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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화 〉사장[四章], 여명도래[黎明到來] 3 (19/130)



〈 19화 〉사장[四章], 여명도래[黎明到來] 3

“정말 죽일 거야?”

당소소는 슬쩍 턱을 들어 올리며 웃었다. 사마문의 검 끝이 흔들렸다. 창백하고 초췌한 얼굴에 걸리는 그 미소는, 가히 나라를 흔드는 요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요염했다. 사마문의 분노는 그 웃음에 손쉽게 중화되었다.  다시 발견한 새로운 얼굴에, 사마문은 동요했다.




“너….”




사마문은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달려들고 싶었다. 푹 젖어있는 옷을 풀어헤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다. 저 홍옥같이 붉고 매혹적인 미소는, 자신의 것으로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선 그녀는 입을 닫을 것이다. 자신이 알고자 하는 것은,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마랑대라는 이름이 그녀의 입에서 나온 시점에서, 공수는 이미 전환되었다. 사마문은 그 사실은 인정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는 것 또한.


“…요재, 의자를 원위치에 놓아라. 이 산니백육도 치워버려.”

“예, 소교주님.”




사마문은 혀를 차며 칼을 땅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자신의 의자로 다시 돌아가 다리를 꼬았다. 그는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가는 당소소를 보며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평생을 사천성 안에서만 살아온 정파 명가의 여식. 마교에 관한 정보를 들을 곳은 전무하다. 심지어, 마랑대는 마교에서도 극소수만 아는 추문….’

“그래서, 마랑대라는 이름은 어떤 경위로 들은 거지?”


“멍청아. 날 그렇게 괴롭혔는데, 곱게 말해 줄 거 같아?”

“…죽고 싶나 보군.”




당소소는 사마문의 말에 다시  번 웃었다. 칼자루는 이쪽에 있었다. 그의 특이한 취향, 극소수만 알고 있는 정보. 거기에 미래를 아는 자신만이 줄 수 있는 해답은, 당소소와 사마문이 벌이는 배짱싸움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게 했다.

그리고 당소소는 이 지난한 싸움의 끝에 쥐게 된 전가의 보도를 쉬이 놓을 생각 따윈 없었다. 당소소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사마문에게 물었다.




“정말,  죽일 순 있어?”

“…….”


“우선,  밧줄부터 풀어봐. 마도공자님.”



당소소는 자신을 묶고 있는 밧줄에 턱짓을 하며 말했다. 사마문은 그 제안에 턱을 괴고 고심했다. 그녀의 말대로, 사마문은 당소소를 범하고 죽일 수 있지만 마도공자는 불가능했다. 마교에 관한 문제는 자신의 직위와 신앙에 관한 문제였다. 그렇기에 함부로 무시하고 일을 진행할 수 없었다.

당소소의 미소에 흥분했던 사마문의 머릿속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마교의 일은 감정적이어선 안 된다. 자신이 마도공자인한.


“…풀어준다면, 무엇을 말해 줄 수 있지?”

“평생 묶고 있던지.”


“정말 평생 묶어줄까? 아니면,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도 있겠군.”

당소소와 사마문의 눈이 마주친다. 비록 칼자루는 그녀가 쥐고 있다곤 하나, 쩔쩔매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사마문은 본심을 감추지 않고 당소소를 끈적끈적한 눈빛으로 핥았다. 당소소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더러워죽겠네….  잘생긴 얼굴, 참 좆같이도 쓰는구나….’


당소소는 사마문의 눈빛에 질색하며 시선을 피했다. 감금당했을 동안 몇 번이고 받았던 눈빛이지만, 남자의 정신으로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눈빛이었다. 당소소는 고개를 저으며 칼자루를 쥐었다.

“당신이 지금 소교주이긴 하지만 마교의 외면을 받는 것도, 그 자리에 올려 준 것도 마랑대의 천산혈로[天山血路] 덕분 아닌가?”


“…참, 요망하군. 천산혈로는 나와 내 측근을 제외하면 아는 이가 전무할 텐데.”

“날 풀어준다고 약속하면, 궁금한 것에 대해 내가 아는 선에서 말해줄 수 있어. 어쩌면, 네가 고민하고 있는 것 까지도.”

