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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화 〉사장[四章], 여명도래[黎明到來] 1 (17/130)



〈 17화 〉사장[四章], 여명도래[黎明到來] 1

밤은 어둡고 악마들은 춤을 춘다. 귀신들은 노래하고 무고한 이들은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울음을 삼킨다.

하지만 제 아무리 깊은 어둠이 깔려도, 사악한 별들이 춤을 추더라도, 빛은 온다.

여명은, 결국 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사천당가, 오대세가의 일원으로서 정파의 수호자….

종이가 구겨진다.

사천당가. 독천의 지휘아래 궂은일을 담당하는 정파의….

다시, 종이가 구겨진다. 당진천은 붓을 놓으며 긴 한숨을 쉰다. 멀리서 들려오는 멧비둘기 소리가 당진천의 근심을 더한다. 기억을 잃은 딸을 위해 사천당가의 대략적인 정보를 적어놓으려고 했으나, 당소소의 실종소식에 도통 손이 가질 않았다. 그런 당진천의 뒤에서, 단혼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쉬시지요.”

“되었네. 자네나 쉬지 그러나? 꽤나 멀리 갔다 온 모양인데.”


“…전, 죄인입니다. 소소를 지키지 못했으니까요.”

“자네와 견줄 고수 둘이 들이닥쳤는데, 누가 가든 똑같았을 거야. 자책하지 마시게.”


당진천은 그 말을 끝내고 손을 들어 피로에 젖어있는 눈을 지그시 누른다. 단혼사는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당진천은 나른한 목소리로 단혼사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번에 자네를 따라 왔다는 사천쌍괴 놈들은 어떻지?”

“무어라 평가하기 애매한 상태입니다.”

“약하다는 건가?”

“조금 지켜봐야 할 시점 같습니다. 우선, 사파 출신이라는 것도 숨겨야 할 테고…. 그를 따라 온 쌍괴파의 장로 하나도 말썽인지라.”


“미안하지만, 조금만  고생해주시게. 녹풍대 또한 소소를 찾고 있으니.”



당진천은 그 말을 남기고 다시 붓을 집었다. 단혼사는 고개를 숙이며 모습을 감췄다. 아마도,  다시 밤을 새며 소소를 찾아 거리를 헤맬 것이다. 그는 그런 인물이었다. 당진천은 한숨을 쉬며 붓을 움직였다. 언젠가 돌아올 자신의 막내딸을 위해서.

‘사천당가.’

‘정파의 오대세가 중 하나로, 독과 암기를 사용하며 달리 당문이라고 불린단다. 내각[內閣]과 외각[外閣]으로 구성되어있고, 외각은 당가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무인들이 모인 흑풍대[黑風隊]와 시비들과 하인들이 머무는 별채, 그 둘을 통제하는 총관실이 있단다.’


당진천은 종이의 끝에 마침표를 찍고, 다음 종이를 가져와 누름돌로 누른다. 붓이 다시 움직였다.


‘내각은 당가의 가주가 사는 가주실과, 그런 가주를 보좌하는 녹풍대가 있단다. 대장장이 일을 하며 암기를 만드는 연철전[聯鐵殿]과, 약과 독을 제조하는 제독전….’

끼릭.


낯선 소리에 붓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짧게 한숨을 쉰다. 당진천은 붓을 놓고 탁자 아래의 서랍을 열어, 비늘이 붙어있는 장갑을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나른한 어투로 혼잣말을 뱉었다.

“딸의 말대로, 다리몽둥이라도 부러뜨려 놓을 것을 그랬어.”



가주실의 문이 열린다. 당청이  열린 문으로 조심스레 걸어오고 있었다. 당진천은 적어두었던 종이를 곱게 접어, 열어 두었던 서랍에 넣고 다시 닫았다. 당청은 그 서신에 흥미를 보이며 당진천에게 인사를 건넸다.



“밤은 평안하신지요, 아버님. 그 서신은, 혹시 무엇인지?”


“네 알바 아니다. 아들아. 야밤에 잠이나 잘 것이지, 이 아비를 찾아온 연유가 무엇이더냐?”

“잠깐  이야기가  있기에.”

