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삼장[三章], 암해고도[暗海孤島] 3
백은 되어 보이는 듯한 무인들이, 사방에서 달려든다.
단혼사는 팔짱을 낀 손을 풀고, 한차례 털었다. 가볍게 데워지는 육신을, 단전에서 잠자고 있던 내공이 휘돌았다. 시야는 확장되고, 의식은 명료해진다. 눈은 강당 전체를, 머리는 모든 적을 상정한다.
‘소소를 지켜야 하기에 이탈은 불가하다. 한 걸음의 안쪽에서 끝내야 하겠군.’
단혼사는 오른발을 반보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양 손을 비스듬히 내밀며 기수식을 취했다. 확장된 감각은 내달리는 적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전방, 단혼사의 목을 베어오는 두터운 도[刀]. 한 걸음의 안쪽이었다. 무릎을 조금 굽혀 도를 흘려낸 단혼사는, 그대로 손을 맞잡고 어깨를 올려쳐 그의 가슴을 으깨버렸다.
차르륵!
우 상단과 좌 상단, 단혼사의 어깨를 향해 휘둘러진 사슬낫들. 한 걸음이었다. 단혼사는 맞잡은 손을 풀고 반보 앞으로 내딛었다. 양손을 동시에 상단으로 끊어 치며 사슬낫의 힘이 최대로 달하는 지점을 무너뜨린다. 힘을 잃어 흐늘거리는 사슬을 휘감고, 그 둘을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그 빈틈을 노린 하단의 검격이, 단혼사의 심장을 찔러갔다.
‘한 걸음 반. 꽤 하는 놈이군.’
단혼사는 검을 찔러오는 상대를 보며 적잖이 감탄했다. 그를 막기 위해선, 다른 쪽 발을 들어 반 보 앞을 지향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후방에서 당소소를 향해 내달려오는 자들을 막지 못한다. 단혼사는 숨을 짧게 뱉은 뒤, 오른손을 아래로 내려치고 왼손을 쭉 뻗었다.
“으, 으아악!”
검이 수도와 부딪히며 아래로 곤두박질 쳤다. 단혼사는 자세가 흐트러진 상대의 견갑골을 움켜쥔 뒤, 그대로 뒤편에서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오던 자들에게 내던져버린다. 일단의 무리가 그에게 뒤엉켜 나뒹굴었다. 그를 던지느라 열린 가슴을, 비수 세 자루가 노리고 쏘아졌다.
팟!
공기가 멎는 소리와 함께, 전방으로 내밀어진 단혼사의 손가락 사이로 비수 세 자루가 나란히 정지해 있었다. 단혼사는 팔을 횡으로 뿌리며 비수를 그들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크아악!”
세 명분의 비명이 들려오며, 전장은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단혼사는 남아있던 숨을 뱉는다. 열댓 명의 무인들이 쓰러지기까지는, 단 한 호흡이었다. 단혼사는 옆에서 공포에 떨고 있을 당소소를 잠시 살펴봤다.
“우와, 진짜 영화 보는 것 같네. 한손으로 사람을 던지고….”
“…소소?”
“흐, 흠! 주, 죽이진 말아주세요. 어디까지나 저희와 협력해야할 대상이니까.”
“그리하마.”
그의 걱정은 기우였다. 마차에서처럼 공포에 떨긴 커녕, 오히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어떻게 때렸나 동작 하나하나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단혼사는 당소소의 당돌한 행동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녀가 가장 처음 주문했었던 것을 이뤄주기 위해, 단혼사는 손가락을 들어 망연자실해 있는 진명을 가리켰다.
“잔혈객 진명. 이리 오시게. 지금 온다면, 빨리 끝내주도록 하지.”
“아니, 전 정말 무고합니다, 단혼사 대협. 전 정말로 극진히 대접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어찌 독화 당소소와 사천제일권을 거스르겠습니까! 제발, 제 진심을 믿어주십쇼!”
단혼사가 진명을 지목하자, 진명은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자신의 행동을 부정했다. 그는 진명의 예상대로 괴물이었다. 내공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않고, 한 호흡 만에 백 명 중 열 명을 전투불능으로 만들어버렸다. 심지어, 당소소를 지키기 위해 한 발자국 이상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 거대한 힘의 편린을 확인한 좌중의 모두가, 침묵하고 있었다.
‘이것이, 사천제일권 단혼사…!’
진명은 단혼사가 진심으로 움직이는 것을 상상했다. 그가 내공을 사용한다면? 그가 한 발짝 이상 움직인다면? 그가 상상한 수많은 미래는 모두,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으깨진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아니, 아직 살 수 있어. 뺨 한 대만 맞으면 되잖아? 독화가 날 좋아하는 것 같으니, 엎드려 빌면 봐줄 수도…?’