“아는, 선에서라….”



사마문은 당소소의 그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치 자신의 상황을 손 위에 놓고 적나라하게 보고 있는 듯한  말투. 단순히 가지고 싶은 것만이 아닌, 소유하고 싶었다.  톡톡 튀는 성격과, 발칙한 말투. 그리고 발랄한 생각. 그녀의 의견 따윈 무시하고, 영원히 자신의 손 안에 넣고 싶었다.


‘당소소를 고문하지 않았다면, 절대 나오지 않았을 말이다. 그녀의 정신과 육체는 한계상태. 아쉽지만, 이것 이상으로 끌어낼 수 없다. 성욕을 고취시키기 위한 고문이 아니라, 철저하게 정보만을 얻는 고문을 한다면 더 알아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그렇게 해버린다면 거래는 성립하지 않는다. 서로가 평행선을 달릴 뿐. 사마문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욕심이 많은 자였다. 그가 소유하고 싶은 것은, 온전한 당소소의 모든 것. 손톱 아래에 바늘을 쑤셔 넣고, 손가락을 꺾고 팔에 붙은 살을 한 점 한  발라낸다면, 손쉽게 원하는 대답은 들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손에 넣은 정보와 당소소는 온전한 것이 아니었다.


“…밧줄 하나에 질문 하나로 하지. 그럼 총 다섯 번이겠군.”


“너무 많아. 세 번.”


“그런가? 그럼 네 번으로 하지.”


“…너 숫자 셀  몰라?”


사마문은 뾰루퉁한 표정으로 그에게 핀잔을 놓는 당소소를 사랑스럽게 바라봤다. 그리고, 눈을 감으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마지막 질문은 널 당문으로 데려다 준다는 조건으로.”

“…네가, 날 놔준다고?”

“왜, 믿기지 않나? 난 나름 약속을 잘 지켜왔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마랑대를 알고 있는 너라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나?”



당소소는 사마문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의 입 밖으로 낸 말은, 반드시 지키는 자였다. 웬만해선 예외 같은 것은 없었다. 주인공을 죽인다고 선언했다, 죽음을 맞이했던 예외를 제외한다면.

그것은 마교의 법과도 일부 통하는 면이 있었다. 진실 된 힘만이 가장 강한 힘이라는, 그들의 법. 그리고 사마문은 그런 마교의 차기 교주로 내정된 자. 그는 마교의 법칙을 가장 신실하게 수행하는 자 중 하나였다.


당소소는 체념하며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대신, 날 온전한 상태로 풀어 줘야해. 지금도, 풀어준 다음에도.”


“뭐, 그러지. 그럼 합의점은 찾은 건가?”

“물어봐. 대신, 알지 못하면 답하지 않겠어.”



사마문은 당소소의 말에 턱을 쓰다듬으며 질문들을 솎아냈다. 마교의 상황, 자신을 적대하는 자들의 정보, 그 정보의 출처.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그녀가 어딜 알고 어딜 모르는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솎아내는 질문이 필요했다.

“첫 번째는, 네가 알고 있는 마교의 구성.”

“천산[天山]의 호족들인 마도육가[魔道六家]와 천마가 기거하는 천마청[天魔廳].”


“조금 부족하군. 마랑대도 알고 있다면, 그 정도는 아닐 건데?”

“…천마청 휘하, 네 개의 부서가 있어. 각각 부교주가 담당하고 있겠지.”



사마문은 고개를 끄덕이며 첫 번째 질문으로 솎아진 의문들을 폐기했다. 그녀는 마교에 관해서 꽤나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화검공자로 잠행하며 봐왔던 정파의 무인들은, 마교에 관해서 정확히 알고 있지 않았다. 천산을 마귀들이 사는 나라라는 둥, 마교는 악마들의 모임이라는 말 등등. 그런 무지는 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당소소는 마교의 구성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말해오고 있었다.


당소소가 약속을 지키라는 노골적인 눈빛을 보내왔다. 사마문은 요재를 바라보며 말했다.

“양 손을 풀어줘.”


“네, 소교주님.”