“흥, 내공의 흐름을 방해하는 산공독[散功毒]을 뿌려가면서  이야기라…. 그래. 투정 정돈 들어줄 수 있지.”



당청의 말에 당진천은 콧방귀를 뀌며 비늘무늬가 있는 장갑을 꼈다. 그러자 당청은 쿡쿡 웃으며 말했다.


“독천씩이나 되는 분이 산공독 하나 해독을 못하겠습니까? 그저, 아들이 왔다고 티를  내보는 것이지요.”

“뭐, 그렇다고 치지. 소소는 어디 있느냐?”

당진천은 병풍에 걸어두었던 비취색의 외투를 걸치며 물었다. 당청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은 모른다는 것을 표시했다. 당진천은 아들의 말에 혀를 차며 병풍을 젖혔다. 비수, 독침, 철사, 단도…. 수많은 암기와 독이 담긴 죽통이 병풍너머 벽에 걸려있었다.



“뭐 가져갈  있느냐?”


“아뇨,  괜찮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자신감 있게 날 찾아왔겠지. 어디, 계획에 대해 떠들어 보거라.”


당진천은 당청에게 장비를 권유했으나, 당청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자신이 충만한 듯 했다. 당진천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암기들을 하나하나 외투에 꽂아 넣고 죽통을 소매 속으로 집어넣었다. 당청은 그런 당진천을 바라보며 순순히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아버지를 패퇴시키고, 당가의 실권을 거머쥘 셈입니다.”


“그러냐. 소소를 팔아 얻은 것이 있었나 보구나.”

“예. 본래는 소소를 인질로 삼아, 아버지를 협박해 은거를 종용하려고 했으나….”


“그렇게 하지 그랬느냐. 그랬다면. 소소가 무사하다는 확신만 있었다면, 나도 순순히 너에게 자리를 내어주었을 게다. 둘째인 혁은 너무 음흉하고, 음습하다. 셋째인 회는 고집불통에 그 마음 안에 가족이 없다. 막내인 소소는 여성의 몸에  그릇이 아니야. 오직 너에게만 가주의 자격이 있었단 말이다.”




당진천은 외투를 여미며 당청을 꾸짖었다. 하지만, 당청은 그 말을 부정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 당가는 아버지가 살아있는 한, 영원히 굳어있을 겁니다. 정파의 하수인으로서 사는 것은 이제 지긋지긋하지 않으십니까?”

“…….”


“정파의 다섯 가문, 오대세가? 독자적인 권위를 인정해준다고 부르는, 당문[唐門]? 말은 그럴싸하지요. 실상은 어떻습니까? 아미파와 청성파는 정파의 모두를 대신해 저희를 감시합니다. 저희가 만드는 모든 암기는 당가의 암기라며 등록을 해야 하고, 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소소를 살려주고 날 죽이지 그랬느냐. 난 골육상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내 목정돈 기꺼이 내놓았을 게야….”


당청은 잔뜩 성이 난 어투로 쏘아 붙였다. 당진천은 그런 당청의 말에 애끓는 심정으로 슬픔을 토해냈다. 그러자, 당청은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서며, 열변을 이어갔다.



“비열한 수를 사용하는 사파와 마교에 대비해, 우리도 당가를 정파로 받아들여 그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한다. 말은 좋지요.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돌아오는 건 검을 쓰는 자들의 우월감에 찌든 시선과 경멸의  뿐입니다. 억울하지 않으십니까?”

“억울했느냐?”


“예. 더 억울했던 건, 아버지가 그들에게 동조해 협의 따위를 운운하며 당가의 앞날을 가로막았다는 것입니다.  당가는, 그런 규제가 없었다면 더 훌륭한 무기들을…!”

쾅!


별안간 불어온 바람이 문을 닫고, 창문을 닫았다. 당진천의 한 손엔 죽통이, 다른 한 손엔 철사가 감겨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까딱이며 말했다.




“독이 무엇이냐. 말해보아라.”


“독은 가장 날카로운 칼날입니다.”