진명은 고개를 저어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냈다. 지금은 오로지, 변명을 해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리고 진명의 그 계획을, 장로들은 전력으로 방해했다.
“이, 이 놈이오! 이놈이 책상을 내려치며 여섯이면 극진히 대접하고, 하나면 납치를 도모하자는 놈이었소!”
“음, 그랬었지. 내 찻잔을 무슨 당가의 고문기구라는 둥 뭐라는 둥….”
“나, 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이, 씹…, 새끼들이…!”
차례대로 이궁, 모량, 흑규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진명을 떼어냈다. 그들의 꼬리자르기를 보던 진명은 분노로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이대로라면, 일은 저들이 벌이고 책임은 진명이 지게 된다. 그의 머리는 유래 없을 정도로 가속했다.
“그, 제가 한 게 아니라 이궁과 흑규가….”
“오시게.”
“저 보셨잖습니까? 전 말렸는데….”
“잔말 말고.”
“아니 진짜, 억울해서 미치겠네…! 전 곱게 대접하고 무엇을 원하시는지 이야기만 들으려고 했…?”
진명은 말을 멈추고 단혼사 옆의 당소소를 바라봤다. 타개책은, 바로 코앞에 있었다. 그녀는 분명, 자신을 협력해야할 대상이라고 지칭하며 목숨을 부지시키라고 명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아직 있었다. 진명은 옆에서 단혼사의 무위를 보며 입을 벌리고 있는 왕오의 옆구리를 찔렀다.
“야.”
“예, 형님.”
“난 간다.”
“따라오라 굽쇼?”
진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당소소를 가리키며 외쳤다.
“투항입니다. 당소소 소저, 그대의 청혼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이 추악한 사파를 떠나, 그대 품에 안기겠습니다! 그대와 함께라면, 진명이 아니라 당명이라고 불려도 좋습니다!”
느닷없는 고백에, 당소소는 잠시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눈가를 파르르 떨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당명이라는 이름은, 그녀에게 있어선 썩 좋은 기억이 있는 이름이 아니었으니까. 당소소는 무미건조한 말투로 그 고백을 받았다.
“아, 네.”
“…네?”
“알았으니까, 이리오세요. 잠깐이면 끝나니까.”
“저, 정말 아신 거 맞습니까?”
“속고만 사셨나요?”
“그, 런 것 같기도 하고….”
진명은 당소소의 말에 절로 쌍괴파의 장로들에게 시선이 갔다. 그들은 진명의 시선을 느끼자, 그를 째려보며 사파를 배신하면 응당한 대가를 치룰 것이라 으름장을 놓았다. 진명은 그들의 그런 태도에 질색을 했다.
‘씨팔, 사파에 의리가 어디 있어? 지들도 안 지켰으면서.’
“지금 오면 한 대.”
“네?”
“두 대.”
“아니 잠깐만, 뭘….”
“세 대.”
무심한 당소소의 말에, 진명은 서둘러 그녀의 곁으로 달려갔다. 그 뒤를, 왕오가 졸졸 따라온다. 당소소는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진명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진명은 숨을 고르며 영문 모를 행동을 하는 그녀에게 말했다.
“왔, 왔소. 이제 뭘 하면 되는 거요?”
“단혼사님.”
“왜.”
그녀는 자신에게 질문을 하는 진명에게 대꾸하지 않고,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단혼사를 부른다. 단혼사가 그녀를 돌아보며 답하자, 당소소는 팔을 힘차게 휘두르며 물었다.
“이 각도가 좋을까요, 아니면 이런 각도가 좋을까요?”
“네 팔 힘은 약하니까, 그렇게 힘껏 치는 대신 손목을 이용하는 게 좀 더 괜찮을 수도 있겠군.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어느덧 진지하게 그녀에게 답하는 단혼사를 보며 진명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단혼사의 솥뚜껑 같은 손이 뺨을 스치고 가는 경험은, 절로 주저앉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서웠다. 바짝 움츠려있는 진명을 바라보던 당소소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쌍검무쌍의 한 단락을 떠올린다.
“진명.”
“네, 네.”
“사파를 버리겠다는 말. 거짓말인 거 알아요. 달리 원하는 것이 있잖아요?”
“…….”
진명은 자신을 꿰뚫어보는 당소소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어떻게 그녀가 내 과거를? 어떻게 내 의중을 꿰뚫어 보는 거지? 그녀는 대체 무슨 존재지? 같은 수많은 의문들이 그의 머릿속을 메워갔을 뿐.