요재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당소소의 양 팔에 메인 밧줄을 풀어주었다. 밧줄이 그녀의 피딱지를 뜯어가며 손목엔 다시 피가 흘러내렸다. 당소소는 얼굴을 찡그리며 자신의 손목을 감싸 쥐었다.

사마문은  살짝 찡그린 얼굴에 시선을 던지며 다음 질문을 정했다. 가장 간단한 것이며 가장 궁금한 것을 던져야 할 차례였다.

“둘 째. 네 정체.  그냥 사천당가의 독화 당소소가 아니야. 그렇지?”

“질문이야?”

“후후, 영악하긴. 정말 탐나. 뭐, 그대로 물어본다면 네가 답하진 않을 테니….”

당소소의 말에 사마문의 눈은 호선을 그리며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시선이 마주하며 생각의 그물이 얽혔다.

‘천하십강인 독무후의 후계자가 발표된 적이 없다. 그녀는 독무후의 제자인가?’

‘쌍검무쌍의 어느 설정을 가져와야  빌어먹을 놈이 납득을 하고, 사천당가에 손을 대지 않을까. 날 죽이거나 건들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히 당문에게 무언가를 뜯어보려고 납치한  분명한데.’

‘아니, 독무후의 제자였다면 요재에게 순순히 잡혔을 리가 없다. 그녀의 후계는 독천 하나라고 보는  맞아. 그렇다면, 당문은 제외인가. 여태 나에게 보여주었던 그 태도는 연기. 마교를 잘 알고 있고, 당청에게 위기감을 느끼게 할 정도라면….’

‘독무후의 제자가 맞겠어. 내가 독무후의 제자라는 말을 한다면, 나도 건드리지 않을 것이고 천하십강인 독무후의 후환이 무서워서라도 당가를 건드리진 않을 거야.’


당소소와 사마문은 동시에 눈을 깜빡이며 결론을 내렸다. 사마문은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는 거만한 태도로 세상을 속이고 있던 당가의 후기지수라고 보는  타당하다는 것. 그렇다면, 아주 쉬운 문제였다. 사마문의 입가엔 득의의 미소가 어린다.

“독무후의 제….”

“정천무관[正天武館]의 입학내정자였군. 마침 출신도 오대세가. 그쪽의 실세인 용봉지회[龍鳳之會]의 초청을 받고 마교에 대한 정보를 공유 받았겠고. 그렇다면, 나에 대한 정보를 알았다는 게 이해가 가. 맞나?”


“으, 응? 아니…. 음…? 그, 독무후라고 그….”


“독무후의 제자라는 것도 잠시 떠올렸지만 말이 되질 않는다. 그녀가 모습을 보이지 않은 세월은 이십  이상. 널 가르칠 시간도 없을뿐더러, 진짜 독무후의 제자였다면 요재한테 잡혀서 이런 꼴을 당했을 리가 없을 테니.”

사마문은 쩔쩔매는 당소소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판단에 확신을 하고 있었다. 마교와 외세에 대비해 만들어진 정파 무림의 총본산이라고  수 있는 무림의 학관, 정천무관의 특별입학자 당소소. 그것이라면 모든 것이 설명 가능했다. 무엇보다 당소소가 당황하는 그 모습이, 바로  증거였다.

사마문의 자신만만한 말에, 당소소는 입술을 꼭 다문  자신의 생각을 다시 검토했다.



‘어, 그렇네? 독무후의 제자면 요재는 이겨야 했어….’


“당황하는  하면서 숨겨봤자 소용없다. 그런 수는 통하지 않으니까. 네가 아는 대로 난, 천산혈로의 생존자 아닌가?”


“어, 응…! 맞아. 정천무관, 정천무관에서 알려준 거야. 이, 이렇게 약한데 독무후의 제자일 리가. 맞아, 맞아. 너, 좀 똑똑한데?”

“후후, 마교의 소교주에겐 당연한 것이야. 그런 얄팍한 수로 내 눈을 피할 수 없지. 요재, 풀어줘.”