“그래.  칼날에는 손잡이가 없다. 오로지 인간의 곧은 마음만이 그 칼날을 올바르게 쥐게 할  있단 말이다. 시대의 악한을 독살시킨 독과, 시대의 현인을 독살시킨 독에 어떤 차이가 있느냐?”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검 또한 마찬가지 아닙니까?”


“검과는 다르다. 그것엔 형태가 있다. 그렇기에 경각심을 가지기 쉽다. 하지만 독의 칼날은 형태가 없다. 경각심을 가지기 쉽지 않고, 오로지 사용하는 자들만이 경각심을 가질 수 있다. 그렇기에 쉬이 오용될 수 있다.  칼날을 다루는 것에 있어서 우리는 엄숙해야하고, 의로워야한다. 그것이 당문이다.”

당진천의 꾸짖음에 당청은 얼굴을 굳혔다. 이미, 대화를 할 시기는 지났다. 속에서, 혈기가 들끓었다.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을, 저 벽창호 같은 아버지를 이겨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당청은 소매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다시 빠져나오는 그의 손에는, 자그마한 죽통 여러 개가 쥐어져 있었다.




“당문은, 그 낡은 사고를 버려야합니다. 독은 형태가 없으며, 가장 날카로운 칼날입니다. 우리는 이 칼날을 더욱, 더욱 날카롭게 다듬어야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그 모든 것을 베어줄  칼날만이 우리를 이끌어줄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증명해보이지요.”

“이끌어 준다라…. 정말, 누구든 중독 시킬 수 있는 독이 있으면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같으냐?”

당진천은 당청의 부르짖음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웃었다. 당청은 말없이 엄지손가락으로 죽통의 마개를 열었다. 자색의 분말이 땅으로 쏟아진다. 분말은 안개로 화해 당청의 영역을 확보한다. 그 보랏빛 안개는 주변의 기운을 철저하게 단절시키고 있었다.




‘제독분[制毒粉]으로 안전지대를 확보하는 것은 성공했다. 그럼, 전파가 빠른 기[氣]에 움직임을 막을 간단한 신경독을 섞어서 먼저 쏘아낸다.’



당청은 단전을 열었다. 내공이 기맥을 따라 번져나가며, 팔을 타고 손가락으로 향했다. 이윽고 죽통 하나에 내공이 스며들며 마개가 터져 나온다. 무색의 아지랑이가 당청의 기파를 타고 공기 중으로 번져나갔다.


마개가 열리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당진천의 죽통에서도 독기의 안개가 퍼져 나왔다. 색은, 녹색. 혈맥의 작용을 방해하고, 인간의 몸을 붕괴시키는 혈액독이었다. 그 녹색의 안개는 기를 타고 퍼지는 신경독과는 반대로, 아래로 몸을 뉘이며 바닥을 기어 당청에게 달려갔다. 당청의 미간은 좁아졌다.


‘아래의 영역을 잠식당했다. 선수[先手]가 너무 가벼웠어. 이쪽도 질량이 있는 독연[毒煙]으로 영역을 구축해야한다.’

당청의 죽통이 열리고, 맑은 녹색의 안개가 퍼져 나와 아지랑이의 영역을 확고하게 다졌다. 그리고, 몸이 뒤엉킨  독기가 당진천의 몸을 핥아갔다. 당청의 얼굴엔 엷은 미소가 그려진다. 오만했던 것인지, 혹은 독술사의 싸움이 오랜만이었던지 그의 아버지는 제독분을 사용한 안전지대를 확보하지 않고 자신과 싸움을 걸었다.

당청이 다루는 독은 제아무리 독에 내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치명적인 독. 무사하진 못했을 것이다.  생각은, 당진천이 가벼운 움직임으로 외투를 털어대기 전까지는 유효했다.


“내가 누구냐.”

“…구주십이천의 독천이시지요.”

“내가 방금 네 미간에 이 철사를 박아 넣었다면, 어떻게 되었을  같으냐?”

“제 패배입니다.”


“알고 있다면,  꺼내 보아라.”

당청은 혀를 날름거리며 입술을 적셨다. 독천이라 불리는 천하의 고수는, 독을 중화하는 제독분이라는 안전장치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순순히 그에게 선수를 양보하고, 공백의 공간을 재빠르게 차지했던 것. 심지어 그는 품에 가득히 품고 있는 암기조차 사용하지 않는 중이였다.