당소소는 고뇌에 잠긴 진명을 내버려두며, 단혼사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단혼사가 앞으로 나서며 무인들을 훑어봤다. 모두는 그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단혼사는 그런 그들을 향해 말했다.
“더 할 텐가? 이젠 내공을 좀 쓸까 하는데. 아니면…. 당가에서 직접 만들어낸 독을 실험해볼 수도 있겠군.”
“…항복이오.”
이궁은 한숨을 쉬며 손에 쥔 무기를 놓았다. 다른 장로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
“다 묶었습니다, 소저.”
“아야얏, 이 배신자 새끼가. 살살하지 못해?”
“아직 덜 묶였나보네요.”
“악!”
진명은 이궁의 두 손목을 묶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궁이 큰 소리로 투덜대자, 진명은 그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당소소를 돌아봤다.
“수고했어요. 그럼, 잠시 이야기를 나눌까요.”
당소소는 정원으로 이어지는 길로 눈짓을 하며 그에게 따라오라 말했다. 그런 그의 등 뒤로, 단혼사의 경고가 담긴 눈빛이 꽂힌다. 오싹함을 느낀 진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황급히 그녀를 따라나섰다. 나란히 정원으로 향하는 걸음 도중, 당소소는 슬쩍 입을 열었다.
“사천쌍괴라고 불리게 된 계기, 아버지 때문이란 걸 알고 있어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사천당가잖아요?”
“뭐…, 네.”
진명은 당소소의 대답에 납득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소소는 자신의 임기응변에 썩 만족하며,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소소, 좀 똑똑했을지도? …는 무슨.’
그녀는 금새 웃음을 거두고 시무룩해진다. 아쉽게도, 작중에서의 당소소는 평범하다 못해 둔재라고까지 불리던 인물이었다. 이 정도의 생각쯤이야, 쌍검무쌍의 지식을 알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라면 할 수 있다 못해 더 완벽한 일처리를 했을 것이다.
그래도 당소소는 고개를 흔들어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냈다. 결국 그 지식을 알고 있는 것은 자신뿐이었고, 자신의 소원인 평범한 삶을 위해선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사건들을 해결해야 해야 하기에. 당소소는 진명이 서술된 문장을 떠올렸다.
‘나의 아버지는 사파의 삼류무사였다….’
“당신의 아버지는 사파의 삼류무사셨죠. 어머니는 병으로 일찍 여의셨고요. 그리고, 아버지께서도 결국 사파의 항쟁에 휘말려 명을 달리하셨잖아요? 그러면서 몇 마디 유언을 남기셨다고 들었어요.”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은 거지?”
진명은 자신의 과거를 들추는 당소소에게 공격적으로 쏘아붙였다. 그리 밝지 않은 과거를 들춰지는 것은, 그에겐 썩 달갑진 않았다. 당소소는 거친 태도를 보이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피를 나누든 나누지 않던, 형제를 배신하지 마라. 복수는 하지 마라. 죽지마라. 무공은 강한 것을 배워라. 그리고, 할 수 있다면.”
당소소는 말을 끊고 진명을 바라봤다. 쌍검무쌍의 내용을 아는 그녀에겐, 여전히 밉상인 얼굴이었다. 하지만, 막연하게 미워하고 싶지만은 않았다. 그녀를 학대하는 것은, 이젠 이루어지지 않을 미래였으니까. 당소소는 그렇게 생각하며 끊었던 말을 이어갔다.
“할 수 있다면, 사천성 사파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보거라. 라고 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디서 들은 건진 모르겠다만, 맞다. 그렇기에 나는 사파를 떠날 수 없다.”
진명은 당소소의 말을 순순히 인정하며, 한숨을 쉬었다. 자신을 버림 말로 생각하는 장로들을 떠올렸다. 정파들에게 감히 대들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숨어서 약자를 좀먹는 사파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살아있되, 이미 총기를 잃은 시체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무시할 순 없었다.
진명은 생각을 끝맺고, 당소소를 바라보며 물었다.
“난…, 쌍괴파라 불리는 삼류사파의 수장이다. 무공조차 애매한 비루한 인간이고, 무슨 거대한 뒷배가 있는 것도 아냐. 성격도 꽤나 나쁘다. 솔직히 말하지. 단혼사가 없었다면, 넌 저들에게 잡혀서 잔뜩 고생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나에게 결혼을 하자 하는 거지?”
당소소의 시선이 진명과 맞닿는다. 그리고, 이유를 말해주었다.
“당가의 소가주인 당청은 절 당신에게 팔아치울 생각이에요. 그리고 당신으로 하여금, 사천성 사파를 움켜쥐게 할 생각이었죠.”