사마문은 정곡을 찔렸다는 표정을 보이는 당소소를 바라보며, 다시금 자신의 판단에 고개를 끄덕였다. 요재가 몸을 숙여 당소소의 허리를 졸라매던 밧줄을 풀어주었다. 답답했던 호흡이 한결 편해지고, 부담스럽게 들려 있던 가슴이 내려오며 어깨에 살짝 무게감이 실렸다.

당소소의 밧줄이 풀어진 것을 확인한 사마문은, 다음 질문을 고르기 위해 머릿속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당소소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 씨발. 독무후의 제자라고 했으면 무슨 쪽을 팔렸을지…. 마교의 인물에게 제압당하는 천하십강의 제자라니, 소문이라도 퍼졌다간 독무후가 당장 달려와  때려죽이려고 했을 거야.’


당소소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고민을 끝낸 사마문을 바라본다. 사마문은 의자의 팔걸이에 팔을 올리고, 턱을 괴며 그녀를 바라본다.




“셋째. 마랑대의 천산혈로는 현 마교에선 교주와 나만 아는 사건이다. 정천무관 입학예정자가 알만한 내용은 아니지.”

“…….”


“사마연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나?”



사마문의 질문에 당소소는 그 눈을 바라봤다. 짙은 회한과 침잠하는 분노가 깃든 눈길. 그녀는 사마연이라는 인물을 잘 알고 있었다. 신분을 속이고 정천무관에 입학해, 주인공을 도와주는 인물. 그녀의 정체는, 천산혈로라 불리는 마교의 내전에서 살아남은 마도공자 사마문의 이복동생이었다.


그 사건은 사마문의 소교주 자리를 만들어냈고, 또한 그가 형제보다 더 깊이 사귀었던 마랑대의 전멸과, 아끼던 이복동생의 실종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것이 역린이었다.

당소소는 내색하지 않고, 고심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입가의 표정을 가렸다. 알고 있지만, 말해선 안 된다. 말한다면 그 순간, 마도공자가 본격적으로 쌍검무쌍의 무대 위에 오를 것이다. 당소소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천무관에선 듣지 못한 내용이야. 나도 천산혈로에 관한 건, 우연히 들은 것뿐이야.”


“…그런가.”




사마문은 눈을 감으며 실망스런 감정을 숨겼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요재는 마지막 남은 밧줄인, 다리 부분의 밧줄을 풀어준다. 당소소는  다리를 살짝 들어보며 드디어 찾은 육체의 자유를 만끽한다. 그리고, 내친김에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시도를 해본다.


“아?”


당소소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며칠 동안 결박당하며 계속해서 발작을 유도당하고 제대로 된 음식을 섭취하지 못했던 그녀의 몸은, 너무나도 허약해져 있었다. 당소소는 무릎을 꿇은 채 겨우 몸을 가누며 사마문을 바라봤다.

“귀여운 짓만 골라서 하는군. 마지막 질문이야.”



그런 당소소를 바라보며, 사마문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마지막이 될 질문을 던졌다.


“이제 그만  가지고 싶어졌는데, 어떻게 해야 가질  있지?”

“…뭐?”



당소소는  못 들었다는 듯, 눈가를  구기며 혐오스런 것을 보는 표정으로 사마문을 바라보았다. 사마문은 그 조차 사랑스럽다는 듯, 만족스런 얼굴로 그녀의 시선을 받아주었다. 당소소는 믿기지 않는 다는 듯, 그에게 물었다.



“날 납치한 건, 사천당가를 위협하고 겸사겸사 네 성욕을 채우려던 거 아니었어?”

“설마, 난 네가 정말로 마음에 들어서 납치한거야. 내 성욕을 채우고 싶었다면, 당장 길거리에서 널 겁간했겠지. 그것을 위해 항상 요재는 춘약을 구비해놓고 다니지.”

“준비할까요?”


요재가 기다렸다는 듯이 의사를 물어오자, 사마문은 짧게 고개를 저으며 요재를 제지했다.


“…진짜 발정난 새끼일세. 뭐, 좋아. 알려줄게.”


당소소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자신을 가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간단히 알려주었다.



“뒤져. 유서에 내 이름 쓰고.”



당소소는 후들거리는 팔을 들어,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가는 목을 슥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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