무언가 부글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당청의 시선은 아래로 향했다. 당진천이 뿌렸던 혈액독이 제독분을 좀먹으며 탁한 연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독기가 담긴 매캐한 연기가, 아래에서 위로 솟아오른다. 이로써 가주실  안의 아래는 당진천의 영역이 되었다.



“더 꺼낼 것은 없느냐?”


“그럴 리가!”

당청은 당진천의 말에 차갑게 대꾸하며 두 개의 죽통을 열었다. 위로 솟아오르는 하얀 분말이, 폭발하듯 팽창하며 상층의 기세를 두텁게 만들었다. 무거워진 질량은, 점점 내려앉으며 하층에 만들어진 독기의 늪을 짓눌러갔다. 당진천은 콧방귀를 뀌며, 소매 안에서 죽통을 꺼내 열었다.

황색의 증기가 상층과 하층의 경계로 뻗어나간다. 어울리지 못하는 황색의 영역은, 이내 한 점으로 수렴하며 내려앉는 상층의 한 곳을 꿰뚫는다.  곳을 따라, 하층의 독연이 뻗어나가며 상층의 영역을 가로질렀다. 당청이 만들어낸 독기의 군세가 서서히 무너져갔다.

“큭!”


기함을 토하는 당청. 당청은 황급히 소매 안에서 비수를 꺼내 쥐었다. 그리고, 당진천의 미간을 향해 뿌렸다. 당진천은 슬쩍 고개를 비틀어  비수를 피하고 오른손의 철사를 휘둘렀다. 검기가 서린 철사는, 격전이 벌어지는 독기의 전장을 가르고 당청의 상체를 휘감았다.

당진천은 고개를 옆으로 까딱이며 말했다.

“절정에도 이르지 못한 네 무공으로, 무엇을 할 생각이었느냐?”


“…이런 것을  생각이었지요.”

핑!

내공이 담긴 철사가 끊어지며 방 안을 긁어댔다. 당진천은 손에 감은 철사를 놓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휘감았던 철사를 끊은 괴력에는, 내공이 관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몸은 이미 제독분의 바깥에 나와 있었으며 어떠한 중독증세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철사를 찢으며 드러난 그의 상체는, 시체와도 같이 창백한 색을 띄고 있었다.

“너….”




콰직하는 소리가 들리며 창문이, 벽이 종잇장이 찢기듯 찢겨나갔다. 그리고 그 너머로, 사람의 그림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지를 잃은 눈동자들, 뻣뻣한 움직임으로 다가오는 발걸음. 통제를 위해 머리에 박아둔 철심들. 미증유의 괴력을 발산하는 그들은, 심연 같은 외도[外道]를 걷고 있는 존재였다.

가주실의 밖, 내각의 장원을 가득 메우고 있는  존재는 바로 강시[殭屍]였다.


“강시를 만들었나?”


“정확히는 독강시에요, 아버지! 당가의 독으로 뇌를 주물러 주술과도 같은 효과를 만들었어요. 겸사겸사 저희의 몸도 함께 만져봤죠. 어때요, 좀 단단하지 않나요? 형이 철사를 튕겨내는 것 보면, 검기[劍氣]에도  잘리는 것 같은데.”



명랑한 소리로 당진천의 말을 정정하며, 당혁이 모습을 보였다. 당혁은 순진한 웃음을 지으며 독강시의 어깨를 두드렸다.

“소소에게 칠혼독을 조금씩 투여하며, 인간의 혈맥은 과연 독기를 어디까지 버틸  있나 실험을 했던 결과물이죠. 대단하지 않나요? 제조는 당가의 독으로, 통제와 강도의 조절은 마교의 비술로. 어때요, 아버지. 잠깐 풀어놓은 족쇄로, 우리는 이렇게 나아갈 수 있어요.”


“…….”


당혁의 말에 당진천의 얼굴이 굳어갔다. 그리고, 강시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입을 달싹였다.

“당령, 당수린, 당과….”