“…나를 써서? 그리고 사파와 손을 잡으면 아미파와 청성파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아마, 그들을 억제할 수 있는 힘이 있을 거예요. 그는, 아버지의 목숨조차 뺏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기에, 난 당청보다 먼저 이곳에 왔어요. 거래를 하기 위해.”
당소소는 그 말과 함께, 악수를 청하는 손을 내밀었다.
“만약 나와 거래를 하지 않는다면, 아마 당청은 당신을 철저하게 망가뜨리겠죠. 유언비어를 퍼뜨려 희대의 살인마라는 오명을 쓰게 할 것이고, 의형제인 왕오를 당신의 손으로 죽이게 할 거예요. 아버지의 유언을 이루지 못하게 된 당신은 이윽고 나와 결혼해 나를, 당신 자신을 학대하겠죠.”
“협박인가?”
“당청은 그런 사람이에요.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지는 사람.”
당소소는 고개를 저었다. 저것은, 협박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될 확정된 미래 같은 것이었다.
그렇기에, 당소소는 진명에게 접근했다. 단 하나 알고 있는 당청의 계략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리고 그녀가 처음 등장하는 문장에선, 잔혈객 진명이 필요했으니까.
“그러니까 이건, 꽤 합리적인 거래예요. 나는 당청에게서 당신을 보호하고, 당신은 나를 그의 눈에서 숨겨주는 거죠. 그가 원하던 결혼 하나를 만들어서.”
“합리적인 거래…. 너, 머리 나쁘다는 소리 자주 듣지?”
“네?”
“어딜 봐서 저게 합리적인 거래냐?”
진명은 자신의 말에 반응해 멀뚱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당소소를 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독화라는 이름이라기엔, 너무 귀여웠으니까. 진명은 그녀의 과실을 하나하나 되짚어주었다.
“내가 너였다면 단혼사에게 명령해서 당장 날 두들겨 패고 사로잡아,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했을 거야. 심지어 아버지의 유언을 알고 있던 것을 보면 나에 대한 정보가 없던 것도 아니야. 그 편이 훨씬 편하잖아? 넌 왜 수고를 들이면서 날 설득하고 있는 거지?”
“그건….”
“넌 이미 이곳에 온 시점에서 우리를 턱짓 하나만으로 죽일 수 있는 힘이 있다. 헌데 거래라니, 가당찮아. 난 명령했을거야. 내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쓰레기들에게 친히 당가의 쓴맛을 보여줄 수 있다고.”
“그치마안….”
“하지만, 넌 그러지 않았다. 청혼을 한다는 미명 아래에 나타나, 널 위협하는 사파들을 죽이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거래라고 내미는 내용은, 나 같은 버러지와 결혼해 당장의 불씨를 피하겠다는 것. 이건 거래가 아니야. 독박을 쓰는 거지.”
당소소는 진명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쌍검무쌍의 이야기 때문에 네가 필요해! 라는 말을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그의 말따마나 그를 강제로 움직이게 해 주인공에게 죽게 한다고 해도 이야기는 성립 될 터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야기는, 행복한 게 좋아.’
김수환의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났다. 너무나 아팠고, 너무나 외로웠다. 그 잔인한 감각을 누군가에게 겪게 하고 싶진 않았다. 오히려, 이런 슬픔은 잊고 웃어줬으면 했다. 그 웃음을 보며 간접적으로나마 행복해 할 수 있도록.
그것은, 자신이 쌍검무쌍이라는 소설을 탐독하던 이유와도 맞닿아있었다. 어두운 구석이 있었지만, 주인공의 행복을 써내려간 소설이었으니까. 그 이야기에, 자신의 슬픔이 치유되는 것 같았으니까.
당소소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악수를 청하던 팔을 굽혀 진명의 팔을 살짝 건드렸다.
“그냥, 남 일 같지 않아서.”
진명, 그는 김수환이었다.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세상의 풍파에 깎여나간 인물. 또한 그는 당소소였다. 쌍검무쌍의 이야기에서, 그는 타인이 조형한 악역이었다.
진명은 그녀의 팔꿈치가 치고 지나간 자신의 팔을 바라본다. 그리고, 어쩐지 애달파 보이는 미소를 짓는 당소소를 바라본다.
그녀는 너무나 서툴러 자신을 상처 입히는 방법밖에 모르는 애처로운 아가씨였다. 그러면서, 타인은 상처입지 않길 바라는 의젓한 아가씨였다. 그렇기에 웃기는 아가씨였다. 진명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거래성사야, 아가씨.”
저 애달픈 미소를 본 순간부터 이미 자신은 당소소에게 사로잡혔다는 생각을 하면서, 진명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