인생에서 이런 격식을 갖춘 인사는 처음이었다. 그런 그의 뒤를 이어, 당소소 또한 일어나 그에게 포권을 했다.
“이름은 당소소라고 해요. 독천 당진천의 딸…, 이라고 소개를 해야겠죠?”
“이궁이오. 흑서파의 우두머리이외다.”
“혈사파의 모량입니다.”
“흑규. 조직은 없다. 이제 먹어도 되지?”
흑규를 마지막으로 서로에 대한 소개가 끝났다. 단혼사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렸으나, 단혼사는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진명은 한숨을 쉬며 흑규에게 음식을 먹으라는 허락을 내렸다.
“드시오, 장로님.”
“옳아. 이제야 내 뱃속에 기름질을 좀 해보는구나!”
흑규가 음식을 향해 달려들었고, 진명은 그런 흑규를 보며 당소소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다만, 웃고 있을 뿐이었다. 심기가 불편한 건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한 진명은, 이제야 본론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이 보잘 것 없는 사파 나부랭이에게 청혼을 하신 연유가….”
콱!
무언가가 목재에 박히는 소리가 났다. 진명은 반사적으로 흑규를 돌아봤다. 게걸스럽게 음식을 탐하는 흑규의 소매 속에서, 단도 한 자루가 떨어져 탁자에 박힌 것이었다.
“어, 씨발. 이게 왜 여기 있냐.”
흑규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그 단도를 쥐었다. 진명은 숨을 멈추고, 단혼사를 돌아보았다. 단혼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다만, 죽일 듯이 노려 볼 뿐이었다.
“…….”
“아니, 그것이….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분이시니까…!”
“아 참. 진명아, 호위가 한 명이면 그 새끼 담구고 납치하자며?”
“…그게 뭔 개풀 뜯어먹는 소리시오?”
흑규가 내뱉은 말에 화들짝 놀란 진명은 서둘러 둘러댔지만, 단혼사는 목을 뚜둑 꺾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사천당가의 이인자라고 불리는 괴물,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화약과도 같은 자였다.
무공이 일정 경지에 도달한 그이기에,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그의 가죽 아래엔, 괴물이 살았다. 그가 당소소를 일으키고 있자, 진명은 손사레를 치며 말린다.
“단혼사 대협, 정말로 아닙니다. 그것이….”
“에이, 씨발 좆같은 정파새끼들. 얘들아, 나와라!”
“아이, 씨발! 이게 아닌데…!”
이궁이 욕지거리와 함께 흑서파와 혈사파의 무인들을 불러왔다. 진명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망했다. 그런 진명을 무시하며, 제각기 무기를 든 무인들은 당소소의 얼굴을 확인하고 몸을 타고 흐르는 색욕을 감추지 않았다.
“흐흐, 고 년, 살결이 하얀 거 봐.”
“벗겨놓으면 어떻게 울지 궁금하군!”
“제발, 제발 닥쳐, 씹새들아!”
진명이 부르짖으며 울상이 된 얼굴로 당소소를 바라봤다. 당소소는 화를 내지 않고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만, 단혼사에게 한마디를 던질 뿐이긴 했지만.
“단혼사님. 저 새끼는 뺨을 찢어주세요.”
“그러지.”
“…아니, 왜 하필 난데?”
당소소의 부탁에 단혼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진명은 억울함에 울부짖으며 단혼사에게 달려 나가는 부하들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