“아, 얼굴을 기억하시는 구나. 제독전에서 꽤나 말썽을 부리던 놈들이에요. 어찌나 강시를 만드는 것에 반기를 들던지…. 그래도 지금은 순종적이에요. 이봐, 팔을 잘라봐.”




당혁이 명하자,  강시가 거침없이 손을 들어 자신의 팔을 잘라갔다. 그 움직임을, 당진천이 쏘아낸 철사가 막아섰다. 그리고, 눈을 감으며 한탄하는 목소리를 터뜨렸다.


“…너였구나. 아니, 네 어미인가. 수아는 예전부터 야심이 깊었지. 배다른 자식들인 소소와 회를 몰래 괴롭혔다는 것도, 나중에 되어서야 알았다. 나의 죄가 깊구나….”

“아니요, 아버지. 제가 했어요. 같은 배에서 나고 자란 회는 소소를 혐오했죠. 하지만, 다른 배에서 태어난 전 꽤나 따랐어요. 그래서, 당가의 미래에 조금 희생을 시킨 것뿐….”

“그래, 알겠다. 그것이 너희의 뜻이라면. 네 어미인, 독고수아의 뜻이라면. 내 능히 받아주마. 네가 지은 죄를, 내가 대신 속죄해주마.”

콱!


비수 하나가 바닥에 떨어진다.


“아들들아.”


콱! 챙! 파악!

단도가 떨어지고, 철침이 박혔으며, 칼날이 박혔다. 독기를 머금었던 바닥에는 어느새 암기가 가득 메워져 있었다. 여미었던 비취색의 장포는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렸다. 당진천은 천천히 눈을 떴다.


“아쉽지만, 이 하늘은 우리가 같이 이고 살기엔 너무나도 좁아졌구나.”


자신의 아들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지극히 아끼던 피붙이들은 결국, 불구대천의 존재가 되어 당진천의 마음에 비수를 꽂아 넣었다. 그들은 이제 당가의 적이었다. 그에 합당한 대응을 해주어야 맞았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는 듯, 비정하게.

당진천은 오른손을 뻗었다. 비취색의 기파가 바닥으로 퍼지며, 암기들이 진동을 시작했다.


“가는 길에, 꽃놀이나 한 번 보고 가거라.”




암기들이 일어난다. 무게가 있는 것은 마땅히 떨어져야 한다는 법칙을 거스르며, 강철의 꽃잎은 위로 솟아오른다. 이윽고 하늘을 가득 메웠다.


그를 구주십이천의 일인으로 있게 했던 무예. 그 이름도 아름다운, 만천화우[滿天花雨].


핏!

비수 하나가 당청의 상체를 스치고 지나간다. 긴 열상이 아로새겨지며, 녹색의 피를 게워냈다. 당청은 자신의 상처를 훑으며 피로 물든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뭐지?”

“형? 정신 차려! 피해야한다고!”



한 방울, 두 방울. 비는 점차 내리기 시작한다. 당청은 머리 위를 올려다보며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예기의 꽃잎들을 바라봤다.

분명, 자신의 계획은 그럴싸했다. 독천은 예전의 경지가 아니다. 소소에게 신경을 쓰느라, 정파의 콧대높은 자들에게 굽실거리느라 꽤나 무뎌졌다. 단혼사와 녹풍대는 오늘 당가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마교와의 거래로 얻은 독시혈강대법. 그것으로 얻어낸 독강시와 자신의 육체는 분명 독천과 견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넌, 하나를 알려주면 다섯을 깨우치는구나. 나머지 다섯은 잔꾀로 채우려 들다니. 꽤나 영악한 아이야.’



자신의 스승이었던 학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도 그랬다. 당가가 고여서 썩고 있다는 하나의 현상을 보고 다섯을 계획했다. 그리하여 나머지 다섯을 놓쳤다. 당청은  놓친 다섯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당청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내가 뭘 놓친 거지?”

“손을 들어, 몸을 웅크…!”



당혁의 말은 쏟아지는 폭우소리에 묻혀  전해지지 못했다. 몽롱한 눈빛으로 암기의 구름을 바라보는 강시들. 곧이어 우아한 강철의 비가, 외도를 걷는 자들에게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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